도서 소개
1892년 한국 선교를 시작한 미국남장로교는 “불신자는 전도하고 신자는 교육한다”는 신념 아래 고등교육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 책은 그 선교적 과업의 중심에서 활동했던 최초의 평신도 교수 선교사, 윌리엄 파커(William P. Parker)의 생애와 사역을 복원한 자료집이다. 파커가 1916년부터 1925년까지 미국 후원자들에게 보낸 분기별 선교 보고서와 서신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서신에는 목포 스테이션에서의 초기 활동부터 평양 숭실대학에서의 교육 사역 그리고 3·1운동 당시의 동료 선교사가 겪은 고초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담겨 있다.
출판사 리뷰
“식민지 조선의 교육에 앞장선 남장로교 최초 교수 선교사”
평신도 ‘윌리엄 파커’의 헌신
1892년 한국 선교를 시작한 미국남장로교는 “불신자는 전도하고 신자는 교육한다”는 신념 아래 고등교육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 책은 그 선교적 과업의 중심에서 활동했던 최초의 평신도 교수 선교사, 윌리엄 파커(William P. Parker)의 생애와 사역을 복원한 자료집이다. 파커는 1912년 내한하여 목포 영흥학교 교장을 거쳐 평양 연합기독교대학(숭실)에서 18년간 수학 교수로 재직하며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에게 수학과 물리학을 교육했다.
이 책은 파커가 1916년부터 1925년까지 미국 후원자들에게 보낸 분기별 선교 보고서와 서신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서신에는 목포 스테이션에서의 초기 활동부터 평양 숭실대학에서의 교육 사역 그리고 3·1운동 당시의 동료 선교사가 겪은 고초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담겨 있다.
윌리엄 파커(William P. Parker), 그는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로서 대학이라는 공간을 선교의 현장으로 일구어낸 선구자였다. 12년 동안 13번의 이사를 거듭하면서도 수성리교회를 개척하고, 주일학교 봉사를 멈추지 않았던 그의 헌신과 땀은 빛났다. 『윌리엄 파커 서신』은 한 세기 전 한반도에 뿌리내린 기독교 고등교육의 역사적 실체를 확인하는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다. 또한 오늘날 학문과 신앙, 소명의 기로에 선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교훈을 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의 서신에 담긴 생생한 삶의 궤적을 따라 100년 전 교육 선교의 현장을 마주해 보길 권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화극 중 하나는 고학년 두 학생이 물리학의 원리를 주제로 토론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학생은 매우 무지한 척했고, 다른 학생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지한 학생이 모든 사람은 지구 밖으로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상대편 학생은 중력의 법칙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또한, 이와 관련된 질문이 던져졌을 때 일식과 기타 현상에 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지한 학생이 그 모든 것을 어디서 배웠느냐고 묻자, 당연히 우리들의 학교 이름인 ‘영흥학교’라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1부 _ <Letter 1· 1916년 1월 3일> 중에서
우리는 매일 아침 8시 30분부터 9시까지 예배를 진행하고 있으며, 교사들은 시골에서 온 신입생 소년들에게 특별히 초점을 맞추어 매우 도움일 될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 출석은 필수이며, 두 개의 주일학교(불신 어린이들을 위한 주일학교와 이후에 교회와 학교 건물에서 열리는 대규모 주일학교) 및 수요일 저녁 기도 모임에 참석해야 합니다. 새로운 소년들은 이미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교회를 처음 와본― 철저히 불신자였던 소년은 모든 학업에서 놀라운 열정을 보이며 신앙의 기본을 잘 이해하고 있어 매우 고무적입니다. 저는 이번 해 모든 학년의 성경 과정을 가르치고 있으며, 제 언어 능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대부분 초보자들임에도 학생들이 상당히 잘 배우고 있습니다. 시골 소년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해 주시고, 그들이 유용한 기독교인이 되도록 교육하고 있는 모든 교사를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2부 _ <Letter 2· 목포 스테이션 노트(Mokpo Station Notes)> 중에서
이원필 목사(Mr. Yi)는 지역 교회(목포)의 목사로서 지난 2년간 봉사하였습니다. 그러나 8월 전라노회에서 군산 교회의 부임 요청을 받아들였고, 오늘 9월 26일 그곳에서의 사역을 시작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지난 주일 저녁, 그는 작별 설교를 하였고, 월요일에는 남학교 건물에서 열린 환송 연회에서 그의 명예를 위해 한국식 만찬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많은 외국인 손님들과 한국인 손님들이 참석했습니다. 교회의 장로와 몇몇 청년들이 송별사를 하며, 이 목사님이 떠나시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오늘 정오 열차로 떠나실 때 교인들이 역으로 배웅하러 갔으며, 학교 학생들도 공부를 마치고 쉬는 시간에 역으로 가서 송별했습니다. 니스벳 선교사가 새 목사가 청빙될 때까지 임시로 이 지역 교회를 맡을 예정입니다.
5부 _ <이원필(Yi Un Pil) 목사님과의 작별 인사> 중에서
목차
감사의 글 _ 조용훈
해제 _ 송현강
1부 _ 윌리엄 파커 서신 1집
Letter 1∙ 1916년 1월 3일
Letter 2∙ 1916년 2월 5일
Letter 3∙ 1916년 3월 20일
Letter 4∙ 1916년 5월 9일
Letter 5∙ 1916년 6월 28일
Letter 6∙ 1916년 8월 5일
2부 _ 윌리엄 파커 서신 2집
Letter 1∙ 한국의 어딘가에서
Letter 2∙ 목포 스테이션 노트(Mokpo Station Notes)
Letter 3∙ 1916년 10월 31일
Letter 4∙ 1916년 11월 20일
Letter 5∙ 1916년 12월 30일
3부 _ 윌리엄 파커 서신 3집
Letter 1∙ 1916년 12월 30일
Letter 2∙ 1917년 1월 1일
Letter 3∙ 1917년 1월 23일
Letter 4∙ 1917년 3월 5일
Letter 5∙ 1917년 4월 11일
4부 _ 윌리엄 파커 서신 4집
Letter 1∙ 1917년 5월 22일
Letter 2∙ 1917년 5월 30일
Letter 3∙ 1917년 8월 8일
Letter 4∙ 1917년 9월 3일
5부 _ 윌리엄 파커 서신 5집
Letter 1∙ 1917년 10월 9일
Letter 2∙ 이원필(Yi Un Pil) 목사님과의 작별 인사
Letter 3∙ 1917년 11월 12일
Letter 4∙ 1917년 12월 5일
Letter 5∙ 1917년 ― 윌리엄 P. 파커 부인 보고서
6부 _ 윌리엄 파커 서신 6집
Letter 1∙ 1918년 2월 11일
Letter 2∙ 1918년 3월 15일
Letter 3∙ 1918년 4월 6일
7부 _ 윌리엄 파커 서신 7집
Letter 1∙ 1918년 5월 4일
Letter 2∙ 1918년 7월 10일
Report 1∙ 1918년 6월 30일
Letter 3∙ 1918년 9월 17일
Letter 4∙ 1918년 10월 19일
Letter 5∙ 1918년 11월 12일
Letter 6∙ 1918년 12월 3일
Letter 7∙ 1919년 1월 8일
Letter 8∙ 1919년 1월 31일
Letter 9∙ 1919년 2월 26일
Letter 10∙ 1919년 3월 29일
8부 _ 윌리엄 파커 서신 8집
Letter 1∙ 1919년 4월 24일
Letter 2∙ 1919년 5월 27일
Letter 3∙ 1919년 11월 28일
Letter 4∙ 1920년 12월 21일
Letter 5∙ 1921년 1월 16일
Letter 6∙ 1921년 2월 17일
Letter 7∙ 1921년 3월 16일
9부 _ 윌리엄 파커 서신 9집
Letter 1∙ 1921년 4월 28일
Letter 2∙ 1921년 5월 18일
Letter 3∙ 1921년 7월 13일
Letter 4∙ 1921년 7월 29일
Letter 5∙ 1921년 10월 15일
Letter 6∙ 1922년 3월 9일
Letter 7∙ 1922년 7월 12일
Letter 8∙ 1922년 10월 9일
Letter 9∙ 1923년 5월 28일
Letter 10∙ 1923년 11월 15일
10부 _ 윌리엄 파커 서신 10집
Letter 1∙ 1924년 2월 22일
Letter 2∙ 1924년 5월 28일
Letter 3∙ 1924년 9월 30일
Letter 4∙ 1925년 1월 2일
Letter 5∙ 1925년 4월 4일
Letter 6∙ 1925년 9월 30일
Letter 7∙ 1925년 12월 29일
역자 후기 _ 이승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