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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태 평전
목포의 어른, 환경운동가
호미 | 부모님 | 2026.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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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우리나라 1세대 환경운동을 이끌었던 서한태 박사의 삶을 통해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과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의 가치를 지금 우리에게 보여주는 책이다. 서한태의 삶을 통해 지역의 큰어른으로서, 그리고 실천적 환경운동가로서 그의 면모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역사 또한 자연스럽게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출판사 리뷰

“못된 사람은 역사가 심판하고, 우리의 바보짓은 자연이 심판한다.” 원로 환경운동가 서한태 박사의 이 기억할 만한 발언은…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스스로의 보금자리를 무분별하게 망가뜨리고 있는 우리에게 뼈아픈 경종이 되어야 할 말이다. -『녹색평론』

목포의 평범한 의사, 50대 중반에 환경운동에 뛰어들다
『서한태 평전』은 우리나라 1세대 환경운동을 이끌었던 서한태 박사의 삶을 통해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과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의 가치를 지금 우리에게 보여주는 책이다.
그는 1928년 전남 무안군 몽탄면에서 태어나 전남대 의대를 졸업했다. 1953년 졸업 후 9년 동안의 군복무를 마친 뒤 1962년 목포에서 개업한 평범한 의사였다. 그런 그가 환경운동에 뛰어든 것은 50대 중반에 들어서였다.
서한태는 식민지 시절에 태어나 교육을 받으며 격렬한 좌우 대립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성장했다. 이후 이승만과 박정희 독재 체제에서는 군의관으로 10년 가까이 군복을 입고 살며 반공주의와 냉전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이념적으로 혼란한 젊은 시절을 서한태는 오직 개인의 양심 하나만을 지키며 살았다. 의사로서 오로지 환자들을 성심성의껏 대하고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몸 사리지 않고 나섰다. 국제봉사단체나 체육계를 통해 청소년 선도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그 정도면 스스로 좋은 어른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유신 반대 운동이 한창이던 1979년 어느 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정학을 당해 집에 내려와 있던 둘째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책도 안 읽으면서 어떻게 여기저기 다니며 활동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집에도 이런저런 좋은 책이 많으니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보통의 아버지 같았으면 ‘데모하다가 학교에서 쫓겨난’ 아들이 권하는 책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그는 아들이 권한 책들을 열심히 읽어나갔다. 그렇게 본격적인 책 읽기에 빠져들자 그는 스스로 세상을 잘못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는 것이 많아도 세상을 바르게 보지 못하면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그때 일을 서한태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그 무렵에 학교 육성회 활동도 나가고 해서 교육에 대해 꽤 안다고 생각했어. 근디 이오덕 선생의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를 읽어본께 부끄럽드라고. 그담에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었는디, 와따... 세상이 완전히 바뀐 것 같어. 그때까지는 착실하게만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디, 관점에 따라서 전혀 세상이 달라 보였어.”
1983년 6월, 얼굴 정도만 알고 지내던 정보과 형사 한 사람이 긴히 할 말이 있다며 서한태를 찾아왔다.
“박사님, 영산포 삼영리에 진로 주정공장이 들어선다고 합니다. 도지사 허가도 곧 나온다고 하고, 폐수처리시설 공사가 벌써 진행 중이라는데...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권력의 눈치를 보는 행정기관이나 지역 유지들 힘으로 진로 주정공장 설립을 막을 수 없다는 건 자명했다. 이에 서한태는 본격적인 환경운동의 길로 뛰어든다.

실천하는 행동가로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선구자가 되다
이미 1970년대부터 수자원이 부족해 주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었던 목포시에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건립되며 영산호가 조성되었고 목포의 물 부족 문제는 곧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었던 때였다. 그런데 이듬해인 1982년, 몽탄강 상류 영산포 삼영리에 주식회사 진로가 주정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신청이 접수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고 정보를 입수한 소수의 인사들이 막후 교섭을 통해 반대 의사를 관계 당국에 전달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정 공장이 들어서면 하루 2700㎥의 폐수가 목포의 상수원인 영산강에 흘러들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게 된 서한태는 지역민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이 문제는 범주민운동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곧 '영산호 보존회'라는 환경단체를 조직, 반대투쟁을 시작했다.
당시는 전두환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랬던 시기였고, 반대운동을 차단하려는 정보기관의 은근한 압박도 있었지만 그는 굽히지 않았다. 목포를 중심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무안, 함평, 영암, 해남 등 영산호 주변 군 지역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6개월 여의 투쟁 끝에 결국 주정 공장 설립 계획이 철회되었다. 서한태는 당시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때 안 해본 게 없었다. 가두캠페인, 서명, 플래카드 걸기, 리본 달기, 설문조사, 현장답사, 항의방문, 민원제기, 강연, 연극까지...”
이 일은 한국 환경운동사의 기념비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어떤 외부 세력의 개입도 없이 자생적으로 조직된 순수 시민 운동이라는 점, 그리고 당시에는 생각하기 어려운 예방적 환경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여타의 환경운동들과 차별화된다. 대부분의 환경운동이 오염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보상 차원의 사후적 대응에 머물렀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 환경운동사에 있어 첫 성공 사례로 꼽히는 이 운동은 목포라는 지역을 넘어 전국의 환경운동 발전에 큰 이정표를 세운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당시에는 환경운동이라는 말조차도 생소했고, 서한태는 그저 23만 목포 시민이 마실 물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서한태가 헤쳐 나간 길이 곧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길로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서한태는 환경운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 1986년에는 삼학도에 4천 톤 규모의 시멘트 사일로를 만드는 계획을 무산시켰고, 1987년에는 신안비치호텔의 유달산 케이블카 설치 계획을 막아내는 등 목포 지역의 주요 환경운동을 앞장서 이끌었다.
이후 그는 평생 ‘영산강 지킴이’를 자처하며 물관리 일원화를 주창하는 등 평생을 환경운동에 헌신했다. 체력이 약해지자 병원 건물을 환경단체에 선뜻 내주고, 전남환경운동연합 상임고문을 맡아 후배들의 활동을 지원했다. 그는 “유럽은 역간척이 진행되는데 우리는 새만금과 시화호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한다”며 주암댐 건설과 영산강 간척(4단계)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런 과정에서 영산호보존회, 삼학도보존회, 유달산보존회 등을 이끌고 목포녹색연구회, 목포환경운동연합 등을 창립했다.
이런 실천 철학과 활동을 담아 1996년부터 10년 동안 소식지 『환경과 건강』 15호를 발간했고, 『내 땅을 지키고자』, 『환경에 관한 150가지』, 『쾌적한 환경을 찾아서』 등 저서를 꾸준히 펴냈다.
이런 공로로 그는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교보 환경문화상 대상과 국민훈장 동백장, 올해의 호남인상 등을 받았다.
젊어서 한때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사회운동에 투신한 사람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은 나이 들면서 현실과 타협하며 운동과 멀어진다. 반대로 평범하게 살다가 중년 이후 운동에 나서서 죽는 날까지 신념을 실천하는 경우는 드물다. 서한태는 의사로서 안정된 소득을 얻으며 여유롭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었으나 홀연히 환경운동에 나섰고, 세상을 마칠 때까지 흔들림 없이 실천적 환경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옳은 길에 나서는 일보다 어려운 건 그 길을 일관되게 걸어가는 것이다. 나날의 일상을 끝없는 실천으로 채워 는 것이야말로 운동가에게 가장 큰 덕목일 것이다.『서한태 평전』은 서한태의 삶을 통해 지역의 큰어른으로서, 그리고 실천적 환경운동가로서 그의 면모를 새롭게 발견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역사 또한 자연스럽게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1983년 6월 15일은, 그간 의사라는 직업을 밑천 삼아 지역의 명망 있는 어른으로 살아온 서한태가 환경운동에 첫발을 내디딘 날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환경운동이라는 말조차도 생소했고, 그저 23만 목포 시민이 마실 물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서한태가 헤쳐 나간 길이 곧 환경운동의 길로 이어졌다. 그날 오후 5시에 서방사선과 의원 2층에서 열린 청호라이온스클럽 이사회에서 진로 주정공장 설립 저지 투쟁의 서막이 올랐다.

여론의 역풍을 맞은 쌍용과 항만청은 서한태와 삼학도보전회에 사람을 보내, 은근히 타협안을 제시해 왔다. 가령 쌍용양회에서 삼학도 공원 조성에 돈을 대고 적극 협력하거나, 시멘트 하역 설비에서 공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조치할 수 있다면 찬성하겠느냐는 식이었다. 또 삼학도에는 사일로만 짓고 나머지 부대시설은 다른 곳에 짓는 방안도 제시해 왔다. 하지만 서한태는 이들의 어떤 타협안에도 거절 의사를 명확히 했다.

사람들은 흔히 토지를 개발하거나 큰 건물이 들어서는 것이 발전이라고 생각하지만 서한태는 “어려운 사람들의 사정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것”이 발전이라고 보았다. 또한 “대규모 개발에 골몰하기보다는 작더라도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을 진정한 발전이라고 했다. 그런 만큼 ‘개발은 깔짝깔짝하는 게 낫다’라고 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박남일
전남 해남 태생으로, 대학에서 문예창작학을 전공한 뒤 오랜 기간 저술 노동자로 살아왔다. 생태사회주의에 기반을 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억압이 없는 세상을 지향한다. 지금은 전남 함평의 산골 마을에서 작은 글방을 지키며, ‘에코토피아Ecotopia’가 실현되는 일상을 꿈꾼다. 그간 『청소년을 위한 혁명의 세계사』(서해문집), 『히스토리텔러 박남일의 역사블로그』(살림프렌즈), 『꿈 너머 꿈을 꾸다-정도전의 조선 창업 프로젝트』(서해문집), 『최현배의 한글사랑 이야기』(시사출판사),『어용사전』(서해문집), 『통합과 인애의 정신 실천한 민족운동가 장병준 평전』(선인), 『암태도 소작쟁의 지도자 서태석 평전』(선인) 등을 썼다.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목포의 어른, 환경운동가 서한태

1 오거리의 평범한 의사 시절
정체성 혼란 속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토목기사의 꿈을 접고 의사의 길을 가다/ 오거리의 평범한 의사 시절

2 주민운동에 불을 붙이다
정보과 형사의 제보/ 영산호수질오염대책위원회 결성/ 불붙은 주민운동, 언론의 ‘물타기’/ 반짝 승리를 넘어 지속적인 투쟁으로/ 한국공해문제연구소와 최열의 연대

3 다 같이 부른 「고향의 봄」
환경청 결정과 투쟁의 새로운 국면/ 결전을 앞두고 벌인 기관장들과의 협상/ 전남도지사의 배반과 공사 현장 방문 투쟁/ 다 같이 부른 「고향의 봄」/환경 운동사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기록되다

4 영산호의 지속적 보존을 위해
영산호보존회 이름으로 거둔 승리/ 전남도의 허울뿐인 대책과 공무원 버릇 고치기/ ‘죽음의 하천’ 광주천을 살리자/ ‘하이타이 퐁퐁’ 공장증설에 맞서/ 미래 세대를 위한 활동

5 목포의 상징, 삼학도와 유달산 지키기
단기필마로 곡물 사일로를 막아내다/ 쌍용양회의 시멘트 사일로 저지를 위하여/ 삼학도보전회 결성과 시멘트 사일로 저지/ 유달산 케이블카 설치에 대한 수상한 여론/ 유달산보전회 결성과 그 주역들

6 녹색운동의 지속적 실천을 위하여
녹색운동단체협의회 결성/ 목포 최초의 환경운동단체 ‘목포녹색연구회’ 창립/ 목포 환경 운동사의 고전 『내 땅을 지키고자』 출간/ 목포에 반핵운동의 길을 내다/ 물관리 일원화를 필생의 과제로

7 시민사회 운동과의 동행
많이 아는 것보다는 관점이 중요하다/ ‘의식의 샘터 유달서점’과 독서운동/ ‘목민협’ 공동 의장으로 시민사회 운동과 동행/ 목포시장 시민 후보 추대를 거절한 이유

8 환경과 건강의 전도사로 나서다
식생활 문화 개선을 위하여/ 물 맑으면 마음 맑다/ 병원 폐업하고 ‘환경과 건강’의 전도사가 되다/ 목포환경운동연합 결성

9 ‘적정규모’와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적정규모, 지속가능한발전과 평등사회의 조건/ 푸른전남21 상임 의장 활동의 교훈/ 『녹색평론』의 대화, ‘환경운동의 원점에서’/ 지속가능발전위원회와 새만금 문제/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논의하라”

10 쾌적한 환경에서 건강하고 인간답게
노년기의 활동과 ‘공성이불거’/ 토론 문화 정착을 위하여/ 건강해도 오래 살면 안 좋다/ 두는 자리에다 두어라

에필로그: 에코토피아를 꿈꾸며
활동 연보 / 주요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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