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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새벽
한국문연 | 부모님 | 2026.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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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김정옥 시인의 이번 시집은 첫시집 『풀잎』(2022)이 보여주었던 세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시인은 여전히 비바람 몰아치는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생명의 세계, 풀잎의 세계를 열망한다. 시집을 열면, 곧바로 “봄이 옵니다 겨울은 지나갑니다/ 피어나는 시기는 다르므로 나의 꽃을 피워내는 때를/ 조용히 기다립니다”(「시인의 말」 부분)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나타난다. 이는 이 시집의 지향점을 충실히 반영해 준다. 다만, 이 시집은 현실에 대한 인식의 강도가 더 커지면서 언어 감각은 더 예민하고 치열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출판사 리뷰

김정옥 시인의 이번 시집은 첫시집 『풀잎』(2022)이 보여주었던 세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시인은 여전히 비바람 몰아치는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생명의 세계, 풀잎의 세계를 열망한다. 시집을 열면, 곧바로 “봄이 옵니다 겨울은 지나갑니다/ 피어나는 시기는 다르므로 나의 꽃을 피워내는 때를/ 조용히 기다립니다”(「시인의 말」 부분)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나타난다. 이는 이 시집의 지향점을 충실히 반영해 준다. 다만, 이 시집은 현실에 대한 인식의 강도가 더 커지면서 언어 감각은 더 예민하고 치열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전반부의 시편들은 종종 무의식에 가까운 어두운 내면 혹은 몽상의 세계에 맞닿아 있는 듯하다. 가령, 삶의 유연성이 사라진 채 응고되고 깎이고 얼어붙는 이미지들은 시인이 간직한 실존적, 사회적 고뇌와 고통을 표상한다. 언어 사용에서도 서술적 맥락이 더 확장되어 서정시로서는 다소 긴 시편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 점은 시적 감각의 디테일을 강화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낡은 집

허름한 나의 내면을 보려고 기웃거립니다

양쪽 나무문 사이 문을 잠그는 쇠고리가
둔탁하게 달려 있습니다
녹슨 쇠와 못이 문을 지탱하고 깨진 슬레이트 지붕 아래 서까래 등은 부서져 갑니다
그래도 제법 벽돌 기왓장이 가운데를 튼튼하게 일직선으로 늠름하게 잡고 있어 제법입니다
담쟁이 넝쿨이 문틈을 지나 볕이 잘 드는 벽을 타고 손바닥을 짝 펼치고 있네요

죽어버린 것 같은 줄기를 따라가 보면
초록 잎사귀가 보입니다 벽에 딱 붙은 회색
줄기에 초록색이 뻗어 나와 뒤엉켜 있습니다

작은 거미들이 군데군데 사는 헐거워진
거미줄 옆 담쟁이 꽃이 단아하게 피어 있네요

뒤꼍에는 커다란 거미가 지붕 밑으로 거미줄을
촘촘하게 쳐놓았지만 갈색 나뭇잎만 말라붙어 있어요 그래도 거미는 커다랗고 씩씩해 보입니다

문을 열면 그럴듯한 무언가 기다릴 것만 같아
조심스레 열어 봅니다 조그마한 몽당 빗자루가 누워 있습니다
안에는 청소만 하면 깔끔할 것도 같습니다
과자 봉지에 빈 병들이 오랫동안 잠을 자다
문 여는 소리에 깜짝 놀라 실눈을 뜨고
쳐다봅니다
오랫동안 빗장을 질러 닫아놓았는지
먼지 쌓인 빨간색 노란색이 섞인 비단 방석
피곤하면 쉴 수도 있을 것 같은 오래된 돗자리가 접혀 있습니다

이미 안을 들여다보았고 무엇이 있는지 알 것도 같은데 잘 열리지 않는 좁은 문틈으로
몇 번이고 안을 기웃거려 봅니다
좁고 낡은 집 그 안에서 나는 늘 숨을 쉬니까요

푸른 새벽

나뭇잎이 우수수 비를 뿌립니다

사과 씨를 깨물었습니다
깨물어 버린 사과 씨를 삼킵니다
사과를 먹다가 씨앗은 빼내려 했는데
그만 먹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씨앗까지 넘어옵니다
껍질째 맛있게 씹어 먹었는데 씨앗에서 느껴지는
알갱이들이 까끌까끌거리며 혀를 만지고
목젖을 지나 넘어갑니다
단단한 당신의 언어가 씨앗이 되어
잠자던 나를 일어나라고 싸리비로 쓰윽 쓰윽
새벽 공기를 마시며 마당을 쓸어줍니다
나는 잠만 자고 있는데 당신은 벌써 깨어 있네요
나는 게으르게 새벽을 보내는데
당신은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며
늦게까지 잠 못 이루네요
직접 소리 내 깨우지 않고 슬쩍
이슬 바람 불어놓고 갔는지 촘촘한 이슬들이
내 앞에 서성거려요 속살들이 떠다녀요
나는 거친 나무껍질만 보여주는데
당신은 나무 속 부드러움을 살포시 꺼내어
나의 부끄러운 민낯이 내 얼굴에 부딪혀 와요
나는 진실을 잘 알지도 속살을
어떻게 내어놓아야 할지도 모른 채 걸어요
그런데 당신은 아무렇지 않게 살포시 뿌려놓았어요
눈이 커다랗게 부풀어 올라요
이슬들이 곱게 쓸어둔 마당 가에 앉아요
이제 당신에게 씨앗을 꺼내는 법을 배우려
종종 당신을 만나 진실을 꺼내볼게요

나는 저 아래로 떨어져 있어요 그래도 언젠가
언젠가는 그 씨앗을 깨물어 먹고 싶어요

싱그런 사과, 당분이 촘촘한 당신의 언어를
깨물어 먹습니다

날개를 말려요

검은 형체가 덮쳐버리고
안에서 줄줄 흐르는 액체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손가락 끝이 움직여지지 않아 넋 놓고 있다가
약을 챙겨 먹고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요

또르륵 또르륵 둥그런 원을 그리며 떨어져요

내 아이의 이마 눈동자 손끝에서
지독한 물들이 쉴 새 없이 흘러요

바람처럼 이리저리 흩어질까요
여기 앉았다 저기 쉬었다 갈 수 있을까요

어둠이 내려앉은 방 안에 앉아 공부를 하고 지친 몸을 누여요 내일은 학교 공부를 마치고 쪽잠을
자고 일어나 일하러 가야 해요 새벽 5시에 일을
마치면 버스가 없어요 걸어서 30분

똑똑 잘도 떨어지는 돈은 늘 배가 고프고
주머니는 늘 비어 있어요 채워주지 못해 나는 늘
빗물을 받아놓고 살지요

어릴 때부터 늘 구멍이 뚫린 어두운 방 안에
내려놓고 꺽꺽 울다가 잘 키워보겠다고
책도 사고 일도 쉬지 않았지만 멈출 수 없네요

잘 컸다 잘했다 그러나 늘 아프고
진정되었다 싶으면 또 솟구치는 어두운 방 안이
목덜미를 잡네요
이끼가 방안에 덮인 것처럼 습하죠 고인 물이
빠져나가지 못한 것처럼 마르지 않은 방
곰팡이들이 쥐를 불러오고 습한 바람들이
덜컹거리는 창문을 닫게 하네요

벽지는 들뜨고 들뜬 벽지 사이로 검은 곰팡이들이 번져나가고 오래된 에어컨 바람은 곰팡이를
오래오래 살게 했어요 담벼락에 피어난 이끼들은 고인 물을 마시고 미끄러질 수 있으니 바닥을
조심해야겠어요

오래된 낡은 집 사이로 새끼 고양이가 배가
고프다고 야옹거려요 츄르를 하나 사서 먹여주곤 돌려보냈어요 곰팡이가 피어난 방안에 차마 둘 수 없어서 가라고 손짓했죠 비어 있는 마음 한편에는
늘 걱정의 방이 자리하고 삭막한 도시에 홀로
배고픔을 라면이나 간단한 일회용으로 때우는데
기댈 곳이라고는 겨우 이끼 가득한 벽과 들뜬 벽 작은 침대가 전부

벗어날 수 있겠죠 환한 방에 새들이 지저귀고
햇살이 날갯짓을 멈추지 않을 날

마음 한편 바람이 잠을 자다 깨어날 그날

푸른 바람이 벽지 사이에 들락 일 날 내 아이의
가슴이 뜨거워질 그날

나를 덮어버린 먹구름은 사라져 가요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정옥
1980년 전남 곡성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2021년 『시사사』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풀잎』(2022년 문학나눔 선정)이 있다. 예띠 시 낭송회 회원이며, 글길문학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응고 10
목덜미 13
물이 젖어요 16
사막 18
만찬 22
얼음 사다리 25
진주 목걸이 28
환희 30
생명을 만나요 32
하얀 주머니 34
얼음집 36
소금밭 38
귓속 41

제2부

가림막 46
회색 거품 48
낡은 집 50
세상의 굴 52
생쥐 54
입술 가위 56
푸른 새벽 58
파편 60
팻말 62
욕망 64
허한 비늘들이 반짝이게 될 거야 66
미끼 68
생쥐와 나 69

제3부

빈방 74
아버지의 이삿날 76
꽃잎 78
안부 80
안개 82
손톱 84
홍시 86
오디나무 88
독사과 90
생감자 92
날개를 말려요 94
눈이랑 구석 97
되새김질 100

제4부

엄마 104
푸른 여치 109
나무 눈망울 110
가시 고리 111
기다란 수염 112
미나리 114
여든아홉 116
노을 118
빨간 꽃 120
철 조각 122
야물어 124
파란 문 126
오빠 129
상추꽃 필 무렵 갈게요 132
아버지 135

▨ 김정옥의 시세계 | 이형권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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