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생활철학잡지 《뉴필로소퍼》
vol. 35 : 한 걸음 늦게 찾아오는 지혜실체가 명확히 보이지 않는 ‘지혜’보다, 눈앞에 성과로서 증명되는 ‘능력’이 우선시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지혜의 본모습은 사후에야 드러나기에 누군가의 지혜로운 판단과 행동은 그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한다. 지식은 발휘할 수 있고 뽐낼 수 있지만, 지혜는 확신하지 못하는 망설임과 깊은 고민 속에서 신중히 드러난다. 지혜는 나이듦과 비례하여 커진다고 말할 수도 없다. 나이듦으로 경험의 수효는 늘어나지만, 반복된 경험으로 인한 편견과 독선이 지혜의 눈을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지혜를 인정해주지 않는 이 시대에 지혜를 이야기한다. 빠른 결정, 백 퍼센트 확신의 정답, 남의 조언보다 자신의 고집을 지켜나가는 것이 추앙을 받는 시대이다. 하지만 지혜의 철학에서는 일단 멈추고 다시 천천히 가라고, 기꺼이 자신의 생각을 수정해보라고, 정답을 확인하는 일에 집착하지 말고 훗날에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위해 겸손의 자세로 문제를 맞아들일 것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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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성에 매이지 않는 삶으로
_ 불확실성이 삶의 보호장치가 되는 이유지혜의 정의를 파악하기란 불필요한 일이 되었다. 역사 이래 한 번도 고정된 개념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해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지식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보았고, 스토아 철학자 아우렐리우스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과 고민을 버리는 것이 지혜라고 보았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지혜를 합리적 탐구 및 증거와 연결지었고, 20세기 인문학자들은 지식이 아닌 복잡함과 모순, 도덕적 모호함을 탐험할 줄 아는 능력을 지혜로 판단했다. 즉 인간이 자신과 세상, 그리고 세상 속에서 자기 위치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지혜의 영역이 달라진 것이다.
지식과 확연히 구별되는 지혜를 들여다봄에 있어 시대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견지되는 결론이 있으니, 바로 ‘불확실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명쾌한 정답을 최대한 신속히 찾아내는 것이 최고의 능력으로 추앙받는 현시대에, 어차피 인간의 삶에 확실한 것은 어디에도 없으므로 가장 최선이라 여겨지는 판단을 신중히 찾아가며, 그 과정 속에서 마땅히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고 흔쾌히 수정할 줄도 아는 실천적 지혜가 바로 지혜로움이라는 것이다. 흔히 어떤 사안의 불확실함을 인정할 때 능력의 부재, 혹은 자신감 결여와 같은 나약함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철학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불확실성은 무지보다 지혜와 반복적으로 결부되어 다뤄져 왔다. “내가 이 자보다 지혜로운 까닭은, 이 자는 무언가를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모르면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데서 지혜가 비롯된다고 전한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이다. 지혜는 수학 공식이나 정보 습득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지식이 아닌 지혜의 가치는 우리 삶에 적용이 되고 난 후에야 그것이 지혜였는지 아니었는지 파악할 수 있다는 사후적 성격에 있다. 곧 벌어질 상황에 앞서 미리 지혜로움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사전에 지혜로울 수 있다면 크고 작은 삶의 선택에서 실패하는 경우는 거의 찾을 수 없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지혜는 이미 정해진 원리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삶 속에서 수없이 많은 수정을 거쳐 단단히 체현해감으로써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불확실성은 보호 장치가 되어줄 수 있다. 생각이 완고해지는 것을 막아주고, 방심하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은 행동을 마비시키는 원인이 아닌 균형과 절제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행동하되 자신이 모든 것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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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알아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_ 겸손으로부터 발현되는 지혜“관점이 바뀌면 모든 것이 달라지고, 그래서 누구도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사람들은 모두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른다’는 관념을 두려워한다.”
이번 호 《뉴필로소퍼》에서 인터뷰한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마음챙김 심리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엘렌 랭어 교수의 말이다.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에 스스로 수치심을 느끼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든 증명해보이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랭어 교수는 1 더하기 1이 얼마인가 하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는 다수의 답변을 비껴간 설명을 이어간다. 2진법에서의 정답은 10이며, 씹던 껌 하나에 또 하나를 붙여도 여전히 1이 되듯, 현실 세계에서 의외로 1 더하기 1의 정답이 2가 될 수 없는 경우도 많음을 제시한다. 결국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처럼 다른 정답으로 빗나갈 때가 많기에, ‘누구도 모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산다면 지금 우리 앞에 벌어진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더 쉬워진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질문과 겸손으로부터 지혜가 비롯된다고 했고, 몽테뉴는 겸손을 통찰력의 한 형태로 꼽았다. 앞서 엘렌 랭어 교수의 설명처럼 인식적 겸손과 지적 겸손의 자세는 지혜의 가장 앞선 조건이기도 하다. 스스로 자신이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는 것, 확증과 편향으로 인한 오판과 왜곡이 내 삶에 크고 작은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겸손과 자기 성찰이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 가정과 학교에서 받는 교육이나 미디어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정보가 확실한 사실처럼 제시되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겸손의 태도는 현대인들이 쉽게 지니고 살기 어려운 현실이다.
우리는 많이 습득한 사람으로 살기보다는 실천적 지혜가 탑재된 현명함으로 살아가기를 택해야 한다. 현명함은 일단 멈춰서 내가 현재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자문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패트릭 스톡스의 말처럼 ‘나의 관점이 특별히 우월하지도, 전능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겸손함’을 장착해야 한다. 지혜는 지식처럼 메모리 안에 저장해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른 판단력과 주의력을 통한 실천, 그리고 성찰과 겸손이 동반된 경험을 통해서만 발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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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이들이 모인 느슨한 연결의 힘
- 국내 철학 작가들의 인터뷰와 철학 에세이강릉에서 작은 출판사와 서점을 운영하며 비영리법인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를 이끄는 김민섭 작가를 만나본다. 국문학 시간강사, 패스트푸드 상하차 물류 작업, 대리 기사라는 이전의 삶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그렇게 큰 폭으로 건너뛰기를 하기까지의 특별한 사연과, 어쩌면 사연보다 더 특별한 그의 철학을 들어본다. 인간의 선함은 기질로부터 기인하는 것인가, 혹은 신이 개입한 것 같은 운명적 우연으로 그 선함이 더욱 강화되는 것인가, 그 선량함 덕분에 인연들이 하나둘 모여와 간절하면서도 느슨한 연결과 유대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인가 등의 궁금함을 품고 한 인물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다.
독일에 체류 중인 철학작가 이진민의 사물 철학 두 번째 이야기가 소개된다. 막대기 두 개로 이뤄진 젓가락을 소재로 하여, 마주 본 두 짝이 접점을 찾고 사이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구조, 그렇게 두 막대기의 반복적 만남과 지탱에서 인간의 상호 의지와 공존의 철학을 발견한다. 31만 구독자를 보유한 철학 유튜브 ‘충코의 철학’의 주인공인 이충녕 작가는 첫 아이의 출산을 목도하며 예상치 못한 불연속성의 존재, 즉 자신과 완벽히 분리된 존재임을 강력하게 깨닫는다. 철저히 양육자로서 아이에게 부여할 지배의 정서, 즉 제국주의적 관점을 내려놓고, 자신과는 철저히 구별된 독자적인 삶의 궤적을 그려갈 존재임을 인정하게 된다. 철학가 황진규는 삶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에의 탐닉이 필요한 당위를 설명한다.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토대로, 반복적 감상과 자연이 주는 숭고미, 그리고 생명력을 강화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모여 예술이 어떻게 고통의 치료제가 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경험만으로는 지혜를 낳을 수 없고, 반드시 반성과 도덕적 사고를 동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험은 습관이나 편견을 강화할 뿐이다. ……지혜는 자격이나 전문 지식이 아닌 균형과 견제,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반응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지혜는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라기보다 불완전하게나마 실천되고 필요한 순간마다 계속 시험받는 능력이다.
▲ News From Nowhere
그러므로 지혜란 파괴적 혁신가의 대담함이 아니라 멈춰 서서 질문을 던지며 자기 관점이 특별히 우월하지도, 전능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겸손함이다. 파괴적 혁신은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큰 혼란만 불러올 수도 있다. 지혜는 어떤 혼란을 피해야 하는지 분별하는 능력이다. 아무리 빠르게 움직이더라도 한 번 생긴 문제는 쉽게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 멈추기, 현명함의 시작 _ 패트릭 스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