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철학 혁명가 비트겐슈타인
고뇌와 고독 속 반세기 사색의 결정!
강력한 지성, 격렬한 정열, 현대의 철학!
영원한 물음, 삶의 가치란?
방랑의 끝에서 철학으로 돌아오다!
“대체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논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20세기 오스트리아 분석철학을 대표하는 비트겐슈타인, 그의 생애는 끝없는 방랑의 여로였다. 그는 마음의 안식을 모른 채, 오로지 순수한 탐구심만으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비트겐슈타인에게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특성은 순수한 진지함과 강력한 지성에 있었으며, 그의 철학적 탐구는 종교적 심정이 깊숙하게 지탱하고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전기와 후기로 구분되는데, 전기의 철학은 <논리철학논고>에, 후기의 철학은 그의 생전에는 간행되지 못한 <철학탐구>에 집약되어 있다. 이 밖에도 방대한 유고(遺稿)를 남겼는데, 대부분 제자들에 의해 편집, 간행되었다.
전기·후기를 통틀어 그의 중심적 주장은 철학적 문제가 사람들이 평소 사용하고 있는 언어작용의 오해로부터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추구한 것은 언어역할에 대한 올바른 이해였다.
‘언어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사상과 삶의 흐름 안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의 관심은 항상 삶에 있었고, 삶의 흐름에서 진리를 탐구했다. 비트겐슈타인은 땀 흘리고 손 더럽히는 일을 좋아해 실천하며 다른 사람에게 권하였다. 그는 철학 이외의 것을 하고자 하였으나 결국은 철학으로 되돌아왔다. 되짚어 본 그의 삶은 유대민족 방랑의 삶이었다.
논할 수 있는 것만이 철학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기존 철학의 “선(善)과 미(美)는 일반적으로 동일한가?”와 같이 매우 철학적인 듯한 물음이 실은 난센스에 불과하다고 딱 잘라 말했다. 왜냐하면 이 물음에 대답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얼마만큼을 생각할 수 있는가”, “얼마만큼을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한계를 밝혀 나간다. 그 결과 지금까지의 철학이, 사고가 불가능한 과제에 도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래서 그는 이런 철학을 난센스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편 그는 “논해질 수 있는 것은 명확하게 설명될 수 있다”라고도 말했다. 철학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 논할 수 있는 것으로 한정되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따라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세계의 분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세계를 분해해 나갔다.
“세계는 성립되어 있는 것의 총체이다. 세계는 모든 사실들로 분해된다. 우리는 사실의 상(像)을 만든다. 상은 논리 공간에 있어서 상황을, 즉 모든 사태의 성립과 불성립을 나타낸다. 상은 현실에 대한 모형이다. 상의 요소는 상에 있어서 대상과 대응한다. 상은 그 요소가 특정 방식으로 서로 관련되어 있을 때 성립한다. 상은 하나의 사실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생각하는 즐거움은 살아가는 기쁨!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나의 사상을 즐긴다는 것은, 나 자신의 색다른 생활을 즐긴다는 것이다. 나 자신의 사상은 나의 색다른 생활과 동일하며, 그것을 즐긴다는 것은 살아가는 기쁨이 아닐까?”
살아가는 기쁨은 여러 가지다. ‘생각한다’는 것은 번민하거나 판단을 다그치고,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등 고생을 동반한다.
하지만 생각한다는 것은 고생스럽기만 할까? 철학자들은 생각하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한 사람이다. 그리고 "세계는 성립되어 있는 것의 총체이다. 세계는 여러 사실로 분해된다"고 한 것처럼, 세계를 분해해 보거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침묵해야 한다"는 말은, 생각하는 것을 멈추라는 뜻이 아니다. 생각하는
작가 소개
저자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1889년 오스트리아 빈의 철강 재벌이자 수많은 예술가들을 후 원하던 유대계 집안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의 뜻에 따라 공학을 공부하다가, 1911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러셀의 인정을 받으며 철학 연구의 길에 들어선다. 1914년 1차 대전 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하고, 1918년 전선에서 『논리-철학 논고』를 완성한다. 이때 그는 철학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이후 막대한 유산을 포기하고 시골 마을에서 교사의 길을 걷기도 하다가 『논리-철학 논고』에 중대한 결함이 있음을 깨닫고 1929년 케임브리지로 돌아가 다시 철학 연구에 전념한다. 1936년 노르웨이 숄덴의 오두막집에서 『철학적 탐구』의 집필을 진행하다가 고독과 건강 문제로 빈에 돌아온다. 1938년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에 합병된 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무어(G. E. Moore)의 뒤를 이어 철학과 교수가 되고 영국 시민권도 얻게 된다. 2차 대전 중에는 전쟁과 관련된 의미 있는 노동을 하고자 병원의 잡역부, 실험실 조수를 거쳐 의학 연구팀의 일원으로 일한 다. 전쟁이 끝나고 교수로 복귀하지만 1947년 말에 그만두고 『철학적 탐구』의 완성에 전념한다. 1951년 4월 29일에 사망하여 케임브리지의 성 자일스 교회에 묻혔다.
목차
논리철학논고
버트란드 러셀의 해설 … 11
머리글 … 31
논리철학논고 … 33
철학탐구
머리글 … 121
제1부 … 125
제2부 … 364
반철학적 단장
초판 머리글(1977)―G.H. 폰 라이트 … 445
신판 머리글(1994)―G.H. 폰 라이트 … 448
편집 노트―아로이스 피하라 … 450
반철학적 단장(신판) … 455
시 … 581
비트겐슈타인 생애와 사상
Ⅰ. 세기말의 빈 … 585
Ⅱ. 전기의 사상 … 598
Ⅲ. 과도기의 사상 … 640
Ⅳ. 후기의 사상 … 663
Ⅴ. 비트겐슈타인의 인간상 … 706
비트겐슈타인 연보 … 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