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기존의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 역사’나 ‘감리교 한국 선교 역사’ 등은 책으로 이미 나왔으나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선교를 펼쳤던 ‘미국 남장로교’의 한국 선교 역사를 다룬 책으로는 첫 책이다. 선교사의 시각으로 정리한 이야기이지만 한국 사람들의 생활상과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사료적으로도 가치가 있고 객관적인 시선을 잃지 않고 풍부한 자료를 제공한다.
1892년 이전의 한국 상황에 대한 개괄에서 시작하여 초기 한국 선교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스코틀랜드의 선교사인 존 로스 목사가 서상륜의 도움을 받으며 처음 한글 성경을 인쇄하던 때의 이야기, 그 성경 때문에 감옥에 갇힌 서상륜이 자신이 뺏겼던 성경을 목숨처럼 여겼던 그 시절의 이야기는 지금 한국 교회의 모습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동학운동이 벌어지던 때의 한국 상황, 청일전쟁이 일어났을 때의 상황, 독립협회에 대한 이야기 등은 그시절 한국에 대한 객관적인 역사 자료로도 손색이 없다.
출판사 리뷰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려낸 초기 호남지역 선교사들의 이야기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조지 톰슨 브라운(한국명 부명광)이 쓴 한국 선교 이야기(원서 명: Mission to Korea). 이 책은 한국 기독교의 기원을 이루는 선교사들과 그들의 활동을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자료다. 브라운이 선교사이면서도 학자답게 객관적인 시선을 잃지 않고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선교 현장을 그려낸 책이다. 하지만 최근까지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아 일반인들이 접근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 역사’나 ‘감리교 한국 선교 역사’ 등은 책으로 이미 나왔으나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선교를 펼쳤던 ‘미국 남장로교’의 한국 선교 역사를 다룬 책으로는 첫 책이다. 그동안 미국 남장로교 선교 역사를 정리해 온 한남대학교 인돈학술원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책을 번역, 출간했다. 선교사의 시각으로 정리한 이야기이지만 한국 사람들의 생활상과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사료적으로도 가치 있다.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첫사랑을 잊어버리고 있는 한국 교회에 초기 선교사들의 목숨을 내건 눈물겨운 노력은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을 새롭게 다지는 데 기여할 것이다.
생생하게 그려낸 초기 한국 선교 현장
이 책은 1892년 이전의 한국 상황에 대한 개괄에서 시작한다.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였던 로버트 토마스 목사가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을 그린다. 갯벌에 묻혀 더는 나아가지 못하던 그 배에서 내려 강변에 도착하자마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맞아 죽었다는 장면이다. 그 뒤 북장로교의 선교가 시작되고, 네비우스 원리(자급, 자치, 자전)에 따라 한국 선교의 틀이 잡혀 가는 초기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스코틀랜드의 선교사인 존 로스 목사가 서상륜의 도움을 받으며 처음 한글 성경을 인쇄하던 때의 이야기, 그 성경 때문에 감옥에 갇힌 서상륜이 자신이 뺏겼던 성경을 목숨처럼 여겼던 그 시절의 이야기는 지금 한국 교회의 모습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동학운동이 벌어지던 때의 한국 상황, 청일전쟁이 일어났을 때의 상황, 독립협회에 대한 이야기 등은 그시절 한국에 대한 객관적인 역사 자료로도 손색이 없다.
110여 년 전 선교사들의 삶과 헌신
초기 선교사들은 1892년 10월 서울을 밧줄을 타고 담을 넘어 입성한다. 그리고 ‘제중원’의 나오는 알렌 박사의 도움을 받으며 서울 생활을 시작한다. 전혀 생소한 문화와 사람들이 사는 곳, 먼 이역에서 겪는 선교사들이 겪는 고통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남장로교의 첫 선교사 중 한 명인 레이놀즈가 서울에서 받은 첫 번째 밥상에 대한 표현도 그 시절 선교사들의 생활이 눈에 환히 잡힌다.
“첫 번째 받은 저녁상에 총알 같은 비스킷만 가득했던 기억이 납니다.” “레이놀즈는 마펫 씨를 초대했는데 신부는 훌륭한 남부 음식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 메뉴는 ‘샐리 런(Sally Lund: 바로 구워 먹을 수 있는 과자)’이라 불렀는데, 아뿔싸, 이 과자가 전혀 부풀지 않은 것이었다.”
그들이 겪었을 어려움은 “목이 곧고 머리가 아홉 개인 괴물”이라고 한글에 대해 표현한 말에서도 확연하다.
선교사들이 첫 지방 순회 여행으로 호남지역을 향해 초기 탐험을 했던 때의 묘사는 다음과 같다.
“나는 조랑말 위에 침구와 짐들을 산더미처럼 싣고 그 위 높은 곳에 앉았는데 내 발은 말 귀 주변에서 대롱거렸다. 그래서 나는 내 자세를 꼬리 쪽으로 옮겼는데 균형을 잃고 뒤로 거꾸로 넘어졌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래함 리(Graham Lee) 씨가 내 말 뒤에 있어서 팔로 나를 붙들어 주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살아서 이 이야기를 못 할 뻔했다.”
그들이 한국 문화를 어색해 하며 느꼈던 소감도 생생하고 재미있다.
“[한국의 가마]는 작은 네 기둥으로 된 닫집으로 가로 세로 3자에 높이 4자 정도로 되어 있으
작가 소개
저자 : 조지 톰슨 브라운
조지 톰슨 브라운(한국명 부명광) 선교사는 미국 남장로교 중국 선교사의 아들로 1921년 중국 지린(길림)에서 태어나 그곳의 외국인학교에서 공부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남장로교 계통의 데이비슨 대학과 리치몬드 유니온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1952년 내한하여 주로 광주와 목포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한국선교사로 일하면서 특히 신학교육과 선교정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50년대 광주성경학원 원장으로 선교사역을 시작한 브라운은 그 학교를 호남성경학원으로, 그리고 1960년에는 호남성경학원과 광주야간신학교, 순천 매산신학교를 통합해 호남신학원으로 발전시켰다. 호남신학원은 1963년 호남신학교로 승격하여 오늘의 호남신학대학교가 되었다. 브라운은 이 학교의 초대 원장과 교장, 이사장으로 봉직했다. 1967년 미국 남장로교 해외선교부의 극동총무를 역임한 그는, 귀국 이후 1977년부터 미국 남장로교 해외선교부의 총무에 임명되어 남장로교의 해외선교 운영 전반에 깊이 관여하였다.
목차
옮긴이의 글
감사의 글
머리말
Ⅰ. 은자의 나라(1892년 이전)
고요한 아침의 나라 / 한국의 종교 / 로마 가톨릭의 순교자들 / 성경이 한국에 들어오다 /
외교적 협상 / 북장로교 선교의 시작 / 네비우스Nevius 원리
Ⅱ. 선교의 시작(1891~1895)
서울 선교부 / 전라도의 초기 탐험 / 청 · 일 전쟁 / ‘독립협회’ / 남장로교의 서울 준비 기간
Ⅲ. 처음 세 선교부(1895~1903)
군산 선교부 / 목포 선교부 / 성경공부반 조직의 성장
Ⅳ. 위대한 전진(1904~1910)
러 · 일 전쟁 / 부흥운동 / 광주 선교부의 개설 / 각 선교부의 발전 /
기독교 공동체를 위한 기독교 학교들 / 의료기관의 설립 / 자치自治, 자급自給, 자전自傳의 교회 /
‘희망과 교리로 하나 됨, 자선으로 하나 됨’ / 백만인 구령운동
Ⅴ. 대세를 거슬러(1910~1919)
나라의 합병 / 음모 재판 / ‘9년간의 불모기不毛期’ / ‘불신자의 주일학교’ / 순천 선교부의 개원 /
최초의 총회 / 교육 프로그램의 발전과 확장 / 총독부 교육 당국과의 갈등 / 고등교육 기관 /
현대식 의료시설의 건립 / 한센병 / 선교사의 삶 / 1919년의 독립운동
Ⅵ. 순조로운 대세(1920~1930)
여성들에 대한 전도사역 / ‘교육에 대한 열광’ / 치유사역 / 연합 사업 /
한국 교회와 선교회의 관계 / 사회의 변화에 직면한 교회
Ⅶ. 폭풍우 속에서의 전진(1931~1942)
만주사변 / ‘예산 삭감의 해’ / 폭풍우 속에서의 전진 / 복음전도의 새로운 일들 /
의료사역 / 국내 교회 / 미션학교와 신사참배 / 신사참배와 한국 교회 / 폭풍우가 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