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정유각집> 상·중·하 3책은 <북학의>를 제외한 초정 박제가의 시문집 전체를 완역한 것이다. <정유각집>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60년대에 이미 원문을 활자화하여 간행했고 이후 전집의 영인도 세 차례나 이루어졌지만, 소규모의 선집 외에 전작 번역은 이제껏 나온 적이 없다.
이번 <정유각집>의 완역으로 진작에 이루어진 연암 박지원의 <연암집>, 청장관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와 함께 연암그룹 핵심 3인방의 전작 번역이 마무리된 셈이다. 이 책을 통해 한국과 중국, 일본 지식인들의 교류사와 한중일 삼국 내에서의 우리 고전의 위상과 의미를 거시적 안목으로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리뷰
『정유각집』 상·중·하 3책은 『북학의』(北學議, 안대회 옮김, 돌베개, 2003)를 제외한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1750~1805)의 시문집 전체를 완역한 것이다. 『정유각집』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60년대에 이미 원문을 활자화하여 간행했고 이후 전집의 영인도 세 차례나 이루어졌지만, 소규모의 선집 외에 전작 번역은 이제껏 나온 적이 없다. 이번『정유각집』의 완역으로 진작에 이루어진 연암 박지원의 『연암집』(燕巖集, 신호열·김명호 옮김, 돌베개, 2007), 청장관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와 함께 연암그룹 핵심 3인방의 전작 번역이 마무리된 셈이다.
북학파의 핵심, 박제가의 시문전집 최초 완역
최근 한국 고전학계의 중요한 화두는 단연 동아시아적 전망의 수립이다. 민족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던 협소한 시각을 벗고, 중국과 조선과 일본을 잇는 동아시아 지식인의 교유와 그로 인한 세계관의 변화를 감지하려는 움직임이 자못 활발한데, 이러한 새로운 흐름 속에서 탁월한 안목과 폭넓은 시야로 국제적 감각을 지녔던 박제가는 늘 화제의 중심에 위치해 왔다.
박제가는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 제약에도 불구하고, 세 차례의 규장각 검서관 생활과 네 차례에 걸친 연행 체험을 통해 탁 트인 식견과 국제적 안목을 갖추었다. 특히 연행에서 중국 문사들과 폭넓은 교유를 나누고 그들의 발달한 문물을 직접 목도하면서, 당시 조선이 북벌의 원수로 지목했던 청나라가 결코 오랑캐가 아닌, 새로운 학문 사조와 서양 과학으로 무장한 문명국임을 똑똑히 자각하였다. 당시 조선에 팽배했던 북벌(北伐)의 강고한 이데올로기가 북학(北學)의 과감한 주장으로 돌아서는 데 있어 그의 저서 『북학의』(北學議)의 영향은 자못 절대적이었다.
박제가는 18세기 후반 조선과 청(淸)의 학술 및 민간 교류의 한 주역이었다. 적극적으로 청의 인물들과 교유하여 직간접으로 만나 사귄 이가 100명이 넘었고, 한족과 만족(滿族), 문인과 무인, 관료와 처사 및 외국인까지 교유의 폭도 광범위했다. 이러한 그의 교유는 선배인 담헌 홍대용의 수준을 훨씬 넘어, 후배인 김정희(金正喜), 이상적(李尙迪), 김석준(金奭準) 등에게로 이어졌다. 한중 지식인 교류사에서 박제가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박제가에게 외국인은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친구였다. 국내에선 서얼이라 천대받았지만, 외국에선 그의 진가를 알아준 것이다.
박제가는 18세기 후반 조선 지식사회의 변화를 추동했던 북학파(北學派)의 핵심 인물이다. 박제가를 포함해 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서상수 등은 이른바 ‘백탑’(白塔) 주위에 모여 살며 동지적 연대 속에 학술·문예·사상 전반에 걸쳐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여, 답보에 놓인 조선 지성계에 신선한 호흡을 불어넣었다. 『정유각집』 시집 5책에 실려 전하는 1,721수의 시와, 문집 5책 속의 123편의 산문은 실험과 도전으로 가득 차 있다.
초정 박제가의 시문집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61년에 원문을 활자본으로 간행하였고, 이후 1986년 여강출판사에서 『정유각전집』을 상하 2책으로 펴낸 바 있다. 또 1992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일본과 미국 등 해외 도서관에 소장된 초정의 시문집을 엮어 『초정전서』 3책을 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문집은 지금껏 완역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난해한 고사와 용사가 도처에 숨어 있어, 워낙 해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까지 박제가는 『북학의』의 저자로 알려졌을 뿐, 정작 그의 작품 세계 전모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이번 『정유각집』의 완역을 계기로 북학파로 대변되는 연암그룹 내부의 동향과 당대 생동하는 지성사의 흐름을 더욱 섬세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궤적에 따른 인식 변화, 뜻을 같이한 이들 사이에 오간 우정과 교감, 연행이 계기가 된 타자와의 접촉을 통해 구체화되는 자아의 각성, 유배지에서 역사와 맞대면하는 뜨거운 격정 등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의 문학 세계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정유각집』을 통해 한국과 중국,
작가 소개
저자 : 박제가
조선 후기 문인으로 자는 재선(在先), 호는 초정(楚亭), 정유(貞?). 조선이 가난한 것은 무역이 부진한 탓이라 여겨 경제개혁을 부르짖었다. 서자라는 신분적 한계와 상업을 천시하는 사회 상황 때문에 울분이 많았다. 중국의 명사들과 폭넓게 교유했으며, 시에 능했다.
목차
상권 시집 1권, 2권 / 해제 / 박제가 연보
책머리에
일러두기
해제
박제가 연보
찾아보기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의 원제 찾아보기
정유각집 서문―이덕무
정유각집 서문―반정균
시집 1
봉선사에서
필계의 작은 모임
연못 가
헤어지며
종이 연 노래
탄식 4수
매화 지고 달은 휘영청
산정에서 이유동과 만나기로 약속하고
접시꽃
시냇가 집의 가을 정경
회포를 적다
세검정에서 헤어지고
어느덧
섣달그믐 밤
종이 연
대보름 다음 날 손님을 보내며
서쪽 교외 이른 걸음
공덕리
남이청의 서실에서 묵다 2수
작은 누각
변소에서
버드나무 노래. 안악으로 가는 자형 임공을 전송하며 3수
비 갠 뒤
뜰에 누워
천우각에서 무관 이덕무와 함께 선(蟬) 자를 운자로 얻다
몽답정
읍청정 5수
충훈부
9일 이덕무와 세심정 아래 배를 띄우다 5수
관재 서상수의 동쪽 집에서 이덕무와 유득공 등 여러 사람과 모였다. 왼쪽 산기슭에 보덕암이란 작은 암자가 있는데 중이 십여 명이었다. 손님 중에 퉁소 부는 황생이 있었다.
밤에 필계에 앉아 임홍상 의지의 시에 차운하다
삼소헌의 눈 오는 밤
저물녘 형암을 찾아가다
밤에 유연옥을 찾아가다 6수〔짧은 서문과 함께〕
〔부〕 착암의 시 4수
청장관의 벽에 쓰다
서상수를 위해 지은 입춘시 2수
영변의 못가 정자에 쓰다
약산에서 저물녘 돌아오다
묘향산 보현사
무릉폭포
밤에 연광정에 오르다
백련봉에서 이른 아침 눈을 구경하다
관재가 새로 이사하여
태상시의 서쪽 정원
육각봉에서 이덕무의 상화시에 차운하다
길가의 초당에서 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