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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월트 휘트먼
미국의 정신을 잘 대변해 주는,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인정받는 월트 휘트먼은 1819년 5월 31일 미국 롱아일랜드의 헌팅턴타운 근교의 웨스트힐스에서 농부이자 목수였던 아버지와 퀘이커 교도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아홉 명의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휘트먼은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5∼6년 정도의 교육밖에 받지 못하고, 11세의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는 법률 사무소, 병원, 인쇄소, 신문사 등에서 잡일을 하면서 영국 낭만주의 소설과 시, 고전문학, 성경 등에 심취했다. 그러다가 17세가 되던 1836년에 교사가 되었으며, 그 후 롱아일랜드에 있는 학교에서 5년간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 후, 저널리즘에 몸을 담아 뉴욕에서 활약했는데, 1838년에는 주간지 <롱아일랜더>를 창간했으며, 1842년에는 신문사 <뉴욕 오로라>의 편집인이 되었다. 이해에 그는 에머슨이 뉴욕에서 행한 “자연과 시인의 능력”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듣고 감명을 받아, 에머슨이 예언해 준 “미국의 시인”이 되고자 결심했다. 그리고 1842년 봄에 갑자기 편집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뉴욕 오로라>를 그만둔 후, <이브닝 태틀러>, <롱아일랜드 스타>, <브루클린 데일리 이글>과 같은 여러 신문사에서 기자, 자유 기고가, 편집인 등으로 10여 년간 활동하다가, 마침내 시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1848년에 휘트먼은 뉴올리언스에서 발행되는 <뉴올리언스 크레센트>의 편집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고 뉴올리언스로 떠난다. 이때 그는 여행을 통해 그는 미국의 광대함과 다양함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으며, 이때 경험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폭 넓은 비전은 그의 시에 스며들어 그를 미국의 위대한 시인으로 발돋움하도록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휘트먼은 뉴욕으로 돌아온 후 신문사 <브루클린 프리맨>의 편집 일을 맡았다. 그가 36세 되던 1855년 7월 4일에 첫 시집인 ≪풀잎≫을 자비로 출간했다. 또한 휘트먼은 1862년에 남북전쟁에 참전했다 부상당한 동생 조지를
해설
지은이에 대해
인간의 자아를 나는 노래한다
의연한 나
나는 미국이 노래하는 소리를 듣는다
타고난 그대로의 순간들
언젠가 나는 번화한 도시를 지나갔다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서쪽을 마주하며
이른 아침의 아담처럼
오, 민주주의여, 그대를 위해
브루클린 도선장을 건너며
나를 닮은 저 그림자
가끔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여자가 나를 기다린다
그를 위해 나는 노래한다
외양에 대한 끔찍한 회의에 대해
사모하며 생각에 잠기는 이 순간
나는 루이지애나에서 한 그루의 참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를 비난했다는 말을 듣는다
나는 앉아서 바라본다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그대 중범죄자들이여
물결치는 바다와 같은 군중으로부터
오, 내가 자주, 살그머니 다가가는 그대여
도로의 노래
완전
모든 것은 진실이다
학식 있는 천문학자의 말을 들었을 때
쳐라! 쳐라! 북을!
강을 건너는 기병대
야영지의 흔들리는 불꽃 옆에서
찬란하고 고요한 태양을 내게 다오
화해
어느 시민에게
오, 함장이여! 나의 함장이여!
끊임없이 흔들거리는 요람으로부터
밤 바닷가에서 홀로
상념
어느 천한 창녀에게
상념
역전
인도로 가는 길
역사가에게
어느 여가수에게
첫 민들레
훤히 트인 포토맥 강가에서
그대에게
우리 두 사람, 얼마나 오랫동안 어리석었나
이 거무스레한 얼굴을 보라
아름다운 여인들
실패한 유럽의 혁명가에게
더 강력한 가르침
낯선 사람에게
일손을 절약하는 기계를 발명하지도 못했고
이루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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