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해방공간'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는 역사학자 김기협의 <해방일기> 첫 권 '해방은 도둑처럼 왔던 것인가'에 이어, 1945년 11월 초부터 1946년 1월 말까지 시기를 다룬 <해방일기 2 - 해방을 주는 자와 해방을 얻는 자>가 출간되었다.
한국현대사의 갈림길이었던 '해방공간'에서 조선이 최악의 길로 접어든 것이 어느 시점의 일이었을까? 여러 단계를 거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일이겠지만 저자는 가장 큰 고비가 1946년 1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단계로 본다. 맥아더.군정청 집단과 이승만의 마음속에서 분단 건국이 유일한 목표는 아니더라도 유력한 목표로 떠오르게 된 것이 이 단계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전환기였다. 이승만과 김구는 귀국하자마자 우익의 영수가 되었다. 이승만과 박헌영이 좌우대립의 선봉장이었으며, 한반도 분단을 향한 미군정의 '복안'이 가시화된다. 1947년 3월의 트루먼 독트린 발표를 세계적 냉전의 시작으로 보지만, 조선의 상황은 1945년 말부터 이미 냉전을 향해 치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급기야 1946년 1월 초순 '신탁통치'를 둘러싼 좌우대립은 격화한다.
저자는 이 시기를 세밀히 복기한다. 그의 '해방일기'는 어떤 일이 한국인에게 닥치고 그에 대해 누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비슷한 보조로 걸어가면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분단건국과 전쟁을 향한 비극의 길이 어떤 수순으로 한국인에게 주어졌는지, 그리고 한국인들은 어떻게 그 길을 걸어갔는지 면밀히 살펴보는 것은, 지금의 우리 사회가 주어지는 길보다 더 좋은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능력을 점점해 보려는 취지이다.
출판사 리뷰
한국현대사의 갈림길 ‘해방공간’에서
조선이 최악의 길로 접어든 것은 어느 시점이었을까
‘해방공간’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는 역사학자 김기협의 『해방일기』 첫 권 “해방은 도둑처럼 왔던 것인가”에 이어, 1945년 11월 초부터 1946년 1월 말까지 시기를 다룬 『해방일기 2 - 해방을 주는 자와 해방을 얻는 자』가 출간되었다.
한국현대사의 갈림길이었던 ‘해방공간’에서 조선이 최악의 길로 접어든 것이 어느 시점의 일이었을까? 여러 단계를 거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일이겠지만 역사학자 김기협은 가장 큰 고비가 1946년 1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단계로 본다. 맥아더ㆍ군정청 집단과 이승만의 마음속에서 분단 건국이 유일한 목표는 아니더라도 유력한 목표로 떠오르게 된 것이 이 단계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전환기였다. 이승만과 김구는 귀국하자마자 우익의 영수가 되었다. 이승만과 박헌영이 좌우대립의 선봉장이었으며, 한반도 분단을 향한 미군정의 ‘복안’이 가시화된다. 1947년 3월의 트루먼 독트린 발표를 세계적 냉전의 시작으로 보지만, 조선의 상황은 1945년 말부터 이미 냉전을 향해 치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독립을 향한 조선인의 내부 역량이 타고 넘기 어려운 격랑이었다. 급기야 1946년 1월 초순‘신탁통치’를 둘러싼 좌우대립은 격화한다.
저자는 이 시기를 세밀히 복기한다. 그의 ‘해방일기’는 어떤 일이 한국인에게 닥치고 그에 대해 누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비슷한 보조로 걸어가면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분단건국과 전쟁을 향한 비극의 길이 어떤 수순으로 한국인에게 주어졌는지, 그리고 한국인들은 어떻게 그 길을 걸어갔는지 면밀히 살펴보는 것은, 지금의 우리 사회가 주어지는 길보다 더 좋은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능력을 점점해 보려는 취지이다.
『해방일기』제2권 해방을 주는 자와 해방을 얻는 자(1945.11.1 ∼ 1946.1.31) 개요
1945년 10월 이후 김일성 일파, 이승만, 임정, 독립동맹 등 해외 민족운동 세력이 귀국하여 국내 정치 상황에 작용하기 시작했다. 식민지시대, 특히 그 말기의 전쟁기에 일제의 폭압이 극렬해서 국내 민족운동이 제대로 전개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외 민족운동 세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이북에서 김일성 일파와 독립동맹을 주축으로 좌파-중도파의 연합전선이 순조롭게 형성된 것은 소련군이 좌파를 후원하되 우파를 극단적으로 배척하지 않은 결과였다. 반면 이남에서는 미군정이 극우파를 극력 옹호한 결과 좌우 대립이 격화되고 중도파의 입지가 위축되었다.
소련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미 국무성의 공식적 ‘국제주의’ 노선과 대립하는 맥아더의 ‘국가주의’ 노선을 미군정이 따르는 바람에 이남의 정계가 큰 혼란에 빠졌다. 이 혼란이 연말의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 앞에서 극렬한 반탁운동으로 터져 나왔다.
반탁운동을 통해 극우와 극좌 간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완성되었다. 양측은 상대방의 ‘배제’ 정도가 아니라 ‘절멸’을 외치는 단계에 접어들었고, 중도파는 극단적 선택을 강요받는 입장에 몰렸다. 1월 중 민족통일전선 시도가 실패하면서 임정 비주류 요인들이 우익 연합을 지향하는 비상국민회의 준비에서 이탈함으로써 ‘임정 분열’까지 일어났다.
1월 중순 열린 미소공위 예비회담이 거의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함으로써 미소공위의 실패를 예고했다. 예비회담 실패의 결정적 이유는 미군정의 쌀 시장 통제 실패에 있었다. 이남 주민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가져오고 미소공위에까지 악영향을 미친 쌀 문제는 미군정의 잘못된 정책노선이 가져온 해악의 전형적 사례였다.
‘신탁통치’ 사태, 극우와 극좌 간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완성되다
해방공간에서 ‘좌우대립’은 어떤 구조로 전개되었을까? ‘극우파’-‘중도우파’-‘중도좌파’-‘극좌파’의 연속 스펙트럼 위에서 가까운 입장끼리 연합하고 먼
작가 소개
역자 : 김기협
195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이공계 수석으로 물리학과에 입학한 뒤 사학과로 전과한, 보기 드문 배경의 역사학자다. 문명사의 거시적인 관점에서 우리 역사와 동아시아 역사를 바라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경북대학교에서 중국 고대 천문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연세대학교에서 마테오 리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집위원(과학분과), 중앙일보 문화전문위원, 한국과학사학회 편집위원 등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미국인의 짐》 《밖에서 본 한국사》 《뉴라이트 비판》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아흔 개의 봄》 《해방일기(1~10)》 등이 있고, 《바보 만들기》 《역사의 원전》《소설 장건》 《공자 평전》 《꿀벌가문 족보제작 프로젝트》 《눈썹진드기 우상탈출 프로젝트》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차
머리말 독립의 길을 험하게 만든 반탁운동
1부 이승만, 주도권을 선점하다 1945년 11월 1~11일
1945. 11. 1. 하지의 IQ는 얼마?
1945. 11. 2. 이승만의 첫 묘수, 독립촉성중앙협의회
1945. 11. 3. 냉전의 길에 앞장선 맥아더와 하지
1945. 11. 4. 식민지체제의 보존을 획책한 한민당
1945. 11. 5. 극우의 눈에는 모두가 빨갱이
1945. 11. 8. “20만을 넘는 우리 정부 정규군”, 뻥이야!
1945. 11. 9. 조병옥, “식당도 미국식으로!”
1945. 11. 10. 미군정이 가져다준 ‘언론자유’
1945. 11. 11. ‘동양척식’ 간판만 바꾼 미군정
● 베트남 이야기 (1) 베트남 해방과 조선 해방의 차이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 투쟁보다 포용, 선명성보다 유연성을
2부 기다리고 기다린 임정의 귀국 1945년 11월 15~30일
1945. 11. 15. 공산당, 임시정부와 대결태세를 갖추다
1945. 11. 16. ‘친미 내셔널리스트’의 탄생
1945. 11. 18. 토지개혁 과제가 절실했던 이유
1945. 11. 19. 임정을 갖고 놀려는 이승만
1945. 11. 22. 일본 군국주의 뒤를 이은 미국 군국주의
1945. 11. 23. 임시정부의 환국, 격리된 하룻밤
1945. 11. 24. 김구 선생님, 친일파 처단을 늦춰도 된다고요?
1945. 11. 25. 인민공화국, 어찌하오리까?
1945. 11. 26. 김구가 국내에 있었다면 ‘사회주의 우파’였을 텐데
1945. 11. 30. 한반도 분단을 향한 미군정의 ‘복안’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 ‘적대적 공생관계’는 시작되었다
● 해방의 시공간-일지로 보는 1945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