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선과 교가 대립각을 세우던 상황 하에서 그에 각성을 촉구하기 위하여 본격적인 수행의 이론과 실천이란 면에서 기치를 들었던 보조국사 지눌의 어록이다. 오늘날 불교의 사상적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보조국사어록의 의미는 실로 크다.
출판사 리뷰
한국의 사상대전집을 다시 내며
왜 또다시 사상전집인가?
한 나라의 문화는 오랜 시간 쌓아온 지식의 보전과 계승으로부터 시작된다.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에게는 수많은 석학들이 이루어 놓은 학문과 그 결실의 소산인 고전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한문으로 기술된 저서들을 오늘날 읽고 공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언어는 바뀌었더라도 우리 후손들에게 조상이 남긴 고전은 서양의 어떤 명작들보다도 값지고 위대한 유산이다.
나라가 독립하였다고는 하나 문화가 독립하려면 우선 이 고전들부터 현대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 학계와 출판계의 숙원이었다. 이에 동화출판사는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동원하여 한국의 사상대전집을 발간하였다. 당대 최고의 석학들로 이루어진 편집 기획진은 많은 시간을 들여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며 거의 공동작업으로 선정과 번역에 착수하였고 이름이 기술되지 않은 많은 문인들이 원고의 교정, 교열에 참여하여 이 기념비적인 출판물이 나온 것이다.
사상대전집이 출간된 후 한국학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후대 학자들의 연구에도 이 책들이 기본으로 쓰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절판된 뒤에도 재출간에 대한 요청이 빗발친 사실은 이 책들의 가치를 증명해준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다시 오늘날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재편집된 한국의 사상대전집을 출간한다. 부디 한국의 얼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랄뿐이다.
이 책은 선과 교가 대립각을 세우던 상황 하에서 그에 각성을 촉구하기 위하여 본격적인 수행의 이론과 실천이란 면에서 기치를 들었던 보조국사 지눌의 어록이다. 오늘날 불교의 사상적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보조국사어록의 의미는 실로 크다.
1182년 보제사(普濟寺) 담선법회(談禪法會)에 갔던 어느 날 지눌은 동학 10여 인과 함께 회를 파한 후에 정혜사를 맺어 습정균혜(習定均慧)로써 업무로 삼을 것을 서로 약속한다. 그 당시의 선객을 고요만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선(守?之痴禪)이라 하고 또 교학자는 문자에 심취하여 알음알이에만 치우친 자(尋文之狂慧子)라고 하였음에 비추어 당시 선교의 폐해를 짐작할 수 있는 동시에 이 폐해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정혜를 쌍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의 주장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정혜쌍수란 교학과 수행을 겸하여 닦는다는 의미이다. 지눌의 이와 같은 사상과 선언은 당시의 일대 혁명적 선언이었으며 이후 이 학풍이 계승되어 현대에도 맥맥히 흘러오고 있다. 사람은 대개 편견에 떨어지기 쉬우므로 지눌시대의 불교계는 선과 교가 서로 대립상쟁을 일삼았다. 이를 경계하여 지눌이 쓴 저작이 이 책에 수록된 『정혜결사문』『수심결』『진심직설』『원돈성불론』『간화결의론』 등이다.
이 저술은 모두 동일한 사상을 발표하기 위해서 저작된 듯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즉 『정혜결사문』은 깨어 있는 불교인으로서의 그의 불교관과, 앞으로 취해 나아갈 태도를 밝히는 서론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 본론에 해당하는 것은 불교의 모든 문제의 핵심을 진심(眞心)으로 보고 이것을 밝힌 『진심직설』인데, 진심을 밝혀 성불을 하자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리고 이 성불의 이치를 밝히는 것이 곧 『원돈성불론』이다. 그러면 실제로 성불을 하자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우리 각자의 마음을 닦아야 할 것이니 이 취지에서 『수심결』이 나온 것이요, 수심을 하는 데 있어서는 실지로 여러 가지의 의심과 난관이 있을 것이니 이러한 문제에 해답을 주는 의미에서 『간화결의론』이 나왔다.
작가 소개
원작 : 지눌
고려 중기의 승려. 속성은 정씨이며 스스로 목우자(牧牛子)라 칭하길 좋아했다. 시호는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 고려의 수도 개경 서쪽 통주 지방(지금의 황해도 서흥군 동주)에서 국자감의 학정이었던 아버지 정광우(鄭光遇)와 어머니 조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불심이 매우 깊었던 분으로 어린 시절 병약했던 지눌이 병으로 고생하자 불보살께 완쾌되면 출가시키겠다는 서원을 세운다. 그리고 9세 무렵 병이 쾌차하자 출가시켰다고 전한다.25세 되던 1182년 개경 보제사(普濟寺)에서 담선법회 형식으로 치러진 승과에 합격했다. 이곳에서 이미 정혜결사(定慧結社)의 의지를 다지게 된다. 그러나 곧 남하해 창평(昌平) 청원사(淸源寺)에 머물렀다. 이곳에서 ≪육조단경(六祖壇經)≫을 읽다가 첫 번째 깨달음을 얻는다. 1185년 가을에는 지금의 경북 예천에 있는 하가산(下柯山) 보문사(普門寺)로 옮기는데 이곳에서 두 번째 전환기를 맞는다. 이에 대해서는 자신의 저서 ≪화엄론절요(華嚴論節要)≫ 서문에서 “‘여래의 지혜도 이와 같아 모든 중생은 이미 갖추고 있다. 다만 어리석어 깨닫지 못할 뿐이다’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적고 있다. 1188년 노장 득재선백(得才禪伯)의 초청으로 공산(公山) 거조사(居祖寺) 에 합류하고 1190년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최초의 저술이며 불교계에 영원히 기록될 ≪권수정혜결사문≫을 발표했다. 결사 공동체의 수행자가 늘어나자 1200년 길상사(지금의 송광사)로 자리를 옮기고 1205년 정혜사에서 수선사(修禪社)로 이름을 바꾸었다. 거조사를 떠나 길상사에 이르기 전 약 3년간 지리산의 상무주암(上無住庵)에 머무르며 선 수행을 깊이 했다. 이곳에서 대혜종고(大慧從?)선사에 의해 완성된 간화선을 만났고 이것이 지눌의 마지막 심기일전의 모습이다. 길상사는 1197년부터 1205년까지 중창불사를 했는데 1200년부터 지눌도 이 불사에 몸소 동참했다. 대중에 앞장서 몸을 아끼지 않는 울력에 동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의 왕이었던 희종(熙宗, 1204∼
목차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권수정혜결사문
깨달음이 더딜까 두려워하라-수심결
참 마음을 깨달으면 한 마디 말도 군일이다-진심직설
제 근기 감당하면 다른 아무것도 없다-원돈성불론
삼구 안에서 설법하고 삼구 밖에서 강요를 든다-간화결의론
눈썹을 치켜 올리고 눈을 깜박이네-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처음으로 공부에 마음을 낸 사람은-계초심학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