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다시 들여다보는 목사 칼뱅의 목회와 영성.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부르신 것처럼 자신을 불러 목사로 만드셨다고 믿었으며, 가톨릭교회의 사제와는 다른 모습의 목사상을 스스로 만들어 갔던 선구자 칼뱅. ‘목사로서의 칼뱅’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한다.
제1부는 개혁자 칼뱅을 목사로서 다시 소개하는 전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제2부에서는 목사 칼뱅이 제네바에서 전개했던 사역의 성격을 살펴본다. 이때는 특별히 설교 사역에 초점을 맞추어 가난에 대한 칼뱅의 이해와 실천 방향을 다루었다. 또한 1541년 불어판 「기독교 강요」의 영역 과정에서 발견한 칼뱅의 목회적 음성을 담았다.
제3부에서는 칼뱅의 경건(영성)을 영성사에 배치하려는 의도 하에, 이를 우선 중세와 개신교 역사에서 논했다. 그다음에는 영성의 관점에서 이 개혁자의 가르침과 실천의 주요 특징을 살폈다. 여기서는 믿음과 기도 등 그의 신학과 목회 사역에서 중요한 표현들, 그외 기도와 살아 숨 쉬는 경건 역시 다루었다.
출판사 리뷰
저자 서문
16세기 교회의 리더였던 장 칼뱅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접하게 된다. 현대 역사학 연구의 여러 혜택 중 하나는 칼뱅을 그가 살았던 시간과 공간에서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분명히 그의 영향력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교회에 아주 적절했으며, 그렇게 평가되어야 정확하다. 16세기를 살던 그에게는 근대 혹은 현대 사회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으므로, 현대 교회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칼뱅을 공부하는 큰 가치는 칼뱅이 자신의 시대를 살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신실하게 따른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또한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통찰력을 주는지를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그를 그가 속한 상황 속에서 이해해야 하고, 우리의 상황에 가장 적절하게 활용하기 위해 우리의 필요 그리고 오늘 우리가 속한 시대와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나는 2009년 아시아에서 행한 나의 강연들을 이 책에 모았는데, 이는 칼뱅을 그가 속했던 역사적 시간과 장소에 배치하려는 시도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의 생각들을 우리 시대에 사용하려고 우리가 필수적으로 시도하는 ‘맞추어 감’(accomodation)이나 ‘해석’을 굳이 시도하지 않음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간단한 하나의 예로 세르베투스의 사건을 들어보자. 이 사건은 칼뱅이 얼마나 그의 시대에 충실했는가를 잘 보여 주며, 또한 이 상황을 어떻게 역사적으로 이해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칼뱅의 역할에서 중요했던 것은, 칼뱅 혼자 이 사건의 모든 역할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당시 제네바 시민도 아니었고, 어떤 사람을 혼자 힘으로 처형할 정치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법적으로 보건대, 세르베투스를 처형한 장본인이 아니었다. 도덕적으로 보면, 그는 제네바 정부의 전문 자문가로서 또한 비엔나에 살던 프랑스인 가톨릭 신자들에게 그들의 의사가 유명한 이단 세르베투스라는 사실을 밝혔던 사람이라는 점에서 책임이 있다. 두 번째 역사적 사실은 이단에 대한 처형이다. 당시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세르베투스가 사형에 준하는 이단인 것에 동의했다. 이단에 대한 당시 법적 처형 방식은 화형이었다. 기독교 로마 제국 시대 이후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법은 두 가지 이단, 즉 재세례(rebaptism)와 삼위일체 부정에 대해 사형을 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가톨릭들은 이미 세르베투스를 정죄했다. 그가 가톨릭 지역에서 도망해 버리자 그들은 그의 인형을 가지고 화형식을 치렀다.
세르베투스가 제네바로 들어왔을 때, 제네바 시는 개신교로 전향한 자신들은 결코 최고의 이단이 아니라는 것을 온 세상에 증명할 필요에 직면했다. 만약 제네바시가 고대 유스티니아누스 법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들에 의해 사형이 선포된 가장 고약한 종류의 이단으로 인정된 사람을 사면해 준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들은 스스로, 가톨릭들이 말하는 대로, 개신교인들은 이단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셈이 되는 것이었다. 제네바는 이 일로 다른 개신교도들에게도 자문을 구했는데, 그들은 세르베투스가 이단이며 사형에 합당하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16세기의 거의 모든 정부들은 이단들을 처형한 바 있었다. 즉 많은 나라들이 이미 상당한 수의 이단을 처형했던 것이다.
세르베투스는 제네바에서 유일하게 이단으로 처형당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처형이 유난히 큰 이슈가 된 이유는 칼뱅의 적이었던 세바스챤 카스텔리오(Sebastian Castellio)가 자신의 책에서 사형은 이단을 다루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16세기에 카스텔리오의 생각은 매우 흔치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몽주의 이후 종교적 관용에 대한 이해가 많이 변화되었고, 그 이후 사람들은 이단 처형은 잘못된 것이라고 간주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카스텔리오의 글을 완벽하게 논리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현대인들에게 16세기는 왜 그렇게 이단에 대해 비관용적이었는지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하나의 비유를 들어보자. 사실 어떤 실제적인 목적을 위해 이상한 종교적
작가 소개
저자 : 엘시 맥키
자이레(현 콩고)에서 2대째 미국장로교선교사였던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를 거쳐 미국 프린스톤신학교에서 교회사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지금은 프린스톤신학교에서 종교개혁사와 예배사를 가르치고 있다. 최근 장 칼뱅의 1541년 불어판 「기독교강요」를 영어로 번역했다.
목차
I. 칼뱅의 목회적 사명
목사 칼뱅을 다시 소개하다
칼뱅의 한 달을 따라가 보다
II. 칼뱅의 목회적 실천
개혁주의 설교자 칼뱅
칼뱅의 설교: 그에 관한 보배로운 사실과 놀라운 사실들
‘가난’에 대한 칼뱅의 사상과 실천
첫 불어판 「기독교 강요」에서 듣는 칼뱅의 목회적 음성
III. 칼뱅의 목회적 영성
종교 개혁과 영성 이해의 변화
성경과 실천의 신학자 장 칼뱅
칼뱅이 이해한 공예배와 예전적 영성
칼뱅과 영성: 경건함으로 살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