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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동포를 구하라
대한매일신보 사장 배설의 열정적 생애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부모님 | 201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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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대한매일신보 사장 배설의 열정적 생애를 다룬 책. 영국인 배설은 원래 한국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던 사람이다.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한국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그는 곧 서울에서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했고 항일 투쟁의 선봉에 섰다. 헤이그 밀사사건, 고종이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났던 사건은 호외를 발행하여 긴박한 사태를 알렸다.

배설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는 한반도의 하늘에 망국의 먹구름이 드리웠던 민족 수난기를 밝힌 횃불이었다. 배설이 소유주였던 이 신문은 일제 침략에 최대 걸림돌이었다. 배설은 한국 언론사상 처음으로 3개의 신문을 발행하면서 최대의 발행부수를 기록했다.

국한문판, 한글 전용판, 영문판(코리아 데일리 뉴스)의 3개 신문을 발행하면서 일제의 침략을 국내외에 널리 폭로하자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외교력과 무력을 총동원하여 배설의 추방과 신보의 폐간을 영국에 강력히 요구했다. 배설은 파란만장한 37년의 짧은 생을 마치고 서울 양화진에 묻힌 열혈 항일 언론투사였다. 37세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치고 한강변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잠들어 있는 배설을 저자가 책을 통해서 다시 살려냈다.

  출판사 리뷰

§ 민족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이 땅에서 요절한
벽안(碧眼)의 영국인 배설, 그는 누구인가?


영국인 배설(裴說, Ernest Thomas Bethell)은 원래 한국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던 사람이다.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한국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그는 곧 서울에서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했고 항일 투쟁의 선봉에 섰다. 군대해산 때에는 일본군에 저항하다가 총검에 찔려죽고 부상한 구한국 군인을 병영까지 들어가서 치료했던 일도 있었다고 재판정에서 진술했다. 헤이그 밀사사건, 고종이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났던 사건은 호외를 발행하여 긴박한 사태를 알렸다.

배설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는 한반도의 하늘에 망국의 먹구름이 드리웠던 민족 수난기를 밝힌 횃불이었다. 배설이 소유주였던 이 신문은 일제 침략에 최대 걸림돌이었다. 배설은 한국 언론사상 처음으로 3개의 신문을 발행하면서 최대의 발행부수를 기록했다. 국한문판, 한글 전용판, 영문판(코리아 데일리 뉴스)의 3개 신문을 발행하면서 일제의 침략을 국내외에 널리 폭로하자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외교력과 무력을 총동원하여 배설의 추방과 신보의 폐간을 영국에 강력히 요구했다. 배설은 파란만장한 37년의 짧은 생을 마치고 서울 양화진에 묻힌 열혈 항일 언론투사였다.
신보를 둘러싸고 배설, 양기탁이 관련된 사건은 언론의 역사인 동시에 한국 근대사의 핵심 테마이자 외교사, 국제 사법사의 사례가 되는 희귀한 주제이다. 한국, 영국, 일본, 중국을 비롯하여 멀리 태국, 미국과도 관련이 있는 사건들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 문화재청은 2011년에 배설과 대한매일신보사의 유품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신문사에 걸었던 영국기와 태극기, 배설의 죽음을 애도하여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만사집이 그것이다. 저자가 영국의 유족을 만나 한국으로 가지고 왔던 유품이었다. 작년에는 대한매일신보 지면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이 책은 37세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치고 한강변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잠들어 있는 배설을 저자가 책을 통해서 다시 살려낸 것이다.

§ 직필(直筆)로 일제에 대항하다

러일전쟁 후 일본 헌병대는 한국인이 발행하는 모든 신문과 잡지를 사전검열하여 항일적인 기사는 모조리 삭제를 명하였다. ‘벽돌신문’이 검열에 깎인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던 시기였다. 삭제한 기사가 실렸던 자리가 검은 벽돌을 쌓아둔 것 같다 하여 붙인 이름이었다.

그러나 영국인 배설이 발행하는 대한매일신보(신보로 약칭)와 영어 자매지 <코리아 데일리 뉴스>는 일본 헌병대의 검열을 피할 수 있었다. 영국인 발행 신문은 한국에서 치외법권(治外法權)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신보는 민족진영 항일투쟁의 총본산이 되었다.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와 같은 우국의 논객들이 침략에 붓으로 맞서 싸우는 한편으로 항일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의 비밀 본부 역할을 맡았다. 또한, 국채보상운동의 성금을 모으는 ‘국채보상의연금총합소’도 신보사에 설치되었다.

배설 처리 문제를 둘러싼 외교교섭은 서울, 동경, 런던에서 신중하게 논의ㆍ검토되고 때로는 긴박하게 전개되었다. 언론인 한 사람을 처리하기 위해 영국과 일본이 이처럼 복잡한 교섭을 벌인 적은 없었다. 일본의 끈질긴 요구로 배설은 두 차례나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첫 번째 재판(1907년)은 서울 주재 영국 총영사가 진행한 영사재판이었고, 두 번째 재판(1908년)에는 상해 주재 영국 고등법원 판사와 검사, 통감부 소속 일본인 서기관과 증인들, 고베에서 온 영국인 변호사, 피고 배설과 한국인 증인들이 참여했다. 우리 사법사상 처음 보는 국제재판이었다. 배설은 3주일간의 금고형(禁錮刑)을 받았다. 배설이 상해에서 복역하는 동안 통감부는 신보사의 총무 양기탁을 구속했다. 양기탁 구속은 영일 두 나라의 심각한 외교분쟁을 불러일으켰다. 재판에는 일본인과 한국인 판사가 재판을 맡았고, 피고는 한국인 양기탁이었다. 증인으로는 영국인 배설과

  작가 소개

저자 : 정진석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 런던대학교 정경대학(School of Economics & Political Science-LSE)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4년 언론계에 입문하여 한국기자협회 편집실장, 관훈클럽 사무국장, 1980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언론학 교수, 사회과학대학장, 정책과학대학원장, 언론중재위원, 방송위원, LG상남언론재단 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장지연기념회, 서재필기념사업회 이사.언론 관련 자료집, 문헌 해제, 신문·잡지 색인을 만들었고 방대한 분량의 옛날 신문을 영인했다. 「한성순보」-「한성주보」, 「독립신문」, 「대한매일신보」와 1945년 광복 후부터 1953년까지 발행된 「경향신문」, 「동아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의 지면 전체를 모은 영인본(전 32권)을 편찬했다. 「조선총독부 언론통제 자료총서」(전 26권), 「조선총독부 직원록」(1911~1942, 전 34권) 같은 문헌도 발굴, 영인하여 언론계와 역사학계가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저서로 「항일민족언론인 양기탁」(2015),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동포를 구하라」(2013), 「전쟁기의 언론과 문학」(2012), 「극비, 조선총독부의 언론검열과 탄압」(2007), 「언론조선총독부」(2005), 「6·25전쟁 납북」(2005), 「역사와 언론인」(2001), 「언론과 한국현대사」(2001), 「언론유사」(1999), 「한국언론사」(1995), 「인물한국언론사」(1995), 「한국현대언론사론」(1985) 외에 여러 권이 있다.

  목차

Ⅰ. 서장 항일 언론투사의 죽음

제 Ⅱ장 배설의 어린 시절과 일본 생활
1. 집안 내력과 학력 _30
2. 일본에서의 생활_40
3. 사업의 성공과 실패 _50

제 Ⅲ장 신보의 운영 자금
1. 배설 한국에 오다 _64
2. 신보와 코리아 데일리 뉴스 창간_71
3. 자금문제에 대한 세 갈래 추측_80
4. 고종의 비밀 보조금 지급 _90

제 Ⅳ장 우국 항일 언론인들
1. 총무 양기탁 _106
2. 투옥 후 한성전기회사와 궁내부 근무 _113
3. 배설 사후의 양기탁과 후임 사장 만함 _123
4. 다섯 부류의 종사자들_132
5. 논객과 행동파_138

제 Ⅴ장 항일 민족진영의 편에서
1.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_148
2. 한국문제에 냉담했던 영국_159
3. 배설과 하기와라의 불화_167
4. 주한 영국 공사의 일본 편향 외교_174
5. 배설 처리 방침에 고심한 영국_182
6. 주한 영국공사관 철수_191

제 Ⅵ장 반일 언론과 일본의 대응홍보
1. 탄압의 치외법권 서양 언론 _204
2. 영국 기자 스토리의 고종밀서 사건_215
3. 영어 신문 발간의 중요성 인식 _230
4. 서울 프레스와 일본의 침략홍보_238
5. 외국 여론을 중요시했던 이등박문 _248

제 Ⅶ장 일본과 영국의 줄다리기
1. 외교안건으로 부상한 배설 처리_260
2. 신보의 발행부수와 영향력_267
3. 영국과 일본의 대응_275
4. 영국 총영사 코번의 정세판단_281

제 Ⅷ장 배설처리 법 적용 논란
1.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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