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생물학사에서 라마르크가 남긴 가장 큰 족적은 무엇보다도 단편적 연구들로 이루어졌던 이전의 생명 연구를 독립된 분과 학문으로서 체계화하고 여기에 '생물학'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이 책도 단지 생물종의 진화를 설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훨씬 광범위하게 독립된 과학으로서의 생물학의 기반을 정초하고, 이의 연장으로 심리학적 토대를 정립하는 데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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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생물학사에서 라마르크가 남긴 가장 큰 족적은 무엇보다도 단편적 연구들로 이루어졌던 이전의 생명 연구를 독립된 분과 학문으로서 체계화하고 여기에 ‘생물학’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이 책도 단지 생물종의 진화를 설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훨씬 광범위하게 독립된 과학으로서의 생물학의 기반을 정초하고, 이의 연장으로 심리학적 토대를 정립하는 데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물론 그의 이론은 형이상학적 용어의 해석이 애매하고, 결국 오해의 소지가 많다는 맹점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을 제외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일생을 바쳐 생명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고 이를 실증적으로 규명하고자 노력했던 19세기 초 한 사상가의 고뇌를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용불용설과 획득형질 유전설의 제창자
기린의 목으로 상징되는 용불용설과 획득형질 유전설의 제창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라마르크는 또한 무척추동물 분류학자, 고생물학의 창시자, 생물학(biologie)의 초안자, 현대적 의미의 화석(fossile) 용어의 고안자, 진화론(transformisme)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생물학사에서 그가 남긴 가장 큰 족적은 무엇보다도 생리학이나 해부학 등의 단편적 연구들로 이루어졌던 이전의 생명 연구를 독립된 분과 학문으로서 체계화하고 여기에 ‘생물학’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라마라크주의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면서부터 사람들은 진화론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생태학의 발달과 더불어 프랑스 진화론자들에게 환경 요인이 커다란 관심으로 부각되면서 라마르크의 재발견이 이루어진다. 19세기 후반에 접어들 무렵 일부 프랑스 생물학자들은 라마르크의 이론과 다윈 이론을 접목시켜 진화를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이들에게 있어 라마르크의 이론과 다윈의 이론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연속적 진화론이라는 측면에서 양립 가능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실제로 다윈은 라마르크의 획득형질 유전설을 부인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자연선택 이론을 바탕으로 연속적 진화를 설명했다. 이렇게 진화론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자연의 연속성 개념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바이스만, 멘델, 더프리스와 같은 신다윈주의자들에 의해 주장된 자연의 비연속성 개념과 충돌을 빚게 된다. 신다윈주의자들은 생명체 진화의 전제가 되는 변이를 성의 혼합에 따르는 우연적이고 불연속적인 변이로 설명했다. 따라서 19세기 후반 생명체의 변이에 대한 설명은 점진적 변이와 돌발적 변이라는 확연히 구분되는 두 이론으로 나뉘어 수용되었다. 점진적 변이를 수용한 사람들은 라마르크의 획득형질 유전설을 지지하여 신라마르크주의를 형성했고, 돌발적 변이를 수용한 사람들은 획득형질의 비유전설을 역설하여 신다윈주의를 형성했으며, 이들 사이의 상반된 두 입장은 팽팽한 대립 구도에 놓이게 되었다.
라마르크주의에 대한 오해
라마르크의 이론이 지금까지 진화의 메커니즘에 관련된 이론에 한정되어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생물학의 창시자로서 라마르크의 위상이 묻혀온 데는 권력과 이데올로기로 점철되었던 생물학 역사상의 복잡한 사연들이 얽혀 있다. 동시대 퀴비에와의 대립을 비롯하여, 다윈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19세기 중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진화 메커니즘 논쟁은 라마르크의 이론을 왜곡하거나 부분적으로만 수용하는 경향을 유도했고, 라마르크주의는 신라마르크주의에 영입되면서 이데올로기 논쟁에 휘말려 과학의 영역으로부터 밀려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원인 이외에도 라마르크의 위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중요한 이유로 라마르크 자신의 글에 나타나는 몇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라마르크가 생명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했던 물리화학 이론 자체의 문제라든가 피쇼가 지적하는 구성상의 치명적인 결함에 보태어, 난해한 문체가 지리하게 반복되어 읽는 이들로 하여금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든지, 형이상학적 용어의 해석이 애매하고, 결국 오해의 소지가 많다는 맹점을 지니고 있다. 갖가지 난점은
작가 소개
저자 : 장 바티스트 드 라마르크
1744년 8월 1일 프랑스 피카르디 지방의 바장탱 르 프티에서 태어나 1829년 12월 18일 파리에서 생을 마쳤다. 몽파르나스(Montparnasse) 묘지에 잠정적 승인을 얻어 안치되었으나 1830년 혁명 당시 그의 묘소는 사라지고 말았다. 세 번 결혼하고 세 번 이혼했으며, 여덟 명의 자식이 있었으나 다섯 명만이 그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라마르크는 모계 혈통으로 922∼923년 프랑스 임시 국왕이었던 로베르 1세의 자손이었으며, 소귀족 계급 출신이었지만 가난했다. 식물학과 음악에 많은 관심을 지녔던 그는 파리의 은행에서 일하면서 의학 공부를 하기도 했으나 의사가 되지는 않았다.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를 만나 함께 식물을 채집하게 되며, 다른 과학에도 관심을 지니면서 특히 식물학에 집중하여 쥐시외(Bernard Jussieu)와 함께 연구했다. 일부 동료 가운데 특히 고정설(fixsme)의 지지자였던 퀴비에에 맞서야 했으며, 정치권력에도 그리 밝지 못했다. 혁명 사상을 지지했던 그의 정치적 시각은 제정기나 왕정복고 당시의 분위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결혼해서 많은 자녀를 두었고, 그가 택했던 직업들은 대개 명예직으로 보수가 매우 낮아서 일생 동안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국립 자연사 박물관 직원 문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라마르크, 50세, 두 차례 결혼, 여섯 자녀, 곤충, 유충, 미생물 전공의 동물학 교수.” 그는 남은 생애 동안 무척추동물학을 포함한 동물학에 전념했다.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머리말
서론
제1부 동물들의 특성, 유연관계, 조직화, 배치, 분류, 그리고 종에 대한 자연사적 고찰
제2부 생명의 물리적 요인, 생명 존재에 요구되는 조건, 생명운동을 자극하는 힘, 생명을 지닌 신체에 부여된 기능, 그리고 신체 내에 생명이 존재함으로써 생기는 결과에 대한 고찰
제3부 여러 동물들에서 관찰되는 활동을 만들어내는 힘, 그리고 지적 활동을 일으키는 감각의 물리적 원인에 대한 고찰
서론
옮긴이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