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서남동양학술총서'. 그간 대중의 관심과 학계의 연구에서 반쯤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원간섭기' 100년의 고려사를 교역사의 관점에서 조명한 연구서이다.
특히 원의 일방적 수탈 내지 수세적 상거래로 고려-원 관계를 파악한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 고려-원 교역의 쌍방향성에 주목한 점, 격동하던 동아시아 교역권의 큰 맥락에서 고려의 위상을 조명한 점, 흩어진 관련 자료를 한데 모아 정밀한 상호관계를 고증하고 실상을 재구성한 점 등은 이 책의 특장이다.
출판사 리뷰
서남동양학술총서 『고려와 원제국의 교역의 역사: 13~14세기 감춰진 교류상의 재구성』은 그간 대중의 관심과 학계의 연구에서 반쯤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원간섭기’ 100년의 고려사를 교역사의 관점에서 조명한 연구서이다. 특히 원의 일방적 수탈 내지 수세적 상거래로 고려-원 관계를 파악한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 고려-원 교역의 쌍방향성에 주목한 점, 격동하던 동아시아 교역권의 큰 맥락에서 고려의 위상을 조명한 점, 흩어진 관련 자료를 한데 모아 정밀한 상호관계를 고증하고 실상을 재구성한 점 등은 이 책의 특장이다.
13세기 후반~14세기 전반은 한반도인들의 대외활동이 비약적으로 증가해 그 어느 때보다 해외시장에 능동적으로 임했고, 한반도 시장이 세계에 활짝 열린 시기이다. 이 책은 그 배경이 된 것이 역대 어느 왕조보다 광범한 지역을 관할한 원제국이었다는 데 주목한다. 동서 교역을 장려하고 주도한 원을 통해 고려는 서아시아의 거대한 시장과 연결되었다. ‘원간섭기’ 고려 왕들이 원의 대외정책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활용해 자국의 이익을 도모했고, 이를 발판으로 고려 후기 민간교역이 활성화되었다는 이 책의 논지는 침탈과 수난사라는 인식이 주류이던 고려 후기사 연구에서 진일보한 지점을 보여준다.
일방이 아닌 쌍방의 교류: 고려의 능동적 대응
13세기 후반 몽골과의 전쟁으로 초토화되다시피 한 고려에서 원은 응방(鷹坊)과 둔전(屯田)을 앞세워 엄청난 물자를 적출해갔다. 특히 고려 매를 징발하던 응방은 ‘고기 대신 은과 모시를 먹는 방자한 매를 기른다’는 말이 돌 정도로 원의 대표적 침탈기구로 기능했다.
이러한 응방과 둔전은 원이 중국 강남 지역의 재원(財源) 편제를 마무리한 13세기 말부터 점차 무력화되는데, 고려는 이를 계기로 대외교역에 나서게 된다. 원의 세력권이 확장됨에 따라 회회인(回回人) 등 새로운 국적의 상인들이 고려를 찾기 시작한 것 또한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고려는 이들과의 거래를 통해 중국을 넘어선 거대한 시장의 존재를 감지했고, 고려 왕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몽골의 물자 징발기구였던 응방을 역이용해 대외무역 투자금을 조성하려는 ‘발상의 전환’이 일어났다. 충렬왕은 응방의 존재를 묵인하는 대신 회회인을 불러 그 관리를 맡기고자 했다. 회회인들이 응방에 집적된 물자를 그들의 무역활동에 출자해 이윤을 얻으면 일정 비율은 고려 정부가 회수하는 방식으로, 응방을 활용한 대외교역을 통해 새로운 이윤 창출이 가능할 것을 계산했던 것이다. 또한 중국 강남으로 상선을 파견하고 중국 무역항의 고율관세를 놓고 협상하는 등, 이 시기 고려 정부의 전략적 사고는 사뭇 돋보이는 바 있다. 이는 13세기 후반 30여년 넘게 고려를 다스렸던 충렬왕의 승부수이자, 대외진출을 본격화한다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또한 동아시아 교역권 내에서 이류시장으로 내려앉은 한반도가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발점이기도 했다.
이후 충선왕과 충숙왕, 충혜왕 등 고려 왕들은 원과 연결된 서아시아의 상황과 동서 교역에 대해 지식을 축적하고 식견을 넓혔다. 고려와 원, 두개의 모국을 지녔던 이들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고려의 제도를 보호하거나 외국 제도가 고려의 상황 개선에 필요하면 주저없이 받아들였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13세기 말~14세기 초부터는 민간인들까지 원으로 건너가기 시작한다. 고려 후기 대외교역의 ‘전성기’를 맞은 것이다. 교역의 경로도 다양해졌다. 민간인 상단이나 사신들의 교역도 육로로 들어가 육로로 귀환하던 이전의 방식에서 변화해 육로로 들어가 해상으로 귀환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은 이런 교역양상 변화에 큰 역할을 했다. 교역을 위해 원제국을 방문하던 상인들을 위해 고려 정부가 발간한 일종의 어학교재인 『노걸대(老乞大)』 『박통사(朴通事)』 등은 그 발간 자체만으로도 원에 가는 고려 상인들의 수가 상당했음을 보여준다. 정부와 민간이 공조해 활발히 활동한 이 교역은 13세기 말 이래 70여년간 전성기를 누리며 지속되다가 원의 몰락과 함께 퇴조하
작가 소개
저자 : 이강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한국사학 전공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고려시대사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하대학교 BK21 동아시아한국학사업단에서 연구원·연구교수로 재직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처 연구정책실장을 역임했다. <고려와 원제국의 교역의 역사>(2013), <실학시대의 역사학연구>(공저, 2015), <중앙유라시아세계사>(공역, 2014) 등의 저서와, 「고려후기 元寶鈔의 유입 및 유통 실태」, 「고려 충선왕의 국정과 ‘舊制’ 복원」, 「공민왕 5년(1356) ‘反元改革’의 재검토」, 「‘친원’과 ‘반원’을 넘어서-13~14세기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 「고려,원간 ‘交婚’ 법제의 충돌」, 「1307년 “依上國之制, 定軍民” 조치의 내용과 의미」, 「1308~1310년 고려내 “牧·府 신설”의 내용과 의미」 등의 논문이 있다.
목차
서남동양학술총서 간행사|21세기에 다시 쓰는 간행사
책머리에
책에 들어가며
제1부 13세기 후반: 전후의 암흑기와 고려의 몸부림
제1장 해외로 빠져나가는 물자, 더이상 찾아오지 않는 중국인
1. 물자의 유출
2. 응방과 둔전의 설치, 그리고 은과 미곡의 강탈
제2장 강남인의 발길이 끊기다
1. 한반도 시장, 소외를 당하다
2. 수역의 설치, 잠깐의 부흥
제2부 13세기 말 14세기 초: 변화하는 외부환경, 고려의 재기
제3장 터널의 끝: 새로운 외국인들의 도래, 그리고 잉여의 생성
1. 응방과 둔전의 폐지, 그리고 물류의 역전
2. 이번에는 회회인이 온다
제4장 고려왕, 승부수를 던지다: 고려발 해외교역의 재개
1. 서역 시장과의 접선 시도
2. 원 항구지역에의 교역선 파견
제3부 14세기 전반: 고려의 대외교역, 전성기를 다시 맞다
제5장 충선왕, 인도와 염색직물을 양손에 잡다
1. 고려 민간인들의 폭증하는 외국행
2. 충선왕, 무역을 위해 관제 개편에 나서다
제6장 고려왕들, 그들만의 방식으로 바깥세상과 교역하다
1. 충숙왕, 상인을 관료로 발탁하다
2. 충혜왕, 대규모 무역생산 시설을 만들다
제4부 14세기 후반 원제국의 몰락: 고려 정부와 상인들, 전환기에 놓이다
제7장 늘어나는 외국인들의 방문, 고려 정부의 딜레마
1. 강남인들이 다시 오다
2. 새로운 악재들
제8장 정부 주도 교역의 쇠퇴, 여전히 왕성한 민간교역
1. 공민왕의 마지막 시도
2. 민간교역, 더이상 정부의 도움이 필요 없다
책을 맺으며
수록논문 출처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