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저자의 희망에 대한 생각은 삶에서 낙관주의의 역할에 대한 확고한 거절로 시작한다. 그것은 오히려 합리화의 구조 혹은 진실된 분별력 대신 한 사람의 기질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친숙하지만 제대로 규정하기 힘든 단어인 희망의 의미를 분석한다. 그것은 감정인지, 열망과는 어떻게 다른지, 미래에 집착을 하는지 등. 그리고 마침내 저자는 비극적 희망의 새로운 개념을 꺼내든다.
이글턴이 감지하는 희망은 경박한 낙관주의에 오염된 희망을 정련하고 제련하는 것으로서 '희망과 욕망의 비극적 관계'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저평가되어온 희망의 가치를 상승시켜서 '희망과 절망의 역리적逆理的 관계'를 교차하고 융합한다.
그렇게 했을 때에만 이글턴이 이야기하는 "진정한 희망"의 여건을 조성하고 에른스트 블로흐의 허망하고 낙관적인 희망에 대항하는 '값지고 현실적인 희망'의 조건을 구성할 것이다. 그렇게 생성되는 희망은 욕망과 비극과 절망을 엄밀하게 직시하면서 낙관하지도 절망하지도 않는 희망이 될 것이다.
출판사 리뷰
내가 희망하는 희망은 왜 이루어지지 않는가!
우리는 흔히 낙관주의적인 관점에서 희망을 이야기한다. '지금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앞으로는 잘 될거야' '희망을 갖는다면 언젠가는 이루어질 거야' '희망은 맨 마지막까지 사는 법이야' 그리고 노력한다, 맹목적으로 아무런 근거도 없이. 또는 기적을 이야기하면서 내게도 기적이 올 것이라고 희망을 한다. '로또가 맞을 것이다'라고 희망한다. 과연 이것이 희망일까?
테리 이글턴은 이런 절망적인 희망을 낙관주의의 허울에 쌓인 희망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정확하게 이야기해서 희망이 아니다.
낙관주의적 희망은 희망의 포기 의 다른 모습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희망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우리는 희망을 소홀하게 다뤄왔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희망을 비굴하게 포기해왔기 때문이다.
희망을 포기하는 방법은 다양하였다. 그 중의 하나는 낙관주의라는 허울을 씌워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낙관주의에서 이야기하는 희망은 희망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괴롭히는 절망의 다른 형태에 불과한 것이다. 왜냐하면 낙관주의에서 이야기하는 희망은 실현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낙관적이다라고 이야기할 때 그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장미빛안경을 쓰고 사물을 바라보고 장미빛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기대를 달성하기 위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 또는 노력을 해도 전혀 이루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낙관주의로 포장된 희망은 근거없는 희망, 즉 절망이기 때문이다.
희망과 욕망의 차이
희망과 욕망의 차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희망한다"는 그저 "나는 그렇게 소망한다"를 의미할 수 있다. 담배 한 개비를 바라는 욕구와 그것을 기대하는 희망 사이에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희망을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사랑과 욕망'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그는 '해로운 희망도 이로운 욕망도 존재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희망도 욕망도 도덕적 상태일 수 있지만 둘 다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욕망은 대체로 특정한 대상을 바라는 반면에 희망의 목표는 대체로 어떤 상황이다. 그렇지만 상황의 발생을 욕망하거나 더 부드러운 얼굴피부를 희망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또한 '누군가에게 희망을 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이 말은 곧 그 사람이 누군가를 '그 사람의 소원을 성취해줘서 그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을 사람'으로 신뢰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미 소유한 것을 욕망할 (그리고 확실히 사랑할) 수는 있지만 희망할 수는 없다'는 말도 유의미하다.
희망은 무엇인가
'인간은 발생하리라고 확신하는 일이 앞으로 발생하기를 희망할 수 없다'
기독교신자들은 신국의 출현을 확실성의 문제로 간주하면서도 신국의 출현을 기대하는 희망을 덕목으로 간주한다. "나는 그렇게 희망한다"는 관용어의 지극히 평범한 용법과 다르게, 그들은 앞으로 발생하리라고 확신하는 어떤 것을 신뢰한다. 사도 바울에게 희망은 메시아의 출현을 끈질기고 기쁘게 확신하면서 기다리는 과정을 의미한다. 라이프니츠의 희망은 그의 우주적 낙관주의에 기반을 두는 것이라서 논쟁을 불허한다. 그의 관점에서 희망은 평온한 확신의 문제이다.
알랭 바디우는 '비난을 불허하는 신학의 정통학설에서 희망은 확실성과 연관되며 신앙은 확신과 연관된다'고 말한다
제인 오스틴이 소설 『설득Persuasion』에서 희망을 "미래를 믿는 명랑한 확신"으로 지칭한 것도 그런 희망을 재현하는 것이다. 기독교경전 『시편Psalms』은 '희망은 꺾이지 않으리라'고 장담하고 사도 바울은 '희망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어느 해설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관점에서 희망은 경솔한 낙관주의와 동떨어진 "확고부동한 신념과 설레는 확신"을 수반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희망이 '기원祈願하는
작가 소개
저자 : 테리 이글턴
영국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비평가이자 이론가. 1943년 영국 샐포드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학교 영문학 연구 교수를 거쳐 랭커스터 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세기 이후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사회, 정치, 문화에 관한 많은 책을 펴냈다. 그는 수많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정치사상적 부침에 따라 입장을 달리했을 때도 시대의 유행을 좇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견지했다. 또한 실존주의, 페미니즘 등 시대의 흐름을 끌어안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지평을 넓혀왔다. <인생의 의미>에서 테리 이글턴은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골칫덩이가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임을 지적한 뒤, 철학과 문학을 가로지르며 생의 진실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책의 곳곳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걸출한 저격수다운 날선 비판과, 성취를 향한 개별적 탐색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화해시키기 위한 모색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주요저작으로는 <문학이론입문> <미학의 이데올로기> <포스트모더니즘의 환상> <이론 이후> <성스러운 테러> <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 <악> 등이 있다.
목차
서문
1장 낙관주의의 진부함
2장 희망이란 무엇인가?
3장 희망철학자
4장 희망에 대항하는 희망
번역자 후기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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