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4백 여년 만에 원문을 복원한 난중일기 교감본. 초서체 난중일기 친필본과 후대 이본의 오류를 모두 바로잡아 새롭게 하나의 정본으로 만든 원문책자이다. 기존 활자본인 <이충무공전서>의 <난중일기>와 <난중일기초>의 판본상 문제점을 해결하고, 원문에 이본 상황을 일일이 밝혔다.
2008년도에 발굴한 새로운 일기 32일치를 삽입하였고, 이번에는 고상안(高尙顔)의 <태촌집(泰村集)>에 들어있는 '충무공 난중일기(忠武公亂中日記)' 갑오년 9일 치를 원문에 처음으로 첨가하였다. 갑오년 3월 30일과 4월 8일, 12일자에 새로운 내용이 있다.
출판사 리뷰
4백 여년 만에 원문을 복원한 국내 최초의 난중일기 교감본.
『종합교감 난중일기정본』은 초서체 난중일기 친필본과 후대 이본의 오류를 모두 바로잡아 새롭게 하나의 정본으로 만든 원문책자이다. 기존 활자본인 『이충무공전서』의 『난중일기』와 『난중일기초』의 판본상 문제점을 해결하고, 원문에 이본 상황을 일일이 밝혔다. 2008년도에 발굴한 새로운 일기 32일치를 삽입하였고, 이번에는 고상안(高尙顔)의 『태촌집(泰村集)』에 들어있는 「충무공 난중일기(忠武公亂中日記)」 갑오년 9일 치를 원문에 처음으로 첨가하였다. 갑오년 3월 30일과 4월 8일, 12일자에 새로운 내용이 있다.
[출판사 서평]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에 초서체로 진중에서 쓴 일기이다. 친필 초고에서 급하게 흘려 써진 내용들은 후대에 해독하기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었다. 이에 후대의 해독작업이 몇 차례 이루어졌지만, 판본상의 문제점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었다. 1795년(정조 19)에 간행된 『이충무공전서』의 『난중일기』는 누락과 오독으로 친필본과 많은 차이가 있었고, 1935년 조선사편수회(이마이다 기요노리(今井田淸德) 회장)에서 간행한 『난중일기초(亂中日記草)』에는 미상과 오독이 일부 남아 있었다. 이는 곧 친필 초고에 대한 정밀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데 주된 원인이 있었다.
국내 최고의 난중일기 전문가 노승석은 초서를 전문으로 연구하였다. 2004년 『난중일기』와 『임진장초』, 『서간첩』대한 탈초작업을 하였고, 2005년 초고본과 전서본, 『난중일기초』의 원문 교감(校勘)을 하여 백여 곳을 바로잡아 완역을 시도하였다. 2007년 『충무공유사』를 해독하여 일기초(日記抄)에서 새로운 일기 32일치를 찾아냈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져 왔던 것과는 달리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또한 이 일기초의 내용으로 초고본의 문제점을 상당수 해결할 수 있었다. 2008년 초고본과 이본(異本)의 오류를 종합 검토하여 교감완역본을 만들었다.
2013년에는 이순신이 『삼국지연의』를 탐독하고 교훈이 되는 내용을 난중일기에 옮겨 적은 것을 최초로 발굴하였다. 국가는 어려운 때일수록 항상 인재가 필요하고 전쟁에는 국방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 내용이다. 이순신 자신도 이 내용에 공감하여 일기 속에 적어 둔 것이다. 또한 벽초(碧初) 홍명희(洪明熹)의 아들 홍기문(洪起文)이 1955년 최초로 한글로 번역한 『난중일기』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이는 초고본을 확인하지 않고 활자본을 토대로 번역한 것이므로, 완전한 번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최초의 번역본으로서 의미가 있다.
이제 난중일기 친필초고와 이본상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정본화하여 새로 만든 원문책자 『종합교감 난중일기정본』을 출간하게 되었다. 이 책의 원문에는 초고본과 이본상황은 물론, 새로 발굴한 내용과 문헌으로 고증한 내용들이 총 망라되어 있다. 이 점에서 이는 『난중일기』 판본에 관하여 종합 정리한 최종결정판이라 하겠다. 간혹 필요한 경우 홍기문과 이은상의 번역내용도 반영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이 원문책자는 독자들이 『난중일기』 번역서와 함께 원전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작가 소개
저자 : 이순신
1545년 3월 8일 문반 가문의 셋째로 태어났다. 1576년에 병과로 급제해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 병사 군관, 발포 수군만호, 함경도 건원보 권관, 훈련원 참군, 사복시 주부, 조산보 만호 겸 녹둔도 둔전관, 전라순찰사 군관 겸 조방장 등을 거쳤다. 이어 1589년 정읍 현감으로 지방관 생활을 했으며, 1591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해전, 적진포해전, 사천해전, 당포해전 등에서 전승해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1593년 8월에 삼도수군통제사에 최초로 임명되어 1594년에도 장문포해전, 영등포해전 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1597년 1월 조정을 기망한 죄로 통제사직에서 파직되어 투옥되었다. 출옥 후 도원수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했다. 1597년 7월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이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하자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되었다. 9월 16일 남은 12척의 배와 120명의 군사로 130여 척의 왜선과 맞서 명량해전을 대승으로 이끌었다. 1598년 명의 수군과 연합해 왜선 500여 척과 싸우다 노량해전에서 11월 19일 새벽에 전사했다. 1604년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1643년에는 ‘충무(忠武)’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1793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목차
원색도판
교감자 서문(序文)
『종합교감 난중일기 정본』해제
일러두기
『종합교감 난중일기 정본』
『계사일기』
『갑오일기』
『을미일기』
『병신일기』
『정유일기Ⅰ』
『정유일기Ⅱ』
『무술일기』
『난중일기』교감기(校勘記)
참고문헌
충무공 이순신 연보
『난중일기』교감도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