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한승주가 걸어온 주로 외교와 연관된 ‘공적인’ 삶의 기록이다. 장관과 주미 대사로서 어떤 길을 걸었는지, 왜, 어떻게 평화외교를 지향했는지, 그가 생각하는 실용외교란 무엇인지, 그것이 기회주의나 물질만능주의와 어떻게 다른지를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그가 맡았던 외무부 장관과 주미 대사 두 보직의 배경에는 모두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위협이 있었다. 이에 대처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였다.
장관으로 취임한 지 2주 만인 1993년 3월 12일, 그의 장관 재임 기간 중 가장 중대한 사태가 벌어졌다.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이다. 일반 국민은 물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북한을 폭격할까 봐 크게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국회에서는 외무부 장관이 빨리 미국에 가서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지 못하게 막으라고 주문했다.
결국 북핵 문제는 유엔 안보리에 회부되고 미국과 북한 간에 협상이 시작되었으나 1994년 10월의 제네바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과 위기, 그리고 19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요구되었다. “제네바 합의로 북한의 핵 활동을 동결하여 북핵 문제를 일단락시키고 한반도에서 전쟁의 재발이나 대규모 무력 충돌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보람 있는 일이었으나, 영구적이고 강력한 평화의 기반을 구축하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고 그는 회고한다.
출판사 리뷰
한승주가 걸어온 외교의 길
그는 평생 외교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 50여 년간 대학에서 외교를 배우고 가르쳤으며 1993년에는 김영삼 정부의 초대 외무부 장관으로, 2003년에는 노무현 정부의 초대 주미 대사로 임명되어 각각 22개월간 격변의 외교 현장을 누볐다.
이 책은 그의 삶, 그 가운데서도 주로 외교와 연관된 ‘공적인’ 삶의 기록이다. 장관과 주미 대사로서 어떤 길을 걸었는지, 왜, 어떻게 평화외교를 지향했는지, 그가 생각하는 실용외교란 무엇인지, 그것이 기회주의나 물질만능주의와 어떻게 다른지를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그가 맡았던 외무부 장관과 주미 대사 두 보직의 배경에는 모두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위협이 있었다. 이에 대처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였다.
장관으로 취임한 지 2주 만인 1993년 3월 12일, 그의 장관 재임 기간 중 가장 중대한 사태가 벌어졌다.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이다. 일반 국민은 물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북한을 폭격할까 봐 크게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국회에서는 외무부 장관이 빨리 미국에 가서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지 못하게 막으라고 주문했다. 결국 북핵 문제는 유엔 안보리에 회부되고 미국과 북한 간에 협상이 시작되었으나 1994년 10월의 제네바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과 위기, 그리고 19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요구되었다. “제네바 합의로 북한의 핵 활동을 동결하여 북핵 문제를 일단락시키고 한반도에서 전쟁의 재발이나 대규모 무력 충돌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보람 있는 일이었으나, 영구적이고 강력한 평화의 기반을 구축하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고 그는 회고한다.
주미 대사 시절도 ‘picnic(소풍)’은 아니었다. 워싱턴에 있던 기간 동안 그는 특히 북한에 대해 강경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시 행정부와 온건책을 고집하는 한국의 노무현 정부의 틈새에서 고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보다 10년 전 그가 외무부 장관으로서 강경책을 주장하는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과 비교적 온건책을 선호하는 클린턴의 미국 정부 사이에서 고전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었다.
대한민국 외교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책의 1부 ‘학문의 길’에는 출생과 성장의 배경부터 초등학생 시절의 6·25전쟁과 대학 시절의 4·19혁명 때 생사의 고비를 넘긴 이야기, 고등학교 시절 영어에 눈 뜨고 미국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접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외무부 장관 취임 이전의 삶이 담겨 있다. 2부 ‘외교의 길’에는 외무부 장관 시절, 3부 ‘다시 외교의 길로’에는 주미 대사 시절, 4부 ‘민간외교의 길’에는 공직에 몸담고 있지 않았던 시절의 민간외교에 얽힌 이야기를 담았다. 책의 부록에는 고려대학교 고별 강연인 ‘외교란 무엇인가?’를 비롯하여 ‘세계화시대와 한국의 외교’, ‘불안정한 삼각관계’, ‘한반도의 분단 관리와 통일 문제’ 등의 연설문, 주요 외국 신문에 게재되었던 그에 관한 기사와 인터뷰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바로가기를 수록했다. 회고록에 나타난 그의 사고(思考)와 그에 기초한 실천을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될 내용들이다. 에필로그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라는 충격적인 상황을 맞은 한국 외교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회고록이지만 과거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오늘 우리의 외교 현실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평생 외교를 연구해온 학자로서의 폭넓은 시각과 장관과 대사로서 외교 현장을 누빈 경험을 두루 갖추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10년 동안 뉴스위크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약할 정도로 고급 영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그의 학창시절 영어학습법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이 책이 제공하는 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은 외교 문제에서 장관을 비롯한 실무진의 조언과 건의를 존중해주었고, 설사 본인의 의견과 다른 점이 있더라도 합리적인 건의는 납득하고 채택하는 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대통령들과 달리 외무부 인사에 간섭하거나 통제하지 않고 외무부의 독자적 결정을 허용하고 존중해주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그에게 주미 대사 자리를 제의했고, 그는 그것을 수락했다. 노 대통령은 이념적으로 다른 입장을 갖는 경우가 있어도 큰 틀에서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건의를 받아들여주었다.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고,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개시했으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했다. 그는 노 대통령에게 좌우를 아우르는 ‘큰 텐트(big tent)’를 칠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이념적 성향이 거의 정반대인 김영삼, 노무현 대통령 밑에서 한 대통령과는 외무부 장관으로서, 다른 대통령과는 주미 대사로서 외교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커다란 행운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분들의 도움으로 한국 외교에 실용주의를 불어넣을 수 있었던 것은 국가적으로도 다행이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대한민국 외교가 나아갈 길
오늘날 우리의 외교는 최소한 다섯 가지의 위기와 그에 따른 도전을 맞고 있다. 그 첫 번째는 북한의 핵무장, 두 번째는 떠오르는 ‘미국 중심주의’, 세 번째는 부활하는 주변국의 대국주의, 네 번째는 갈등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의 위기는 우리의 세 가지 결핍 사항(Deficiencies)이라고 하겠다. 세 가지 결핍 사항이란 첫째 리더십, 둘째 전략, 셋째 국민적 합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이를 분석하고 각각의 해법을 제시하면서 우리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정치와 리더십의 안정이라고 지적한다. 정치와 제도 그리고 누가 정부를 이끌고 있는가가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외교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안정적이고, 감정과 이념 그리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실용적 리더십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1950년부터 1960년 사이에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세 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는 내가 아홉 살 때인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이고, 두 번째는 1956년 고등학교 1학년 때 미국에 2개월간 연수를 다녀온 것이고, 세 번째는 1960년 4·19혁명에 참여한 것이다.
9월 27일 밤에는 인천에 상륙한 미군이 서울 근교까지 들어와 동대문 밖 창신동 일대에 포탄을 쏘아 댔다. 그 와중에 총알만 한 파편이 날아와 내가 입고 있던 바지를 뚫고 오른쪽 엉덩이에 박혔다. 부모님은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나를 업고 포격을 피하여 부친의 친구가 살고 계신 의정부 마전리 쪽으로 향했다. 창동쯤에서 북한군이 서울 전투에 투입되기 위해 길가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내가 피를 흘리는 것을 보더니 배낭에서 자기 어머니가 주었다는 명주천을 꺼내 내 상처 주변을 묶어 지혈이 되도록 도와주었다. 내가 그때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이다.
맨손의 시위대에게 공포탄도 아닌 실탄을 쏜 것이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날아오는 총탄을 피하기 위해 바닥에 엎드려 다른 사람 밑으로 파고들기도 했다. 나도 얼른 엎드렸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긴박한 순간, 나의 스무 살 짧은 인생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잠시 후 나는 낮은 포복 자세로 골목길로 들어가 진명여고 담장을 넘어 학생들이 수업 중인 교실로 몸을 피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총소리가 멎은 후 나는 ‘살아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날 경무대 앞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 사람만 무려 50여 명에 달하고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작가 소개
저자 : 한승주
1940년 서울 출생.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도미하여 미국 뉴햄프셔대에서 정치학 석사,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대학에서 약 8년, 귀국 이후 30년 가까이 고려대에서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외무부 장관으로 정책을 만들고 현장을 지휘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주미 대사로 격동의 외교무대에서 직접 선수로 뛰기도 했다. 대학에서 은퇴한 후에도 외교에 종사하고 있으니 반세기 경력의 ‘교수 외교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공직에 몸담고 있지 않은 시절에도 늘 민간외교 무대의 현장에 있었다. 교수 시절 다양한 국제 교류를 통해 쌓아둔 인맥은 훗날 장관으로서 공식 외교 무대에서 활동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민간인 시절에는 키프로스 유엔사무총장 특별대표, 서울국제포럼 회장, 동아시아비전그룹(EAVG) 의장, 삼각위원회 아시아태평양지역 부의장을 역임했으며, 최근(2017년)까지 한독통일정책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 한미협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목차
머리말 : 나는 어떤 외교를 지향했는가
1부 학문의 길
500년 서울 토박이 : 나의 출생과 성장의 배경
전쟁과 평화 : 초등학교 시절의 6·25전쟁
북침인가, 남침인가 : 한국전쟁의 원인에 대한 논란
영어에 눈뜨다 : 내가 영어를 배운 4가지 방법
새로운 세상을 만나다 : 미국과의 첫 대면
다시 한 번 생사의 고비를 넘다 : 대학 시절의 4·19혁명
다양한 세상을 만나다 : 미국 유학 시절
유대인과 한국인 : 뉴욕시립대 교수 시절의 견문
전두환 대통령에게 한미관계 강의 : 고려대 교수 시절
활동 무대를 넓히다 : 민간외교 참여
뉴스위크와의 인연 : 영어 칼럼을 통한 나의 정치 활동
학문과 현실 정치 : 학계 대표로 현실 외교 참여
2부 외교의 길
외무 장관을 맡아주시오 : 김영삼 대통령의 ‘깜짝 인사’
장관도 대통령도 모르는 것은 배워야 : 취임 후 아쉬웠던 점들
“인사 청탁은 받지 않겠습니다” : 믿고 맡겼던 김영삼 대통령
미국의 폭격을 막아라 : 북한의 NPT 탈퇴 선언
1994년 6월 : 북핵 위기와 한국·미국·중국의 대응
미국의 북한 공격을 한국이 막았다? :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의 진상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 불발로 끝난 남북 정상회담
미국이 북한에 너무 끌려다닌다? : 제네바 합의를 둘러싼 갈등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 제네바 회담의 득과 실
가깝고도 먼 사이 : 한일관계의 과거와 미래
정치냐 경제냐 : UR과 쌀시장 개방
신외교의 다섯 가지 목표 : 퇴임에 얽힌 이야기들
장관 시절 만난 사람들 : 부트로스-갈리·페레스·첸치천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 언론과의 관계
3부 다시 외교의 길로
반미 대통령, 친미 대사 : 내가 주미 대사가 된 속사정
반미 대통령의 친미 정책(?) : 2004년 5월 한미 정상회담 전후
노 대통령이었기에 가능했던 파병 : 한국의 이라크 파병
미국의 대통령 선거 : 이해하기 어려운 미국인의 선택
북핵과 또 다른 위기 :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미·북의 갈등
“노 대통령, 큰 텐트를 치세요” : 국내 정치와 대미 외교
황장엽의 미국 방문 : 황장엽과의 짧은 만남
한승주 대사는 너무 차분한 사람 : 워싱턴에서의 교류
한미 FTA와 쌀 개방 : 소홀히 할 수 없었던 통상 문제
주미 대사 22개월을 돌아보며 : 장관 시절과의 차이
대통령의 언행 불일치(?) :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정책
혹 떼려다 혹 붙이다 : 북한의 고백 외교
강경이냐 온건이냐 :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 양국의 갈등
주미 대사직을 마무리하다 : 장관과 대사 시절의 보람
4부 민간외교의 길
분단국의 비극 : 키프로스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
인종학살의 비극 : 르완다 인종학살 조사위원
동아시아 비전그룹(EAVG) : EAVG 의장
주미 대사 이후의 민간외교 : 삼각위원회 등
에필로그 : 우리 외교의 다섯 가지 도전
맺는말 : 실용주의 외교를 향하여
부록
외교란 무엇인가? : 통념과 실제
세계화시대와 한국의 외교
불안정한 삼각관계 : 중국과 일본 사이의 한국
한반도의 분단 관리와 통일 문제
주요 해외 신문기사와 인터뷰 동영상
약어 일람
저자 연보
집필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