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니체가 지금도 여전히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그의 예리한 통찰력 덕분이다. 급소를 찌르는 듯 한 날카로운 관점, 생기, 불굴의 영혼, 높은 곳을 지향하는 의지가 신선함을 던져주는 문구를 통해 발산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귀와 가슴에 남는 주로 짧은 경구(警句)와 문장에서 발휘되는 특성이다.
니체는 사랑의 관점을 이렇게 정의 했다. ‘사랑에 관한 온갖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단 한 가지 확실한 치료법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더 많이, 더 넓게, 더 따뜻하게 그리고 더 강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에는 사랑이 제일 좋은 약이다.’
출판사 리뷰
“살아 있는 인간을 위한 철학!”
니체가 지금도 여전히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그의 예리한 통찰력 덕분이다. 급소를 찌르는 듯 한 날카로운 관점, 생기, 불굴의 영혼, 높은 곳을 지향하는 의지가 신선함을 던져주는 문구를 통해 발산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귀와 가슴에 남는 주로 짧은 경구(警句)와 문장에서 발휘되는 특성이다.
니체는 사랑의 관점을 이렇게 정의 했다.
‘사랑에 관한 온갖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단 한 가지 확실한 치료법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더 많이, 더 넓게, 더 따뜻하게 그리고 더 강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에는 사랑이 제일 좋은 약이다.’ 라고.
“인간의 육체는 커다란 이성이고, 정신이라 불리는 것은 작은 이상이다.”
‘삶은 그 인식의 한 수단’이다. 근본적 명제를 마음에 새기고 과감하고 즐겁게 살며 즐겁게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예지(叡智)의 길을 전진하라. 확고한 걸음으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그대가 어떤 인간이든 간에 경험의 샘으로써 그대 자신을 섬기라! 그대의 본질에 대한 불만을 버려라. 잘살기 위해, 자신을 모독하지 않기 위해서도 이상과 꿈을 결코 버려서는 안 된다.
*** 출판사 서평
“오로지 나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니체는 잘 알려진 대로,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가다. 그렇다고 흔히 말하는 난해하고 추상적인 사색으로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철학을 계승하는 ‘생의 철학’의 기수이자, 키르케고르와 함께 실존주의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니체는 도덕에 반대하는 투쟁을 펼쳤다. 그는 당시 기독교 도덕을 너무나도 현실과 동떨어진 다음 생의 것이라고 판단하고 현세에 있어서의 진리, 선, 도덕이야말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지금 살아 있는 인간을 위한 철학을 주장한 것이다.
철학자들은 그동안 ‘도덕’이라는 허상 안에서 지금보다 나은 세상이 존재할 것임을 설파했다. 그러나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없다. 현실은 철저하게 비도덕적이고, 도덕이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니체 사상의 기본전제이다.
즉, 지금까지의 도덕은 열등한 자들이 왜곡한 삶의 해석인 노예도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깨닫지 못했던 강자들은 이러한 거짓말을 그대로 믿었다. 이에 니체는 이제 비천한 자들의 도덕을 물리치고, 강하고 충만한 군주도덕(君主道德)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니체의 사상은 모든 전통적인 가치를 허물어뜨리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기존의 관념론적·기독교적 도덕을 부정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가치를 구축하려 했다. 거짓 도덕을 물리치고 삶의 새로운 도덕을 세우고자 한 것이다.
니체의 철학, 독특한 사상은 칸트나 헤겔처럼 장대한 체계를 지향하여 정리한 것이 아니라 정열적인 문장으로 점철된 단편과 단문이 많다.
단편이라고는 하나 니체의 사상에는 매력이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육체는 커다란 이성이고, 정신이라 불리는 것은 작은 이상이다.’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이런 대담한 발상에는 분명 예술적인 매력이 있다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칸트와 같은 솔직한 철학자라면 자기 주상의 이유를 논하여 철학의 골자로 삼지만, 니체는 그 발상을 냉정하게 훅 던져놓은 상태이다. 이런 점에서 철학자라기보다는 예술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니체가 바라본 삶이란 ‘힘에 대한 의지’다. 이는 물리적 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힘이 곧 정의’라는 현실주의의 비관적 전망과는 다르다. 그는 힘이 사용되는 목적과 시점을 중시한다. 자기를 극복하는 것이 모든 인간의 목표가 되어야 하듯, 힘이든 권력이든 선악의 너머에 서서 새로운 변화를 창출하는 때에만 정의롭다.
니체는 또한, 삶에서 가장 위대한 단어로 ‘아모르파티’를 내놓는다. 이는 ‘운명에 대한 사랑(운명애)’로 풀이되는 말이다. 운명은 필연적인 것으로 인간에게 닥쳐오지만, 이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운명의 필연성을 긍정하고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 본래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니체는 니힐리즘 철학자가 아니다. 오히려 니힐리즘을 비판하였다.
니힐리즘은 일반적으로 허무주의라고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니힐은 라틴어로 무(無)를 의미하고, 절대 가치와 진리 등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 니힐리즘이다. 현대는 가치의 상대성에 의해 절대 가치가 없는 상태에서 니힐리즘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현대인의 절대 가치는 금전과 이윤뿐이다. 인간은 어딘가에서 절대 가치를 찾지 않으면 불안을 느끼는 존재이다.
전통적 가치를 파괴하고 새 가치를 구축하자는 니체의 사상은 후세에 정치세력에 의해 왜곡 해석되어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사후 100년 이상 지난 지금까지도 니체 사상은 많은 철학가들의 사상에 영향을 주고 있고,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그의 사상은 21세기 들어 더욱 그 가치를 발한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 자기 자신의 개별적 생의 가치를 놓쳐버리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길’을 찾는 데 등대가 되어줄 삶의 교과서로 입지를 굳히고 있는 것이다.
19세기까지 서구에서의 절대 가치와 진리는 기독교였다. 그러나 니체는 기독교 도덕은 존재하지도 않는 가치를 믿게 하는 종교라 해석한 것이다. 그런 도덕은 진짜가 아니며 살아 있는 인간을 위한 것도 아니라고 여겼다.
그렇다면 근대의 금전과 이윤은 현대의 새로운 절대 가치가 될 수 있을까? 니체는 이것을 신의 대체물로서의 가치라 여겼다. 다시 말해 니힐리즘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니힐리즘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우리는 영원한 무의 세계 속에 떠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적고 있다. 또한 유고를 정리한 『힘에 대한 의지』에서는 “지금의 도덕에 대한 의심이 세계를 석권하게 될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마치 현대의 상황을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기라도 한 듯이.
니체의 철학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조금만 읽어보면 흥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니체의 문장이 독자를 흥분시키는 것이 아니라, 독자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있다는 생생함이 자극과 영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니체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 책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서광』, 『즐거운 지식』 등 니체의 대표 저서를 포함, 그의 모든 저서에서 주옥같은 아포리즘을 뽑아 주제별로 배치했다.
근거 없는 희망, 알맹이 없는 치유의 말들이 횡행하는 지금, 내 운명을 내 손으로 만들어내는 힘을 키워나가려는 독자에게 이 책은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조언을 해줄 것이다.
자신을 멀리서 바라보라
인간은 대부분 자신에게는 너그럽고 상대에게는 엄격하다.
왜 그런가 하면, 자신을 바라볼 때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인을 볼 때는 너무 먼 거리에서 흐릿한 윤곽만을 보기 때문이다.
이 거리를 두는 방법을 벗어나 자세히 관찰하면 타인은 그다지 비난할 만한 존재가 아니고, 자신은 그다지 너그럽게 허용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여러 가지 의견과 잠언> 중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
함께 침묵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더욱 멋진 것은 함께 웃는 것이다.
두 사람 이상 함께하며 같은 체험하고 함께 공감하고 울고 웃으면서 시간을 공유하는 삶은 매우 멋진 일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중에서
일상의 역사를 만들자
우리는 역사라고 하는 것을 자신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멀리 떨어진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혹은, 도서관에 즐비하게 꽂혀 있는 낡은 책 속에 있는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우리 개개인에게도 틀림없이 역사가 있다. 그것은 일상의 역사이다. 지금의 하루에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였는지가 일상의 역사 속 한쪽인 것이다.
겁을 먹은 채 착수하지 못하고 하루를 끝낼 것인지, 태만한 채로 보낼 것인지, 혹은 용감하게 도전할 것인지, 어제보다 잘할 수 있도록 무언가 노력할 것인지. 그 태도 하나하나가 자기 일상의 역사를 만든다.
<즐거운 지식> 중에서
작가 소개
저자 : 프리드리히 니체
1844년 독일 뢰켄에서 그리스도교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고전문헌학을 공부했다. 스승 리츨의 추천으로 25세에 바젤 대학 교수로 부임했다. 쇼펜하우어 철학과 바그너 음악에 경도되어 《비극의 탄생》(1872), 《반시대적 고찰》(1873~76)을 집필하면서 철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바그너와의 결별 이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9~80), 《서광》(1881)을 통해 독자적 사유를 모색하였으며, 1881년 실스 마리아에서의 체험 이후 《즐거운 학문》(188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85), 《선악 너머》(1886), 《도덕의 계보》(1887), 《적그리스도》(1888), 《이 사람을 보라》(1889), 《우상의 황혼》(1889) 등의 저작을 쏟아내면서 인간의 문명과 심리를 파훼한 철학자로 우뚝 섰다. 1889년 정신적 붕괴를 맞고 병상에서 지내다 1900년 생을 마감했다.
목차
작품세계│9
서문│13
제1장
인간에 대하여│21
제2장
기쁨에 대하여│53
제3장
삶에 대하여│67
제4장
마음에 대하여│103
제5장
친구에 대하여│123
제6장
세상에 대하여│137
제7장
사람에 대하여│163
제8장
사랑에 대하여│201
제9장
지(知)에 대하여│225
제10장
아름다움에 대하여│265
제11장
과거와 미래에 대하여│289
니체 연보│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