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1990년 첫 시집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를 출간한 후 박남준 시인의 시작(詩作) 생활은 이제 어언 30여 년에 이르렀고 2017년 올해 시인은 인생의 큰 수레바퀴를 한 바퀴 돌아 갑년(甲年)을 맞는다. 이즈음 한 번은 더 되돌아보고 다시 내디딜 걸음의 길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시인은 스스로에게 반문하며 그가 문학의 동반자들이라 일컫는 유용주, 안상학, 이정록, 한창훈 문우들과 함께 61편의 시를 골랐다.
초기 시집에서 근작까지, 그가 거쳐온 길에서 정성껏 고른 시들을 한 권에 담아 내놓았다. 표지의 글씨와 그림은 시인이 직접 쓰고 그렸다.
출판사 리뷰
어느덧 이순에 들었다
인생은 시가 숙성되어온 시간
시선집이라니, 손을 휘휘 저으며 되돌려 보내곤 했던 시선집 청탁에 시인의 마음이 돌아선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마 한 번은 되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컸던 것 같다. 올해는 시인이 태어난 간지의 해가 다시 돌아온 해이다. 환갑(還甲), 다시 생의 수레바퀴가 큰 원주를 그리기 시작할 시간을 기념하며 시인과 그의 문우들이 반추한 시들을 함께 살펴보는 뜻깊은 시간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제 60의 나이가 무엇을 기릴 만한 시대도 아니라지만 살아오는 동안 시가 숙성되어 온 시인의 시간을 함께 음미할 자리를 마련했다.
두 발로 꾹꾹 다지기도 하고
바람처럼 스치기도 하며 새겨진 시인의 노래들
이 시선집에 실린 초기 시집의 시들은 시인이 다시 조금 손질을 한 시도 있고, 그간 노래가 된 시편들은 노랫말에 맞춰 내놓은 것도 있다. 수록된 시들 중 어떤 시들은 유독 마침표를 찍고 있는데(<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슬픔> <가슴에 병이 깊으면>), 그 시들은 시인의 몸과 마음이 극도로 악화하였던 시절, 유서를 대신한 인생의 마침표를 찍고 싶었던 시들이라고 한다. 이제는 마침표를 다 지워야 하지 않을까 그는 주저하기도 했지만 그 또한 시인의 지나온 날의 흔적이 아닌가 하여 그대로 실었다.
갈망과 기다림, 상실감에 허덕이기도 하고, 분노와 절규를 드러내기도 하고, 고독의 성채를 쌓아 은둔하기도 했던 시인의 마음은 어느덧 관조와 관음의 시선으로 마음 흐르는 대로 무위자연하며 정착한 듯하다. 이 시선집의 발문을 맡아준 조성국은 시인의 오랜 지인이기도 하지만 시인의 문학의 길을 꾸준히 독려해준 날카로운 독자이기도 하다. 오래 박남준 시인의 작품세계를 지켜본 진중(珍重)한 애정으로 쓴 발문을 통해 시인의 시간이 흐르는 강물에 잠시나마 독자들도 함께 발을 담그고 그 마음의 흐름을 유유히 느껴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흐르는 것은 눈물뿐인데
바람만 바람만 부는 날마다 강에 나가
저 강 건너오실까
내가 병 깊어 누운 강가
눈발처럼 억새꽃들 서둘러 흩어지고
당신이 건너와야 비로소 풀려 흐를 사랑
물결로도 그 무엇으로도
들려 오지 않는데 -<날마다 강에 나가> 전문
어디 마음 둘 곳 없습니다
그가 떠나서만이 아니고요
산다는 것이 서러웠습니다
빨래를 널듯 내 그리움을 펼쳐
겨울 나뭇가지에 드리웠습니다
이제 해 지면
깃발처럼 나부끼던 안타까움도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을까요
어디 마음 둘 곳 없습니다
별이 뜨고 별 하나 지는 밤
언제인가 오랜 내 기다림도
눈 감을 테지요 -<별이 지는 날> 전문
나 오래 침엽의 숲에 있었다.
건드리기만 해도 감각을 곤두세운 숲의 긴장이 비명을 지르며 전해오고는 했지. 욕망이 다한 폐허를 택해 숲의 입구에 무릎 꿇고 엎드렸던 시절을 생각한다. 한때 나의 유년을 비상했던 새는 아직 멀리 묻어둘 수 없어서 가슴 어디께의 빈 무덤으로 잊지 않았는데
숲을 헤매는 동안 지상의 슬픈 언어들과 함께 잔인한 비밀은 늘어만 갔지. 우울한 시간이 일상을 차지했고 빛으로 나아갔던 옛날을 스스로 가두었으므로 이끼들은 숨어 살아가는 것이라 여겼다.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포자의 눈물 같은 습막을 두르고 숲의 어둠을 떠다니고 있다.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전문
작가 소개
저자 : 박남준
1957년 전남 법성포 출생. 1984년 시 전문지 <시인>을 통해 등단. 시집 《중독자》,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적막》,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등과, 산문집 《스님, 메리 크리스마스》, 《박남준 산방 일기》, 《꽃이 진다 꽃이 핀다》,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 등이 있다. 전주시예술가상, 거창평화인권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아름다운 작가상 수상.
목차
시인의 말
1부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 날마다 강에 나가 | 떡국 한 그릇 | 중노송동 일기 | 낮잠 | 봄날 생각 | 차를 마시며 | 법성포 7 | 별이 지는 날 | 당신 첫눈 | 진달래 | 메아리가 되었습니다 | 산 | 버들색시 | 겨울비 | 흔들리는 나 | 멀리서 가까이서 쓴다 |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 산 숲을 내려가며 | 기다렸으므로 막차를 타지 못한다 | 슬픔 | 가슴에 병이 깊으면 | 길 끝에 닿는 사람 | 서해 겨울 낙조
2부
흰 부추꽃으로 |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 타래난초와 한판 붙다 | 동지 밤 | 눈길 | 저녁 무렵에 오는 첼로 | 상수리나무 그 잎새 | 자각 증세 | 아름다운 관계 | 풍편 | 왜가리 | 겨울 풍경 | 따뜻한 얼음 | 이사, 악양 | 적막 | 도끼자루의 생애 | 각 | 영도다리 금강산 철학관 | 동백 | 학생부군과의 밥상 | 나무, 폭포, 그리고 숲 | 명사산을 오르다 | 놀라워라 | 달과 되새 떼 | 봄날은 갔네 | 쑥 너씨유 |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그 여자의 반짝이는 옷 가게 | 가을, 지리산, 인연에 대하여 한 말씀 | 어린 찻잎 | 쉰 | 독거노인 설문 조사 | 군불견,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 마루에 앉아 하루를 관음하네 | 마음의 북극성 | 겸손한 시간 | 아버지의 책상 | 중독자
발문 | 순정(純正)한 삶, 순정(純情)의 문학 - 조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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