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미운 감정에 휘둘리며 살지 않나요?반짝반짝 빛나는 저 사람, SNS 안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지인들, 금수저로 태어나 고민 따위 없이 사는 것 같은 그 사람…. 그런데 나는 왜 이렇지? 내 마음 안에는 불안, 초조, 분노, 질투, 무가치감… 이런 미운 감정만 가득한 것 같지요. 이런 못난 모습을 들키면 미움 받게 될까 두렵기도 하고, 미운 감정을 없앨 수만 있다면 삶이 좀 더 편해질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미운 감정은 모든 사람 안에 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저 사람도 온갖 미운 감정을 품고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위가 아플 때, 당신은 그 아픔에 저항하나요? 약을 먹든 병원에 가든 통증을 달래며 치유하려 하지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운 감정이 생겨나 마음이 아플 때는 그 존재를 인정하고 이유를 찾고 그 그림자 속에 숨은 나의 진짜 마음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 순간 미운 감정은 우리의 든든한 아군이 되어 줍니다.
열 가지 미운 감정 해방하기고독감, 완벽주의, 과잉 방어, 열등감, 죄의식, 불공평 감정, 무가치감, 피해 의식, 이상과 현실의 괴리, 불안… 《미운 감정이 있다》에서는 이런 미운 감정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해방시킬 수 있을지를 소개합니다.
내 자리가 없는 것 같아(고독감), 착한 사람 가면을 벗을 수가 없어(과잉 방어),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죄의식(죄책감), 나는 왜 사는 거지?(무가치감), 도저히 용서가 안 돼(피해의식), 콤플렉스에서 달아나고 싶어(열등감) 등. 내가 되풀이해왔던 생각의 문장 속에 숨겨진 미운 감정을 찾아내고 그것을 이해하는 방법을 안내합니다.
내가 선택한 감정이 나를 결정짓는다마음을 알고, 마음을 해방했다면 다음은 마음을 전달할 차례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온갖 감정을 품고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좋고, 싫고, 반갑고, 짜증나고, 기쁘고, 슬프고, 평온하고, 우울하고. 그런데 수많은 감정 중에 내가 선택하고 표현한 것이 결국 내 감정이 됩니다. 내가 선택한 감정이 이깁니다. 그 점을 깨닫지 못하면 자기도 모르게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며 살게 되지요. 그런데 불안이 많고 부정적인 사람은, 사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은 열망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런 바람이 있기에 부정적인 생각이 숨어들 때마다 불쾌하게 느끼는 것이지요. 불안하다는 것은 그만큼 바람이 많다는 것, 그만큼 갖고 싶은 희망, 이루고 싶은 꿈이 많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용기가 더해지면 우리의 삶은 바람에 한발 다가갈 수 있습니다.

3. 귀찮아, 다음으로 미룰래 ; 완벽주의
오늘은 정말 방 정리해야 하는데…
지난번 일, 고마웠다고 빨리 말해야 하는데…
이것저것 신경 쓰이지 않는 게 없는데 막상 하려 하면 귀찮아서 내동댕이. 낯설지 않은 모습이지요? 이런 일이 거듭되면 일이 닥쳐도 해결하지 않는 나, 귀찮아하고 미루는 나의 모습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자책이 시작됩니다. 책망한다는 것은 괴롭힌다는 것. 괴롭힘당할수록 마음이 아프고 결국에는 스스로 못난 사람이라고 무시하게 됩니다.
귀찮음이라는 미운 감정은 애초에 어디에서 생겨났을까요? 귀찮음을 느끼는 순간을 떠올려보세요. 그것은 어떤 일을 못하는 상황이 아니라 할 수 있지만 하기 싫은 순간이지요? 그 마음 아래, 완벽하게 못할 바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할 거면 완벽하게’라는 생각이 뿌리에 박혀있어 눈앞의 과제가 더 크고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내면에서는 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그래도 해야 한다는 마음이 서로 싸우고, 전자가 이기면 결국 일을 미루면서 ‘난 왜 이럴까?’ 하는 불쾌한 여운이 남게 마련입니다. 이 여운이 자기혐오의 씨앗입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자. 이렇게 가볍게 결론짓고 행동하지 못하는 데에는 어려서부터 줄곧 ○ 혹은 ×를 선택해야만 했던 과거가 있습니다. 명확한 선택을 강요받았고 평가 또한 그것을 기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완벽히 답하면 ○, 답이 조금만 모호해도 ×. 시험 점수에서는 ○만 의미가 있고 △는 없습니다. 틀리거나 맞거나, 점수를 따거나 잃거나. 그런 방식을 당연시하며 자라난 탓에 우리는 어느새 자기 자신에게도 ○, ×를 매기게 되었고, ×에는 패배감을 맛보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수학 문제의 정답은 하나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생은 다르지요.
○인 나, ×인 나, △인 나. 모두 괜찮습니다. 엄밀히 말해 모두 합격입니다. 우리 안에 ○, △, ×가 모두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어떨 때는 패배자인 듯 어설프게만 보여도 나중에 되돌아보면 그땐 그게 정답이었다고 이해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습니다. 처음부터 완벽을 추구할 수는 없지요. 아니, 사실 완벽함 따위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미루기를 좋아하는 자신에게 ×를 주었다면, 시점을 바꾸어보세요. 애초에 완벽함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기 자신에게 ○를 매겨주세요. 50%만 해낸 나에게도 긍정과 가능성의 △를 매겨주세요.
그러고 나서 일을 미룬 결과를 맛보던가, 귀찮지만 그래도 해낸 후의 결과를 맛보던가, 그것은 스스로 결정하면 될 일입니다. 그것이 진짜 나를 이해하는 길입니다.
5. 착한 사람 가면을 못 벗겠어요 ; 과잉 방어
어렸을 때는 얌전하고 착하게만 있으면 모든 사람들이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그 칭찬이 받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착한 아이가가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했습니다. 어른이 되고서는 이 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른의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 되어도 그것만으로 칭찬을 받거나 사랑받을 수 없었고 오히려 ‘뭐야, 착한 척하네’ 하며 놀림거리가 되거나 재미없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일쑤였지요. 그런데도 도저히 착한 사람의 가면을 벗을 수 없었어요.
착한 사람을 부정하거나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천성이 착하고 선한 사람은 착한 척 자체가 불가능하니 당연히 있는 그대로 호감의 대상이 되지요. 그와 달리 저는 라는 두려움에 가면을 쓰고 억지로 상대방에게 맞추었습니다. 참고 참으며 뭐든 다 떠맡으려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속에서 온갖 갈등이 들끓었습니다. 싫은 일도 거절하지 못하는 나, 상대방이 제멋대로인 것을 알면서도 순순히 따르는 나 자신을 비참하게 여기는 갈등이었습니다. 이런 갈등은 제가 타고난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이지요. 사람과의 사귐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이대로 착한 사람인 척 살아가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겠다는 위기감이 찾아왔습니다.
‘싫으면 싫어하라지! 이제 위선은 지겨워. 이게 진짜 내 모습인 걸’
벼랑 끝에 몰려서야 겨우 이렇게 각오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은 후, 부탁받은 일을 처음으로 거절할 때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솔직하게 거절했습니다.
“무리하면 못 하진 않겠지만, 그것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미안.”
그러자 상대방은 너무도 시원하게 수긍했고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거절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래도 마음이 안 내켜서……” 라고 하면
“그래? 알았어, 그럼 다음에 보자” 이런 식이었어요.
그 순간, 오랫동안 마음에 쌓아올렸던 벽이 모두 나 혼자만의 고민과 독선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미움받기 싫어서, 외면당하기 싫어서 과잉 방어했던 것이 원인이었어요.
착한 아이가 부모를 편하게 하는 아이인 것처럼, 착한 사람은 상대방에게 편리한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하다 보면 자기 자신에게 무리한 인내를 강요하게 됩니다. 마음이 지치는 게 당연합니다.
착한 사람 가면은 진실을 덮고 숨겨버립니다. 가면을 힘껏 벗어던져버렸을 때,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