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읽다가 몇 번이나 울고 말았다.
내 삶의 빛이 된 책이다."
불면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_본문 중에서불면은 어느 병태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대중적인 증상이다. (……) 불면이 전하는 메시지란 무엇일까? 이것은 오랫동안 정신과 의사인 내게 의문이었다. 그런데 불현듯 '매일 밤 자는 것은 매일 죽는 일'이라는 생각에 이르러 겨우 해독의 실마리를 잡았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불면이란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는 상태'다. 그것은 삶을 끝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고 '오늘 하루를 살아냈다는 감흥이 없어' 미련이 남아 있음을 나타낸다.
이처럼 생각한 이후, 의뢰인에게 하루의 마지막에 잠들지 못한다면 '잠깐이라도 좋으니 자기다운 시간을 보내도록' 권했다. 자기다운 시간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책을 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음악을 듣는 사람도 있다. 몸을 움직이거나 일기를 쓸 수도 있다. 여하튼, 잠깐의 시간이라도 그 사람다운 충실감을 맛보게 되면 신기하게도 졸음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무기력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우리를 위한 치유의 심리학!'행복하세요!' 한다고 행복해지진 않는다. '괜찮아요.' 한다고 정말 괜찮아지는 건 아니다. 논리적이지도 않고, 남에게 공감 받을 수도 없는 이상한 마음들. 털어놓을 수도 담아놓기도 힘든 마음의 문제를 안고 사는 우리들이다.
읽다 보면 깨닫게 된다. 내 안에서 솟아나는 따듯함과 밝음이 꽁꽁 얼어 있던 무겁고 어두운 마음을 조금씩 녹인다는 것을. 시들고 상해 있던 것들이 점점 작아지고 어느새 형체가 사라지는 것을. 원래 자유롭고 행복했던 자신을 되찾는 방법을 알게 된다. 무조건 남들처럼 살면 될 줄 알았던 당신의 어제와 이별하는 법을 알게 된다. 이해가 되면 납득이 되고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각양각색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상담해온 정신과 의사, 그 자신도 오랫동안 방황을 경험했던 저자가 진심으로 선물하는 구원 같은 이야기들이다.
이 책은 의료인들에게 했던 강의를 바탕으로 일반인을 위해 새로 쓴 것이다. 심도 있는 이야기지만 쉬운 예시와 그림을 덧붙여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일상에서 무기력과 억울함을 느끼며, 삶의 의욕을 잃은 보통의 사람들부터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는 환자들에게까지, 내가 힘든 진짜 이유를 찾아 설명해준다. 마음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실마리를 찾는 사람이라면 치료자, 환자, 또 어떤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도 분명 힌트를 얻게 될 것이다. 일본에서 10년째 심리분야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책, 정말로 인생에 변화가 필요하신 분들께 권한다.
감정의 우물감정에는 두 종류가 있다. 머리에서 오는 얕은 감정과 마음에서 오는 깊은 감정이다.
우선 마음에서 오는 깊은 감정에 대해 알아보자. 그림은 '감정의 우물'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에서 위쪽 흰 부분은 의식 영역이고, 아래쪽 회색 부분은 무의식 영역이다. 윗부분이 머리, 아랫부분이 마음이다. 여기에도 뚜껑이 있어서 의식(머리)에 의해 열고 닫힌다. 아래에는 우물이 깊게 파여 있고, 감정의 공이 네 개 들어 있다. 이해가 쉽도록 감정을 단순화시켜 희로애락 네 가지로 표현했다. 감정이 땅속에 묻혀 있을 때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지상, 즉 의식의 영역으로 나와야 비로소 자각할 수 있다.
네 가지 감정의 공은 아래부터 즐거움 기쁨 슬픔 분노 순으로 우물 안에 들어 있다.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임상 경험으로 밝혀낸 매우 중요한 소견이다. 네 개의 공은 순서대로 들어가 있어서 가장 위에 있는 공이 나오지 않으면 두 번째, 세 번째 공도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위쪽 두 개는 흔히 부정적인 감정이라 불리는 것이다. 아래 두 개는 긍정적인 감정으로, 위쪽 두 개의 부정적인 감정이 의식으로 나오지 않는 한 나올 수 없는 구조다. 나는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사고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부정 없는 긍정의 감정은 있을 수 없다. 포지티브 씽킹 사고방식으로 실현되는 것은 고작해야 '얕은 감정 멈추기' 같은 표면적인 것뿐이다.
감정을 차별하지 않는다감정의 우물에서 가장 위에 있는 것이 '분노'라는 데 주목하자. 우리는 평소 분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분노는 나쁜 것이다' '가급적 드러내지 않는 게 좋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두 번째 '슬픔'은 또 어떠한가?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남자는 우는 게 아니다' '울어서 해결되는 건 없다' 같은 말을 들으며 성장했다. 남 앞에서 슬픔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분노나 슬픔이 나오지 않으면 기쁨이나 즐거움도 나올 수 없다. 분노나 슬픔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자체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긍정, 부정 이원론으로 감정을 차별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깊은 감정은 모두 존중 받아야 할 소중한 것이다. 부정 하나 없이 긍정만으로 살자는 것은 구름도 비도 없이 늘 쾌청한 날을 바라는 것과 같다. 그런 날씨가 계속되면 그곳은 결국 사막이 되어버린다.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분노나 슬픔은 기쁨이나 즐거움만큼이나 중요하다.
분노가 나오지 않아도 기쁘다거나 즐겁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얕은 감정의 차원에서는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좀 더 근원적으로 나를 뒤흔드는 깊은 감정에서는 이 같은 질서가 존재한다. 정신과 치료나 상담 중에도 환자가 변하기 시작할 때는 분노가 맨 처음에 나타난다. 이것은 무의식 차원에서 변화가 시작될 때 나타나는 중요한 징조다. 이 분노를 겪어야 한다. 그래야 감정의 우물 뚜껑이 열린다. 분노는 감정의 변비를 해소해주는 배설 직전의 통증쯤이라고 생각하자.
감정의 신선도이처럼 분노는 감정의 우물 맨 꼭대기에 있고, 깊은 감정을 자유로이 표출하는 데 중요한 열쇠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는 분노를 표출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인식해왔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분노가 질 나쁜 것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분노에 대하여 상세히 들여다보자.
분노의 공을 확대해서 보면 위쪽 대부분은 오래된 분노, 아래쪽 아주 적은 부분만이 신선한 분노다. '슬픔'도 이와 같다. 생선회에 비유하면 이해가 쉽다. 오래된 부분은 부패되어 고약한 악취를 풍긴다. 신선한 부분은 산뜻하고 맛있다. 오래된 분노란 글자 그대로 과거의 분노를 가리킨다. 신선한 분노는 '지금 여기'에 한정된 분노다. 오래된 분노 부분에는 분노들이 넝쿨처럼 얼키설키 얽혀 있다. 오랜 세월 담아두었던 만큼 원망도 크고 질도 나쁘다.
청소를 하다가 무심코 꽃병을 깨뜨렸다고 가정해보자. 가족이 다가와 '대체 너란 인간은 늘 덜렁거려. 전에는 그릇을 깨더니, 그 전에는 또......' 하며 장황하게 과거의 실수를 다시 들춘다. 덜렁거린다는 지적이 맞다고 해도 듣는 사람은 불쾌해지고, 지적하는 사람도 뒤끝이 찜찜하다. 해서 잠시 후 뱉은 말을 반성하기도 한다. 반성은 다시 여러 가지 일을 삼키고(감정의 우물 뚜껑을 닫고), 마음속에 담아두게 만든다. 그리고 다시 분노가 쌓이고 쌓여 폭발했을 때, 이때까지 쌓아놓은 악질적인 분노가 그대로 터져 나온다.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보는 분노의 대부분이 이 오래된 분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분노를 표현하지 않으면 우물 속에는 오래된 분노가 가득 쌓인다. 그 감정은 어느 한도를 넘었을 때 튕겨나가듯 뚜껑이 벌컥 열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정신과적 치료를 통해 일단 이 뚜껑이 열리면 반드시 오래된 분노부터 표출된다. 오래된 감정이라서 듣는 사람도 결코 기분이 좋지는 않다. 하지만 이때 '그런 소리 하지 마.'라며 뚜껑을 닫아버리면 안 된다. 이때는 오래된 분노가, 낡은 감정이 모두 나올 때까지 곁에서 도와야 한다. 낡은 분노가 다 분출되면 마침내 신선한 분노가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듣는 사람도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바뀐다. 그 다음에는 '슬픔'이 나오게 된다. 이 감정도 처음에는 오래되어 눅눅하고 비관적인 슬픔이 나오지만 차츰 공감할 수 있는 신선한 것으로 바뀌어간다.
마음의 문제를 다루다 보면 신체적 진단을 하는 일반과 진료와는 조금 다른 특수한 주제들과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