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5기를 수료한 회원들의 작품이다. 책의 구성은 문학, 비문학, 기행문으로 13명의 글이 실려 있다. 책 제목인 <評으로 平하다>에 대해 문무학 시인은 "評으로 平하는 까닭은 좋은 책이 펼쳐놓은 생각의 길을 오래 걷고 싶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책을 읽은 느낌은 독자들마다 다르다. 느낌을 적는 독후감과는 달리 서평은 일반적으로 간행된 책을 독자에게 소개할 목적으로 개인적, 사회적 의미를 밝히고 논평이나 감상 등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책에 대한 평가는 책에 대한 흠을 찾아 평하는 게 아니다. 바르게 읽기, 책이 펼쳐 놓은 길 위에서 올바른 생각을 꽃을 피우기 위함이다. 그 첫걸음이 바로 서평쓰기다.
이 서평을 통해 책을 읽은 다른 이들의 생각과 다른 시선을 객관적으로 만날 수 있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각각 다른 서평이 나온다. 초점을 어디에 맞춰서 읽느냐에 따라 서평이 다르다. 개개인의 생각과 경험에 맞춰 서평을 쓰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험과의 접목 또한 새로운 서평을 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 하겠다.
출판사 리뷰
『評으로 平하다』는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5기를 수료한 회원들의 작품이다. 이 책의 구성은 문학, 비문학, 기행문으로 13명의 글이 실려 있다.
책 제목인 『評으로 平하다』에 대해 문무학 시인은 “評으로 平하는 까닭은 좋은 책이 펼쳐놓은 생각의 길을 오래 걷고 싶기 때문이다.”라고 표4에서 말한다.
책을 읽은 느낌은 독자들마다 다르다. 느낌을 적는 독후감과는 달리 서평(書評)은 일반적으로 간행된 책을 독자에게 소개할 목적으로 개인적, 사회적 의미를 밝히고 논평이나 감상 등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책에 대한 평가는 책에 대한 흠을 찾아 평하는 게 아니다. 바르게 읽기, 책이 펼쳐 놓은 길 위에서 올바른 생각을 꽃을 피우기 위함이다. 그 첫걸음이 바로 서평쓰기다.
이 서평을 통해 책을 읽은 다른 이들의 생각과 다른 시선을 객관적으로 만날 수 있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각각 다른 서평이 나온다. 초점을 어디에 맞춰서 읽느냐에 따라 서평이 다르다. 개개인의 생각과 경험에 맞춰 서평을 쓰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험과의 접목 또한 새로운 서평을 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 하겠다.
서평에 입문한 사람들과 서평을 어떻게 쓰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자주 읽고 토론하고 비평하는 사람은 생각하는 힘도 길러지고 문장력도 늘어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서평집을 읽는다는 것은 여러 사람의 다양한 생각을 읽으며 자신만의 글쓰기 방식을 찾아가는 길이라 하겠다.
[머리말]
책의 바람 : 글쓰기
‘책 그리고 글쓰기는 사고-기계.’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는 독서와 글쓰기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짧은 언명으로 설파했다. 재치 넘치는 철학자의 말은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무시무시한 세뇌 기계 장치 같은 것을 연상하도록 한다. 과잉된 표현과 오해를 즐기는 들뢰즈 답다고나 할까.
들뢰즈의 표현을 들지 않더라도 누구나 책을 읽으며 무언가 고민한다. 『이방인』을 읽으며 현대인의 내면을 고민할 수도 있고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사춘기 청소년의 고민을 함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덧붙여 글까지 남긴다면 까뮈나 샐린저와 함께 무슨 생각을 했는지 보여주는 것이리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책으로 남겼다는 것은 작가가 그만큼 다른 사람이 읽어주길 바랐다는 뜻이고 자기 책을 차근차근 읽어 함께 고민한 것을 글로 보여준다면 세상 어떤 작가라도 크게 기뻐해 주리라. 들뢰즈도 자기 책들을 누군가가 읽어주고 ‘생각하게 만드는 기계’가 되는 바람을 언명에 담았던 것은 아닐까.
어느덧 학이사 서평 아카데미가 5기 수료를 맞이했다. 본고의 글들은 아카데미 회원들이 문무학 선생님과 함께 하며 남긴 고민과 노고의 흔적이다. 이 면을 빌려 열성적인 강의를 펼치신 문무학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사고-기계’와 함께 하는 지난한 과정을 감내한 회원들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덧붙여 책을 계기로 지역의 독서 문화에도 자그마한 변화가 이루어지길 희망해 본다.
나라말싸미 문자와 달라!
우은희
웹 서핑을 하다보면 의도치 않게 어떤 글을 보게 될 때가 있다. 너무 멀리 왔을 땐 처음의 목적을 잊고 부유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날도 어떤 카테고리로 시작해서 보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분명한 것은 고전도 단테도 전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베아트리체가 실존 인물인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는 글에서 ‘픽’ 실소하다가 순간 나는 내 느낌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생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베아트리체의 실체를 직접 확인한 적은 없었다. 아니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마치 오래된 고전이 너무나 익숙해서 이미 읽었다고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인터넷의 인물 정보에서 검색이 되지만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이 얼마든지 떠돌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의심에 답을 줄 단테의 전기를 찾는 일이다. 그나마 아직까지는 신뢰할 수 있는 매체가 책이라는 작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부르크하르트는 그의 저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에서 유명인의 전기 총서가 14세기에 등장했고 당대인이 아니면 당연히 과거 전기 작가의 글에 의존했으며 ‘독자적으로 써진 최초의 전기는 보카치오의 『단테전』일 것이다. 경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필치를 보여주는’ 이라고 적고 있다.
『단테의 일생』은 1370년경 조반니 보카치오가 단테에 대해 쓴 최초의 전기 『단테전』의 영어번역본이다. 처음에는 ‘단테를 찬양하는 짧은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고, 단테가 고향 피렌체에서 추방되고 타지를 떠돌다 라벤나에 묻힌 지 50년이 지난 시점이다. 단테는 간절히 원했지만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고향 피렌체는 단테라는 이름의 가치를 반드시 알아야만 하고, 정부는 그의 활동들이 어떠했는지 분명하게 살펴보고 충분히 보상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책은 서문을 시작으로 제17장 ‘단테 어머니의 꿈에 대한 설명과 결론’까지 모두 열일곱 편으로 구성되었다. 저자는 단테의 딸 베아트리체와 단테의 가까운 친구, 그리고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의 친척과도 친분이 있었기에 아마도 단테의 삶에 대해 사실을 그대로 잘 반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단테 어머니의 태몽이나, 베아트리체를 잃고 슬퍼하는 단테의 모습과 그의 결혼이야기는 매우 자세하다. 또한 정쟁에 휘말려 추방당한 뒤 가족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외모와 습관, 어쩌면 결점으로 보일 수 있는 분노하는 행동까지도 숨김없이 적고 있다. 전기가 가지는 사실 그대로의 정직성은 독자에게 ‘바른 설득력’으로 작용한다. 객관성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전기 작가를 전적으로 신뢰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닐까.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마을에는 5월 1일이면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축제를 여는 관습이 있었고, 아홉 살 난 단테는 포르티나리의 집에서 열린 잔치에서 자신보다 한 살 어린 그의 딸 비체를 보았다. 조숙하고 참 예쁘게 생겼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녀는 24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 마음의 고통으로 자신을 돌보지 않아 모습은 초라하였다. 마르고 면도도 안 하여 예전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단테는 손 한번 잡아본 적 없는 그녀에게서 평생 창작의 영감을 받았고, 그녀를 향한 사랑의 시와 산문은 『새로운 인생』으로 남겨졌다.
특히, 그의 인생이 녹아있는 자서전이라 해도 될 만한『신곡』은 무려 20년에 걸쳐 구상되고 완성된 운문 형식의 글이다. 그 당시 공용어인 라틴어 대신, 단테는 『신곡』을 피렌체의 일상어로 섰다. 그 이유는 일반교양이라고 생각하는 시가 어려운 말로 쓰여 신성한 버질의 작품마저도 대중들로부터 무시당하는 것을 보기도 했지만, 첫째로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보일 것이며,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 이해하는 기쁨을 주리라”는 것이다. 마치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만든 이유처럼 들린다. (물론 한글과 이탈리아어의 위상이 같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전개되면 사라져버리는 음성 언어의 약점을 보완해 ‘멀리 그리고 오래’ 전달되기 위해 발달한 문화가 문자 언어다. 문자 언어의 지속성은 읽기와 쓰기를 통해서 가능해 진다. 피렌체 사람들을 위해 쉬운 말로 써진 단테의『신곡』은 피렌체 방언이 문자로서 제 갈 길을 가게 만든 시초이며, 피렌체를 중심으로 하는 토스카나지방의 방언이 오늘날 이탈리아어의 표준어가 된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단테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
저자 조반니 보카치오(1313~1375)는 스승으로부터 단테의 이야기를 듣고 존경심을 가지게 되어 말년에 그의 전기를 집필하고 『신곡』을 강의하였다. 그 역시 피렌체 출신의 인문학자로 피렌체 방언으로 소설 『데카메론』을 썼다. 『신곡』이 운문의 본이라면 『데카메론』은 산문의 본보기다. 1348년 피렌체에 불어 닥친 페스트로 시민의 70%가 죽음으로 내몰렸다. 간신히 전염병을 피해 교외로 달아난 일곱 명의 귀부인과 세 명의 청년은 별장으로 숨어들어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하루에 한 가지씩 주제를 정해 자신이 아는 재미난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하루 10가지의 이야기를 10일 동안 하게 되어 그리스어로 10일간의 이야기, 데카(10) 메론(이야기)이다.
『단테의 일생』이 아쉬운 것은 하느님이라는 보편타당한 단어 대신 하나님이라는 개신교의 특정 언어로 출판되었다는 것이다. 억지를 부려 본다면, 책은 전기문이고 그 시절 보카치오가 하나님이라 말했을 리도 만무하니 객관성의 결여라 할 만 하다. 하나님이 실수인지 의도인지 필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멀리 그리고 오래’ 전달되는 것이 문자의 일이라면, 혹시라도 일반 독자에게 나아가는 한걸음을 방해하게 될까? 그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닐까 우려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정종윤
지은이 : 강여울
지은이 : 김광웅
지은이 : 김남이
지은이 : 서미지
지은이 : 손인선
지은이 : 우은희
지은이 : 이다안
지은이 : 이웅현
지은이 : 임정희
지은이 : 장창수
지은이 : 정순희
지은이 : 정화섭
목차
책을 펴내며 _ 책의 바람 | 정종윤
강여울 _ 맵다/ 오직 책/시와 놀다
김광웅 _ 주만과 경신의 이야기/과연 역사란 무엇인가/저녁이 있는 삶/
김남이 _ 내면의 환기창으로 밀려드는 햇살/ 욕망을 넘어 기다리는 너, 혹은 나
서미지 _ 나는 왔노라, 신비로운 샛별아
손인선 _ 기억에서 기록으로 남은 마을 이야기/
책으로 찾아가는 예술가와의 만남
우은희 _ 나라말싸미 문자와 달라!
이다안 _ 우리 모두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탄 것 아닐까
이웅현 _ 나는 이어도를 보았다
임정희 _ 삶에 대한 투지/진정한 사랑의 약속
장창수 _ 금호강은 의구하다/노력의 복리 법칙/ 또 하나의 ‘강남스타일’
정순희 _ 가슴의 소리를 따르자
정종윤 _ 소외와 단절의 시대에 희망과 소통을 외치다/
타인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근대적 지성/부조리라는 존엄
정화섭 _ 신발 밑에는 대지가 있다/여름을 마주하며/
여자도 못 생길 자유가 있다
기행문
임정희 _ 문학기행 _ 소설 『무영탑』 현장을 찾아서
연못에서 임을 찾다
학이사독서아카데미 연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