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매문의 및 도서상담은 031-944-3966(매장)으로 문의해주세요.
매장전집은 전화 혹은 매장방문만 구입 가능합니다.
지은이 : 류영모
불경, 성경, 동양철학, 서양철학에 두루 능통했던 대석학이자 평생 동안 진리를 좇아 구경각(究竟覺)에 이른 우리나라의 큰 사상가였다. 그는 우리말과 글로써 철학을 한 최초의 사상가였으며, 불교, 노장 사상, 공자와 맹자 등을 두루 탐구하고 기독교를 줄기로 삼아 이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는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사상 체계를 세웠다. 모든 종교가 외형은 달라도 근원은 하나임을 밝히는 다석의 종교관은 시대를 앞선 종교 사상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890년 3월 13일 서울에서 태어난 류영모는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배웠다. 그러던 중 한국인으론 첫 YMCA 총무를 지낸 김정식의 인도로 서울 연동교회 신자가 되어 15세에 세례를 받았다. 1907년 서울 경신학교에 입학해 2년간 수학했으며, 1910년 20세에 남강 이승훈의 초빙을 받아 평북 정주 오산학교 교사로 2년간 봉직하였다. 이때 오산학교에 기독교 신앙을 처음 전파하여 남강 이승훈이 기독교에 입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광수, 정인보와 함께 1910년대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렸다. 1921년(31세)에 고당 조만식 선생 후임으로 오산학교 교장이 되어 1년간 재직하였다. 그때 함석헌이 졸업반 학생이었다. 1928년부터 YMCA에서 연경반(硏經班) 모임을 맡아 1963년까지 30년이 넘도록 강의를 하였다. 처음 세례를 받고 몇 년 동안 정통 기독교인이었으나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 무교회주의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으며, 그 뒤로 교회에 나가지 않고 평생 성경을 읽고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였다. 성경 자체를 진리로 떠받들며 예수를 절대시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예수, 석가, 공자, 노자 등 여러 성인을 두루 좋아하였다. 나아가 《노자(老子)》를 한글로 완역한 것을 비롯해 여러 성인의 말씀을 우리말과 글로 알리는 일에 힘썼다.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여, 한자를 쓰는 대신 옛말을 찾아 쓰거나 ‘씨???(민중)’ ‘얼나’ ‘제나’ 같은 말을 만들어 썼다. 단순하고 소박한 금욕의 삶을 살고자 했던 류영모는 50살 무렵부터 하루 한 끼만 먹고, 하루를 일생으로 여기며 살았다. 항상 무릎을 꿇고 앉았으며, 얇은 잣나무판 위에서 생활하고 잠도 그 위에서 잤다. 새벽 3시면 일어나 명상을 한 후 일기를 썼다. 그 일기를 모은 《다석일지》는 그가 쓴 유일한 저술로 남았다. 평생 무명이나 베로 지은 한복에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늘 “농사짓는 사람이야말로 예수다.”라고 말했으며, 45살 때 북한산 밑으로 이사하여 직접 농사지어 먹고 살았다. 나이를 햇수로 세지 않고 날수로 하루하루 세었는데, 33,200일을 살았다.
□ 머리말 제 맘속에서 터져나온 얼의 샘물
□ 일러두기
1 말숨(말씀), 우주에 가득 찬 얼생명
2 없이 계시는 한얼님
3 천지자연은 한얼님이 주신 글월
4 얼나 찾기
5 예수의 얼은 영원한 현재
6 삶이란 사형수의 집행유예 기간
7 우주의 신비, 그리고 이제 여기
8 빈탕한 데(허공)
9 내 속에 가장 옹근 속알, 가온찍기(「ㆍ」)
10 기도와 예배 ―내 안의 신비를 두텁게 깊이 숨쉬기
11 진정한 얼사귐
12 교육: 스스로 올(理)을 타고 갈 수 있도록
13 몸성히(건강)의 길
14 올(理)을 타야(과학)
15 제나에서 얼나로
16 씨알(民)을 위하는 일
17 땅은 우리의 어머니요 밥그릇
18 평화를 이루려면
19 그리스도교가 가리켜 보이는 것
20 불교가 가리켜 보이는 것
21 유교가 가리켜 보이는 것
22 세 가지 독(毒)으로부터의 자유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인터넷서점 (www.ala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