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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건반을 두드리다
시대의 피아니스트, 안희숙
서고 | 부모님 | 201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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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원로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인 연세대 명예교수 안희숙의 회고록. 안희숙 교수는 한국 근대 문화예술사를 논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석영 안석주(1901~1950) 선생의 딸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작곡한 안병원은 그녀의 큰오빠.

지금은 연주 레퍼토리로밖에 확인할 수밖에 없지만 1960~80년대 사이 빼어난 연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국내의 수많은 전문 피아니스트를 제자로 키워낸 훌륭한 교육자이기도 하다. 일제식민지 그리고 6.26 전쟁 등 격동의 한국사를 관통하면서도 피아노와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부여잡고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이뤄내면서 후학들 교육에 헌신한 안희숙 교수의 파란만장한 '건반 세상'이 펼쳐진다.

  출판사 리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원로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인 연세대 명예교수 안희숙의 회고록 《인생의 건반을 두드리다》가 출판되었다.

안희숙 교수는 한국 근대 문화예술사를 논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석영 안석주(1901~1950) 선생의 딸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작곡한 안병원은 그녀의 큰오빠.

지금은 연주 레퍼토리로밖에 확인할 수밖에 없지만 1960~80년대 사이 빼어난 연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국내의 수많은 전문 피아니스트를 제자로 키워낸 훌륭한 교육자이기도 하다. 일제식민지 그리고 6.26 전쟁 등 격동의 한국사를 관통하면서도 피아노와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부여잡고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이뤄내면서 후학들 교육에 헌신한 안희숙 교수의 파란만장한 ‘건반 세상’이 펼쳐진다.

안 교수는 진명여학교 시절 ‘당대 피아니스트’로 불리던 김광수 선생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새벽 4시에 학교 음악실에 찾아가 피아노를 쳤다. 변변한 난방도 없던 음악실에서 호호 손을 부비며 피아노를 쳤던 기억이 잊히질 않는다. 피아노 연습에 빠져 수업 시간을 놓치기 일쑤였다. 별명이 지각대장이었다.

이화여대 음악과 재학 시절, 6.25 전쟁을 겪었다. 피란을 못 갔던 안 교수 가족은 속수무책 절망 속에 빠져들었다. 붉은 완장을 찬 청년들이 집을 찾아왔다. 그 무렵, 이웃에 살던 김영랑(1903~1950) 시인이 돌아가셨다. 시 <모란꽃 피기까지>를 쓴 그분은 아버지의 오랜 친구셨다. 전쟁을 피해 숨어 지내다 포탄의 파편에 큰 부상을 입고 이튿날 운명하셨다.

큰오빠 안병원과 함께 국방부 정훈 음악대에서 반주 맡아

부산으로 피란을 떠났다. 큰오빠 안병원이 얻어놓은 부산 서대신동 시장 맞은편의 ‘기다란’ 단칸방에 짐을 풀었다. 안병원은 국방부 산하에 정훈 어린이 음악대를 조직했다. 전쟁의 상흔에 모두들 지치고 힘들어할 때 천사 같은 아이들의 노래와 연주가 장병들과 피란민을 위로했음은 물론이다. ‘정훈 어린이 음악대’의 공연 프로그램은 주로 기악 독주와 독창, 합창, 그리고 한국무용 등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아이들 실력이 생각보다 완벽했다는 점이다.

당시 음악 대원으로 이규도(훗날 이화여대 성악과 교수), 한동일(훗날 세계적 피아니스트), 이여진, 이희춘, 김귀옥, 안희복 등이 있었다. 이들은 훗날 한국을 빛내는 자랑스런 음악가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합창반주는 스무 살 안 교수와 권길상 선생이 번갈아 맡았다. 음악대 식솔들에게 밥과 빨래를 도맡아 살림을 살았던 이는 안 교수의 어머니 김흥봉 여사와 언니 안희옥이었다.

대학 4학년이 되면서 안 교수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의 주관으로 ‘어린이 음악대’가 미국 순회공연을 가게 됐는데 반주자로 따라가느냐, 아니면 ‘멋지게’ 대학을 졸업하느냐를 택해야 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 결정에 후회는 없다. 안 교수는 미국행을 포기했다.

조선일보 신인 음악회 선발 및 한국일보의 물심양면 후원

대학졸업 당시 조선일보사 주최 신인 음악회에 선발되는 기쁨도 잊히질 않는다. 조선일보 신인 음악회는, 조선일보가 일제강점기 때 폐간되면서 1941∼53년까지 열리지 못하다가 정전(停戰) 이후인 1954년 재개된 의미 있는 음악회였다.

조선일보사 장기영 사장이 안 교수의 재능을 특별히 사랑해서 각종 독주회와 연주회를 물심양면 후원해주었다. 장 사장이 한국일보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계속 되었다. 한국일보 주최로 명동 예술극장(그 시절엔 제일 좋은 극장이었다)에서 제1회 독주회를 가진 일이 잊히지 않는 귀중한 추억이다. 그로 인해 음악계에 한 걸음 더 진입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연주회 때마다 무대 뒤에서 격려해 주시던 임원식 교수님도 떠오른다. 첫 독주회가 끝나고 임 교수님이 하신 말씀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너, 이제부터야! 교만은 금물이다.”

얼마나 적절한 말씀이고 진심으로 아껴주신 말씀이신지!….

맨해튼 음대 수학 후 연세대 전임강사가 되다

대학시절 은사이신 신재덕 교수를 안 교수는 잊을 수 없다. 진명여고 음악교사를 하면서도 꾸준히 그분께 레슨을 받았다. 신 교수의 부군인 오재경 문화공보부 장관은 외국 대사가 참석하는 파티를 자주 열었는데 덕분에 내외빈 앞에서 제자들이 연주할 기회가 많았다.

미국 맨해튼 음대에서 수학한 뒤 1967년 3월 18일 귀국 독주회를 열게 되었다. 한국일보 특별후원으로 국립극장에서 열렸는데 곡목은 대강 바흐의 ‘프렐류드(Prelude) & 푸가(Fuga)’, 베토벤의 소나타(Sonata) 외에 낭만파와 인상파 등 6곡을 연주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언론은 안 교수의 연주에 대해 ‘진경(進境)의 체취(體臭)를 느꼈다’고 썼다.

연세대 전임강사가 되었을 당시는 음대가 독립한지 얼마 안 됐을 때다. 피아노과 입학정원이 15명. 전임교수는 장보원 교수 한 분, 안 교수를 포함해 강사 2명이 전부였다. 강의와 연주 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그만 몸에 탈이 나고 말았다. 아무리 젊어도 몸은 기계가 아니었기에 무리가 와서 요즘 말로 하면 공황장애 증상이 생겼다. 몸이 아픈 것이 아니니 그냥 참고 견뎠다. 장거리 여행은 엄두를 못 냈다. 그 덕에 오히려 집중해서 진정한 제자들을 키울수 있었다.

연세대 교수 시절, 잊을 수 없는 1989년과 1996년 독주회

그동안 연세대 음대에 재직하며 여러 차례 연주회를 거듭하였다. 새로운 작품들을 연주하며 자연 연습을 많이 하게 되어서 무언중에 실력이 발전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교수직에서 은퇴하기 전 1989년과 1996년 독주회를 열었는데 내 일생의 연주로 꼽을 수가 있다.

1989년 9월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독주회는 고전, 낭만, 현대 작품을 골고루 선곡하여 무대에 올렸다. 연주곡목은 모차르트 소나타 Kv.330, 드뷔시의 ‘영상’(Image) No.2, 김청묵의 ‘무궁동’(초연), 힌데미트의 ‘조곡’, 마지막 곡으로 쇼팽의 ‘에튀드’(Etude) Op.25, No.7을 연주하였다. 그리고 앙코르로 슈만의 ‘꿈’을 연주했을 때는 청중들이 모두 기립해 박수갈채를 보냈다.

마지막 독주회는 1996년 5월 호암아트홀에서 열렸다. 돌이켜 보면 여려가지 의미를 담은 연주회로 기억된다. 연주곡목은 하이든의 소나타 두 작품과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No.2와 No.3 등이었다.
고전음악은 많이 연주하였으나 현대음악, 특히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No.2는 테크닉과 음악이 특별히 어려워 많은 연구가 필요했다. 그날 연주에 대해 평론가 이상만은 이렇게 리뷰했다.

<…안희숙 교수의 연주는 보편적으로 가질 수 있는 자기만의 세계에 안주하지는 않았다. 그도 새로운 세대들과 당당히 기교를 겨루고 진취적인 음악 해석을 시도하는 의욕적인 단면이 있어 호감이 갔다.…>

근황과 ‘희연회’

그동안 가르친 제자들이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겠지만 특별히 음악을 사랑하고 교회나 대학, 사회에서 계속 음악활동을 하는 제자들이 15년 전부터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모임 이름은 ‘희연회’. 안희숙의 ‘희’, 연세대의 ‘연’자를 더해 이름을 만들었다. 모임 회장은 협성대학 음대 학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한 이정재 교수가 맡고 있다.

희연회는 매달 모임을 가지면서 앞으로의 발전을 도모하고 친목을 다지고 있다. 해마다 정기연주회를 여는데 곡의 성격과 내용에 맞게 연주회 이름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봄의 향연’ 혹은 ‘Enjoy the 피아노’, ‘Symphony의 밤’ 등을 타이틀로 내걸었다. 때론 피아노 독주, 때론 여러 명의 합주, 혹은 해외연주를 기획하고 마스터 클래스도 운영하는 등 매년 변화를 꾀하고 있다.

요즘엔 스트리밍과 유튜브를 통해 듣고자 하는 곡을 거의 다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직접 콘서트홀에 가서 듣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연주자는 그런 차이를 몸으로 느껴야 발전할 수 있다.

연주자는 또 겸손과 경청을 통해 성장한다.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도 자신의 연주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순간 발전이 더디게 된다. 이런 역설을 깨닫기까지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연주자는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나은 이에게 연주를 들려주어 연출을 받는 것이 좋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있다. 예술은 끊임없이 발전한다. 그 속에서 연주자는 쉼 없이 노력하되 겸손해야 한다. 특히 피아노는 연습을 많이 하고 새로운 곡을 계속 연주할수록 발전한다는 점을 제자들이 기억하면 좋겠다.

… 자서전을 쓰다 보니 지난날의 일들, 만났던 사람들, 같이 일했던 옛 동료들, 오래전 가르쳤으나 지금은 세상을 떠나 볼 수 없는 내가 정말로 사랑했던 제자들, 세상을 떠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내 형제들, 먼저 떠나간 나의 남편…, 모두를 생각하며 미소도 지었고 눈물도 흘렸다. 정말 나에게는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그리고 나를 아는 모두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p95~96)

하굣길, 사람들이 길에 몰려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우리는 해방이다!”,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짖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광복을 실감할 수 있었다. 흰옷 입은 사람들이 옛 애국가를 부르며 삼삼오오 걷고 있었다. 나 역시 군중에 휩쓸려 하염없이 따라 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광복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새벽에 일어나 부엌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서 밥을 지어 벤또(도시락)를 싼 뒤 책보(책을 싼 보자기)를 메고 집을 나섰다. 대문을 열고 나설 때가 새벽 4시 무렵이었다. 명륜동 집에서 효자동 학교까지 약 2km 남짓했는데 학교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음악실부터 찾았다. 그런데 집 가까운 친구들이 그 시각, 좋은 피아노를 이미 차지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 변변한 난방도 없던 음악실에서 호호 손을 부비며 피아노를 쳤던 기억이 잊히질 않는다.

1950년 2월 24일.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쉰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많은 문화예술인이 함께 슬퍼하며 동대문 운동장(그 시절에는 서울운동장이었다.)으로 모여들었다. 장례식 모습을 촬영한 영상이 당시 영화관 ‘문화 뉘우스’에 나왔다. 그 영상 속 아버지를 잃고 슬퍼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가끔 소녀시절 ‘뉘우스’ 속 ‘내’가 그립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안희숙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진명 여자 중고등학교 졸.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졸.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음악과 졸.뉴욕 맨해튼 음대 수학.서울예고, 선화예고 강사.진명 여자 중고등학교 음악교사.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강사, 동 대학교 전임강사.연세대학교 음악대학 피아노과 교수, 학과장 역임.한국피아노학회 부회장, 한국피아노 두오협회 부회장 역임.동아일보.한국일보 콩쿠르 심사위원 역임.연세대학교 음대 피아노과 교수로 29년여 봉직.국민훈장 무궁화상 수상.

  목차

제1장 나의 소녀시절을 회상하며

새벽 4시의 추억 12
아버지, 내 아버지… 14

제2장 6.25동란과 대학시절

붉은 완장과 찢어진 피아노책 21
국방부 정훈 어린이 음악대의 탄생과 부산 피란 시절 23
쇼팽의 스케르초와 춤추는 버드나무 26
종전(終戰) 후 음대 시절과 김활란 총장님 28

제3장 인연, 첫 독주회, 그리고 결혼

장기영 사장님과 조선일보, 한국일보 33
르네상스.돌체의 추억과 스승 신재덕 교수님 36
결혼, 그리고 두 살배기 아들을 두고 떠난 미국 유학길 38

제4장 나와 연세대 음대, 새로운 개척의 시작

“진경의 체취를 느꼈다”는 평(評)을 듣다 45
어머니의 기도와 어느 스님의 예언 47
그 시절 연세대 음대… 개척기에서 융성기로 50

제5장 제자들에게 남기는 음악 이야기

‘개성’, 그리고 ‘감각’과 ‘연습’ 57
나만의 Teaching Method 60
시대변화 따라 연주법도 달라져 64
연주자가 겸손해야 하는 이유;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67

제6장 나의 음악세계

학회 활동과 4년간의 학과장 보직 73
일평생의 연주회와 연주 목록 75
아들 최진호와 가진 모자음악회 78
잊히지 않는 1989년과 1996년 독주회 79

제7장 참으로 행복한 피날레

남편을 떠나보내다 87
29년 만의 퇴임… 떠오르는 추억, 기억들 88
은퇴 교사모임 명우회와 ‘천사모임’ 희연회 90
남기고 싶은 이야기 93

에필로그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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