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김동인, 염상섭, 나혜석, 정지용, 김유정, 이상, 이광수, 이육사…… 이 이름들이 낯선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고작 100년 전 같은 땅을 밟고 살아 숨 쉬던 '사람'이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떠올려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나라에서 근대라는 거대한 파도를 감당하며 제 스스로 말과 문법을 만들어가야 했던 그들의 나이는 고작해야 이십대 초중반이었다.
김기림이 왜 그토록 하염없이 눈을 그리워했는지, 형수의 자살을 기사로 써야 하는 현진건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시인이었으나 살아서 시인을 자처할 여유가 없었던 이육사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교과서에 박제된 이미지 외에 우리가 우리 작가들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다. 이것이 작가 김남일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배경이다.
한국 작가로서의 부끄러움으로, 고향을 찾아가는 탕자의 심정으로 저자는 한국 근대 문학을 탐독해 나갔다. 시·소설은 물론 일기, 편지, 산문, 그리고 후대의 평론·평전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찾아 읽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작가들이 어떻게 근대를 열고 헤쳐 나갔는지 눈앞에 선연히 펼쳐졌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장면들을 꿰맞추고 이어 붙였다.
같은 작가이기에 그들의 허물을 들춰내기보다는 애잔한 시선으로 감싸 안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날카로운 펜 끝으로도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빚어내는 풍경에 온기를 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오늘의 작가가 이전 시대 작가들의 "곤혹과 고통"에 온전히 몸을 기울이고 마음을 겹쳐본 시간이자, 방대한 기록과 문학작품들을 녹여내 한국 근대 문학에 숨을 불어넣은 경이로운 결과물이다.
출판사 리뷰
100년 전 우리 작가들의 “곤혹과 고통”에
몸을 기울이고 마음을 겹쳐본 시간……
방대한 기록과 문학작품들을 녹여내
한국 근대 문학에 숨을 불어넣다!
김동인, 염상섭, 나혜석, 정지용, 김유정, 이상, 이광수, 이육사…… 이 이름들이 낯선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고작 100년 전 같은 땅을 밟고 살아 숨 쉬던 ‘사람’이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떠올려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나라에서 근대라는 거대한 파도를 감당하며 제 스스로 말과 문법을 만들어가야 했던 그들의 나이는 고작해야 이십대 초중반이었다. 김기림이 왜 그토록 하염없이 눈을 그리워했는지, 형수의 자살을 기사로 써야 하는 현진건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시인이었으나 살아서 시인을 자처할 여유가 없었던 이육사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교과서에 박제된 이미지 외에 우리가 우리 작가들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다. 이것이 작가 김남일이 『염치와 수치: 한국 근대 문학의 풍경』을 집필하게 된 배경이다.
알아도 모르는 바와 다름없었고, 읽어도 겨우 두서넛 작품이었다. 대개 다 몰랐고 대개 다 못 읽었다. 내 책꽂이에 한국 문학사의 근대가 차지할 공간은 아예 없다시피 했다. 내가 몰랐던 그 많은 사실들은 이 나라 수많은 대학의 수많은 국문과에서만 은밀한 풍문처럼 돌고 있었을 터였다.
한국 작가로서의 부끄러움으로, 고향을 찾아가는 탕자의 심정으로 저자는 한국 근대 문학을 탐독해 나갔다. 시·소설은 물론 일기, 편지, 산문, 그리고 후대의 평론·평전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찾아 읽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작가들이 어떻게 근대를 열고 헤쳐 나갔는지 눈앞에 선연히 펼쳐졌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장면들을 꿰맞추고 이어 붙였다. 같은 작가이기에 그들의 허물을 들춰내기보다는 애잔한 시선으로 감싸 안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날카로운 펜 끝으로도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빚어내는 풍경에 온기를 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오늘의 작가가 이전 시대 작가들의 “곤혹과 고통”에 온전히 몸을 기울이고 마음을 겹쳐본 시간이자, 방대한 기록과 문학작품들을 녹여내 한국 근대 문학에 숨을 불어넣은 경이로운 결과물이다.
식민지였으되
어디로든 갈 수 있었던 시대의 감각
우리 작가들이 펼쳐 보이는 근대는 비록 식민지였으되 시종 암울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수많은 작가들이 동경으로 향했다. 그들에게 동경(東京)은 근대 그 자체이자 그야말로 ‘동경(憧憬)’의 장소였다. 그리하여 홍명희가, 이광수가, 정지용과 이태준이, 그리고 백석과 이상이, 마침내 윤동주가 해협을 건넜다. 그런가 하면, 근대는 북쪽으로 완전히 개방된 시대이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의 감각은 분단으로 사실상 ‘섬’에 살고 있는 오늘날의 감각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눈송이만 해도 여기 윗대는 전혀 다르지요.”
사실이었다. 관북의 눈은 퍽 퍽 퍽 푸른 하늘을 채우면서 아쉬움 없이 주먹만 한 눈송이를 퍼붓는데, 기림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때 그런 눈을 통 본 적이 없었다. 집과 나무와 울타리와 전신주와 우물과 게시판, 실로 땅위의 모든 것을 뿌리째 빼어갈 듯이 들 위에서 벼락 치는 그놈의 눈보라도 서울서는 구경한 일이 없었다.
우리 문학의 아킬레스건, 여성 작가
인터넷에서 작가 김명순을 검색해보면 “복잡한 연애사건으로 정신병에 걸려 사망했”다거나(두산백과) “정신병에 걸려 동경 아오야마정신병원에 수용 중 죽은 것”(한국민족문화대백과)으로 짤막하게 소개돼 있을 뿐이다. 실제로 여성 작가들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편이다. 여성을 작가로 인정하지 않았던 남성 중심의 문단 분위기는 역으로, 당시 작가로 활동했던 여성들이 얼마만큼 뛰어나야 했는지를 반증한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이 책에 여성 작가를 겨우 둘 소개하는 데 그친 아쉬움과 한계를 고백하면서, 여성 작가의 불행한 죽음은 여성을 스캔들로만 소비하려는 문단과 대중의 근거 없는 유언비어와 비난으로 인한 사회적 타살임을 밝히고 있다. 이를테면, 남성 작가들이 식민지의 억압에만 놓여 있었을 때, 여성은 식민지와 성차별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는 것이다. 우리 문학사에서 여성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부정할 수 없는 아킬레스건이다. 이 책은 오늘과 과거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탐구하고, 과거를 도려내지 않으면서 정직하게 그 시간을 마주하는 태도로서의 문학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문학은 언제나 우리에게
‘염치’와 ‘수치’를 함께 일깨워주었다
이 책의 저자 김남일은 구한말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근대를 문학이라는 광활한 지평 위에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때로는 치졸하게 때로는 치열하게, 누구는 문학 뒤에 숨어 누구는 문학마저 뒤로 한 채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우리 작가들을 있는 그대로 펼쳐 보인다. 나혜석에게는 “여자에게 정조를 요구하려면 남자도 정조를 지켜야” 할 새 시대였다. 이육사의 근대는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이자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는’ 삶이었으나, 한국 문학의 근대를 개척했다는 이광수의 삶은 허세와 변명으로 점철되었다. 김명순은 근대가 불러낸 한국 최초의 여성 작가였지만, 문단과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짓밟혔다. 저자는 손쉬운 비난이나 경외 대신, 부끄러운 얼굴도 자랑스러운 얼굴도 모두 우리 문학의 풍경이었음을 담담히 인정한다.
이 책은 처음부터 ‘작품’이 아니라 ‘작가’에 초점을 맞춘다. 도덕이나 윤리, 혹은 애국심의 기준으로 그들의 공과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 여기서는 그저 작가로서 그들이 꾸려 가던 인생의 어느 한 장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밉든 곱든 그것이 그들을 새삼 기억하게 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인생 사진’ 한 컷이기를 바라면서.
염치는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고, 수치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문학은 ‘염치’와 ‘수치’를 동시에 일깨워주는 언어 예술이다. 중요한 것은 문학의 의무가 무엇이냐를 따지는 일보다 무엇을 문학으로 호명할 것인가, 라는 문제일 것이다. 문학은 어느 시대에나 다른 무엇도 아닌 ‘인간’의 얼굴로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외면할 얼굴과 기억할 얼굴을 가려내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염치와 수치의 얼굴들이 근대를 어떤 풍경으로 그려내고 있는지 가감 없이 들여다보는 일도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그래도 ‘고향’이었다. 고리타분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책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잠자리에 드러누워서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우선 등장인물의 이름이 다 친근하지 않는가. 한참 책을 읽다가도 키릴 이바노비치 브론스키 백작의 아들 알렉세이 키릴리로비치 브론스키(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리나』)라든지,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같은 이름 때문에 몇 번이고 책장을 덮은 기억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또 그들이 걸어가는 거리가 크게 낯설지 않았고, 그들이 나누는 말과 이야기가 크게 귀에 설지 않았다. 물론 백 년의 시간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생각해 보면 통째로 낯설었고, 통째로 귀에 설었다. 그래도 어느새 나는 그들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_<책머리에>에서
“어르신은 어디 가셨나?”
“어디 출입하셨어.”
“어딜 가셨을까?”
“모르지.”
“이놈, 어린놈이 대낮부터 술이 취해서 학교도 가지 않고, 쯧쯧.”
“응, 대낮이라니? 술은 밤에만 먹는 거야?”
정 교관도 어지간한 사람이었지만 더는 한 방에 있을 배짱이 없었다. 그래서 “에이, 고연 놈!” 하며 일어서자, 영복이는 거의 드러누울 자세로 말했다.
“여보게, 히로 한 개만 주고 가게.”
- <금주패를 차다_변영로>에서
어느 날 요한이 말했다.
“난 커서 문학을 전공할 거야.”
그 말에 동인은 당장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퍼뜩 도쿄에 가게 되었다고 자랑하던 평양 시절의 요한이 떠올랐다. 아니, 그때보다 열 배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문학’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해서였다. 자존심 때문에 그게 뭐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법률학을 배우면 장차 변호사나 판검사가 될 것이다. 의학은 분명 의사가 된다. 공학은 기술자가 된다. 그러나 문학이라는 건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학문인가? 무엇을 배우고, 그걸 배우면 나중에 무엇을 하는 것인지, 동인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그야말로 백지상태였다. 그럼에도 분했다. 약이 올랐다. 부끄러웠다. 요한에게 불쾌했고, 자신에게 화가 났다.
- <질투는 나의 힘_김동인>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김남일
1957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1983년 『우리 세대의 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장편소설로 『청년일기』 『국경』 『천재토끼 차상문』, 소설집으로 『일과 밥과 자유』 『천하무적』 『세상의 어떤 아침』 『산을 내려가는 법』, 산문집으로 『책』 『수원을 걷는 건, 화성을 걷는 것이다』 등이 있다.또 고전 이야기 『전우치전』을 펴냈으며, 신화와 관련해서는 『백 개의 아시아』(공저) 『꽃처럼 신화』 『라마야나』 등을 펴냈다. 전태일문학상, 아름다운작가상, 제비꽃문학상, 권정생창작기금 등을 받았다.
목차
책머리에
나라의 꼬락서니는 아주 틀려 가고_염상섭
상하이 가는 길_이광수
금주패를 차다_변영로
질투는 나의 힘_김동인
그 노래밖에_심훈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류’였다_김명순
간도에서 온 사내_최서해
교토의 이방인_정지용
검은 바다를 건너다_임화
국경 열차에 몸을 싣고_김기림
인간의 예의, 민족의 예의_이효석
공장은 나의 대학_이북명
형수의 죽음을 쓰다_현진건
모던보이의 서울 산책_박태원
조선을 흔든 이혼 고백장_나혜석
북쪽 나라 시인의 어떤 사랑_백석
눈 속에 난향을 맡다_이태준
그 봄은 괴물과 함께 오리라_신채호
대동강변의 두 친구_김남천
비참과 찬란, 그 사이_김유정
실로 치사스러운 동경_이상
마침내 집을 팔다_이광수
그가 없이는 부끄러움이 크리라_이육사
양서 동물의 반성문_채만식
가야마 미쓰로의 1945_이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