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부천시 역곡역 앞거리와 건물을 담은 두 권의 그림 에세이. 하나는 건물의 정면을 그린 <건물의 초상>이고, 하나는 역곡역 앞거리를 그린 <1km>이다. 건물의 초상에 등장하는 건물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든 어디서든 본 것 같은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다. 회색빛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건물, 낡은 간판들이 겹겹이 붙어있는 상가, "잠시 자리를 비웁니다"라는 쪽지가 붙은 작은 철물점들이다. 건물의 정면만 그려져 있지만,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공간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보통의 이웃들의 삶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낱장으로 되어 있어, 한 장 한 장 작품처럼 볼 수도 있고, 길게 이으면 3m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형식이다. 작가는 <건물의 초상>을 그리면서 동네를 더욱 자세히 보게 되었고, 도시의 꼴을 점점 알게 되고, 그러다 결국 삶의 무대인 길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 두 책에는 동네에서 발견한, 보통의 사람들의 삶이 있다.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치열함과 에너지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일상은 소소하고 평화로운 것이 아니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의 일상이다. 그러나 삶이 너무 치열하고, 절박해서 숭고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세상을 유지하는 건 보통의 사람들이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출판사 리뷰
오늘도 나는
역곡역으로 출근합니다 부천 역곡역 인근에서 14년을 지낸 작가는 작은 작업실 창 너머로 공장이 생기고 사라지고 아파트가 세워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동네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록하고 싶은 것은 아침의 모습이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나선 길에서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풍경을 마주했던 날, 그 모습을 꼭 그려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날부터 작가는 부천 역곡역 앞으로 매일 출근해 건물의 초상화와 거리를 그렸습니다.
오랜 시간 작업해온 작가의 작품에는 그 시간들이 담겨 있습니다. 철판을 주무르던 철공소, 모든 것이 정갈하게 놓인 함석공사, 팽팽하게 당겨진 캐노피를 만들던 천막공장처럼 지금은 사라진 건물들도, 이미 지어진 아파트가 공사 중인 시절도, 새로 지어진 건물도 한 작품 속에 담겨 있습니다. 처음에는 상가나 공장 등 평범한 건물들의 외곽과 그 안의 텍스처를 따라가며 그렸습니다. 공간을 관찰하고 기록하다보니 건물 안팎의 일터에서 사람들이 노동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랜 시간 지나다녀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공간들이 작가에게 의미 있는 장소로 다가온 순간이었습니다.
건물의 초상, 이웃들의 초상
우리 여기 있습니다. <건물의 초상>은 건물이 주인공입니다. 한 사람을 찬찬히 오래 보고 그리는 초상화처럼 이 책은 건물을 찬찬히 보고 정성들여 그렸습니다. 작가는 번듯하게 지어진 건물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삶을 짓고 사는 건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이 책에는 건물만 등장하지만, 책을 보는 내내 그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깜깜한 밤, ‘출장 중입니다’라는 쪽지를 붙여둔 채 환하게 불을 켜둔 가게 그림을 보면, 곧 주인이 출장에서 돌아올 것만 같습니다. 빈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벤츄리관 가게에서는 계속 일을 하다 잠시 자리를 비운 주인이 보입니다. 파이프와 자재들이 쌓여 있는 파이프 가게에서는 그 물건들을 정리하는 사람의 동선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림에는 그 건물에서 일을 했던 사람들의 살아가면서 생긴 무늬와 그곳을 오갔던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건물을 그렸지만, 그 안에는 사람들이 있고, 오늘 하루도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도시 만보, 1km
거리에서 만난 보통의 이웃들경기도 부천시 괴안동. 역곡역을 중심으로 1km 남짓의 거리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작가는 처음부터 1km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작업을 한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나서 보니 그 거리가 1km 남짓이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도보로 움직이면서 생활하는 생활권이 대개는 1km 반경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1km>는 구체적인 거리이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소도시의 풍경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1km 프로젝트가 태어났습니다. 역곡역 인근을 시작으로 도시 만보는 계속될 것입니다. 건물과 사람이 모여 길이 되듯 <1km>는 마주하는 길을 그린 20장의 포스터 형식의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낱장이 모여 삶의 파노라마가 펼쳐집니다. 도시는 여러 가지 형태들이 끊임없이 서로를 간섭하고 분절하고 있기에, 모자이크를 붙여가듯이 도시의 구조를 더듬고 파편들을 연결한 작가의 작업을 그대로 살려 제작했습니다. 독자들이 거리를 한 장 한 장 감상할 수도 있고, 쭉 이어 파노라마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원하는 대로 뒤섞어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매일 동네를 관찰해 온
도시기록자 김은희의 그림 에세이 <건물의 초상>은 셔터를 들어 올리는 사람을 그린 드로잉으로 시작합니다. 작품 아래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습니다.
‘매일 사람들은 자신의 우주를 들어 올린다’
사람들이 매일 출근을 하며 삶과 일을 이어나가는 것처럼, 작가에게 있어서 자신의 우주를 들어 올리는 일은 바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2015년부터 3년 동안 거의 매일 역곡역 주변을 기록했습니다. 동네는 평범했기에, 작품 속 건물들을 보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사는 동네나 지나쳤던 곳 어딘가를 이야기합니다. 이는 아마도 우리 삶이 닮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밥을 먹고, 장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직장에 나가고, 물건을 만들고,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합니다. 매일 이런 일들을 반복하며 버티면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작가는 이 반복적인 일상을 견디는 묵묵함이 서글프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온기를 찾고 싶다는 작가는 오늘도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살아냅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은희
공간에 새겨진 삶의 무늬와 결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건축을, 서울시립대 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습니다. 2007년 경기도 시흥에서 동네의 작은 역사들을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하며 일상의 삶과 노동의 순간들을 기록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을 공부하면서부터는 도시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리는 것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2014년에는 부천 고강동에서 동네 곳곳 풀과 나무들을 찾아다니며 식물과 어우러진 동네의 풍경을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2015년부터 지하철 1호선 역곡역 주변 오래된 건물과 변화하는 길의 모습 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단조로운 공간들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짓는 과정, 하루를 살아나가는 모든 활동, 그 반복적인 리듬이 만들어내는 것이 도시의 형태라는 것을 그림을 그리면서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도시의 콘크리트 더미 속에 있는 온기를 찾아 그림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자 합니다.2016년 건물의 초상을 담은 작품들로 볼로냐국제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이 되었고 전통 한옥의 공간 곳곳 아름다움을 담아낸 《우리가 사는 한옥》에 그림을 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