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정선의 발자취 따라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들여다보자!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로 배우는 우리 옛 그림의 풍경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를 통해 옛 사람들의 삶과 풍류를 찾아준 바 있는 ‘옛 그림 학교’가 드디어 세 번째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겸재 정선(1676~1759)의 진경산수화에 포착된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아간다. 국보 제217호인 「금강전도」를 비롯하여 금강산을 그린 여러 점의 그림과 국보 제216호인 「인왕제색도」의 산실인 600년 도읍의 역사가 살아있는 한양, 고려의 도읍지이자 송도삼절로 유명했던 개성, 그리고 낙산사에서 해인사까지 자연의 절경을 담아낸 진경산수화가 주인공이다.
금강산에서 한양을 거쳐 전국의 명소를 찾아서옛 그림 학교는 2박 3일 동안 저자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그림에 숨겨진 이야기를 발견하고 의미를 찾게 해주는 특별한 학교다. 이번 책은 우리나라의 다양한 명소를 찾아가는 만큼,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재미있게 즐기면서 진경산수화와 우리의 자연을 배우고 익힐 수 있다.
각 여행은 대표적인 그림들을 감상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전개된다. 첫째 날은 '금강산 찾아가자 1만 2,000봉'이다. 진경산수화의 걸작 중의 하나인 「금강전도」를 비롯하여, 「장안사」 「만폭동」 「해금강」 등을 자세히 감상한다. 두 번째 날은 '아름다운 서울에서 살렵니다'로, 이 여행에서는 「인왕제색도」와 「송파진」 「노백도」 「필운대」 「청풍계」 등의 그림을 통해 우리의 수도이자 조선의 도읍이었던 한양의 아름다운 절경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을 예찬하는 세 번째 날에는 개성과 낙산사 등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우리 자연의 숨결을 마음껏 호흡할 수 있다. 힘찬 폭포수가 시원한 「박연폭포」 외에 「우화등선」 「독서여가」 「낙산사 일출」 「금강산 내총도」 등이 동행한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즐거운 휴게소’도 마련되어 있다. 이 코너에서는 진경산수화 외에 정선이 그린 그림들을 살펴본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동물 그림과 노송도를 보며, 우리의 조상들이 동식물에 담았던 다양한 의미를 되새겨보고, 정선의 자화상을 보면서 그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각 장의 마지막 꼭지에서는 자유토론 시간을 가져, 앞서 배운 내용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며 여행을 마무리 짓는다. 이처럼 이 책은 진경산수화를 통해 금강산과 한양, 그리고 전국 각지의 명소들을 찾아다니며 우리 자연 참모습을 배운다.
각 여행의 마지막에는 팁으로 ‘더 알아보아요’와 ‘보충학습’을 통해 본문에서 미처 설명하지 못한 중요한 정보들을 정리해준다. 또 글 사이사이에 박스로 배치한 작은 정보도 이야기를 보충, 심화시켜주는 학습 도우미들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쓰던 모자의 종류에서부터 병자호란, 나라의 중심인 종묘사직 등 우리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들이 돋보인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어떻게 다를까정선은 우리만의 그림 체계인 진경산수화를 발전시키고 완성시킨 인물이다. 그러나 실제 진경산수화가 어떤 그림이며, 우리의 것을 어떻게 표현했는지에 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조선시대 중기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국의 그림 그리는 법(준법)을 기초로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이는 중국의 자연을 그리기 위한 방법인 만큼 우리나라의 지형을 그리기에는 적절치 못했다. 이에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우리 자연의 모습을 우리 정서에 맞게 그리자는 생각이 싹트게 되었고, 이에 중국의 준법과는 다른 우리만의 준법인 수직준(붓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 긋는 방법)과 쇄찰준(붓을 눕혀서 여러 번 쓸어 그리는 방법) 등을 만들어냈다. 정선은 「금강전도」에서 날카롭고 뾰족한 봉우리를 수직준으로 표현해서 금강산의 웅장한 모습을 살렸고, 「인왕제색도」에서는 쇄찰준으로 화강암의 바위를 그려서 묵직하고 위엄 있는 인왕산의 모습을 포착했다. 이처럼 진경산수화는 실제 경치를 그대로 그리기보다 실제 경치를 바탕으로 화가의 느낌까지 담아낸 그림이었다.
“진경산수화의 출현은 우리나라 그림 역사에서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라디오만 있던 시대에 텔레비전이 발명된 격이라고나 할까요? 조영석이라는 화가는 ‘조선의 산수화는 정선에 의해서 새롭게 출발한다’고 극찬했습니다. 정선은 우리나라 구석구석의 모습을 그림으로 많이 남겼습니다. 민족의 명산 금강산, 한강이 가로지르는 한양,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개성, 임진강, 관동팔경 등 삼천리 방방곡곡을 정선의 그림으로 감상하면 우리나라의 아름다움과 우리 그림의 멋스러움에 한껏 빠지게 될 겁니다.”
- 본문에서
3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아름다운 금수강산정선은 자신이 다닌 곳, 사랑했던 곳, 머물렀던 곳 등을 빠트리지 않고 그림에 담아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스승인 김창협, 창흡 형제의 별장을 담은 「청풍계」를 여러 점 남겼고, 치욕이 서린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며 「송파진」이라는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자신이 살던 집 주변의 경치를 그린 『장동팔경첩』이라는 책자에는 「필운대」「필운상화」「수성동」「대은암」 등의 그림을 남겨 언뜻 평범해 보이는 풍경조차 특징을 잘 살려 표현했고 「인곡유거도」 같은 그림에서는 자신이 살던 집 주변의 평화로움을 화면에 담아내기도 했다. 그는 전국의 명소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직접 보고 느낀 것을 그림으로 남겼다. 고려 500년 도읍지를 둘러보며 송도삼절(개성의 세 가지 자랑거리) 중 하나인 「여산폭포」를 웅장한 필치로 그려 그 감동을 고스란히 전하고자 했고, 소동파의 「적벽부」를 흉내 내어 뱃놀이를 즐기고는 이를 「우화등선」으로 그리기도 했다.
이처럼 그림을 통해 우리나라 경치의 아름다움을 예술로 승화시킨 정선은 독창적인 화풍으로 큰 감동을 주고 있다. 그의 개성 있는 화풍은 강희언, 김석신, 김윤겸 등의 후배 화가에게 이어져 조선의 진경산수화를 살찌웠다. 만약 창조적, 개성적, 민족적인 요소가 좋은 예술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라면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우리의 뛰어난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탁월한 문화유산 덕분에 사람들은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에 비로소 눈 뜰 수 있었다.

드디어 금강산에 도착했습니다. 동서로 40킬로미터, 남북으로 60킬로미터, 이 넓고 깊은 산을 어디서부터 구경해야 까요? 금강산은 흔히 외금강, 내금강으로 나뉩니다. 외금강은 경치가 웅장하기로 유명합니다. 만물상, 구룡폭포가 대표적이지요. 반면에 내금강은 아기자기한 모습을 자랑합니다. 볼 만한 경치는 여기에 많이 몰렸지요. 한양에서 출발한 사람들은 대부분 내금강부터 유람을 시작했습니다. 내금강 입구의 장안사가 바로 출발점이지요. 옛날 깊은 산속에 잠잘 곳이나 식당이 있었겠습니까. 절에다 짐을 풀고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면서 유람을 시작했지요. 절은 지금의 호텔이나 콘도 역할을 했습니다. 관광안내소도 겸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정선은 여길 빠트리지 않고 그렸습니다.
- 첫째 날, 금강산 관광은 여기에서 시작이야
세상에! 혼자 오르기도 힘든 산에 가마까지 메고 올라야 했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맞습니다. 가파른 언덕을 오를 때는 미끄러지기가 예사였고, 그럴 때면 다른 사람들이 뒤에서 밀고 옆에서 붙들고 해서 올라갔습니다. 반면 선비들은 두루마기에 갓 쓰고 부채 하나 달랑 든 채 가마에 탄 것이지요. 그들이 절경 앞에서 감탄을 하며 시를 읊고 그림을 그릴 때, 저렇게 고생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걸 기억해 두세요. 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백천교에 이르면 스님들의 임무는 끝납니다. 이제 선비들은 나귀나 말로 갈아타야 합니다. 오른쪽 아래를 보세요. 이번엔 벙거지를 쓴 마부들이 말과 나귀를 대령하고 있잖아요. 미리 전갈을 받고 기다리는 중이지요. 제목은 분명 ‘백천교’인데 다리는 눈 씻고 봐도 없네요. 글쎄요. 홍수에 떠내려갔을까요? 그나저나 저 선비들 큰일 났습니다. 꼼짝없이 발을 적시거나 하인 등에 업혀서 건너야겠군요.
- 첫째 날, 들을 때는 천둥이더니 와보니 눈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