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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일터, 그 후
나의시간 | 부모님 | 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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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 사업 선정작. 70년대 '민주노조의 전설'로 불리는 원풍모방 노조에서 활동하다 80년 신군부 하에서 해고된 저자가 오늘까지 통과해온 시간들을 돌아보는 자전적 에세이. 부침을 겪은 한 개인의 서사이자 시대에 대한 섬세한 통찰기다. 50년대 말에 빈농의 딸로 태어나 70년대에 산업전선에서 일하다 민주노조운동 과정에서 투옥, 해고 이력은 70년대 많은 여성노동자, 여성노동운동가들의 이력이기도 하다.

민주화의 초석이 된 그들은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 주체이자 관찰자로 담담히 그려가는 개인적 사회적 삶의 궤적을 따라 역사 저편에 사라진 시간, 그리고 연연히 이어지는 시간을 만난다.

  출판사 리뷰

스무 살 때 엄마는, 그리고 오늘
원풍노조 강제해체 30주년을 앞둔 2012년 2월 만해마을에 모인 원풍노조원들 아이들 속의 딸 혜인은 내가 노조를 알고 연대투쟁을 하다 감방에 갇힌 스무 살, 딱 그 나이였다. 나의 시간과 딸의 시간은 이어지는 걸까. 엄마와 나의 시간은? 반세기를 거슬러 사라지고 이어지는 시간을 돌아본다.(15쪽)

본문의 첫 장면, 원풍모방 노조조합원들의 자녀 모임. 저자의 딸을 포함한 청춘들은 공권력에 맞서 울부짖는 영상 속 스무 살 엄마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이를 지켜보는 저자는 ‘공순이’에서 불온한 해고자가 되어 걸어온 지난 50여 년의 시간을 돌아본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상경한 저자는 평생 책과 공부에 허기를 느낀다. 1978년 원풍모방 입사는 ‘서울대 입학’에 준하는 벅찬 출발이었다. 왕성한 독서와 노조 활동으로 의식은 확장되고 단단해진다. 여성노동자들에게 똥물을 끼얹은 ‘동일방직 사건’에 연대 시위한 이른바 ‘부활절 사건’으로 구속되기에 이른다. 복직 후 활발한 노조 탈춤반 활동 등으로 1980년 계엄사에 의해 해고되는 과정과 더불어 YH노조 김경숙의 죽음, 신군부의 무자비한 노조 탄압, 82년 원풍노조 해산, 집단 해고 등 야만적인 시대의 장면들이 생생하다.
일터를 빼앗긴 후 삶의 여정은 당시 민주화운동의 좌절과 궤를 같이한다. 저자는 주저앉지 않고 80년대 여러 노동투쟁 현장 안팎에서 지원, 홍보하는 역할에 주력한다. 생계의 불안 속에서도 현실적 계산을 하지 않는 무모함은 대우조선 해고노동자와의 결혼 등 매 순간의 선택에서 엿볼 수 있다. 스스로 가장 이기적인 선택으로 꼽는 것은 50의 나이에 검정고사를 거쳐 대학 공부를 하게 된 것. 이는 오랜 창작의 열망이기도 한데, 작가의 길은 멀다고 토로하지만 단단한 글쓰기는 이미 공인된 바다.
마지막 장은 2019년 10월 ‘원풍모임’ 37주년을 맞아 원풍노조원 126명의 구술증언록 《풀은 밟혀도 다시 일어선다》의 출판기념회에 재개된 탈춤 공연이다. 저자를 비롯한 탈춤반 출신 아홉 60대 중노인들의 공연은 해프닝의 연속이지만 삼대의 어울림 속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오늘로 불러내는 값진 시간이다.

“참 놀라운 역사입니다”
《김경숙》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는 엄마의 모습이 겹쳐졌다. 엄마와 같은 58년생 개띠, 원풍모방에서 노동운동을 했던 엄마, 김경숙이 죽기 하루 전날 농성장인 신민당사에 찾아가 같이 동참하다 기숙사 입소시간에 쫓겨 돌아왔고, 다음날 아침 소식을 듣고 털썩 주저앉았다는 엄마. 가난한 집안의 둘째딸로 태어난 죄로 중학교도 다니지 못한 엄마는 교복 입고 다니는 친구들을 피해 소를 몰고 먼 길을 돌아다녔고, 오십이 가까운 나이에 대학교 1학년생이 되어 내게 영어를 배우신다.(63~64쪽)

“참 놀라운 역사입니다”는 엄마에게 보내는 딸의 경탄어린 헌사다. 저자의 딸이 30여 년 지켜본 엄마의 삶은 굴곡도 고비도 많았지만 달라지지 않은 모습들이다. 어린 날 원하던 교복을 입어 보지 못하고 집안의 무게를 짊어져야 했던 엄마의 기억을 함께 아파한 만큼 이후 생존권을 박탈한 국가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는 과정, 수십 년간 포기하지 않은 엄마와 이모들의 모습에 경의를 표하며 그들의 용기 있는 삶 덕분에 자신들이 좀 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도 공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70년대 산업화와 민주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도 주역으로 대접 받지 못한 이들은 ‘공순이’란 이름으로 차별과 멸시를 받은 여성노동자들이다. 강고한 유신독재체재를 무너뜨린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YH사건 등 역사의 한 장을 연 여성노동자들과 사건들은 이 책 곳곳에서도 만날 수 있다. 불구하고 여성노동자 중심의 70년대 노동운동(민주노조운동)은 저자도 아프게 토로하듯 한때 경제주의 조합주의로 80년대 운동과 단절되는 한계를 가진 운동으로 폄하되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과 삶에 대한 자각, 인간다움이 있었기에 “가장 기본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부터 새로이 역사적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문제제기 등이 일고 있다.

우리는, 아니 나는 전선의 한 귀퉁이에 있었고, 무엇을 논의하고 결정할 위치에 있지 않았지만 꿈은 소박했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공순이 공돌이로 멸시당하지 않는 환경,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는 것, 8시간 정도 일하고 적금 부어 작은 집 한 칸이나마 마련하는 것, 불안하지 않은 노동환경이 미래로 이어지는 것, 그로써 인간다운 사회를 이루고 좋은 사회에서 ‘더불어 인간답게’ 살아가는 그런 것이었다.(147쪽)

저자의 소박한 꿈은 이루어졌을까? “40년이 지나도 되찾지 못한 나의 ‘빼앗긴 일터’에 남편의 비정규직 인생이 얹힌다. 안착이 어려우니 숱하게 묶고 풀고 또 이삿짐을 꾸렸다”는 저자는 새로운 터전으로 바람의 땅 제주에 서게 된다.

자기서사, 생활글의 힘
부여잡은 손, 모아 지르던 외침, 그 많은 얼굴은 다 어디 있는가?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시간, 씁쓸한 기억도 많지만 그리운 건 또 사람이다. 제주 길을 걸으며 지나온 시간의 나를 만난다. (305쪽)

인생 후반기 제주에서 조용한 일상 속에서 찾은 평온함의 이면에는 지난 시절에의 회한이 없지 않으나 기본적인 정서는 낙관적이다. 꽃이 피고 지듯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내가 걷는 이 길”을 누군가도 또 걷게 될 테니 말이다.
“내 몸의 촉수는 늘 노동, 그리고 기록에 닿아 있다”고 토로하는 저자는 제주의 역사를 공부하며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는바 글을 매개로 하는 시간과 공간의 확장이 기대된다. 평생토록 지닌 책에 대한 애정과 글쓰기의 욕구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일으키는 또 하나의 동력으로 작용해온 듯하다. 결코 평탄치 않은 길을 걸어온 자신의 이야기, 자기 역사를 담백하게 그려낼 수 있는 힘도 거기서 비롯된 게 아닌가.
서두에 실린 프롤로그격의 <웅덩이>는 옛 고향집 엄마의 부엌과 뒷간에 관한 삽화다. 늘 물이 고여 있던 부엌 웅덩이는 벗어나고픈 가난의 질곡인 동시에 근원적인 그리움의 상징일 수 있다. ‘글쓰기의 원천‘인 어린 날의 풍경에 담긴 저자의 따뜻한 시선은 잃어버린 것과 꿈꿔온 바를 공감하게 하며, 감성적 묘사가 돋보이는 대목들이다. 이후 지난한 어려운 시절의 얘기에 거부감 없이 빠져들게 하는 것도 문장의 힘이자 생활글의 구체성이 갖는 미덕이라 하겠다.

까끌까끌한 보릿단과 가벼운 벼이삭 자루, 뒷산의 좁은 산길을 땔나무를 이고 오던 기억에는 늘 할머니가 있다. 오늘은 꼭 기성회비를 가져가야 한다고 고집스럽게 버티고 서 있는 나를 회초리로 쫓다 못해 결국 고쟁이 춤에서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주던 이도 할머니였다.
쇠죽 끓이는 아궁이에 구운 고구마를 미끼로 아침의 단잠을 깨우고, 동네 강변에 판을 벌린 가설극장에 나를 슬쩍 보내주던 할아버지의 기억은 따스하다. 허우대 좋고 호인인 할아버지는 낭만도 있었다. 거름지게에 진달래를 한 아름 얹어 와 항아리에 물을 채워 꽂기도 했다. 할머니는 일부러 그러는지 온 산에 지천이어서인지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나는 장독대 앞자리를 차지한 진달래 항아리가 좋았다.

졸망졸망한 자식들에 가진 거라곤 시골 논 한 뙈기에 마룻장만 한 밭 두엇이었으니 아버지는 아득했을 것이다.(...) 한 달에 서너 번은 만취하던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보다 남은 가족들 걱정에 눈물을 흘린 나는 술 같은 건 입에도 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술만 마시면 “앞앞이 말 못하고 철천지에 한이구나” 염불 외듯 하던 아버지처럼 ‘한 많은 세상’에 ‘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어느새 나는 술자리를 잘 만드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대우병원 영안실 앞에는 446개의 촛불로 만든 ‘열사여 부활하소서’가 타올랐다. 스물한 살, 스물네 살의 이들도 (...) 대우조선에 입사했을 때는 자부심이 있었을까. 옥포만에 띄운 시운전 직전의 거대한 시추선들이 아름답고 자랑스러웠을까. 웅장하고 정교한 선박을 완성해가는 동안 부서지고 짓이겨지는 자신들의 육신과 존엄성이 절망스러웠을까. 대규모 해고로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이불보따리를 짊어지고 쫓겨나가는 것을 보고 냉가슴 앓으며 자조하고 절망했을까. 87년 노동자대투쟁이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이석규의 핏자국 위에 노조 깃발이 꽂혔을 때는 희망도 솟았으리라.

  작가 소개

지은이 : 장남수
1958년 경남 밀양 농가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상경해 공장에 다니며 야학에서 공부했다. 1977년 원풍모방에 입사해 일하던 중 1978년 ‘동일방직 사건’에 연대 항거한 ‘부활절 사건’으로 구속되어 6개월 만에 집행유예로 나왔다. 복직하여 원풍모방의 노조 대의원과 탈춤반 회장으로 활동하다 1980년 12월 이른바 ‘노동계 정화 조치’로 계엄합동수사본부에 의해 강제 해고됐다. 이후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노협) 홍보부장, 거제와 광명 경실련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50 나이에 고입,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성공회대 사회과학부에 입학해 공부했다. 1984년 자전적 수기 《빼앗긴 일터》를 펴내 큰 울림을 준 이래로 노동현장 안팎에서 관련된 글을 꾸준히 써왔다. 2011년 전태일문학상(생활글 부문 우수상)을 받았고 《문학의 오늘》 등에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원풍노조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못다 이룬 꿈도 아름답다》(공저), 《풀은 밟혀도 다시 일어선다》(원풍동지회 엮음)의 구술 정리에 참여했다. 현재 제주에 정착해 그 땅의 어제와 오늘을 공부하며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목차

웅덩이

뒤돌아보다
스무 살 엄마와 만나다/ 차가운 담벼락의 기억/ 나의 고향은/ 어린 날의 풍경

빼앗긴 일터
서울 길, 쪽박산 야학/ 든든한 울타리 원풍노조/ 부활절 사건/ 동갑내기 김경숙의 죽음/ 문둥이 탈을 쓰
고/ 계엄사에서 사표를 쓰다/ 그날, 1982년 9월 27일/ 원풍노조와 영등포산선

문밖에서
삼양동 기억의 명암/ 해남행 도피휴가/ 신길동 삼호빌라 101호/ 노동자랑 친구하지 말라고 외칠까/ 갈라
진 사람들

거제, 또 다른 시작
대우조선 친구들과/ 두 불꽃 묘비/ 거제의 나날/ 해고자가 해고자와 결혼을?/ 따스한 기억, 거제경실련

대학 문턱을 넘다
오십대 여대생/ 우리 안의 파시즘/ 만학도의 사연/ 먼 작가의 길

엄마는 안 죽는 줄 알았어
엄마와 할머니의 시간/ 가장 슬픈 이별

다르게 적는 이력서
비극의 봄, 상처꽃과 세월호 / 시장탐험대, 아이들과 함께

제주, 이어지는 글쓰기
들고나는 바람처럼/ 내 인생의 책, 마침내 책장을/ 세대를 잇는 기록모임/ 제주의 길을 걷다

우리 이름을 다시 부르다
그 후 우리는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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