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발해고》 출간 20년, 올해로 정년을 맞는 송기호 교수의 발해연구 40년을 총정리하는 개정판으로 출간의 의미가 크다. 이번 개정판에는 기존의 서해응, 박제가, 유득공의 서문에 이후 발견된 이규경 발문과 <황성신문> 1910년 4월 28일 2면에 실린 논설 <발해고를 읽고>를 추가했다.
유득공은 고려가 발해까지 우리 역사에 넣어 ‘남북국사’를 쓰지 않았던 점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그 결과 거란과 여진에 넘어가버린 발해 영토를 되찾으려 해도 이제는 아무런 근거가 없게 되었다고 통탄해 마지않았다.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발해사를 우리 역사 속에 넣을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우리 역사상 최초로 발해사를 체계화했다.
출판사 리뷰
“왜 우리 땅을 돌려주지 않는가?
발해 땅은 바로 고구려 땅이다.”
고려가 마침내 약한 나라가 된 것은
발해 땅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니, 크게 한탄할 일이다.
- 《발해고》 유득공의 서문 중에서
발해사 국내 최고 권위 송기호 교수(서울대 국사학과)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 특별판!
-《발해고》 출간 20년, 올해로 정년을 맞는 송기호 교수의 발해연구 40년을 총정리하는 개정판으로 출간의 의미가 크다. 이번 개정판에는 기존의 서해응, 박제가, 유득공의 서문에 이후 발견된 이규경 발문과 <황성신문> 1910년 4월 28일 2면에 실린 논설 <발해고를 읽고>를 추가했다.
잃어버린 영토 발해, 그 역사 찾기의 시작
유득공은 고려가 발해까지 우리 역사에 넣어 ‘남북국사’(南北國史)를 쓰지 않았던 점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그 결과 거란과 여진에 넘어가버린 발해 영토를 되찾으려 해도 이제는 아무런 근거가 없게 되었다고 통탄해 마지않았다.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발해사를 우리 역사 속에 넣을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우리 역사상 최초로 발해사를 체계화했다.
유득공의 역사 인식의 업적, 《발해고》
역사가로서 유득공의 인식은 초기에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로 시작된 남방 중심의 역사 인식에서 시작하여 나중에는 북방 중심의 역사 인식으로 변모해갔는데, 그 결과로 나타난 《발해고》는 그로 하여금 한국사학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기게 하였다. 그는 발해의 옛 땅을 회복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발해고》를 저술하였고, 북방 역사의 연원을 밝혀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사군지》를 저술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는 나중에 정약용(丁若鏞), 한치윤(韓致奫) 등의 연구 업적이 나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발해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 하였던 그의 노력은 더더욱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공께서 정력을 쏟아 고증하고 연구하여 이 책을 지은 것은, 본디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성정에서 비롯된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자세히 검토하여 국가를 세워 운영해갔던 뜻을 이해하게 된다면, 이 세상을 다스리는 정책에 도움이 되는 것이 적지 않을 터인데, 이를 알아주는 사람이 극히 적어 함부로 버려지게 되니, 실로 애석한 일이다. -서해응의 서문
발해가 망한 지 천 년 만에 다행히 선생을 만나 역사책이 후세에 전해질 수 있게 되었으니, 사람들이 감격하게 되었다. 훗날 우리 역사를 보완하려는 자가 이로써 수정하고 보완하게 되면, “우리 역사에서 기록이 누락되어 발해를 상고할 수 없어서 뜻있는 선비들이 탄식하였더니, 유 아무개가 사라진 것을 보충하여 잃어버린 역사를 다시 전하게 되었다”고 대서특필할 것이니, 선생에게는 크나큰 영광일 것이다. -이규경의 발문
고려의 문인 학사들이 이를 타인의 강토로 간주하여 5경 13부2의 빛나는 판도로 하여금 다른 나라 땅으로 전락하게 하고, 동남쪽 한 귀퉁이로 쪼그라들어 약소한 나라를 스스로 만들었으니, 이것으로 그 죄가 하나이다. -〈황성신문〉 1910년 4월 28일 논설 〈발해고를 읽고〉
작가 소개
지은이 : 유득공
1748(영조24)~1807(순조7).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시인. 본관은 문화, 자는 혜보, 호는 영재·고운당 등이다. 1774년(영조50) 생원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으며 1779년(정조3)에는 시문에 대한 뛰어난 자질을 인정받아 규장각 검서관에 제수되어 이후 여러 관찬 사업에 참여하였다. 포천 현감, 양근 군수, 광흥창 주부, 가평 군수 등을 거쳤으며 말년에는 정조가 그의 공을 높이 사 영원히 검서직을 겸하도록 명하기도 했다. 박제가, 이덕무, 서이수와 함께 ‘4검서’로 불렸고 규장각 인사들을 비롯한 실학자들, 청나라 문인들과 활발히 교유하며 당대 지식 조류에 영향을 미쳤다. 시에 뛰어났으며 역사, 지리, 풍속, 언어 등에 특히 열정을 쏟았다. 저작으로 《발해고》 《경도잡지》 《이십일도회고시》 《사군지》 등이 있다.
목차
옮긴이의 말
이 책의 번역에 대하여
해제 _ 유득공과 《발해고》
발해국(왕계도)
성해응의 서문
이규경 발문
발해고를 읽고 〈황성신문〉 1910년 4월 28일 논설
박제가의 서문
유득공의 서문
목록(목차)
인용 서적 목록
1. 왕에 관한 고찰[君考]
2. 신하에 관한 고찰[臣考]
3. 지리에 관한 고찰[地理考]
4. 관청 및 관직에 관한 고찰[職官考]
5. 의식 및 복장에 관한 고찰[儀章考]
6. 물산에 관한 고찰[物産考]
7. 국어에 관한 고찰[國語考]
8. 국서에 관한 고찰[國書考]
9. 후예국가에 관한 고찰[屬國考]
1권본 《발해고》 원문
[부록] 1권본 《발해고》 (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