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보스토크 매거진 이번호의 키워드는 ‘기억’이다.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보며 기억을 다시 불러내는 과정은 우리에게 무척 자연스럽고 익숙한 일이다. 기록도구이자 저장매체인 사진은 어떤 식으로든 ‘기억’을 환기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사진과 기억의 관계를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과 타인의 기억을 집요하게 탐색하는 사진작업을 만나본다. 그리고 문목하, 백은선, 무루, 김신회, 강윤정 등의 필자들이 ‘마지막 사진 한 장’ 또는 ‘기억과 마주하는 어떤 페이지’를 글감으로 쓴 에세이를 수록했다.
출판사 리뷰
현재의 우리와 재회하는 과거의 이미지 이번호에 실린 사진들은 오늘의 흔적을 통해 어제의 이야기를 더듬거나, 내 안에 남은 오래된 이미지들을 헤집어 꺼내 현재에 재구성하거나, 예정된 이별을 앞두고 마지막 모습을 오래도록 붙잡으려 합니다. 그렇게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바라보고, 지나간 시간을 껴안고, 사라짐과 겨루는 사진은 의식적이고 의도적이며, 또 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은 따뜻한 추억을 발견하며 미소를 짓는 시간을 거쳐 지나간 파편들 사이에서 지리멸렬한 시간을 더 오래 견뎌야 합니다. 모든 사진을 동원해 이어붙여도 기억은 온전히 복원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사진을 불러올수록 오히려 선명해지는 망각의 자리를 확인하면서, 사진과 기억은 때로 서로 다투기도 합니다.
친화적인 관계였던 사진과 기억이 서로 불화하는 그 사이에서 이미 지나간 시간마저도 새로운 의미로, 또 다른 이야기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납니다. 이미 사라져 버렸고, 다시 붙잡을 수없는 내 안의 이미지들을 들쑤시고 끈질기게 바라볼 때, 기억은 과거의 고정된 사건으로 멀어지고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를 향해 더 가까이 더 또렷하게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이번호는 크게 네 개의 챕터로 구성되었습니다. 첫 번째 챕터에는 ‘곳, 방, 몸’을 키워드로 우리가 머무는 공간에 남는 흔적을 바라보며 기억을 더듬는 사진작업이 펼쳐집니다. 사진가 신선혜는 작고 반짝이는 풍경과 사물이 담긴 여행사진을 통해 장소의 기억을 수집하며, 핀란드 사진가 니나 바타넨은 방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 덧없는 기억과 부질없는 그리움과 재회합니다. 그리고 아파트 철거현장에 버려진 물건들을 아카이브 촬영한 류준열, 물건이 들어있던 빈 상자를 섬세하게 바라보는 구본창, 자신의 몸에 특별한 그림을 그리고 촬영하는 아리아나 페이지 러셀까지 이들이 바라본 흔적과 자국은 기억의 시각적인 모습을 환기합니다.
두 번째 챕터에서는 다섯 편의 에세이를 만납니다. 소설가 문목하와 시인 백은선, 에세이스트 무루와 김신회, 문학편집자 강윤정까지 다섯 명의 필자는 ‘마지막 사진 한 장’ 또는 ‘기억과 마주하는 어떤 페이지’를 글감으로 에세이를 썼습니다. 그들에게 글을 부탁하며 물었던 질문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사진이 모두 사라지고 마지막 사진 한 장을 간직한다면?’ 또는 ‘누군가의 마지막을 사진 한 장으로 기억한다면?’ 그리고 ‘기억을 마주하는 것 같은 글쓰기와 책읽기가 가능하다면?’.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에서 기억을 재회하는 일에 관해서 사유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챕터에는 ‘기억의 재구성’이라는 키워드 중심으로 기억 이미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재구성/재가공하는 사진작업들이 이어집니다. 잔루카 지미니는 사람들이 기억에 의지해 그린 자전거 스케치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자전거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마르졸렌 갈렛은 인화지에서 패브릭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출력한 사진을 활용한 작업을 통해 기억을 대체할 수 있는 ‘아카이브 조각물’을 선보입니다. 마르티나 차닌과 로빈 크랙넬은 가족앨범 속의 사진들과 편지들, 메모와 낙서 등을 결합해 지나간 시간과 기억에 다가갑니다.
마지막 챕터에서는 ‘지나간 시간과 사라진 기억’을 환기시키는 사진작업들을 모아서 소개합니다. 비르테 피온텍은 한 개인의 정체성에 영향을 주는 ‘가족과 집’의 분위기를 시각화한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물리적으로 사라지고 이후에도 가족과 집은 우리 안에 어떻게 살아가는가? 마찬가지로 가족관계와 유대감에 관심을 지닌 리즈 샌더스는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의 일상을 카메라로 따라가며, 점점 기억이 사라지는 아버지를 대신해 당신의 기억을 복기합니다. 다음으로, 작고 미세한 변화들을 예민하게 감지한 미치 나카노의 사진을 바라보면 지나간 순간의 빈자리마다 어떤 기억과 그리움이 스며드는지 머릿속에 그려보게 됩니다.

두 사람이 헤어지고 그들이 함께 머물던 방을 떠난 뒤에도, 서로의 얼굴이 희미해질 만큼 시간이 지난 뒤에도, 방에는 두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그들의 흔적이 남는다. 두 사람만 읽을 수 있는 기억이, 두 사람에게만 보이는 잔상이 고여있는 방은 그들에게 사진 한 장과 다를 바 없다. 니나 바타넨의 사진 작업《A Room’s Memory》를 바라보면 그런 덧없는 기억과 부질없는 그리움을 떠올리게 된다.
- 니나 바타넨, 《A Room’s Memory》
3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나서는 그때의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지 않는다. 바로 이 글이 내가 마지막까지 간직하고 싶은 장면을 대신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3일 동안의 용기, 다정함, 고마움, 오직 나를 향하는 반짝이는 눈동자들이 내 안에 사진처럼 박혀있다. 나는 그 사진을 마음에 오래오래 품고 살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사진은 나를 떠나 어딘가로 향할 것이다. 그때의 나처럼 온기가 절실한 누군가에게 가닿을 것이다.
- 김신회, 《마음에 담은 사진 한 장》
목차
특집 | 메모리, 메모리, 메모리,
001 The Two Strands _ Juno
014 The Transcendent Moments _ Sergiy Barchuk
040 썸웨어 _ 신선혜
050 A Room’s Memory _ Niina Vatanen
060 부재의 아카이브 _ 류준열
072 오브젝트 _ 구본창
086 Skin _ Ariana Page Russell
098 마음에 담은 사진 한 장 _ 김신회
104 사진이 되지 못한 순간들 _ 무루
110 또 한 번 새로이 살 수 있다면 _ 강윤정
116 진심어린 거짓 기억들 _ 문목하
122 그런 거 없었으면 좋겠어 _ 백은선
129 돌아봄과 마주봄 _ 박지수
142 Velocipedia _ Gianluca Gimini
152 Archival Studies _ Marjolaine Gallet
162 I Made Them Run Away _ Martina Zanin
174 Touched _ Robin Cracknell
188 Abendlied_ Birthe Piontek
200 Be Here to Love Me _ Liz Sanders
214 Akatsuki _ Michi Nakano
226 [영화의 장소들] 영화관, 그토록 위험한 장소 _ 유운성
232 [docking! 2020] 나는 너의 목격자야 _ 편지지
242 [사진-픽션] 새벽의 창은 얼음처럼 투명해서 _ 장혜령
256 [에디터스 레터] 부드럽게, 천천히, 오래, _ 박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