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1919년 3·1에 태어난 준섭과 다섯 살 어린 남동생 영섭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김종구, 누나 금자와 유년시절을 보낸다. 경성으로 유학한 형제는 작은아버지 김종만의 집에 의탁하지만 일제 강점기 조선식산은행의 간부로 번듯하고 유복한 생활을 하는 김종만이 탐탁지 않다. 준섭은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일찍 돈을 벌기 위해 직조공장을 인수하고 금자 누나의 소개로 참하고 예쁜 이순과 결혼한다.
이순과 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지만 두 번의 유산을 겪은 후 힘들게 딸 희서를 낳는다. 어렸을 적부터 가족에 대한 아쉬움에 많은 자손을 원했던 준섭의 소망은 이순이 불의의 사고를 당한 후 소원한 일이 되고 만다. 결국 종손의 대를 잇기 위해 시앗을 들인 준섭은 순탄할 것만 같았던 인생에 예상치 못한 일을 만난다.
출판사 리뷰
<가시꽃>은 1919년 3·1운동 즈음부터 해방 이후까지의 이야기를 여러 인물의 삶을 통해 담담하게 서술한 작품이다. 특히 이순의 삶은 그 시대 여성의 고단함을 찬찬히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한국 최초 여성뉴스 앵커를 지내며 약 50여 년 동안 각 방송국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박찬숙의 소설이다. 작가는 늘 세상과 사람이 궁금했다. 살아가면서 겪은 상처와 고통을 위로하고 치유하기 위한 글을 언젠가 쓰고자 했는데 이 작품이 그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부부는 무엇이고 모성은 무엇인가. 그리고 사랑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오랫동안 묵히고 써온 이 작품을 작가는 굳이 최근 문투로 고치길 원하지 않았다. 현재 70이 훌쩍 넘은 작가의 지금 그대로 생각을, 사람을, 시대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작품의 문체는 거칠고 친절하지 않다. 또한, 조사들이 많이 생략되어 있고 최근에 많이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기본적인 설명을 제외하면 각종 미사여구, 상황묘사들이 많이 삭제되고,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느낌의 글이다. 하지만, 글을 보다 보면 어느새 그 시대에 스며들어 함께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특히, 마지막 주인공의 선택은 여러 가지 생각이 중첩되어 먹먹하게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그믐이 됐는지 서쪽 창문이 까맣게 닫혀 있는 걸 이순은 보고 있었다. 준섭이 자던 자리는 온기가 사라지고 스산스레 빈 이불이 덮여 있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잦아들었다. 그래도 안방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순은 설핏 잠이 들었다. 이제껏 흔들리지 않았던 가슴은 도끼질을 당하는 장작처럼 고통에 전율했다.
한여름 다투어 피었던 꽃들이 시들어 말라가고 이파리들은 색이 바래고 있었다. 그중 어느 꽃 한 송이가 새삼스러운 외마디처럼 피어있었다. 오뉴월에 피는 양귀비였다. 계절 지나서 핀 꽃이 처연하게 아름다웠다. 쳐다보는 이 없어도 혼자 웃을 수 있는 저 꽃처럼 아름답고 싶었다. 덧없는 사랑에 기대어 그믐밤을 밝히는 시간은 오늘로 충분했다. 슬픔이란 무엇인가. 슬픔의 도가니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이 모습은 스물아홉 이순의 모습일 수는 없었다. 슬픔이 흘러간다. 슬픔이 소리 내지 않고 흘러간다.
내 뱃속 탯줄을 끊어 낳은 자식인 양 호호 불며 몇 달을 키웠어도 그 밥상은 내 밥상이 아니었다. 품에 안고 자장가를 토닥거렸어도 그건 빌려온 위안이었다. 차용한 모성 흉내였다. 차라리 아무 연고도 없는 문 앞의 업둥이라면 이 마음 같지는 않을 것이다.
누가 속인 것도 아닌데 속은 것 같은 불쾌감이 떫은 감을 베어 문 것 같이 텁텁했다. 아무리 입속을 헹구어 내도 떫은맛은 앙금처럼 남았다. 준섭의 씨였기에 더욱 묘한 배신감과 불쾌가 이순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낳은 자식이라도 내 마음 같지 않은데 명서를 낳은 봉자가 있지 않은가. 내 속으로 난 자식 희서는 딸이라고 뒤로 돌리고 제사 지내줄 아들이라고 명서에게 쏟은 몇 달간의 정성이 억울했다.
돈으로 산 아이. 돈으로 보쌈해온 아이. 그것도 내 돈 아니고 준섭의 돈으로. 그런데 왜 그게 내 자식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것일까. 얼음물 목욕을 한 후처럼 깨어났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박찬숙
1945년 경기도 출생1968년 숙대 국어국문학과 졸업1968년 KBS 국영 공채 1기1976년 KBS 보도방송위원1976년 한국 최초 여성뉴스 앵커 라디오 정보센터 박찬숙입니다, 심야토론 등등 KBS, YTN, MBN, 채널A 에서 50여 년간 시사프로그램 다수 진행 2004년 17대 국회의원2012년 2대 한국터키친선협회 회장2021년 (사) 한국아나운서클럽 10대 회장수상2000년 27회 한국방송대상 앵커상 서울언론인클럽 언론상 저서1992년 동서문학 신인상 ‘파꽃과 꼬리’ 당선1995년 ‘세상을 연다, 사람들을 연다’ (시사칼럼집)1998년 ‘사막에서는 날개가 필요하다’ (소설)2007년 ‘유럽의 도시 공공디자인을 입다’(공저) ‘일본 경제, 공공디자인으로 다시 살아나다’(공저)2014년 박찬숙의 시선, ‘물결 숨결’ (사진칼럼집)
목차
작가의 말
1. 만남
2. 별리
3. 행복
4. 가면
5. 순애
6. 작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