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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안중근 자서전
일제의 심장을 쏘다
푸른나무 | 3-4학년 | 202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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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재해석한 <어린이를 위한 안중근 자서전>을 통해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가 처했던 상황,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불철주야 노력하였던 당시 독립운동가에 대하여 다시 한번 관심을 갖고, 그들의 치열했던 삶과 올바른 애국심에 관해 깨닫게 될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죄명으로 감옥에 수감된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하여 재구성하였다.

친구들과 등산을 갔다가 아래로 굴러 떨어져 혼쭐이 난 사연, 억울한 일을 당한 친구 이경주를 위해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섰던 사연, 아버지를 괴롭힌 청나라 의사와 다툼을 벌였던 사연 등 이 책에서는 이전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안중근 의사의 친근하고도 인간적인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와 더불어 ‘아관파천’, ‘국채보상운동’, ‘갑신정변’ 등 우리나라 역사에서 꼭 알아야만 하는 주요한 사건을 마치 역사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찬찬히 들려주듯이 하나하나 짚어 가며 정성스레 설명하였다.

  출판사 리뷰

만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는 여순 감옥에 갇혀 사형 선고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죽음을 코앞에 둔 그 시점에서도 안중근 의사는 결코 좌절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일을 도모하였다. 그리하여 탄생한 책이 바로『안응칠 역사』이다. 안중근 의사가 감옥에서 쓴 이 자서전은 한글이 아니라 한문으로 쓰여졌는데, 이 글이 발견되어 우리말로 번역됨으로써 우리는 안중근 의사의 삶을 보다 가까이에서 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 안중근 의사는 어린 시절 가볍고 급한 성격 때문에 어른들에게 꾸지람을 자주 들었고, 그래서 이름도 ‘무거울 중(重)’ 자를 써서 ‘중근’이라 지었다고 한다. 왠지 모르게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안중근 의사의 인간적인 모습이 재미있게 다가오는 일화이다.

3월의 봄날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산에 올라간 나는 험한 바위가 쌓인 낭떠러지 끝에 이르렀다. 그 벼랑 끝에는 탐스러운 꽃이 피어 있었고, 그것을 꺾으려던 나는 그만 발을 헛디뎌 한참을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내 눈에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그것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나무에 의지해 몸을 추스르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만일 두서너 척(약 30. 3센티미터의 길이 단위)만 더 아래로 굴렀으면 벼랑 아래로 떨어져 몸이 가루가 될 뻔했다.
놀라서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친구들이 나를 밧줄로 끌어 올려 주었다. 다행히 몸에는 별다른 상처 없이 등만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함께 기뻐했다.
이것이 내가 죽을 고비를 면한 첫 번째 사건이다.

철종이 아들을 남기지 못한 채 죽자, 궁궐에서는 왕족 중 한 사람을 골라 급히 왕위에 앉혔다. 그가 바로 1863년 12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고종이었다. 왕은 아니었지만 왕을 아들로 둔 흥선 이하응은 대원군(왕위에 오르지 못한 채 왕을 아들로 둔 왕족의 명칭)으로 뛰어올라 어린 왕을 대신하여 나랏일을 다스렸다.
그는 오랫동안 세도정치를 하던 안동 김씨 세력을 몰아내고 인재를 등용하려 했다. 또 농민들에게 부당한 세금을 징수하는 등, 양반이 농민을 괴롭히는 데 이용되어 온 서원을 철폐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흥선대원군은 한때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오로지 왕권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경복궁을 화려하게 짓고, 바닥난 나랏돈을 채우려고 각종 세금을 새로 만들어 백성들의 불만을 샀다.

그다음 해인 1909년, 나는 엔치야로 돌아와 동지들과 함께 상의하였다.
“이제까지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하였으니 비웃음을 면하기 힘들 것이오. 그러니 우리 모두 손가락을 끊어 맹세를 하고, 단체를 만듭시다. 그런 다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우리의 뜻을 이루도록 합시다.”
그러자 모두가 내 말을 따르겠다고 하였다. 열두 사람이 모두 왼손 약지를 잘라 그 흘러나오는 피로써 태극기 앞면에 ‘大韓 獨立(대한 독립)’이란 네 글자를 크게 적었다. 그리고 ‘대한 독립 만세’를 큰 소리로 세 번 외치고는 흩어졌다.
우리는 여러 곳을 다니며 동포들을 모으고, 신문을 꾸준히 읽으며 나라 안팎의 소식을 알아 가는 것으로 대한의 독립을 준비하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안중근
본관은 순흥(順興). 황해도 해주 출신. 할아버지는 진해현감 안인수이다. 아버지 진사 안태훈(安泰勳, 安泰勛)과 어머니 조씨(趙氏) 사이의 3남 1녀 중 맏아들이며, 아내는 김아려(金亞麗)이다. 어려서는 안응칠(安應七)로 불렸고 해외생활 중에도 안응칠이라는 이름을 많이 사용해 자(字)가 되었다.6, 7세 때에 황해도 신천군 두라면 청계동으로 이사하였다. 이곳의 아버지가 만든 서당에서 동네 아이들과 함께 사서(四書)와 사기(史記) 등을 읽었다. 또 틈만 나면 화승총을 메고 사냥해 명사수로 이름이 났다. 16세가 되던 1894년, 아버지가 감사(監司)의 요청으로 산포군(山砲軍)주 01)을 조직해 동학군 진압에 나섰을 때 참가하였다.다음 해에 천주교에 입교해 토마스[多默]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한때는 교회의 총대(總代)를 맡았다가 뒤에 만인계(萬人契)주 02)의 채표회사(彩票會社)주 03) 사장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교회 신자들과 함께 만인계의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등 수완을 발휘하였다.1904년에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해외 망명을 결심, 산둥[山東]을 거쳐 상해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알고 지내던 프랑스인 신부로부터 교육 등 실력 양성을 통해 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충고를 듣고는 다음 해 귀국하였다.1906년 3월에 진남포 용정동으로 이사해 석탄상회를 경영하였다. 정리한 뒤에는 서양식 건물을 지어 삼흥학교(三興學校)를 설립하였다. 곧이어 남포(南浦)의 돈의학교(敦義學校)를 인수해 학교 경영에 전념하였다.1907년에는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장이 되면서 반일운동을 행동화하였다. 이 해 7월에 한일신협약이 체결되자 북간도로 망명하였다. 3, 4개월 뒤에는 노령으로 갔다. 노브키에프스크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 한인청년회 임시사찰이 되었다.이곳에서 이범윤(李範允)을 만나 독립운동의 방략을 논의하였고, 엄인섭(嚴仁燮)·김기룡(金起龍) 등 동지를 만나 동포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의병 참가를 권유하였다. 의병지원자가 300여 명이 되자 김두성(金斗星)·이범윤을 총독과 대장으로 추대하고 안중근은 대한의군참모중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때부터 무기를 구해 비밀리에 수송하고 군대를 두만강변으로 집결시켰다.1908년 6월에 특파독립대장 겸 아령지구군사령관이 되어 함경북도 홍의동의 일본군을, 다음으로 경흥의 일본군 정찰대를 공격, 격파하였다. 제3차의 회령전투에서는 5,000여 명의 적을 만나 혈투를 벌였지만 중과부적으로 처참하게 패배하였다.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뒤 노브키에프스크·하바로프스크를 거쳐 흑룡강의 상류 수천여 리를 다니면서 이상설(李相卨)·이범석(李範奭) 등을 만났다. 노브키에프스크에서는 국민회·일심회(一心會) 등을 조직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해 애국사상 고취와 군사 훈련을 담당하였다.1909년 3월 2일, 노브키에프스크 가리(可里)에서 김기룡·엄인섭·황병길(黃丙吉) 등 12명의 동지가 모여 단지회(斷指會, 일명 단지동맹)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안중근·엄인섭은 침략의 원흉 이토[伊藤博文]를, 김태훈(金泰勳)은 이완용(李完用)의 암살 제거를 단지(斷指)의 피로써 맹세하고 3년 이내에 성사하지 못하면 자살로 국민에게 속죄하기로 하였다.9월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원동보(遠東報)』와 『대동공보(大東共報)』의 기사를 통해 이토가 러시아의 대장대신(大藏大臣) 코코프체프(Kokovsev, V.N.)와 하얼빈에서 회견하기 위해 만주에 오는 것을 알았다. 안중근은 우덕순(禹德淳, 일명 禹連後)·조도선(曺道先)·유동하(劉東夏)와 저격 실행책을 모의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1909년 10월 26일, 이토를 태운 특별 열차가 하얼빈에 도착하였다. 이토는 코코프체프와 약 25분간의 열차 회담을 마치고 차에서 내렸다. 이토가 러시아 장교단을 사열하고 환영 군중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안중근은 침착하게 걸어가 이토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4발을 쐈다. 다시 이토가 아닐 것을 대비해 주위 일본인에게 3발을 쐈다. 처음 쏜 4발 가운데 3발은 이토, 1발은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도시히코[川上俊彦]의 오른팔을 맞혔다. 이어서 쏜 3발은 비서관 모리타이지로[森泰二郞], 만주철도이사 다나카세이타로[田中淸太郞]를 맞혔다. 1발은 플랫폼에서 발견되었다.러시아 검찰관의 예비 심문에서 한국의용병 참모중장, 나이 31세로 자신을 밝혔다. 거사 동기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토가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 평화의 교란자이므로 대한의용군사령의 자격으로 총살한 것이지 안중근 개인의 자격으로 사살한 것이 아님을 밝혔다.관동도독부지방법원 원장 마나베[眞鎬十藏]의 주심으로 여섯 차례의 재판을 받았다. 안중근은 자신을 일반 살인피고가 아닌 전쟁포로로 취급하기를 주장하였다. 국내외에서 변호 모금운동이 일어났고 변호를 지원하는 인사들이 여순(旅順)에 도착했으나 허가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일본인 관선 변호사 미즈노[水野吉太郎]와 가마타[鎌田政治]의 변호조차 허가하지 않으려 하였다.재판과정에서의 정연하고 당당한 논술과 태도에 일본인 재판장과 검찰관들도 탄복하였다. 관선 변호인 미즈노는 안중근의 답변 태도에 감복해 “그 범죄의 동기는 오해에서 나왔다고 할지라도 이토를 죽이지 않으면 한국은 독립할 수 없다는 조국에 대한 적성(赤誠)에서 나온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변론하였다.언도 공판은 1910년 2월 14일 오전 10시 30분에 개정되었고 재판장 마나베는 사형을 언도하였다. 죽음을 앞둔 며칠 전 안정근(安定根)·안공근(安恭根) 두 아우에게 “내가 죽거든 시체는 우리나라가 독립하기 전에는 반장(返葬)하지 말라.……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고 유언하였다.3월 26일 오전 10시, 뤼순감옥(旅顺监狱)의 형장에서 순국하였다. 안중근의 일생은 애국심으로 응집되었으며, 안중근의 행동은 총칼을 앞세운 일제의 폭력적인 침략에 대한 살신의 항거였다.

  목차

엮은이의 말

제1부 안응칠 역사
내 이름은 안응칠
죽을 고비를 겪다
세례를 받다
해결사 안응칠
봉변을 당하다
나라를 위해 결심하다
빼앗긴 나라를 찾아서
대한의 의군, 안응칠
벼랑 끝에 몰리다
손가락을 끊어 맹세하다
총성이 울리기까지
이토 히로부미를 쏘다
안중근 의사의 순국

제2부 안중근 의사의 삶 엿보기
역사로 보는 안중근 의사의 생애
·안중근 의사의 삶
사진으로 보는 안중근 의사의 생애

책속의 책, 업그레이드 역사 상식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흥선대원군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명성황후의 죽음
아관파천과 대한제국
아관파천 후 빼앗긴 조선의 이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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