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인류사의 비극을 이보다 더 생생한 필치로 쓸 수 없다”
- 히가시노 게이고
★ 서점대상 3위, 트위터 문학상 대상, 나오키상·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최종 후보작★단 두 편의 소설로 나오키상, 서점대상, 주간 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등 일본 내 굵직한 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문학계를 휩쓴 후카미도리 노와키의 새로운 로드 스릴러가 알에이치코리아에서 출간된다. 이 소설도 전작 『전쟁터의 요리사들』에 이어 나오키상 및 서점대상을 비롯해 각종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평범한 서점 직원이었던 작가는 여성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시대를 배경 삼아 현재 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데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거듭나기까지 십 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세계 2차 대전 직후, 소련·미국·영국의 공동 통치를 받던 독일의 한 마을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승전국 유력 인사가 양치질 도중에 사망한 것. 그가 남긴 실마리라고는 “그리운 과거가 나를 만나러 왔다”라는 비밀스러운 말뿐이었다. 이 사건을 접한 소련군은 백방으로 수색을 가해 마침내 아우구스테라는 소녀를 용의자로 검거한다. 그녀의 알리바이가 충분히 입증된 상황이었음에도 전후 혼란의 시기에 정치적 유력 인사, 그것도 남성을 죽였다는 이유만으로 각 승전국 소속 군인들은 아우구스테에게 상상할 수조차 없는 위협을 가한다. 이제 이 열일곱 소녀는 자신을 위해 스스로 결백을 밝히려 한다.
NHK에서 라디오 드라마로 각색할 만큼 영화 같은 전개가 백미인 『무죄의 여름』은 아우구스테가 사건의 전말을 알아내는 이틀간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숨 쉴 틈 없이 내달리는 500여 페이지를 지나 결말을 앞두고야 독자들은 겨우 숨 고르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방심하지 말 것, 뒤이어 작가가 숨겨둔 가슴 먹먹한 반전이 긴 여운으로 남을 차례다.
피비린내 나는 참극 속에서 생존은 과연 축복일까주인공의 아버지는 이웃의 밀고로 경찰에 끌려갔고, 어머니는 독약을 마시고 아버지를 따라 자살했다. 이복동생은 원인 모를 병으로 갑자기 죽었고, 가난 속에서도 서로 돕던 이웃들은 하나둘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가 사라졌다. 그로부터 6년 뒤 1945년, 독일이 패전하면 예전처럼 평화가 올 줄 알았던 그 자리에는 승전국들의 압제와 살아남은 자들 사이에 피어오른 또 다른 혐오만 들끓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 소중한 사람을 모조리 잃고 살던 집마저 사라진 채 홀로 남은 열일곱 소녀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아우구스테가 할 수 있었던 건 인종 청소의 소용돌이에서 은신처를 찾아 떠돌고, 배급표를 팔아 목숨을 연명하다 급기야 자신을 덮쳐온 군인에게 그녀가 한 번도 쥐어본 적 없던 총부리를 겨누는 것이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소설임에도 이야기는 끝날 때까지 그녀에게 안락함을 허락지 않는다. 그녀 주위에는 온통 진실을 숨기고 지원군인 척 그녀와 여정을 함께 하면서 그녀를 감시하거나 그녀가 죽든 말든 방관하는 이들뿐이다. 아우구스테는 이런 상황에 절대로 순응하지 않는다. 그저 누구보다 빠르게 결단하고 실행에 옮기며 움직인다. 소련군에게 협력하고, 미군이 가하는 위협에 굴하지 않으면서 계속 여정을 이어갈 수 있도록. 자신을 구명하려면, 이름만 알고 있는 에리히라는 남성을 이틀 안에 찾아야 하기에.
상흔이 증오가 되는 순간에도 체제는 변하지 않는다일본 유명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천사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소설은 전쟁을 겪어본 적 없는 작가가 치밀한 준비 끝에 전쟁 한복판에 있는 듯 실감 나는 감각을 선보이며 독자를 사로잡았다. 특히 잔인한 장면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방식을 썼음에도 읽다 보면 절로 몸서리치게 만드는 끔찍함이 전해지는 게 압권이다. 그래서 쉽사리 읽어내기가 힘들다는 독자의 평은 이 책에서만큼은 호평으로 통한다.
또 전쟁소설에 그치지 않고, 미스터리와 역사적 요소를 두루 활용해 누군가에게는 유대인 학살이 떠올라 눈물짓는 가슴 아픈 이야기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폭압을 막기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지치지 말고 행동하라는 용기를 주는 이야기로 거듭났다. 한 권의 소설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꿀 순 없지만, 결단이 필요할 때 용기를 주는 책을 남기고 싶다는 작가의 열망이 이야기 곳곳에 절절히 드러나 있다. 그런 연유로 후카미도리 노와키는 특별히 출판사에 요청해 한국어판 첫머리에 ‘침략과 학살을 자행했던 나라임을 기억하라’는 뜻을 담아 소설을 썼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지금도 세계에서는 전쟁이 자행되고 있어 많은 이들을 고통으로 몰고 있다. 이 소설을 통해 증오와 혐오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과 틀 밖으로 나갈 힘을 얻길 바란다.

오늘도 쾌청하게 맑다. 태양은 층수 높은 집합주택이 늘어선 거리를 벌꿀색으로 비추고 거리에 짙은 그림자를 또렷이 드리웠다. 곳곳의 굴뚝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문이 쾅쾅 열렸다 닫히고, 사람들이 움직이고, 태엽을 감은 장난감처럼 도시가 살아 숨 쉰다. 길바닥에 깐 돌이 상할 대로 상한 길에 발부리가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걷는데, 눈앞에 벌거숭이 아이가 불쑥 뛰쳐나오더니 바로 뒤에 어머니임 직한 여성이 따라 나와 아이의 목덜미를 붙잡고 말없이 스웨터를 입히자 까치집 지은 어린애의 머리가 구멍으로 쑥 빠져나왔다.
카페가 문을 열고, 하얀 앞치마를 두른 노인이 칠판 앞에 웅크려 앉아 몽땅한 분필로 ‘오늘의 아침, 호밀빵 포함 콩 수프 20마르크, 소시지 100마르크, 진짜 쇠고기 수프 120마르크’라 고 적었다. 카페 의자에 앉은 사람은 대부분 군복을 입은 적군 장교다. 그 앞을 중년 여성이 세탁 봉투를 쌓은 짐차를 끌고 지나가고, 작은 여자아이가 돌멩이를 늘어놓고 “한 개에 20마르크야.” 하며 소꿉장난을 했다. 길모퉁이에는 소련의 붉은 깃발을 단 배급차가 서 있고 제각기 접시를 든 독일인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행렬은 중간부터 지수전 앞에 늘어선 줄과 뒤섞여 꾀죄죄한 헌팅캡을 쓴 남자가 어느 쪽이 어떻게 줄을 섰는지 알 수가 없다며 투덜거린다. 두 량짜리 노면전차가 묵직하게 천천히 달려와 만원인 칸에 승객을 더 태우자 사람들이 출입구에서 삐져나왔다. 그렇게 살아가는 독일인 대부분이 오른팔이나 가방 혹은 몸 어딘가에 하얀 천을 둘렀다. 항복의 표시다.
진녹색 군용 트럭 옆을 걸을 때 달리지 않으려고 자신을 타 일렀다. 그 시절처럼. 숨어 지내던 이다에게 식사를 나르던 나 날 동안 나는 절대로 뛰지 않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미군은 친위대나 비밀경찰과는 다르다. 설령 들통나더라도 사정도 듣지 않고 단두대에서 목을 매달거나 총으로 쏘는 짓은 하지 않는다. 알지만 안으로 침입한 뒤부터 심장이 불안으로 터질 것 같았다.
U.S.ARMY의 하얀 스탬프를 차체에 찍은 군용 트럭 운전사는 더러운 양말을 창문으로 내밀고 군 기관지 《스타스 앤드 스트라이프》를 읽었다. 다음 트럭은 빈 짐칸에서 병사가 트럼프 카드로 포커에 열을 올리고 있고, 다음 UNRRA 트럭은 운전석 문을 열고 팔짱을 낀 민간인 남성이 코를 골며 꾸벅꾸벅 졸고 있다. 왼쪽 어깨 아래에 UNRRA의 빨간 와펜이 달려 있었다. 나는 전후좌우를 확인하고 와펜을 손으로 잡았다. 운 좋게도 대충 꿰매 붙였는지 실이 뜯어져 살짝 당겼을 뿐인데 빨간 실이 천에서 스르륵 빠졌다. 그가 깨지 않도록 신중하게 와펜 을 뜯고 웃옷 뒤에 신분증을 고정했던 안전핀을 풀어 신분증은 가방에 넣고 핀으로 웃옷 왼쪽 어깨에 와펜을 고정했다.
트럭이 가려서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이 다니는 길에는 접이식 테이블 몇 개를 내놓고 화물 분류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각각 ‘의류’, ‘일용품’, ‘식량’이란 종이가 붙어 있다. 빠른 말로 떠들면서 분류하는 여성들 틈을 봐서 나는 쌓인 나무 상자 하나를 들고 군인과 자선조직 직원에 섞여 서쪽 구획으로 들어갔다. 구획 입구에도 게이트가 있어 흑인 공병이 트럭과 통행하는 사람을 검문했다. 병사식당 개수대 담당과 어딘지 모르게 비슷하지만 계급장은 특기중사로 신분은 훨씬 위였다. 나는 숨을 깊게 내쉬면서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영어 응답을 시뮬레이션 하고 열려 있는 게이트로 돌진했다. 나에게는 수상한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다. 허가받은 인간이다.
그런데 내부까지 한 걸음 남았을 때 공병이 “이봐, 거기!”하고 불러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