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DJ는 천문학자와 같아서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새로운 음악이나 숨어 있는 음악을 찾아서 알려주는 존재예요.”40년 전 라디오 프로그램 음악이 흐르는 밤에를 진행하며 이 땅에 프로그레시브록, 아트록을 소개하고 전파한 DJ 성시완의 삶과 음악 인생을 인터뷰어 지승호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하는 책이다. 음악 이외의 방법으로는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은 성시완의 개인적인 모습과 DJ이자 세계적인 음반 컬렉터, 음반 사업가 그리고 공연 프로모터로서 활약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여전히 음악을 많이 듣고 뛰어난 음악을 찾아다니며, 이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성시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청취자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사하고 마니아들에게 열정적 지지를 받으며 많은 여운을 남긴 전무후무한 아트록 전문 프로그램을 진행한 성시완과 그의 애청자이자 인터뷰어인 지승호가 만들어내는 이중주!성시완,이라는 이름에는 ‘선구자’ ‘최초’ ‘개척자’와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이런 수식어의 역사는 중학교 시절 사우디아라비아 대사의 비서였던 큰누나를 통해 처음으로 접한 이집트의 디바 움 쿨숨의 음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를 계기로 중동 음악에 매료된 그는 중학교 시절 영어 공부를 위해 시작한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의 펜팔을 통해 음악 정보를 교환하면서 세계의 음악을 접하게 된다. 그렇게 스웨덴 친구와 펜팔을 하며 마누스 어글라를 알게 되었고, 그게 처음으로 아트록을 접한 계기였다고 한다. ‘헤드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소년 성시완은 밤새워 음악을 듣고,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손수 음악을 고르고 멘트를 넣어 디제잉을 해서 만든 녹음 테이프 1,000여 개를 선물하며, DJ로서 훈련을 한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박원웅과 함께 ‘나의 애장음반’ 코너에 출연해 오시비사와 컨티넨트 넘버 6의 음반을 소개하며, 상업 방송사상 처음으로 아프리카 음악을 소개했다. 그후 대학에 입학해 1981년에 열린 제1회 전국대학생 DJ 콘테스트에 출전에 대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대학 2학년의 나이로 MBC 음악이 흐르는 밤에 DJ가 되어 2년 동안 진행했다.
이는 당시에도 지금도 또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방송사상 나오기 힘든 아트록 전문 프로그램으로서 한국에 아트록을 전파했고, 성시완의 이름에 ‘아트록의 선구자’라는 수식어를 붙게 했으며, 마니아들로부터 열정적 지지를 받아 전설이 되었다. 고故 신해철도 이 방송의 애청자로 이 방송을 통해 소개된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고 했으며, 후에 성시완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인연을 쌓았다. 음악이 흐르는 밤에 이후에 진행한 성시완의 디스크쇼 등의 프로그램 역시 아트록 전문 프로그램으로서, 상업성을 추구하는 방송 현실에서 성시완이 굽히지 않는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지켜냈고, 이를 뒷받침해준 것은 열정적 지지를 보내준 애청자들이었다고 술회한다.
세계적인 음반 컬렉터이자 음반 사업가 그리고 아트록 그룹을 한국 무대에 세운 공연 프로모터올해는 성시완에게 음반 수집 50년, 음악이 흐르는 밤에 40주년 그리고 ART ROCK 매거진 창간 30주년이 되는 해다. 그에 맞춰 출간하는 이 책에는, 음악을 향한 그의 열정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이 소개된다. 음반 컬렉터로서의 성시완은 세계 각국을 다니며 음반숍이 문을 열 때부터 닫을 때까지, 영업시간 내내 알파벳 A부터 Z까지 장르별로 모든 음반을 다 뒤졌다고 한다. 꿈도 음반을 사는 꿈을 꿨다고 하니, 얼마나 한곳에 집중하고 있었는지 잘 알 수 있다. 음반 컬렉터의 삶은 음반 사업과 이어져 있는데, 그의 컬렉팅의 목적은 개인적 소장보다는 국내에 좋은 음악을 소개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시완레코드를 설립해 많은 음악을 라이선스로 발매했고, 홍대와 압구정 등에 매장을 운영하며 음반 사업가로서 활동했다. 자기 이름을 내걸고 자신감 있고 야심만만하게 운영한 음반 사업은 2021년에 폐업을 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지만, 아트록 앨범들을 국내에 좋은 음질과 앞서가는 재킷 디자인으로 발매했다는 것과 라테 에 미엘레와 같은 경우 이탈리아에서보다 10배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의 족적을 남겼다.
음반 사업을 하면서 친분을 맺은 아티스트들과의 교류를 통해, 라테 에 미엘레와 뉴 트롤스의 공연을 유치해 국내 아트록 팬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주기도 했다. 당시 공연 유치에 대한 많은 계획이 있었으나,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공연 중 일어난 관객 압사 사건으로 공연전면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무산되었고, 이로써 공연 프로모터로서의 이력이 더 이상 발전되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세상에 아름다운 음악이 무궁무진하니, 편식하지 말고 다양하게 많이 듣고 많이 감동하기를 바랍니다 ㈜시완레코드를 운영하면서 SBS의 프리랜서 PD로 들어가 음악천국 등을 진행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맡으며 PD로서 그리고 DJ로서의 역량을 펼친다. 퇴사 후 대학 강단에 서기도 하고, 유튜브에서 성시완의 월드 뮤직을 7~8년 동안 방송했으며, 경인방송에서 성시완의 사이언스 라디오를 진행하던 이야기들, 그리고 세계 최초로 앨범 재킷 전시회를 준비하던 에피소드도 소개한다.
여전히 음악을 많이 듣고 뛰어난 음악을 찾아다니며 이를 우리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성시완은, 아트록에 대한 리뷰를 담은 책과 오디오북 등의 발매를 통해 그동안의 작업을 정리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하늘의 별만큼 많은 새로운 음악들을 듣고 감동하기를 바란다는 당부의 말을 전한다.
1장 음악적 구루, 성시완지 그러다 보니까 선생님이 소개해주는 음악을 듣고 그 음악을 좋아하게 된 사람들은 선생님 프로그램이 폐지되면 열을 받지 않습니까? 내 취향이 무시당하는 것 같고, 모든 음악 프로그램이 똑같아야 되냐는 분노가 생기는데요. 5퍼센트가 좋아하는 음악이 있으면 5퍼센트는 그런 음악을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반적인 곡만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대세가 되잖아요. 선생님은 그런 고민들을 훨씬 더 많이 해오셨을 것 같습니다.
성 그것 때문에 계속 고민해왔죠. 그리고 물론 그것은 애청자들뿐만 아니라, 제 본질적인 이슈였어요. 늘 그렇게 고민을 해서 살아왔고, 특히 가장 잊히지 않는 게 1984년 4월 9일이에요. 제가 마지막 방송을 한 날인데요. 사실은 그날 이런 멘트를 하고 싶었어요. 4월 10일이에요. ‘이 방송이 끝나면 새벽 2시인데, 제 가 애국가를 틀고 나면 내일부터는 다른 진행자가 방송을 할 텐데요. 애청자 여러분들 광화문으로 오십시오. 광화문에서 생맥 주 한잔합시다!’라고 말하고 싶은데, 차마 못 했어요. 나중에 들 은 얘긴데 그날 음악 많이 듣던 사람들, 그 프로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방송국에 전화를 많이 했고, FM 주파수를 없애버리겠다는 친구들도 있었대요. 과격하게 FM부로 전화를 많이 했나 보더라고요. 다른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것과 달리 그 시간대는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2장 제1회 DJ 콘테스트에 출전하다 그리고 미국 유학 생활지 아무래도 그 시절에는 DJ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많이들 참여했겠네요.?
성 많이 했어요. 1회 때는 360팀, 대부분이 다 대학교 방송국에 서 나왔어요. 개인적으로 참여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전제를 대학생으로 뒀으니까요. 저는 제 친구 얘기를 듣고서 DJ 콘테스트를 준비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학교 방송국에서 녹음도 많이 했고, 개인들이 방송 장비 같은 것들이 없었기 때문에 힘들었을 텐데요. 저는 집에서 좋은 퀄리티로 준비할 수 있었던 게 다행 이었고, 그전에 장난식으로 녹음한 게 굉장히 많았어요. 친구들, 은사님들한테 학년 끝나고서 감사의 마음으로 드렸던 테이프들도 있지만 장난으로 녹음한 것도 많았고, 일기식으로 만든 것 도 많았고, 진짜로 DJ를 한 것도, 실험적으로 녹음한 것도 많았거든요. 그런 것들을 모아서 출품을 했기 때문에 쉬웠어요. … 원래 한 30분짜리인데 이것은 8월 13일 〈박원웅과 함께〉에 소개됐고, 실전에서는 15분으로 줄이라고 해서 9월 15일에 문화체육관에서 결선할 때 했죠. 그때 했던 작품이 이거예요. 들어보세요. …
작가 소개
지은이 : 지승호
끊임없이 당대의 문제에 천착하며 시대의 징후를 읽어왔다. 당대의 ‘문제적 인물’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21년째 꾸준함 하나로 버티며 60여 권의 책을 냈다. 이 책으로 어린 시절부터 우상이었던 성시완을 만나 인터뷰를 하며, ‘성시완의 아이들’에서 ‘성덕’이 되었다. 열심히 읽고 성심껏 듣는 능력을 가진 지승호는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를 인터뷰하고 있을 것이다. 유튜브에서 지승호tv를 운영 중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 《아, 신해철》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괜찮다, 다 괜찮다》 《신해철의 쾌변독설》 등 다수의 책을 냈다.
지은이 : 성시완
어렸을 때부터 세미클래식 등 음악을 즐겨 들었다. 중학교 시절 펜팔을 열심히 하며 외국 친구들과 사귀면서 음악 정보를 모으고 음반을 수집했다. 고등학생 때 〈박원웅과 함께〉 ‘나의 애장음반’ 코너에 출연해 아프리칸록과 유러피언록을 소개하며, 상업 방송사상 처음으로 아프리카 음악을 들려주었다. 성균관대학교 공대 1학년인 1981년에 제1회 전국대학생 DJ 콘테스트에 나가 대상을 받았다.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음악이 흐르는 밤에〉 DJ가 되어 2년간 진행했다. 〈음악이 흐르는 밤에〉는 공중파에서 그때도 지금도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프로그레시브록과 아트록 전문 프로그램으로, 이 땅에 처음으로 아트록을 소개했고 마니아들로부터 열정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로써 성시완에게 ‘아트록의 선구자’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당시 생소했던 가수명과 곡명 등의 음악 정보를 청취자들에게 정확히 전달하고자 발행한 〈언더그라운드 파피루스〉는 유일한 가이드로 마니아들에게는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했다. 이는 후에 1992~1999년까지 발행한 〈ART ROCK〉 매거진으로 확장해 이어진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시완레코드 뮤지엄을 오픈했고, 〈성시완의 디스크쇼〉를 맡아 다시 프로그레시브록과 아트록 전문 방송을 진행했다. 1996~1999년까지 SBS 파워FM 프리랜서 PD 겸 DJ로 〈음악천국〉 등 여러 프로그램을 맡았다. 1993~2021년까지 ㈜시완레코드를 운영하며 음반 컬렉터이자 음반 사업가, 공연 프로모터로 일했다. ㈜시완레코드에서 발매한 라테 에 미엘레 앨범은 이탈리아에서보다 10배나 많은 판매를 올렸고, 라테 에 미엘레와 뉴 트롤스의 공연을 유치해 한국 아트록 팬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주었다. 2008년 세계 최초로 앨범 재킷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여전히 음악을 많이 듣고, 뛰어난 음악을 찾아다니며, 별처럼 많은 음악을 우리에게 찾아주는 천문학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