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일제 강점기 농촌민들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며 가난에 시달리는 민중의 모습을 작품을 통해 형상화하고 여성에 대한 시대의 사회적 억압과 어머니라는 상징으로부터 탈출을 모색하고 주체적 여성 담론의 가능성을 연 여성 작가.
백신애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을 문제시 하고 일제 강점기 농촌민들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며 가난에 시달리는 민중의 모습을 작품을 통해 형상화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버지와 영천 양반 출신으로 한학의 교양을 쌓은 어머니 아래 성장한 백신애는 아버지의 억압에 반발을 느끼면서도 구시대적 교육을 받은 어머니의 모성적 침묵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기 위해 모친과 단절한다. 그러나 영천에서 미곡을 취급하고 정미소를 해서 소문난 부자였던 아버지의 자부심은 백신애의 일생에 끊임없는 간섭의 요소가 된다. 백신애는 오빠의 사회주의 사상에 동조함으로써 어머니라는 상징적인 억압의 구조로부터 자신을 탈출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오빠와의 관계 역시 보호에 불과했다. 그러다 오빠 몰래 문학서적을 읽으며 애를 쓰던 중 현상 광고를 보고 하룻밤 사이에 휘갈겨 써서 응모해 당선된 작품이 이 책 《백신애 작품집》의 첫 소설 작품으로 실려 있는 〈나의 어머니〉이다.
출판사 리뷰
일제 강점기 농촌민들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며
가난에 시달리는 민중의 모습을 작품을 통해 형상화하고
여성에 대한 시대의 사회적 억압과 어머니라는 상징으로부터 탈출을 모색하고
주체적 여성 담론의 가능성을 연 작가
《백신애 작품집》
백신애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을 문제시 하고 일제 강점기 농촌민들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며 가난에 시달리는 민중의 모습을 작품을 통해 형상화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버지와 영천 양반 출신으로 한학의 교양을 쌓은 어머니 아래 성장한 백신애는 아버지의 억압에 반발을 느끼면서도 구시대적 교육을 받은 어머니의 모성적 침묵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기 위해 모친과 단절한다. 그러나 영천에서 미곡을 취급하고 정미소를 해서 소문난 부자였던 아버지의 자부심은 백신애의 일생에 끊임없는 간섭의 요소가 된다. 백신애는 오빠의 사회주의 사상에 동조함으로써 어머니라는 상징적인 억압의 구조로부터 자신을 탈출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오빠와의 관계 역시 보호에 불과했다. 그러다 오빠 몰래 문학서적을 읽으며 애를 쓰던 중 현상 광고를 보고 하룻밤 사이에 휘갈겨 써서 응모해 당선된 작품이 이 책 《백신애 작품집》의 첫 소설 작품으로 실려 있는 〈나의 어머니〉이다.
백신애에 대한 연구는 크게 둘로 나뉘는데, 일제 강점기 식민지의 현실과 연결 짓는 것과 여성주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1930년대 중반 이전의 〈꺼래이〉 〈복선이〉 〈채색교〉 〈적빈〉 〈멀리 간 동무〉 〈악부자〉 〈식곤〉 〈소독부〉 등의 작품들은 일제 강점기 민중들의 비참한 삶의 재현이 주조를 이루며, 1939년까지는 중산층 여성의 고백 형식이 눈에 띈다. 백신애의 작품들은 초기 사회주의 리얼리즘 담론에서 여성 담론, 다시 주체적인 담론으로 나아갈 단초를 보인다. 그러나 KAPF의 퇴조와 이혼이라는 과정은 작가의 현실과의 분열은 자기 풍자를 낳았고 이를 계기로 자기 계층의 여성 담론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 책에도 수록되어 있는 후기 작품에서는 중산충 여성의 목소리에서 광인, 병자, 죄인의 고백 형식으로 나타난다. 〈광인수기〉에는 전향 지식인의 부인이 겪는 이중적 소외와 광기의 언어가 두드러지며, 〈혼명〉에서는 전향한 여성 지식인의 목소리로 사회주의 사상으로부터의 전향과 가족주의 탈피로서 이혼을 동궤 놓고 이야기를 서술한다. 〈아름다운 노을〉에서는 13세 연하의 소년과의 사랑을 표면 구조로 놓고 오빠와 누이의 인물 설정을 통해 종래의 사랑에 대한 극복을 감행함으로써 주체적 여성 담론의 가능성을 열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백신애
1908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집과 향교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영천공립보통학교 4년 과정을 졸업하고, 경북사범학교 강습과를 나와 2년 동안 교사로 지냈다. 1926년 교사 시절, 북풍파인 ‘경성여자청년동맹’ ‘조선여성동우회’에 가입하여 비밀리에 여성운동을 한 것이 탄로 나 권고사직을 당하고 서울로 올라가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192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필명 박계화(朴啓華)로 「나의 어머니」를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신춘문예 첫 여성 작가라는 기록을 세웠다. 결혼 후 경산군 반야월의 과수원에 기거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이때 체험한 가난한 농민들의 생활이 「복선이」(1934), 「채색교(彩色橋)」(1934), 「악부자(顎富者)」(1935), 「식인(食因)」(1936) 등의 바탕이 되었다. 식민지 조국을 떠나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방황하는 실향민들을 그린 「꺼래이」(1934)와 현모양처의 삶을 살았음에도 미쳐버릴 수밖에 없었던 여인의 심정을 담아낸 「광인수기」(1938)를 포함해 5년 남짓한 기간 동안 소설 20여 편과 수필 및 기행문 등 30여 편의 작품을 남겼으며, 1939년 6월 23일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목차
일러두기 · 7
소설 — 11
나의 어머니 · 13
꺼래이 · 24
복선이 · 46
채색교 · 51
적빈 · 66
낙오 · 80
멀리 간 동무 · 91
상금 삼 원야 · 97
악부자 · 101
의혹의 혹모 · 119
정현수 · 133
학사 · 152
식곤 · 167
어느 전원의 풍경 · 179
가지 말게 · 192
광인수기 · 195
소독부 · 218
일여인 · 234
혼명에서 · 247
아름다운 노을 · 279
수필 — 327
도취삼매 · 329
백합화단 · 333
연당 · 338
제목 없는 이야기 · 342
추성전문 · 346
가정부인으로서 음악가에게 보내는 말씀 · 349
사명에 각성한 후 · 350
무상의 악 · 353
종달새 · 356
납량이제 · 360
매화 · 368
울음 · 371
백안 · 374
춘맹 · 378
종달새 곡보 · 382
녹음하 · 385
동화사 · 388
사섭 · 392
눈 오던 그 날 밤 · 398
청도기행 · 402
해설 | 그 여지가 말하는 세 가지 방식 — 418
작가 연보 · 440
연구 논문 · 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