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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질 정원에서
한수영 소설집
강 | 부모님 | 2023.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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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소설가 한수영이 십칠 년 만에 펴내는 두번째 소설집이다. 긴 시간에 걸쳐 발표한 단편들이 묶인 셈인데, 일관된 특징이 감지된다. 수학적 정밀함을 떠올리게 하는 꽉 짜인 구성과 팽팽한 언어의 긴장, 밀도다.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나면 주제가 응축되고 퍼져나가는 핵심 이미지가 뚜렷이 떠오른다.

한마디로 단편소설에 요구되는 고전적 규범과 미학에 한결같이 충실하다. 가난과 결핍, 소외와 배제의 어두운 세계가 인물들의 발목을 움켜잡고 있는 채 이들의 삶을 지탱하고 열어갈 빛은 현실에 대한 단단한 관찰 속에 희미하게 숨어 있다.

  출판사 리뷰

『바질 정원에서』는 소설가 한수영이 십칠 년 만에 펴내는 두번째 소설집이다. 긴 시간에 걸쳐 발표한 단편들이 묶인 셈인데, 일관된 특징이 감지된다. 수학적 정밀함을 떠올리게 하는 꽉 짜인 구성과 팽팽한 언어의 긴장, 밀도다.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나면 주제가 응축되고 퍼져나가는 핵심 이미지가 뚜렷이 떠오른다. 한마디로 단편소설에 요구되는 고전적 규범과 미학에 한결같이 충실하다. 가난과 결핍, 소외와 배제의 어두운 세계가 인물들의 발목을 움켜잡고 있는 채 이들의 삶을 지탱하고 열어갈 빛은 현실에 대한 단단한 관찰 속에 희미하게 숨어 있다.
코로나 시대에 쓰인 최근작 「바질 정원에서」와 비교적 오래전에 발표된 「파이」(2009)는 나란히 함께 읽고 싶은 마음을 부추긴다. 두 작품은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는데, 짧은 현재의 시간을 서사의 표면에 두고 긴 회상의 시간을 서사 내적으로 흐르게 한다. 주부로서 무력감에 시달리던 「파이」의 여성 화자 미현은 텔레비전의 퀴즈 프로에 출연하면서 존재 증명을 시도하게 되고, ‘퀴즈왕’이 걸린 마지막 문제 앞에서 정답인 ‘파이’와 연관된 과거 대학 시절의 기억을 돌이킨다. 대학에서 만나 평생의 친구가 된 오십대 초반의 기정, 이현, 혜영 세 여성은 늦가을 오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기정의 집(성곽 아래 산동네의 무허가 땅에 지은 집) 정원에 모여 하룻밤을 같이 보내면서 굴곡진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바질 정원에서」의 이야기인데, 낙엽 지는 늦가을 밤의 시간은 이들이 지나고 있는 인생의 어떤 시기에 조응하는 것 같다. 두 작품을 함께 읽으면 「바질 정원에서」가 「파이」의 후일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두 작품 사이에 ‘소리’가 공통적으로 놓여 있다는 점인데, “한 가지 음만 낼 줄 아는 악기처럼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들은 같은 소리를 냈다”는 문장은 「파이」를 건너 「바질 정원에서」에도 울리고 있다. 어둠의 숲에서 길을 잃은 미현과 J에게 ‘한 가지 음의 나뭇잎 소리’가 배경으로 주어져야만 했던 이유가 있을까.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 소리는 한갓 무심한 자연의 움직임일 테고 언제든 인물들의 배경으로 묘사될 수 있다. 그러나 생의 중심을 향한 막막한 갈증으로 타들어가고 있던 미현의 절박한 의식에서 보면 자신과 J를 하나의 운명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의 힘으로 다시 자신만의 파이를 향해 길을 떠날 수 있게 도와줄 세상의 신호가 필요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같은 소리’는 그렇게 듣고 싶은 소리이며, 얼마간 의식의 요청이었을 것이다. 숲의 소리가 또다시 길을 잃은 주부 미현의 회고하는 자리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여기에 맹목의 젊음을 향한 작가의 안타까움을 겹쳐볼 수도 있다.
「바질 정원에서」에서 기정의 마당 모임 중 느닷없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려오는 종소리는 말 그대로 자유롭고 제멋대로다. 기정의 집 뒤편 성곽 쪽 작은 선원, 스님의 치매 걸린 노모가 무시로 치는 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잘못 울린 종소리”가 소설의 진행에 독특한 리듬을 부여한다. 세 사람의 대화가 서사의 거의 전부인 소설에서 종소리는 말을 끊고, 생각을 끊고, 곁가지로 대화를 흐르게 만든다. 종내 늦은 밤, 정원의 나뭇가지와 바질, 수국 꽃가지 등으로 피운 화롯불 앞에서 잠이 들었을 때 새벽에 세 사람을 깨운 것도 ‘잘못 울린 종소리’였다. 세 사람 앞에는 싸늘히 식은 재만 화로 바닥에 쌓여 있었다. 종소리에 의해 툭툭 끊어지는 리듬은 이 소설에서 우리가 읽어야 하는 것이 세 사람의 대화가 아니라, 시월의 가을밤을 함께 보내는 이들 세 사람의 ‘시간’이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이 ‘시간’은 동시에 대학 신입생 때 만나 오십대 중반에 이른 이들이 각자 독립적으로 힘겹게, 그리고 함께 서로를 ‘물들이며’ 보내온 인생의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바질 정원에서」는 이 시간을 소설의 ‘형식’으로 만들면서 짧은 한 편의 소설이 인생을 비추고 인간을 이해하는 훌륭한 거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사과 농사를 짓는 「새의 말」의 주인공 한수는 사 년 전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캄보디아 여성과 결혼했고, 태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를 농장 일꾼으로 쓰고 있다. 수확기를 앞둔 한수의 고민은 무시로 벌어지는 새들의 공격으로부터 여물어가는 사과 알들을 지키는 일이다. 한수는 사과밭에 그물망을 쳐서 새를 잡은 뒤, 잡은 새를 높은 가지에 매달아두는 방식으로 새들의 사과밭 접근을 막으려 한다. 한수영의 소설은 이와 관련된 배경 서사를 밀도 있게 구축하는 가운데 아내 희선(한국명)과 태국 이주노동자 씽 사이에 형성되는 미묘한 관계의 양상을 소설의 핵심 주제로 돋을새김한다. 여기서 다문화사회나 변화하는 농촌의 현실은 특별한 소재적 선택의 차원이 아니라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타자성의 착잡하고 낯선 지대를 향한 질문의 사회적 토대로 포착되는데, 그만큼 보편적이고 강렬한 인간의 이야기를 낳고 있다.
아파트 부엌 창 아래에서 우연히 듣게 된 ‘사랑의 고백’ 전화. 「사랑의 지점」의 중년 여성 제이는 반복되는 이상한 우연이 알 수 없는 무기력에 빠져 있던 자신의 삶을 뒤흔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서울의 공식적인 날씨를 결정하는 경희궁 옆 서쪽 언덕의 관측소처럼 사랑을 고백하는 특정한 지점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랑의 지점’이 먼저 존재하고, 거기서만 ‘진짜 사랑’이 생겨날 수 있으리라는 전도된 생각은 표면적으로 안정적인 결혼 생활의 이면에 생긴 알 수 없는 균열로부터 자라난 것일 테다. 그리고 이런 정황만이라면 한수영의 「사랑의 지점」은 얼마간 익숙한 서사의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부엌 창 아래로 가서 ‘사랑의 지점’을 찾는 제이의 행동 한가운데에는 ‘맨발’이라는 한수영 소설 고유의 모티브가 있다. ‘맨발’은 한수영 소설이 세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려 할 때 중요한 원점의 풍경을 이루는 것 같다. 첫 소설집 『그녀의 나무 핑궈리』에도 ‘맨발’의 모티브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연변에서 시집와 무능한 남편의 폭행을 겪으면서도 미싱 일을 하며 어떻게든 살아가는 만자 씨의 신산(辛酸)과 향수(鄕愁)는 ‘맨발’의 ‘갈라진 발뒤꿈치’를 통해 거듭 표현된다(「그녀의 나무 핑궈리」).
어쩌면 ‘맨발’이나 ‘발뒤꿈치’는 작가의 무의식과 관련된 원점의 풍경일 수도 있다. ‘맨발’로 표상되는 원초적인 날것의 자리는 한수영 소설이 세계와 마주 서 있을 때, ‘파이’나 ‘황종률’처럼 삶의 중심과의 거리를 재는 기준점처럼 반복 회귀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수영 소설의 ‘맨발’은 ‘난독과 오독’의 가능성 안에서 끝내 충분히 해명되지 않는 삶의 실재로 남는다. 「새의 말」의 세 사람이 털 뽑힌 산비둘기를 쫓는 그 이상한 대면의 시간 이후 어떤 관계 속으로 이동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바질 정원에서」의 ‘잘못 울린 종소리’는 혜영의 오래된 악몽의 짐을 덜어내긴 했을까. ‘맨발’은 언제나 그대로 남은 채 다만 삶 안에서 서로를 물들이고 있다. 한수영의 소설과 함께 우리는 오래도록 ‘새의 말’만을 알아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을 것이다. 그 어둠 속 시간의 연대 안에는 ‘당신’을 향한 자리도 있을 테니까.

  작가 소개

지은이 : 한수영
2002년 단편소설 「나비」로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 장편소설 『공허의 1/4』로 오늘의작가상을 받았다. 소설집으로 『그녀의 나무 핑궈리』, 장편소설로 『플루토의 지붕』 『조의 두번째 지도』 『낮잠』, 청소년소설로 『오로라 2-241』이 있다.

  목차

바질 정원에서
만조유생
파이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새의 말
사랑의 지점
지금 어디쯤이에요?
달개비꽃


해설 잘못 울린 종소리, 새의 말을 듣는 시간 | 정홍수(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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