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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악백년
최초의 피아니스트 김영환
비온후 | 부모님 | 2023.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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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중앙일보>(1974. 4. 19~5. 29)에 「양악백년」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최초의 피아니스트였던 김영환이 쓴 회고를 엮은 것이다. 그의 실질적인 주요한 이력은 음악교육에 있었지만, 이를 통해서 후속세대 생산에만 주력한 것은 아니었고 근대음악을 경험할 수 있도록 자비를 들여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에도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회고되고 있다.

  출판사 리뷰

『양악백년』은 조선 최초의 피아니스트 김영환이 근대음악이 조선에 ‘전파’ㆍ‘번역’ㆍ‘실천’되는 과정들을 회고한 것이다. 김영환의 회고는 1974년 4월 19일 <중앙일보>에 연재된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코너에 「양악백년」으로 35회로 연재되었다. 자신이 경험한 최초의 근대(서양)음악에 대한 매혹과 충동에서부터 일본 유학, 연주, 근대 음악가들, 음악기획, 음악교육, 음악후원 등등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잘 알려진 근대 음악가들에 대한 이야기들만으로도 충분히 회고를 읽는 즐거움이 있는데, 근대 음악이 당대의 근대 지식 내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에 대한 평가와 ‘근대 음악’에 ‘도달’하는 회로가 나타나 있는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즉, 일종의 독학자의 경로와 선교사로부터 일본으로 그리고 미국 혹은 유럽으로 이동하는 음악가들의 회로는 근대음악이 어떻게 전통을 생산했는지 또 규범과 질서를 마련해갔는지를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김영환의 회고가 직접 이런 이야기를 기술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회고가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는 인식은 탐구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재적 발전론이나 이식문화론과 같은 이항대립적 구도를 벗어나 근대음악=서양음악이 수용되는 과정 자체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인지를 들여다보는 것은 문화인류학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김영환의 회고는 근대음악사에 녹아 있는 무의식이 적층되어 있는 귀한 자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회고라는 글쓰기 스타일이 사실 자체의 재현일 수 없다는 사실도 매우 중요하다. 달리 말해, 1970년대에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기억’과 ‘회고’의 구조 속에 김영환의 글이 들어가 있다는 것도 주지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그의 글을 읽는 재미는 당대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 동시대적 감각으로도 독해할 수 있는 여러 이야기들이 충만한 것이다.
한편으로 이런 회고는 굳이 꺼내지 않으면 문서고에서 켜켜이 먼지를 쌓고 있을 수도 있다. 이를 꺼내고 다른 시공간 속에 조명하는 일은 시간, 노동, 자본을 들인다는 점에서 또 다른 문화적 기획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김영환의 회고를 묶는 데, 김영환의 조카인 조범구(연세대 명예교수, 전 심장재단 이사장)가 나서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김영환의 직계 자녀들이 소식이 끊긴 것도 한 몫을 하는 것이지만, 인척 관계와 상관없이 오랜 시간 공들여 새로운 자료를 찾는 등의 노고를 들이지 않았으면 도저히 책으로 엮기 어려운 것이었다. 멀리 일본과 미국에까지 연락을 하고 자료를 찾으려는 수고는 그가 곧 문화기획자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김영환처럼 그 역시 문화기획자로서의 피를 공유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쓸모가 음악은 물론이고 여러 문화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다채로운 방식으로 재발명된다면 기쁠 것이다.

[머리글]
외삼촌, 피아니스트 그리고 한국의 근현대 음악사
조범구(연세대학교 명예교수 / 전 한국심장재단 이사장)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당부’는 당신의 ‘오빠’에 대한 것이었다. ‘오빠’는 한국 최초의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김영환’으로 그의 막내 동생이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한 살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니는 열여섯 터울이 나는 큰 오빠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오빠를 ‘아버지’로 여기고 자랐다. 오빠의 영향 탓인지 어머니도 이화여전 ‘피아노과’를 나오셨다. 그렇다고 온 집안이 음악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 어머니의 오빠 이야기에 묻어 있는 ‘원망’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오빠’가 한국을 떠나기 전, 1974년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 연재한 〈양악백년〉을 스크랩 해두셨고 외삼촌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관련 기사를 차곡차곡 쟁여두셨다. 당신 오빠에 대한 정리가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였다고 여기셨던 모양이다. 아마 어머니에게 오빠에 대한 원망은 사소했거나 오빠를 더 강하게 기억하기 위한 방편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어머니가 내게 ‘당부’를 건네야 했던 것은 당신의 ‘오빠’가 남긴 ‘유산’에 대해 정직하게 대면하는 일이 후손들에게 필요하다고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 말해, 일제 강점기와 해방, 6. 25 그리고 현대사의 질곡을 경유해온 ‘이북’ 출신의 지식인 엘리트의 생애사를 대면하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치 않은 일이거니와, 무엇보다 분단의 현실에서는 더더욱 ‘문제적’이지만, 이를 외면하고서는 ‘미래’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의 방향이나 지향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내게 외삼촌인 그를 어릴 적엔 ‘큰 아버지’라고 불렀다. 3대 독자인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는 외삼촌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외삼촌에 대한 기억이라곤 해방 이후 정초에 세배 드리러 다니던 일과 6. 25 전쟁 후에는 연건동 외삼촌 집에서 한동안 함께 살았던 일이 전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77년 유학 시절 뉴욕 퀸즈의 허름한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반기던 모습이 그나마 강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외삼촌에 대한 ‘정리’는 방계혈족의 몫이 아니라 직계자손들이 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그의 장남과 장녀는 소식을 알기 어렵고 나머지 자손들 역시 미국으로 이민을 간 터라, 결국 이에 대한 정리는 고스란히 내 몫으로 주어지고 말았다. 물론 이 정리는 그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남겨져 있는 기록에 대한 ‘정리’이다. 그러니까, 역사적 문제들이 겹쳐져 있는 그의 생애사와 활동에 대한 가치판단은 이 ‘정리’를 통해서 구성되어야 할 것일 따름이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외삼촌 김영환에 대해 가장 강렬하게 남은 기억은 연건동 그의 집에 고집스레 마련되어 있던 ‘피아노 방’이다. 피아노 건반 위에 내가 손가락을 올리며 살짝 눌러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함부로 들어가기가 저어되었던 것을 보면 외삼촌 외엔 쉽사리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따사로우면서도 쓸쓸한 분위기가 흘러나왔던 ‘피아노 방’은 후배들의 품격 높은 소리들로 가득하게 되었지만, 신문 연재를 마치고 아들과 딸이 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신 뒤 이듬해 그는 향년 84세로 쓸쓸히 세상과 이별을 고한다.
외삼촌의 흔적을 정리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연주 녹음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에노학교에서도 당시에 녹음을 하지 않았다는 대답을 확인했을 뿐이다. 다만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인 덕수궁 석조전에서 김영환이 고종황제의 생일날 연주를 하였다는 기록을 배경으로 기획하여 정기행사로 진행하고 있는 ‘석조전 음악회’에서 당시의 연주 모습을 상상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책에 제법 꼴을 갖추게 되는데 조언을 아끼지 않은 누님 조은애와 박경철 형님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이 두 분이 이 작업에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외삼촌의 삶을 정리해보는 기회를 가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힘들게 일본에서의 자료를 찾아주신 정상원, 노부꼬 부부와 국내 자료를 찾아준 홍현선(조은애 누님의 3남)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또한 이 책이 음악사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을뿐더러 귀한 글을 실을 수 있도록 해준 이순열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더불어 도서출판 ‘비온후’의 김철진, 이인미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 준 독립연구자 김만석의 도움이 책의 꼴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었음을 밝힌다.
이 자료집이 한국 근현대 음악사와 문화사에 사소한 도움이라도 되길 바래본다.

머리글
외삼촌, 피아니스트 그리고 한국의 근현대 음악사
조범구(연세대학교 명예교수 / 전 한국심장재단 이사장)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당부’는 당신의 ‘오빠’에 대한 것이었다. ‘오빠’는 한국 최초의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김영환’으로 그의 막내 동생이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한 살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니는 열여섯 터울이 나는 큰 오빠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오빠를 ‘아버지’로 여기고 자랐다. 오빠의 영향 탓인지 어머니도 이화여전 ‘피아노과’를 나오셨다. 그렇다고 온 집안이 음악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 어머니의 오빠 이야기에 묻어 있는 ‘원망’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오빠’가 한국을 떠나기 전, 1974년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 연재한 〈양악백년〉을 스크랩 해두셨고 외삼촌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관련 기사를 차곡차곡 쟁여두셨다. 당신 오빠에 대한 정리가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였다고 여기셨던 모양이다. 아마 어머니에게 오빠에 대한 원망은 사소했거나 오빠를 더 강하게 기억하기 위한 방편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어머니가 내게 ‘당부’를 건네야 했던 것은 당신의 ‘오빠’가 남긴 ‘유산’에 대해 정직하게 대면하는 일이 후손들에게 필요하다고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 말해, 일제 강점기와 해방, 6. 25 그리고 현대사의 질곡을 경유해온 ‘이북’ 출신의 지식인 엘리트의 생애사를 대면하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치 않은 일이거니와, 무엇보다 분단의 현실에서는 더더욱 ‘문제적’이지만, 이를 외면하고서는 ‘미래’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의 방향이나 지향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내게 외삼촌인 그를 어릴 적엔 ‘큰 아버지’라고 불렀다. 3대 독자인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는 외삼촌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외삼촌에 대한 기억이라곤 해방 이후 정초에 세배 드리러 다니던 일과 6. 25 전쟁 후에는 연건동 외삼촌 집에서 한동안 함께 살았던 일이 전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77년 유학 시절 뉴욕 퀸즈의 허름한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반기던 모습이 그나마 강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외삼촌에 대한 ‘정리’는 방계혈족의 몫이 아니라 직계자손들이 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그의 장남과 장녀는 소식을 알기 어렵고 나머지 자손들 역시 미국으로 이민을 간 터라, 결국 이에 대한 정리는 고스란히 내 몫으로 주어지고 말았다. 물론 이 정리는 그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남겨져 있는 기록에 대한 ‘정리’이다. 그러니까, 역사적 문제들이 겹쳐져 있는 그의 생애사와 활동에 대한 가치판단은 이 ‘정리’를 통해서 구성되어야 할 것일 따름이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외삼촌 김영환에 대해 가장 강렬하게 남은 기억은 연건동 그의 집에 고집스레 마련되어 있던 ‘피아노 방’이다. 피아노 건반 위에 내가 손가락을 올리며 살짝 눌러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함부로 들어가기가 저어되었던 것을 보면 외삼촌 외엔 쉽사리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따사로우면서도 쓸쓸한 분위기가 흘러나왔던 ‘피아노 방’은 후배들의 품격 높은 소리들로 가득하게 되었지만, 신문 연재를 마치고 아들과 딸이 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신 뒤 이듬해 그는 향년 84세로 쓸쓸히 세상과 이별을 고한다.
외삼촌의 흔적을 정리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연주 녹음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에노학교에서도 당시에 녹음을 하지 않았다는 대답을 확인했을 뿐이다. 다만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인 덕수궁 석조전에서 김영환이 고종황제의 생일날 연주를 하였다는 기록을 배경으로 기획하여 정기행사로 진행하고 있는 ‘석조전 음악회’에서 당시의 연주 모습을 상상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책에 제법 꼴을 갖추게 되는데 조언을 아끼지 않은 누님 조은애와 박경철 형님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이 두 분이 이 작업에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외삼촌의 삶을 정리해보는 기회를 가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힘들게 일본에서의 자료를 찾아주신 정상원, 노부꼬 부부와 국내 자료를 찾아준 홍현선(조은애 누님의 3남)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또한 이 책이 음악사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을뿐더러 귀한 글을 실을 수 있도록 해준 이순열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더불어 도서출판 ‘비온후’의 김철진, 이인미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 준 독립연구자 김만석의 도움이 책의 꼴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었음을 밝힌다.
이 자료집이 한국 근현대 음악사와 문화사에 사소한 도움이라도 되길 바래본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영환
한국 최초의 정규음악가며 피아니스트로 양악개화기와 함께 한 그의 생애는 바로 우리나라 현대음악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893년 평양의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미국 선교사에게서 음악을 배웠고 숭실중학을 졸업한 다음 일본에서 동양음악학교, 관립동경음악학교를 졸업했다. 1918년부터 연전 음악과장, 그 후 숙명·보성·중앙고보 등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연주활동과 함께 초창기의 많은 음악가들을 길렀다.

  목차

머리말 - 외삼촌, 피아니스트 그리고 한국의 근현대 음악사 .... 조범구 / 6
추천의 글 - 아나바시스 .... 이순열 / 10

양악백년
찬송가에 끌려 / 18
동경유학東京留學 / 24
한국유학생들 / 30
풍악장이 / 36
잊지 못할 졸업식 / 42
경성악대 京城樂隊 / 48
양악의 선구자 / 54
연전延專시절 / 60
피아노 교습 / 66
여자의 마음 / 72
경성공회당 京城公會堂 / 78
최초의 제금가 提琴家 난파 홍영후 蘭坡 洪永厚 / 84
울밑에 선 봉선화야 / 90
난파 蘭坡 트리오 / 96
난파 蘭坡의 죽음 / 102
외래연주가들 / 108
최초의 피아노 / 114
최초의 소프라노 / 120
윤심덕尹心悳 / 126
사死의 찬미讚美 / 132
홍성유蘭坡와 김원복金元福 / 138
안익태安益泰의 정열 / 144
테너 현제명蘭坡 / 150
숙명淑明 시절 / 156
파이프 오르간 / 162
동경 유학생 / 168
구미유학생들 / 174
천재 제금가 提琴家 / 180
테너 이인범 李仁範 / 186
축음기蓄音機의 유행 / 192
추억의 명곡 / 198
오페라 공연 / 204
교향악交響樂 운동 / 210
음악교육 / 216
음악 80평생 / 222

김영환과 사운드스케이프 .... 김만석 / 228
김영환의 일생 /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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