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008년 《시평》으로 등단한 김성렬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가족의 그늘』이 시인동네 시인선 226으로 출간되었다. 김성렬의 시는 티 없이 맑은 심성이 바라보는 세상살이의 풍경을 곡진하게 펼쳐 보인다. 무엇보다 그의 시는 삶의 그늘이 거느리는 넉넉한 힘으로 존재하며, 이는 시간이 마모시킨 삶의 흔적을 이해와 배려가 어우러진 살가움으로 치환시켜 나가는 힘이기도 하다. 김성렬 시인은 진정성 있는 자기 고백을 통해 우리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출판사 리뷰
진정성 있는 자기 고백과 성찰
2008년 《시평》으로 등단한 김성렬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가족의 그늘』이 시인동네 시인선 226으로 출간되었다. 김성렬의 시는 티 없이 맑은 심성이 바라보는 세상살이의 풍경을 곡진하게 펼쳐 보인다. 무엇보다 그의 시는 삶의 그늘이 거느리는 넉넉한 힘으로 존재하며, 이는 시간이 마모시킨 삶의 흔적을 이해와 배려가 어우러진 살가움으로 치환시켜 나가는 힘이기도 하다. 김성렬 시인은 진정성 있는 자기 고백을 통해 우리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 해설 엿보기
김성렬 시집 『가족의 그늘』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그늘’입니다. 그늘은 상반된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국어사전은 이 단어를 1. 어두운 부분. 2. 의지할 만한 대상의 보호나 혜택. 3. 밖으로 드러나지 아니한 처지나 환경이라고 풀이해 놓고 있습니다. 이는 그늘의 의미를 응달과 보호로 나누는 영어사전의 단순명료함에 비해 함의하는 폭이 넓습니다. 예컨대 ‘나무의 그늘’과 ‘얼굴의 그늘’이 갖는 의미가 전혀 다르듯, ‘그늘’이라는 단어는 이 말을 수식하는 관형어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의미를 띱니다. 김성렬 시에서의 ‘그늘’은 중의적이면서 결과적으로는 의지할 만한 대상의 보호나 혜택을 일컫는 긍정적 단어입니다. 저는 방금 ‘결과적으로’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왜일까요?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가족의 그늘」을 읽어보겠습니다.
할머니 혼자 사는 집 앞을 지날 때
이마가 벗겨진 중년의 한 남자를 보았다
그가 궁금한 오후, 찬거리 사러
노천에서 마주친 할머니께 넌지시 물었다
팔순이 넘은 할머니 안쓰러워
노모 대하듯 살갑게 대한 내게 집안의 내력들
더듬더듬 털어놓는 할머니
하는 것마다 매번 실패한 장남이란다
비싸다 좀 깎자 아니다 싸다
한 푼이 아쉬워 찬거리 흥정하는 할머니 뒤로한 채
봉투에 구이용 생물 고등어 들고
한설(寒雪)에 코트 여미며 집에 가는 길
할머니와 아들 상봉을 보며
돌아갈 가족의 그늘 있다는 게 좋구나
가족의 그늘이 없는 나는
가슴 한쪽이 무너져 내리는
아픈 통증을 느꼈다
― 「가족의 그늘」 전문
이 시는 화자와 한동네에서 살아가는 할머니를 중심으로 합니다. 어느 날, 화자는 할머니가 사는 집 앞을 지나다가 낯선 사내를 발견합니다. 혼자 살아가는 노인의 집에 그동안 한 번도 못 봤던 사내가 있으니 궁금증이 이는 건 당연하나, 현대인에게 타인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금물이지요. 하지만 화자의 관심은 이웃의 사생활을 기웃거리는 가벼운 호기심이 아닙니다. 흉흉한 세상을 염려함으로써 가지는 애정 어린 관심입니다.
화자가 할머니께 낯선 사내가 누군지를 물을 수 있고, 대답을 수월하게 들을 수 있음은 둘 사이가 ‘이웃사촌’ 이상의 친밀한 관계임을 보여줍니다. 그동안 화자가 할머니를 “노모 대하듯 살갑게 대한” 덕분입니다. 할머니가 털어놓은 사연에 의하면, 낯선 사내는 “하는 것마다 매번 실패한” 당신 장남이랍니다. 사내 처지가 저렇다 보니 늘그막에 아들한테 의지하기 힘든 할머니마저 그 형편이 어려운 건 당연한 노릇입니다. 할머니는 “한 푼이 아쉬워”서 “비싸다 좀 깎자 아니다 싸다”란 흥정 끝에 “구이용 생물 고등어” 한 손 사서 들고 아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한설(寒雪)에 코트 여미며” 걸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에서 삶의 어두운 그늘인 궁색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자의 삶에 드리워진 그늘에 대한 화자의 생각은 다릅니다. 화자는 아들의 실패보다 그 아들을 품어 안는 모정에 시선을 줍니다. 뿐인가요? 화자는 모자의 만남을, 이별을 전제하는 “상봉”이라 표현할 정도입니다. 어쩌면 잘나갈 때의 아들은 밖으로만 떠돌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팔순이 넘은 할머니를 노모 대하듯 대한 시인이 처음 봤을 정도니, 근거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가 실패함으로써 모자는 비로소 상봉한 것이고, 현실은 비극적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모성이 활기를 띰은 그래서입니다. 추운 겨울, 할머니는 아들을 주려 생선을 고르고 있네요. 장남에 대한 노모의 무조건적 사랑은 무목적성을 가지므로 근본적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실패가 불러온 이 모성적 비애를 화자는 오히려 “가족”을 편히 쉬게 하는 “그늘”이라며 부러워하는 것이고요.
삶의 비애를 부정적인 ‘응달’로 보지 않고 긍정적인 ‘보호’로 받아들이는 화자의 태도는 시집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드러납니다. 이는 “태어난 날부터 곁에” 있었던 “세상에 단, 한 송이뿐인 꽃” 즉, 어린 자식이 “무럭무럭 자라 스스로/거친 세상과 맞설 때까지 곁에 피어 있으리라/믿었던” 어머니가 “한 송이 꽃이 지듯 스르르” 져버린 일과 상관이 있습니다. 화자는 어머니가 그렇게 가신 후, “우락부락 남정네뿐인 집안”에서 “오랫동안/웃음소리 없이 침울”(「꽃」)하게 지냈던 과거를 잊지 못합니다. 이런 과거사와 더불어 시인의 천성이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를 꾸짖을 줄 모릅니다. 시인은 사과 장수가 권해서 먹은 사과가 “산세 수려한 얼음골 바람 소리, 계곡 물소리”가 든 맛이었던 데 반해, 사 와서 먹어본 사과 속에는 정작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게 “코로나”로 인해 그가 힘든 탓이라고 “이해”(「호객」)합니다. 또한 시인은 공연히 시비를 거는 “생면부지”의 사내에게 “날리려던 주먹 거둬들”이며 “여태껏 고성에 삿대질은커녕/드잡이 없이 살아”(「오점」)온 삶을 망치지 않겠다 다짐합니다. 김성렬의 시가 그려내는 세상살이의 풍경이 밝고 환한 빛으로 가득한 건 아니지만, 그 삶의 풍경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늘이 종국에는 내면적인 힘으로 단련된 생의 에너지로 전이됩니다. 인생은 그렇듯 자애롭게 품으며 이해하고 참아야 눈부시게 아름다운 건 아닐까요.
― 신상조(문학평론가)
■ 시인의 산문
시 한 편 만나기 위해 밤마다 머릿속에 하얗게 무서리 내린다. 소쩍새는 새벽녘까지 소쩍소쩍 울고, 나는 뭔가를 끄적이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샌다. 그럼에도 시는 오지 않고, 나는 애만 타고, 기다림은 실체를 찾아 헤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시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내가 살기 위함이다. 시를 쓸 때만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런 날들이, 그런 사람들이, 그런 사물들이 내게로 오는 순간을 기다리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나는 시의 힘을 믿는다. 나의 이후는 이전보다 더 뜨거울 것이다.
태어난 날부터 곁에는
세상에 단, 한 송이뿐인 꽃이
바람도 없이 이리저리 꽃대궁 흔들며
화알짝 피어 있었습니다
그 꽃송이 보살핌 속에
어린 꽃송이가 무럭무럭 자라 스스로
거친 세상과 맞설 때까지 곁에 피어 있으리라
믿었던 그 꽃이 어느 날
한 송이 꽃이 지듯 스르르 졌습니다
홍일점(紅一點) 꽃이 지니
우락부락 남정네뿐인 집안은 오랫동안
웃음소리 없이 침울했습니다
꽃이 진 뒤에야 그 꽃이
아름다운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나이 든 요새는 문득문득
그 꽃이 그립습니다
― 「꽃」 전문
하루를 갈무리하는 오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흔들리며 마을로 들어서는 삼거리
달달한 얼음골 사과 한 상자를 이만 원에 팝니다
폐차장 가야 할 고물 터럭에서
목소리 걸걸한 한 사내가 호객을 한다
거짓부렁 아니면 억수로 싸다
미심쩍어하면서 걸음은 이미 터럭을 향해 걷고 있었다
눈치 빠른 중년의 사과 장수 그이가
접시에 깎아놓은 사과 한쪽을 건넨다
짐칸에 차곡차곡 실어놓은 사과 상자를 열자
빛깔 불콰한 사과가 군침 흘리게 한다
일찍 저녁을 먹고 출출해
사과를 깎아 한입 베어 먹는데
그이가 깎아 건넨 사과 속에는
산새 수려한 얼음골 바람 소리, 계곡 물소리,
산새 우짖는 소리 다 들어 있었는데
내가 깎은 사과 속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탓일까
사과 상자를 캄캄한 베란다 구석에 밀며
삶이 얼마나 힘들면 그랬을까
사과 장수를 이해했다
― 「호객」 전문
퀭한 눈에
눈꺼풀 풀린 배고픈 사람은
한 끼
따순 밥 간절하지만
삼시세끼 밥 걱정 없는 사람
머릿속 허한 사람은
한 권의 책이
한 끼
따순 밥이다
― 「따순 밥」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성렬
경북 영덕에서 태어나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정을 졸업했다. 2008년 《시평》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종점으로 가는 여자』 『본전 생각』 『나의 꽃이 너의 꽃이 되었다』 『자화상』이 있다.
목차
제1부
꽃13/마지막 선물14/문장15/호객16/첫마디18/가족의 그늘19/칭찬20/오점21/미혼모22/입동(立冬)24/행복한 고민25/밥상26/병원 문턱은 높다28/계보29/봄이 오는 길목30/연민31/따순 밥32
제2부
초년생35/뇌졸중36/동거38/안전지대는 없다39/곡예사들40/뒤늦은 깨우침42/걱정 한 짐43/빚44/마네킹45/건조주의보46/보름달48/12월49/허수아비50/상갓집51/십자가를 짊어지다52/괜한 걱정53/종소리54
제3부
죽비57/고물상58/키스59/별꽃이 지는 이유60/할미꽃62/하이에나63/교감64/마지막 외출66/언어의 장벽67/패습68/도배69/화해70/봄71/토요일72/창업73/작금74
제4부
송충이77/나비의 꿈78/오케스트라80/고향은 무죄81/눈물의 이별82/휴식83/꿈84/양파85/초대장86/마음의 눈88/투견장89/난상 토론90/확인91/추락하는 새는 날개를 펴지 않는다92/서막93/빈손94
해설 신상조(문학평론가)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