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당나라 이야기의 숲’으로 풀이되는 『당어림(唐語林)』은 당대(唐代)의 사건과 인물 관련 일화를 수록한 필기 모음집이다. 북송(北宋) 왕당(王)이 50종 필기 및 소설에서 선별하여 편찬한 것이다.
왕당은 ‘당소설오십가(唐小說五十家)’ 즉 ‘50종의 당나라에 관한 소설(小說)’에서 발췌한 내용을 그대로 혹은 약간의 수정과 편집을 가하여 『당어림』을 엮었다. 여기서의 ‘소설’이란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허구 문학 장르가 아닌, 야사(野史), 잡사(雜史), 필기(雜記), 일사(事) 등을 총괄하는 전통 목록학의 분류 용어이다. 전통시기 소설은 정의와 범주를 하나로 귀납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동적인데 크게는 정사(正史) 이외의 모든 사학적 성격의 저술로 개괄하기도 한다.
당대 이후 문인들은 정식 역사의 반열에는 들지 못하지만 자신들이 경험한 혹은 전해들은 이야기를 저서로 엮었는데 이를 ‘소설’이라 총칭한 것이다. 오늘날은 장르 용어인 소설과의 구분을 위해 ‘필기(筆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즉 『당어림』은 50종의 필기에서 선별한 당나라 일화집이다.
출판사 리뷰
‘당나라 이야기의 숲’으로 풀이되는 『당어림(唐語林)』은 당대(唐代)의 사건과 인물 관련 일화를 수록한 필기 모음집이다. 북송(北宋) 왕당(王)이 50종 필기 및 소설에서 선별하여 편찬한 것이다.
편찬자 왕당의 생평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자는 정보(正甫), 장안(長安) 사람이다. 봉상부(鳳翔府) 도감(都監)이자 소식(蘇軾)과 친분이 있었던 왕팽(王彭)의 아들이며, 여대방(呂大防)의 사위였다. 장인 여대방은 철종(哲宗) 원우(元祐) 연간(1086∼1094)에 재상직에 있으면서 특권으로 왕당을 말단 관직에 임용했었다. 대략 숭녕(崇寧, 1102∼1106), 대관(大觀, 1107∼1110) 연간에 세상을 떠났다. 명문 가문 출신이었고, 처가도 권세가였으나 왕당 자신의 벼슬길은 순탄치 않았다.
왕당은 ‘당소설오십가(唐小說五十家)’ 즉 ‘50종의 당나라에 관한 소설(小說)’에서 발췌한 내용을 그대로 혹은 약간의 수정과 편집을 가하여 『당어림』을 엮었다. 여기서의 ‘소설’이란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허구 문학 장르가 아닌, 야사(野史), 잡사(雜史), 필기(雜記), 일사(事) 등을 총괄하는 전통 목록학의 분류 용어이다. 전통시기 소설은 정의와 범주를 하나로 귀납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동적인데 크게는 정사(正史) 이외의 모든 사학적 성격의 저술로 개괄하기도 한다. 당대 이후 문인들은 정식 역사의 반열에는 들지 못하지만 자신들이 경험한 혹은 전해들은 이야기를 저서로 엮었는데 이를 ‘소설’이라 총칭한 것이다. 오늘날은 장르 용어인 소설과의 구분을 위해 ‘필기(筆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즉 『당어림』은 50종의 필기에서 선별한 당나라 일화집이다.
50종 필기는 다음과 같다.
『국사보(國史補)』, 『보국사(補國史)』, 『인화록(因話錄)』, 『담빈록(談賓錄)』, 『제집(齊集)』, 『유한고취(幽閒鼓吹)』, 『상서고실(尙書故實)』, 『송창록(松窓錄)』, 『廬陵官下記』, 『차류씨구문(次柳氏舊聞)』, 『계원담총(桂苑談叢)』, 『기문담(紀聞談)』, 『동관주기(東觀奏記)』, 『정릉유사(貞陵遺事)』, 『속정릉유사(續貞陵遺事)』, 『상시언지(常侍言旨)』, 『전재(傳載)』, 『윤계우의(雲溪友議)』, 『개천전신기(開天傳信記)』, 『융막한담(戎幕閒談)』, 『명황잡록(明皇雜錄)』, 『이문집(異聞集)』, 『대당설찬(大唐說纂)』, 『간오(刊誤)』, 『노씨잡설(盧氏雜說)』, 『극담록(劇談錄)』, 『옥천필단(玉泉筆端)』, 『금화자잡편(金華子雜編)』, 『피씨견문(皮氏見聞)』, 『대당신어(大唐新語)』, 『유공가화(劉公嘉話)』, 『갈고록(鼓錄)』, 『지전록(芝田錄) , 『자가집(資暇集)』, 『두양잡편(杜陽雜編)』, 『본사시(本事詩)』, 『옥당한화(玉堂閒話)』, 『중조고사(中朝故事)』, 『북몽쇄언(北夢言)』, 『당회요(唐會要)』, 『유씨서훈(柳氏敍訓)』, 『위정공고사(魏鄭公故事)』, 『국조전기(國朝傳記)』, 『회창해이(會昌解)』, 『낙중기이(洛中記異)』, 『건찬자(乾子)』, 『문기록(聞奇錄)』, 『가씨담록(賈氏談錄)』, 『규수객전(鬚客傳)』, 『봉씨문견기(封氏聞見記)』.
이 서명은 『영락대전(永樂大典)』에 있는 <당어림원서목(唐語林原序目)>에 남아있는 48종에 『사고전서』 관신들이 <규수객전(鬚客傳)>과 <봉씨문견기(封氏聞見記)>을 보충하여 50종으로 완성한 것이다. 이 중 『제집(齊集)』은 『람재집(嵐齋集)』이고, 『옥당한화(玉堂閒話)』는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이다.
이 50종의 필기는 대부분 당나라 사람이 편찬한 것이며 일부는 오대(五代), 송초(宋初)에 편찬되었지만 그 내용 또한 당대 사람들의 기록을 근거로 한 것들이다. 다시 말해 『당어림』은 기본적으로 당대 사람들이 기록한 당대 일화집이라 할 수 있다.
『당어림』의 또 다른 장점은 내용별 분류로, 『세설신어』의 35가지 주제에 17가지를 더하여 다음의 52가지 주제로 구성하였다.
덕행(德行), 언어(言語), 정사(政事), 문학(文學), 방정(方正), 아량(雅量), 식감(識鑒), 상예(賞譽), 품조(品藻), 규잠(規箴), 숙혜(夙慧), 호상(豪爽), 용지(容止), 자신(自新), 기선(企羨), 상서(傷逝), 서일(栖逸), 현원(賢媛), 술해(術解), 교예(巧藝), 총례(寵禮), 임탄(任誕), 간오(簡傲), 배조(排調), 경저(輕), 가휼(假譎), 출면(黜免), 검색(儉嗇), 치태(侈汰), 분견(忿), 참험(讒險), 우회(尤悔), 비루(漏), 혹익(惑溺), 구극(仇隙), 기호(嗜好), 이속(俚俗), 기사(記事), 임찰(任察), 유녕(諛), 위망(威望), 충의(忠義), 위열(慰悅), 급인(汲引), 위촉(委屬), 폄담(談), 참란(僭亂), 동식(動植), 서화(書畵), 잡물(雜物), 잔인(殘忍), 계책(計策).
52가지 주제를 보면 『당어림』이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를 섭렵했는지를 알 수 있다. 덕행(德行)부터 구극(仇隙)까지는 『세설신어』의 주제와 중복된다. 『세설신어』는 36가지 주제로 ‘첩오(捷悟)’가 있으나 『당어림』에는 없다. ‘기호(嗜好), 이속(俚俗), 기사(記事), 임찰(任察), 유녕(諛), 위망(威望), 충의(忠義), 위열(慰悅), 급인(汲引), 위촉(委屬), 폄담(談), 참란(僭亂), 동식(動植), 서화(書畵), 잡물(雜物), 잔인(殘忍), 계책(計策)’의 17가지는 왕당이 추가한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전하는 부분은 3분의 1에 해당하는 18가지 주제에 불과하다.
이러한 구성의 유사성 때문에 『당어림』은 『세설신어』와 비교되기도 한다. 명대 제지란(齊之鸞)은 “『세설신어』는 정취가 뛰어나다면 『당어림』은 사실성에서 뛰어나다[蓋世說淸曠間遠, 而語林精博典質; 世說情勝, 語林實勝]”고 평가하였다. 명사들의 풍류와 멋스러움이 전해주는 여운은 『세설신어』보다 부족할 수 있지만 『당어림』의 장점은 사건과 인물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기록했다는 것이다. 『사고전서제요』에서도 “『세설신어』를 모방했지만 기록한 전장제도 및 언행과 관련된 일화는 대부분 정사(正史)와 서로 대조하여 볼 수 있으니 유의경이 오로지 청담을 숭상한 것과는 다르다.[是書雖倣『世說』, 而所紀典章故實, 嘉言懿行, 多與正史相發明. 視劉義慶之專尙淸談者不同.]”라고 평가하였다.
『당어림』은 유명 저자의 저작이 아니므로 크게 유통되지 못했고 확정된 판본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송대의 각종 서목(書目)에는 권수와 저자가 통일되어 있지 않다. 『군재독서지(郡齋讀書志)소설류』에는 ‘『唐語林』十卷’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편찬자를 알 수 없다. 『세설신어』의 형식을 모방하여 당나라 일에 대해 분류하여 기록하였으며, ‘기호(嗜好)’ 등 17가지 주제를 첨가하였다.(右未詳撰人. 效世體, 分門記唐世事, 新增嗜好等十七門.)
저자가 분명히 표시되지 않은 판본이 있었던 것이다. 정초(鄭樵)의 『통지(通志)』와 진진손(陳振孫)의 『직재서록해제(直齋書錄解題)』에는 “『당어림』八卷”으로, 왕응린(王應麟)의 『옥해(玉海)』에는 11권으로 되어 있다. 원대(元代)에 편찬된 『송사(宋史)·예문지(藝文志)』도 11권으로 되어 있다. 송대에 이미 8권, 10권, 11권 등 여러 종류의 판본이 유통되었던 것이다. 명나라 이후 서목에서 보이는 것은 대부분 8권본과 10권본이며, 명말 이후 무렵부터는 완정한 판본의 기록이 없다. 명대(明代) 사조제(謝肇)의 『오잡조(五雜俎)』에서는 양신(楊愼)의 말을 인용하여 “『어림』은 전하는 판본이 희귀하여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청대 『사고전서』에는 당시 남아있던 것과 『永樂大典』에서 집일한 것을 합쳐 8권본을 수록하였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8권본으로 왕당이 편찬한 원래의 면모가 아닌, 후대 학자들이 조합한 것이다.
현전하는 8권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권1∼권4까지는 덕행(德行), 언어(言語), 정사(政事), 문학(文學), 방정(方正), 아량(雅量), 식감(識鑒), 상예(賞譽), 품조(品藻), 규잠(規箴), 숙혜(夙慧), 호상(豪爽), 용지(容止), 자신(自新), 기선(企羨), 상서(傷逝), 서일(栖逸), 현원(賢媛)의 18가지 주제이다. 이 부분은 『당어림』의 본래 모습이다. 권5∼권8까지는 『사고전서』 편수관들이 『영락대전』에서 집일한 ‘보유(補遺)’이다. 8권에 모두 1079 조목이 수록되어 있다. 고증에 의하면 일실된 부분은 원래 편폭의 절반 이상으로 최소한 5권, 많게는 9권으로 추정된다.
『당어림』이 인용한 50종의 필기는 대부분 실제 인물과 사건에 대한 것으로 사료적 가치가 높으며 당대의 풍속, 문화, 사회, 정치 등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따라서 사서(史書)인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에서도 다수 인용할 만큼 사실성과 객관성에서 인정을 받는 필기들이다. 필기가 직접 목격하거나 혹은 전해들은 이야기를 기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어림』은 우리가 접할 수 있는 唐代와 가장 가까운 기록의 모음집으로서 역사보다 훨씬 생생하고 구체적인 당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때문에 『당어림』을 활용하여 당대(唐代)의 풍속, 문화, 사회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할 만큼 사료적 가치가 높다.
문헌학적으로 『당어림』은 현재 일실된 당대 필기 중 적지 않은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50종의 필기 중 『사고전서』를 편찬할 때 일실된 것이 약 26종이었고, 전해지던 것들 중 상당 부분도 원본은 일실되어 『영락대전』에서 집일한 것으로 이미 원서의 형태가 아니었다. 따라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편찬된 『당어림』의 내용은 원서에 가까운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필기라는 문체적 특성상 당시의 구어(口語), 어휘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 당대 어학 연구에서 활용도가 높은 원전으로, 『당어림』을 이용한 고대 어법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상과 같이 『당어림』은 당대 역사, 정치, 제도, 사회, 문화, 언어 연구에서 중요한 문헌이다.
『당어림』이 중요한 자료라는 점은 모두 인정했지만 신뢰할 수 있는 교감본이 없었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중국 남경대학의 주훈초(周勳初) 선생이 1987년 『당어림교증(唐語林校證)』을 출간하면서 각 조목의 출처와 50종 당대 필기에 대해 일일이 대조 작업을 통해 충실하게 교감한 판본이 나오게 되었다. 이후 이 책의 가치와 활용에 대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될 수 있었다. 따라서 본 번역에서 원문은 주훈초의 『당어림교증』(중화서국(中華書局), 1997)을 바탕으로 하였다.
『당어림』은 ‘당나라판 『세설신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세설신어』를 애독하는 이유는 짧은 편폭에 담긴 옛 사람들의 일화와 언행으로부터 멋스러움, 여운, 감동,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설신어』는 동진(東晉)까지의 인물로 제한되어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를 당대(唐代)의 인물로 바꿔 편찬한 것이 『당어림』이다. 장안이 당나라 수도였던 점을 생각해보면, 여기에 담긴 일화들은 그야말로 당시 사람들에게 이슈가 되었던 ‘장안의 화제’였던 셈이다. 고전을 어렵고 지루하게만 생각하는 독자들이 부담 없이, 친숙하게 읽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상에 내어놓는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왕당
북송시기에 활동했던 문인으로, 자字는 정보正甫이고, 장안長安(지금의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 출신이다. 명문가문 출신이었지만 벼슬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원우元祐 4년(1089), 국자감승國子監丞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소부감승少府監丞을 역임하였다. 소식蘇軾의 문하에 들어가 소식 및 그의 문인들과 아주 가깝게 지냈다. 서예에 능하고 그림을 잘 그렸는데, 왕선王銑ㆍ소식과 작풍作風이 비슷했고, 필기소설을 즐겨 읽었던 소식의 영향도 받았다. 저서에 『당어림唐語林』 8권이 있다.
목차
권7
보유補遺
권8
보유補遺
부록
Ⅰ. 50종 필기 해제
Ⅱ. 『사고전서총목·당어림』 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