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감시와 침묵, 권력과 예술의 경계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되묻는 소설이다. 읽고 난 뒤에도 건물의 복도와 절규하는 청동상의 이미지가 오래도록 잔상처럼 남는다. 김현주 작가의 세밀하고 깊이 있는 문장이, 독자를 불안의 한가운데로 안내한다.
출판사 리뷰
감각적이고 서늘한 미스터리, 침묵의 권력을 마주하다.
김현주 작가는 해안 도시 모항시의 ‘모항문화재단’을, 형태를 잃고 되찾는 괴이한 건물로 그려낸다. 입구와 출구조차 가늠할 수 없는 미로 속에서, 은밀한 비밀과 억눌린 감정이 층층이 쌓여간다.
아침마다 가장 먼저 건물에 들어서는 한 여인. 그녀를 붙잡는 윤수호 추모전의 청동상과 형형한 눈빛. 작품과 공간,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균열은 서서히 번져나간다.
《얼굴 없는 아침》은 감시와 침묵, 권력과 예술의 경계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되묻는 소설이다.
읽고 난 뒤에도 건물의 복도와 절규하는 청동상의 이미지가 오래도록 잔상처럼 남는다.
김현주 작가의 세밀하고 깊이 있는 문장이, 독자를 불안의 한가운데로 안내한다.
그녀는 더 이상 하늘공원에 가지 않았다. 대신 작은 교회에서 오래 기도했다. 월요일이면 마음이 가벼워졌다. 매일 진한 화장으로 파리한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생기있는 립스틱으로 환한 얼굴빛을 만들고, 옷의 색상과 디자인에 신경을 썼다. 직원들과 친해져서 명랑하게 웃기도 했다. 그러나 자리에 돌아오면, 급격히 침울해지기도 했다. 때로 무엇에 깜짝 놀라, 습관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마음 속, 오래된 죄책감과 두려움을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길을 잃은 영혼 같았다. 허공 중에서, 부유하는 먼지들 틈에서, 그의 환영이 보일 듯해 자주 헤맸다.
일기를 썼다.
나는 넋을 놓치고, 폐인처럼 생이 부서지고 말았다. 사랑 아닌 사랑을 잃었다. 지하에 그를 가두고, 나는 살아있다. 이런 나를 아는 사람은 없다. 이제 기다릴 미래는 없다. 나는 나를 잃었다.
그녀는 자신의 심정을 끄적거리다, 찢었다.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침실 유리창을 열었다. 하늘은 희뿌옇게 흐렸다. 비가 올 듯했다. 밤이 없는 아침. 그와 보낸 시간은 헛된 꿈이었을까. 아니,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눈이 없는 욕망과 질투. 그것이 예리한 칼날이 되어 심장을 찔렀다. 내가 죽였구나… 당신을 결국. 결국, 나를 죽였구나. 온몸이 슬픔에 젖었다. 눅눅한 습기가 올라와 그녀의 고독한 몸을 에워쌌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폐부에서 끌어내, 토했다. 남아있는 생의 고통이 그녀의 몸을 휘어 감았다.
여름비는 끝없이 질척하게 내렸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현주
199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1998년 계간지 『문학과 사회』로 등단했다.창작집 『물속의 정원사』, 산문집 『네 번째 우려낸 찻물』, 장편소설 『붉은 모란 주머니』, 소설집 『메리골드』가 있다. 제10회 광일문학상, 제6회 담양송순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