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그동안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던 조선초기와 중기의 거족 양반가문의 형성 과정과 변화를 추적, 분석한 선구적 연구이다. 조선초기에 가장 번창한 거족가문인 파평윤, 청주한, 진주강, 창녕성, 고령신, 광주이, 한산이씨의 7개 가문을 표집하여 가문의 전개, 가문의 인물과 인사행정, 가문의 통혼권과 가계의식을 고찰하였다. 또 이들 7개 가문과 가세가 대등하지만 제외된 안동권, 광산김, 문화유, 전의이씨를 추가한 11개 가문의 통혼·경제와 가문출신 관인이 조선초기의 인사행정·정치운영과 어떻게 연관되었는가를 검토하였다.
출판사 리뷰
조선시대의 지배층인 ‘명문 거족’ 양반가문들의 형성과 변화 과정을 추적하다!
이 책은 그동안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던 조선초기와 중기의 거족 양반가문의 형성 과정과 변화를 추적, 분석한 선구적 연구이다. 조선초기에 가장 번창한 거족가문인 파평윤, 청주한, 진주강, 창녕성, 고령신, 광주이, 한산이씨의 7개 가문을 표집하여 가문의 전개, 가문의 인물과 인사행정, 가문의 통혼권과 가계의식을 고찰하였다. 또 이들 7개 가문과 가세가 대등하지만 제외된 안동권, 광산김, 문화유, 전의이씨를 추가한 11개 가문의 통혼‧경제와 가문출신 관인이 조선초기의 인사행정‧정치운영과 어떻게 연관되었는가를 검토하였다.
양반가문은 고려초에 문‧무반 관인을 배출한 집(家)을 지칭하면서 비롯되었고, 고려중기에 대대로 고위관직을 점유하면서 정치를 주도하였던 문벌가문과 통용되면서 지배신분층의 가문-양반가문으로 정착되었다. 이 양반가문이 조선개국과 함께 조선으로 계승되다가 세조대 이후에 그중에서 다수의 공신과 최고위 관직을 배출하면서 족세가 번창한 가문이 여타 가문과 구별되면서 유력성관-거족가문으로 지칭되면서 정착되었다.
조선초기의 양반가문은 가문 간에 차이는 있지만 신분적 특권을 누리면서 조선의 정치를 주도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청주한‧파평윤‧안동권씨를 필두로 한 11개 유력성관은 다수가 왕실과의 혼인, 공신책록‧의정과 판서 등 추요직 역임을 통해 여타 유력(거족)성관보다 우월한 지위를 누렸다. 조선초기 청주한씨 등 11성관 자손은 여타 양반가문 자손과 같이 문‧무과, 음서, 천거 등을 통해 출사하였지만, 수십명이 음서로 자손에게 관직을 제수할 수 있는 당상관이 되었기에 음서가 중심이 된 과거 등을 통해 자손의 89%(한산이)~42%(광산김)가 출사하였다. 이들 청주한씨 등 11성관 사관자는 국왕과의 관계, 공신책록, 단종대 이후의 수십회에 걸친 백관 등에게 수여한 가자(加資)‧대가(代加), 의정이하 당상 추요직을 역임한 부조의 직‧간접적인 후원으로 총 500여명이 정1~정3품 당상관까지 승진하였다. 당상관에 진출한 이들은 과거‧음서를 통해 자손의 31%(전의이)~74%(한산이)를 출사시켰고, 그중 수십 명이 다시 당상관에 진출하여 자손에게 음서의 혜택을 줄 수 있었다. 이점에서 음서는 일시에 다수의 문과급제자를 배출하면서 명문이 된 광주이씨는 물론 대다수 유력 양반가문이 가세를 유지하고 지속시키는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조선초기 ‘거족’ 양반가문은 가격을 유지하고 정치적인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가격이 비슷하거나 우월한 가문과 통혼을 도모하였다. 파평윤씨 등 7성관은 종친‧가격이 비슷한 청주한씨 등 10가문‧거족성관과 21%(창녕성)~56%(청주한)가 통혼하였다. 청주한씨 등 7가문과 여러 번에 걸쳐 통혼한 파평윤씨 등 20여 가문 중 부조의 가계가 명확한 인물의 경우 반수 내외가 10촌 이내의 근촌이었고, 양가부모가 당상관인 경우 그 관직이 상응되었다.
조선초기 양반의 경제적 토대는 조상전래의 사전‧노비가 중심이 된 직전‧공신전‧별사전과 매입한 토지‧노비였다. 특히 단종~성종대에는 다수가 공신에 책록된 관인의 가문은 공신전이 중심이 되었다. 또 단종~성종대에는 백관 등 수천명 이하를 대상으로 한 가자‧대가에 의해 단기간에 정3품 당하관 이하에 승자‧승직하였는데, 특히 가세가 가장 번창한 청주한씨 등 11가문의 자손은 그 경향이 현저하였다. 이들은 조기에 당상관에 승진하였는데 그 평균연령을 보면 33~45세(정3품), 38~54세(정2품), 47~61세(종1품)였다. 이 연령은 세조대에 정치를 주도한 5공신과 비슷하거나 빨랐을 정도였다.
이들 청주한씨 등 11성관은 자질‧가계, 이를 토대로 한 왕실의 후원을 통해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당상관 추요직인 의정에 20명(25%), 판서 60명(27%), 승지 83명(30%) 등을 배출하였다. 특히 단종~성종대에는 의정의 34%, 판서의 61%나 되었다. 이들중 30여 명은 의정, 판서, 승지 등으로 당시의 정치를 주도하여 명문가문으로 위세를 떨치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이상에서 조선초기, 특히 단종대 이후에 가장 번창하였던 청주한씨 등 11성관은 다수의 공신과 재상‧문과급제자를 배출하고 음서를 통해 대대로 관직을 계승시키고 거족가문과 통혼하면서 명문가문으로서의 가격을 유지하고 계승시켰다. 또 파평윤씨 등 소수 유력성관이 500여 명의 당상관을 배출하고 120여 명이 당상 추요직을 역임하고 당상관 추요직을 역임한 사돈과 직‧간접적으로 협조하면서 단종~성종대의 정치를 주도하였다. 파평윤씨 11성관의 이러한 관직점유와 정치력 발휘는 비록 조선후기 세도기 벌열양반집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순조대 이후의 세도정치의 단초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이 연구를 통하여 조선초기의 유력 양반가문이 조선후기의 벌열가문과 어떻게 연관되는가가 규명되고, 조선초기에 유력 양반가문이 정치‧사회에서 점하는 비중 등 조선초기 정치와 사회를 천착하는 한 토대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나아가 후속 가문연구가 이어지면서 조선왕조가 소수의 유력양반가문을 토대로 운영되고 존속되었음이 보다 명확해지기를 바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한충희
1947년 경북 김천시 아포읍 예리에서 출생, 계명대학교 학사‧석사, 고려대학교 박사.계명대학교 교수 및 인문대학장 역임. 현재 계명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주요논저로 <한국사> 권22‧23(공저, 1994), <조선초기 육조와 통치체계>(1998), <조선초기의 정치제도와 정치>(2006), <조선전기 의정부와 정치>(2011), <조선의 패왕 태종>(2014), <조선초기 관인 이력(태조~성종대)>(2020), <조선 중‧후기 정치제도 연구>(2022), <조선 중‧후기의 정치제도와 정치>(2023), <조선초기 관인 연구>(2024) 등이 있다.
목차
서언
서장 기존 연구와 연구방향
제1부 兩班과 兩班‧鉅族家門의 形成
제1장 兩班‧兩班家門의 形成과 定着
제2부 戚族家門의 展開
제2장 坡平尹氏(陟系)
제3장 淸州韓氏(渥系)
제3부 鉅族家門의 展開
제4장 晉州姜氏(啓庸系)
제5장 昌寧成氏(汝完系)
제6장 高寧申氏(仁材系)
제7장 廣州李氏(蔚系)
제8장 韓山李氏(穡系)
제4부 兩班家門의 通婚과 經濟
제9장 兩班家門의 通婚과 家系意識
제10장 兩班家門의 經濟
제5부 兩班家門과 人事行政‧政治
제11장 兩班家門과 人事行政
제12장 兩班家門과 樞要職‧政治
결어
부록 朝鮮 世祖代(1455~1468) 宗親硏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