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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사회 153호 - 2026.봄 (본책 + 하이픈)
문학과지성사 | 부모님 | 202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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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최근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그야말로 불길하고도 공포를 자아내는 사건의 연속이었다. 전쟁과 학살, 범죄가 난무한 가운데 우리는 더는 ‘생명정치’라는 개념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말 그대로 ‘죽음정치’의 한복판에 놓인 듯하다. 개인의 노력으로는 벗어날 수 없고 시민사회나 국가의 대응으로도 해결이 난망한 거대한 모순과 퇴행의 국면 속에서 세계는 불길하고도 기묘한 정동에 휩싸여 있다. 이에 이번 『문학과사회 하이픈』은 지금 시대의 정동과 그 양상을 다층적으로 살펴보았다. 오늘날 세계를 관통하는 정동을 분석하고 성찰하는 자리를 마련하여 이 시대의 복잡한 지층을 이해해보고자 하였다.

  출판사 리뷰

시대-정동
“익숙한 세계가 낯선 얼굴로 다가올 때”
―김남이, 서동진, 소유정, 이소, 김병규, 이희우, 신현우, 홍성희―

■ 서문:
봄호를 펴내며
잊지 않겠다는 약속


영화 「왕과 사는 남자」(2026)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관객의 발길이 뜸해진 극장가에서 관객 수 천만 명에 가까운 성과를 보인 한국 영화는 2024년 이후 처음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의 흥행 요인이 작품 자체보다도 관객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왕과 사는 남자」는 관객들의 정동적 움직임으로 성공한 영화다. 작품을 평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훌륭한 시나리오, 감독의 연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등 모든 부분이 빠짐없이 우수해야 할 테지만, 이 영화에서는 관객 반응이 중요한 구성 요소 중 하나이다. 관람 후 세조의 무덤인 광릉과 한명회의 묘를 향한 비난 섞인 리뷰를 지도 앱에 남기고 단종의 무덤인 장릉에는 추모하는 마음을 전하는 반응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며 상영 초반 관객을 이끌었다. 단종의 서사만으로 「왕과 사는 남자」가 흥행하기는 분명 어려웠을 것이다.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말처럼 조선왕조의 역사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이미 결말을 아는 채로 보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외로 바로 그 점이 「왕과 사는 남자」를 천만 고지에 이르게 하였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어떤 시간을 공유하고, 언젠가 이 땅에 실존했던 인물들을 애도하며, 장항준 감독의 말처럼 ‘실패한 정의의 뒷모습’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이 영화는 유효하다. 역사를 잊지 않고 지금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로서 전 세대의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한국 영화’라는 포인트 역시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 문학 또는 그 무엇들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이와 같은 정동적 움직임이 잠시의 위로로 여겨졌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그야말로 불길하고도 공포를 자아내는 사건의 연속이었다. 전쟁과 학살, 범죄가 난무한 가운데 우리는 더는 ‘생명정치’라는 개념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말 그대로 ‘죽음정치’의 한복판에 놓인 듯하다. 개인의 노력으로는 벗어날 수 없고 시민사회나 국가의 대응으로도 해결이 난망한 거대한 모순과 퇴행의 국면 속에서 세계는 불길하고도 기묘한 정동에 휩싸여 있다. 이에 이번 『문학과사회 하이픈』은 지금 시대의 정동과 그 양상을 다층적으로 살펴보았다. 오늘날 세계를 관통하는 정동을 분석하고 성찰하는 자리를 마련하여 이 시대의 복잡한 지층을 이해해보고자 하는 노력에 여덟 명의 필자가 함께해주었다.
김남이의 「소진된 정동과 꽉 찬 정동무감각을 감각하기로서의 수치와 글쓰기」는 오늘날 문화가 정동을 저항의 잠재성으로 남겨두기보다 적극적으로 착취하고 소진하는 방식에 특화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정동은 특정한 감정으로 명명되기 이전, 신체에 먼저 도착하는 “알려지지 않은”경험이며, 행동의 방향이 결정되지 못한 지연 상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필자는 후기 자본주의 문화에서 이 정동이 어떻게 소진되고 있는가를 면밀히 분석한다. 대중매체는 비결정적이고 잠재적인 정동을 과잉생산하면서도 이를 감정으로 번역하거나 증폭해 정치적으로 포획한다. 그 결과 우리는 강렬한 자극과 흥분 속에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행위의 동기를 상실한 “정동적 소진”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또한 필자는 ‘수치’를 근원적이고 사회적인 정동으로 재해석한다. 수치는 흥미와 즐거움이 완전히 소거되지 않은 채 지연되는 “사이in-between 정동”으로 탐색과 사유를 촉발하는 힘을 지닌다. 특히 글쓰기는 이러한 수치의 정동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프리모 레비의 사례처럼 수치는 증언과 사유를 추동하는 충동이 되며, 세계와 다시 관계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결국 글쓰기는 소진된 정동을 재활성화하는 실천이자 무감각을 감각하고 견디는 방식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서동진의 「긁힌 자들의 세계정동과 서사, 둘 다 주세요」는 ‘공포 탐욕 지수Fear&Greed Index’라는 경제지표에서 출발하여 오늘날 세계를 이해하는 주요한 감각으로서 정동이 어떻게 부상했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금융시장을 공포와 탐욕이라는 정동적 색조로 계량화하는 이 지표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경제를 합리적 법칙이 아닌 집단적 심리와 강도의 흐름으로 재현하려는 전환을 상징한다. 정동은 더는 경제에 국한되지 않고 포퓰리즘 정치, 숏폼 미디어, 즉각적 흥분과 침울이 교차하는 일상적 경험 전반을 설명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정동 연구가 인식론을 넘어 존재론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논의에서 서동진은 하이데거의 ‘기분stimmung’을 연결한다. 기분은 ‘세계내존재’의 방식으로 우리를 덮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존재론적 전환은 과거현재미래를 엮는 역사적 시간성을 해체하고 ‘현재’의 강도에 몰입하는 시간의 축소를 동반한다. 그 결과 경험은 서사화되지 못한 채 신체적 강도로 남는다. 나아가 시간은 서사를 통해서만 인간적 시간이 되며 리얼리즘은 서사적 충동과 정동이라는 두 원천의 이율배반 속에서 작동한다는 주장 역시 주목할 만하다. 정동은 서사를 중단하면서도 동시에 서사를 재촉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오늘날 빈번하게 사용되는 ‘긁혔다’‘도파민 터진다’와 같은 표현은 의미화에 실패한 현재의 감각을 가리키는 정동적 신호다. 그러므로 지금의 과제는 정동인가 서사인가의 선택이 아닌, 정동과 서사의 변증법을 복원하여 고립된 현재를 역사적 맥락 속에 재배치하는 데 있다.
소유정의 「셀 수 있는 마음─불안을 먹고 자란 기이하고 으스스한 이야기에 대하여」는 동시대의 지배적 정동을 ‘불안’으로 규정하며, 최근 대중문화와 문학에서 두드러지는 기이하고 으스스한 감각의 유행을 그 징후로 읽어낸다. 오컬트·무속·괴담 서사가 흥행하는 가운데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공포와 불안을 해소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소비하며 매혹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이는 안전한 거리에서 불안을 체험함으로써 현실의 위험을 우회적으로 견디는 하나의 방식일 수 있으며, 카타르시스를 넘어서는 주이상스의 차원에서 이해된다. 필자는 마크 피셔의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개념을 참조하여 이와 같은 감각이 세계의 규칙이 어긋나는 순간에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어 권혜영, 성해나, 백온유의 소설을 분석하며 사랑과 믿음이 수치화되고 물질화되는 양상을 짚어낸다. 결국 이 글에서 포착하고 있는 기이하거나 으스스한 감각은 초자연적 환상이 아니라 믿음을 성립시키던 인증 체계가 무너지는 순간의 정동이다. 불안은 언제든 현재를 침범할 수 있는 힘으로 유효하다. 동시대 소설들은 그 틈에서 생성되고 결렬하는 믿음의 양상을 통해 우리 시대의 정동적 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이소의 「구덩이에 떨어진 짐승처럼─수직과 죽음의 정동」은 동시대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구덩이와 뱀, 돼지, 낙지와 같은 동물 이미지를 통해 오늘날의 정동을 불안과 으스스한 감각으로 분석한다. 최서해의 「그믐밤」에서 상속과 계급 질서가 폭력적 희생 위에 성립하다 자멸하는 장면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여기서 뱀은 소품에 가깝지만, 윤흥길의 「장마」에서 뱀은 전쟁과 상식의 비극 속에서 모성적 영성에 의해 의미를 부여받는 존재로서 등장인물로 해석된다. 최근의 소설로 넘어와 서장원의 「뱀이 있는 곳」에서는 뱀술에 담긴 사체들이 그로테스크한 전시물처럼 제시되며 생명과 소비, 상속의 문제를 환기한다. 황정은의 「문제없는, 하루」에 등장하는 낙지와 칠게 장면은 인간이 파괴의 주체이자 대상임을 자각하는 순간을 통해 관망의 여지가 없는 공포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세계는 ‘고어 자본주의’를 넘어 ‘스너프 자본주의’로 나아간 현실과 겹치며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의 작동에 대한 으스스한 감각과도 연결된다. 살처분된 돼지들로 찬 구덩이를 통해 생명정치와 죽음정치가 교차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조해진의 「영원의 하루」, 선의가 악으로 전도되는 아이러니를 제시하는 함윤이의 「나쁜 물」까지의 사례로 알 수 있는 사실은 구덩이가 더는 타자의 추락을 내려다보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이미 떨어져 있는 자리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이 글을 통해 다시금 강조되는 지점은 오늘날의 불안이 단순한 공포를 넘어 무력감과 매혹이 뒤섞인 정동과 같다는 것이다.
김병규의 「한국 영화의 하반신─황정민의 ‘빤스’와 임상수의 시체」는 2000년대 이후 한국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남성의 벌거벗은 하반신’이미지를 통해 한국 사회의 외설적 정동과 역사적 유산을 읽어낸다. 한국 영화 속 남성 권력자들이 위기와 폭력의 순간마다 하반신을 노출하는 행위는 그저 외설이라고만 볼 수 없으며 권력, 수치, 굴욕, 도취가 뒤엉킨 남성적 위계의 실체를 드러내는 장치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이미지의 기원을 임상수의 「바람난 가족」(2003)에서부터 찾는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 집단 학살 유골 발굴 장면으로 시작해 간암 말기 아버지의 병든 몸과 배설 그리고 아들의 성기와 엉덩이 노출을 병치한다. 아들이 아버지의 썩어가는 하체를 닦아내는 장면은 이후 한국 영화에서 반복되는 하반신 모티프의 원형으로 제시된다. 아들은 권력자의 과시적 나체가 아니라 병든 아버지의 몸을 모방하는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노출된 하반신은 남성적 주체의 의지로 읽히지 않는다. 그것은 상속된 역사와 죄의식, 해소되지 않은 폭력의 유산이 분출되는 배설구와 같다. 임상수의 작품은 한국 영화와 문학의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훔쳐 병리학적으로 재배치하며 한국 사회 전체를 하나의 병든 신체로 그린다. 질병, 피, 배설, 분신, 추락 등은 세대를 넘어 전이되는 증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때 그사람들」(2005) 속 가려진 박정희의 하반신 역시 지워지지 않는 권력의 상징으로 남는다. 반복되는 ‘빤쓰’의 이미지는 과거의 외상이 현재를 지배하고 있음을 폭로하는 징후이자 한국 영화가 아직 벗어나지 못한 남성 권력의 정동적 잔재를 가리킨다.
이희우의 「평등과 질투 혹은 글쓰기의 이유」는 질투를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 정동으로 재사유하며 그것이 동시대 한국 사회와 글쓰기의 조건 속에서 어떻게 격화되는지를 분석한다. 필자는 질투가 압도적 불평등이 아니라 ‘비교 가능한 애매한 차이’에서 발생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원칙적으로 평등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불평등한 사회 그리고 서로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환경에서 질투는 극대화된다. 질투는 평판이 나쁜 감정이지만, 분노와 달리 공적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수치심과 함께 사적인 감정으로 축소되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글은 이희주의 「사과와 링고」를 중심으로 질투와 글쓰기를 연결한다. 글쓰기는 원칙적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실제로는 관심의 불평등이 지배하는 장이며, 바로 이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교차 지점에서 질투는 폭발할 수 있다. 필자는 누구나 말하고 글을 쓸 수 있다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적 조건이 오히려 관심 경쟁과 질투를 심화하는 역설을 지적한다. 질투는 평등과 자유의 약속이 실현되는 동시에 그것이 배반되는 자리에서 발생하는 동시대의 정치적 정동이다.
신현우의 「기계의 마음, 알고리즘의 협치, AI 리바이어던만물정량평가의 시대 정동이라는 전선에 대하여」는 AI와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시대를 “기계의 마음”과 “만물정량평가”의 체제로 규정하며 인간과 기계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역전되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과거 SF가 기계가 인간을 닮아가는 서사를 그렸다면, 오늘날 현실은 오히려 인간이 기계의 사고방식을 내면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연결주의와 인공 신경망, 거대 언어 모델로 이어지는 AI는 인간의 인식을 모방하기보다 패턴인식과 피드백 루프를 통해 독자적인 사고 체계를 구축했고, 이는 지정학·전쟁·경제 질서까지 재편하는 ‘거대기계’로 작동한다. 필자는 사이버네틱스의 핵심인 항상성과 피드백 개념을 짚으면서도, 인간을 단순한 정보 처리 체계로 환원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오토포이에시스’ 즉 ‘자기생성’과 ‘자기조직화’를 통해 사회적·정치적 관계를 창출하는 존재이며 이는 돌연변이·우연성·투쟁의 과정과 결부된다. 오늘날의 AI 환경은 이러한 정치적 과정을 우회한 채 알고리즘과 플랫폼을 통해 정동을 계량화하고 가중치로 환산한다. 이른바 ‘알고리즘의 협치’는 해석과 의미의 간극을 제거한 비기표적 기호계로 작동하며 욕망이나 취향, 노동 등을 숫자로 환원한다. 숫자에 의한 협치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정량 지표로 대체하며 노동을 프로그래밍 단위로 변형한다. 그 결과 기계적 노예화와 연산주의적 물신이 확산되고, 빅테크는 현대판 리바이어던처럼 사회질서를 관리한다. 필자는 이러한 상황에 맞서 감각과 정동의 영역, 특히 아직 충분히 수치화되지 않은 후각·미각·촉각의 차원에서 새로운 정치적 전선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래의 과제는 알고리즘적 통치를 넘어 감각되지 않은 것을 감각되게 만드는, 정동의 정치와 문학적 실천을 구성하는 데에 있다.
홍성희의 「그럴듯하지 않은 루빅큐브」는 테크놀로지와 미디어 환경을 중심으로 ‘객관’과 ‘이유’를 향한 집착이 오늘날의 정동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 살핀다. 필자는 아이의 질문에서 출발하여 이유를 설명하는 일이 경험과 맥락의 산물임에도 객관의 옷을 입는 과정을 짚는다. 각자가 자신의 관점을 ‘객관’의 자리로 상정하며 타자를 비객관적 존재로 위치시키고, 혐오와 반혐오의 대치 속에서 이유를 점유하려는 경쟁이 벌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의 언어는 실제로 질문을 확장하기보다 자명한 체계를 선점함으로써 사유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이어 필자는 드론 영상과 전쟁 보도를 통해 ‘객관의 시선’이 만들어내는 정동을 탐구한다. 드론은 물리적 거리를 벌리면서도 감각적 밀착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로, 관찰자를 안전한 메타적 위치에 놓는다. 이때 공감과 분노, 애도는 진정성을 띠지만 살상 행위를 수행하는 신체와 기술적 매개를 삭제한 채 작동한다. 객관을 매개로 한 정동은 냉소가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 공감의 외피를 지니며 안전감에 대한 애착을 강화한다. 또한 〈대학전쟁〉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포토 메모리’ 게임을 통해 세계를 데이터로 분절하고 암기하는 기술이 승리의 조건으로 제시되는 양상에 대해서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빅데이터와 생성형 AI의 언어 생산 방식과 맞닿아 있으며, 감정과 경험마저 데이터화해 ‘그럴듯함’의 범주 안에 편입시킨다. 객관과 주관의 구분은 흐려지고 기술의 객관이 주관의 옷을 입는 현장이다. 이 글은 테크놀로지가 감정의 조건과 인식 방식을 재편하는 시대에 확정 짓는 문장을 보류하고 질문을 제시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제안한다. 분홍 상어 복장을 한 시위자처럼 말이 되지 않음과 황당무계함이 오히려 질문을 다시 열어젖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정동은 안전한 객관의 자리보다 안전하지 않음을 감수하는 물음 속에서 생성된다.
봄호의 창작란은 기대되는 작품으로 가득하다. 남진우, 문태준, 이수명, 이민하, 황인찬, 안미린, 윤은성, 임유영, 나하늘, 한영원의 시와 김금희, 권혜영, 권희진의 소설이 마련되어 있다. 봄을 맞이하듯 설레는 마음으로 이들의 신작을 즐겨주시면 좋겠다. 지난 호까지 3회에 걸쳐 연재된 이승우의 소설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연재를 중단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덧붙인다. 소설을 기다렸을 많은 분께 사과를 전하며 추후 작가의 품에서 완성된 원고를 단행본으로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리뷰 코너에서는 뮤지션 박종현과 오연경, 윤옥재, 조성아, 민선혜, 양윤의 평론가가 지난 계절에 출간된 단행본을 밝은 눈으로 살펴주었다. 혼자 읽을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알아가고 깊이 있게 다시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한 글들이다. 제22회 마해송문학상에서는 수상작을 내지 못했다. 심사 과정에 대한 섬세한 보고를 꼼꼼한 심사평을 통해 확인해주시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소식을 전한다.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으로 함께해온 강동호, 조연정, 조효원 평론가가 지난 겨울호를 끝으로 그 자리를 내려놓았다. 그들이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문학과사회』를 기획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상실과 부담, 책임감과 같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그 무게를 결코 경시하지 않으며 이 자리를 잘 지켜나가겠다고 약속한다.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않았던 다정한 선배 평론가로서, 문학과 문학의 이름으로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들을 함께 치열하게 고민했던 동료로서 나누었던 그들의 헌신과 그간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앞으로 평론가로서 보여줄 좋은 글을 기대하며, 독자분들 또한 세 분의 이름을 오래 기억해주시길 바란다. 『문학과사회』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단히 노력할 것이다. 그 여정에 동행해주시기를 마음 깊이 부탁드린다.

편집동인 소유정

「소진된 정동과 꽉 찬 정동-무감각을 감각하기로서의 수치와 글쓰기」 _김남이
누군가 나에게 정동에 관해 묻는다면, 가장 추상적이지만 적절한 규정으로 “이해관심interest을 배반하는 몸의 느낌”이라 하겠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신체의 지연 상태suspension. 엘스페스 프로빈은 이런 느낌을 수치shame에서 발견한다. 정동 이론(들)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규정을 종합하면, 정동은 여러 종류로 구분 가능한 특정 감정emotion이라기보다는 그런 특정 감정으로 특질화되기qualified 전(시간)이나 옆(공간), 혹은 분명한 쾌/불쾌로 채색되기 전이나 옆, 혹은 그것의 색깔이 우리에게 알려지기 전이나 옆, 혹은 어떤 느낌이 행동 방향을 결정하기 전이나 옆에서-감정은 우리의 행동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원인이자 동기부여이다-신체가 표현하는 일종의 시그널이자 기호이다. 당황해서 발그레해지는 얼굴은 특정 상황에 대처하는 데 실패한 신체의 표현, 즉 수치이다.

「긁힌 자들의 세계-정동과 서사, 둘 다 주세요」 _서동진
외부의 현실로부터 자신에게 들이닥친 느낌을 서사화화지 못할 때, 정동은 그것을 상세히 기술하며 서사를 멈춘다. 숱한 ‘에세이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는 서사적 흐름으로부터 탈구된 긴 풍경 장면처럼, 우리는 잠시 정동의 순간에 머물며 서사적 공간으로부터 비켜난다. 그러나 그렇게 저지된 서사는 주어진 서사적 코드를 통해서는 쉬이 설명할 수 없는 주관적 경험을 위해 불가결할지도 모른다. 즉 그것은 어쩌면 반?서사로서 서사에 둘러붙는다. 그리고 사후적으로 정동이, 다시 제임슨의 말을 빌리면, 명명된named 정동, 즉 감정 emotion으로 전환될 때, 즉 사회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정동에 의미가 할당되고 그에 조응하는 이름이 부여될 때, 우리는 서사화된 정동, 즉 감정에 이르게 될 것이다.

「셀 수 있는 마음-불안을 먹고 자란 기이하고 으스스한 이야기에 대하여」 _소유정
불안은 언제 어느 때고 현재를 재침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 그렇기에 대중문화와 문학에서 공포와 불안을 향유하는 현상은 불안을 다루는 감각적 장치를 모색하는 시도로 읽힌다. 안전한 거리에서 겹겹의 불안을 체험하고, 두려움과 매혹이 뒤엉킨 쾌/고통의 형식으로 현실의 위협을 우회적으로 견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 글에서 다룬 동시대 소설들은 그 장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장 예민하게 드러내며, 불안의 틈을 파고들어 기이하고도 으스스한 것의 감각을 극대화한다. 공포 혹은 불안이 어느새 매혹으로 변모하는 과정 속에서 그 치환을 이루는 조건들은 자본주의적 논리하에 인증 가능한 형식으로 수치화되거나 물질화된다. 현실을 지탱하던 규칙이 작동 불능에 빠지는 순간 출현하는 감각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목차

| 본권 |
봄호를 펴내며


남진우 밤의 물 외 1편
문태준 수국 외 1편
이수명 실내화 외 1편
이민하 음악과 생활 외 1편
황인찬 죽은 물건을 세는 단위 외 1편
안미린 폐정원 외 1편
윤은성 남아 있는 개와 최선 외 1편
임유영 카무트 프로파간다 외 1편
나하늘 우연히도 계획된 사건의 배치 외 1편
한영원 천사학angelology 외 1편

소설
김금희 나의 마샹(?上)
권혜영 삭제하기, 새로 하기, 계속하기
권희진 상관없는 계절

리뷰
박종현 초록을 벗는 시, 초록 사이로 나는 시
?마종기, 『내가 시인이었을 때』(문학과지성사, 2025)
오연경 ‘낯설게 낯선 자’를 맞이하기
?허연, 『작약과 공터』(문학과지성사, 2025)
?채호기, 『이상한 밤』(문학동네, 2025)
윤옥재 시는 우리가 홀로?함께 있는 방식
?백은선, 『비신비』(문학과지성사, 2025)
?이민하, 『우울과 경청』(창비, 2025)
조성아 실패와 오해가 우리의 운명이라면
?유선혜, 『모텔과 나방』(현대문학, 2025)
?이실비, 『오해와 오후의 해』(문학과지성사, 2025)
민선혜 ‘나’를 데리고 사는 일
?함윤이, 『자개장의 용도』(문학과지성사, 2025)
?김성중, 『왼손잡이는 꿈을 잘 기억한다』(문학동네, 2025)
양윤의 불안과 공포의 정치경제학
?정이현, 『노 피플 존』(문학동네, 2025)
?편혜영, 『어른의 미래』(문학동네, 2025)

제22회 마해송문학상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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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픈 | 시대-정동

김남이 소진된 정동과 꽉 찬 정동?무감각을 감각하기로서의 수치와 글쓰기
서동진 긁힌 자들의 세계?정동과 서사, 둘 다 주세요
소유정 셀 수 있는 마음?불안을 먹고 자란 기이하고 으스스한 이야기에 대하여
이소 구덩이에 떨어진 짐승처럼?수직과 죽음의 정동
김병규 한국 영화의 하반신?황정민의 ‘빤스’와 임상수의 시체
이희우 평등과 질투 혹은 글쓰기의 이유
신현우 기계의 마음, 알고리즘의 협치, AI 리바이어던?만물정량평가의 시대 정동이라는 전선에 대하여
홍성희 그럴듯하지 않은 루빅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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