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024년 여름 한 노점상의 부고를 계기로 시작된 이야기. 언제나 ‘길 위에 식당’을 차리고 농성장과 투쟁 현장을 찾아 밥을 지어 온 유희의 삶을 복원한다. ‘유희의 사람들’ 15명의 인터뷰로 엮은 기록으로 “밥은 하늘이다”라는 신념으로 이어진 밥 연대의 시간을 담았다.
출판사 리뷰
“춥고 외로운 투쟁을 해 본 사람치고 유희 동지의 밥을 안 먹어 본 사람이 있을까요.”
‘유희의 사람들’이 말하는 유희의 삶과 연대
2024년 여름, 글쓴이 최규화 기자의 페이스북 피드에 한 사람의 부고가 올라왔다. 기자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 대한 추모의 글은 며칠이 지나도 멈추지 않았다. 게시물을 올린 이들은 대개 노동자였고, 그들의 글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밥’이라는 낱말이 있었다. “춥고 외로운 투쟁을 해 본 사람치고 유희 동지의 밥을 안 먹어 본 사람이 있을까요”라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말처럼, 수많은 이가 유희가 지은 밥 한 그릇에 빚진 마음으로 애통함을 쏟아냈다. 글쓴이는 그 추모의 물결을 따라가며, 언제나 ‘길 위에 식당’을 차린 1959년생 노점상 유희의 삶을 복원한다.
유희의 ‘밥 연대’는 1995년 노점상 최정환·이덕인 열사의 죽음을 겪으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농성장과 영안실에 솥을 걸고 밤새 밥을 짓던 유희의 활동은 2017년 시민들의 후원으로 마련한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차’로 이어졌고, 쌍용자동차 해직 노동자와 세월호 유가족 등 전국의 투쟁 현장을 누비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췌장암 투병 중에도 “죽을 때까지 밥 연대를 하는 게 소원”이라던 유희는 2024년 여름,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밥묵차’를 지켰다. ‘유희의 사람들’ 15명의 인터뷰를 통해 엮어낸 이야기 속에는 공권력 앞에서는 “싸움짱”이었고, 원칙 앞에서는 물러섬 없는 “강철 여인”이었으며, 누군가를 위로하는 무대 위에서는 무대를 찢는 ‘트로트 가수’였던 유희의 입체적인 면모가 담겨 있다. “밥은 하늘이다”라는 신념으로 지어 올린 밥 한 그릇이 어떻게 “춥고 외로운 투쟁을 하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는지, 그 연대의 기록을 만날 수 있다.
페이스북의 부고로부터 시작된 이야기
2024년 여름, 글쓴이 최규화 기자의 페이스북 피드에 한 여성의 부고가 올라왔다. 기자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 대한 추모의 글은 며칠이 지나도록 끊이지 않았다. “게시물을 올린 이들은 대개 노동자였다. 수십 명은 족히 되는 것 같았다. 대체 어떤 분이 돌아가셨길래?” 기자는 그들의 글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밥’이라는 낱말에 주목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춥고 외로운 투쟁을 해 본 사람치고 유희 동지의 밥을 안 먹어 본 사람이 있을까요”라며 고인을 기렸다.
기자는 한 번도 유희의 밥을 얻어먹은 적이 없다는 사실에 오히려 부채감을 느꼈다. “얻어먹어서 미안한 게 아니라, 얻어먹은 적이 없어서 미안했다. 그 세월 동안 나는 그녀의 현장에 있어 본 적 없다는 게 부끄러웠다”라는 고백은 이 책을 쓰게 된 가장 큰 동기다. 기자는 1주기 추모제를 시작으로 한 달간 ‘유희의 사람들’ 15명을 인터뷰하며, “가장 낮은 곳을 지키며 가장 높은 밥을 지었던 그녀의 삶 이야기”를 복원한다.
길 위에서 시작된 30년 ‘밥 연대’
유희의 밥 연대는 1990년대 초반 전국노점상연합 사무실에서 시작되었다. 가난한 활동가들이 굶는 것이 일상이었던 시절, 그녀는 “김치찌개만 끓여도 한 끼 든든히 배를 채울 수 있었다”라며 직접 주방으로 들어갔다. 당시를 함께했던 서선정은 “언니 음식을 먹으면서 ‘아, 동지란 이런 거구나’라는 마음이 생겼다”라고 회상한다. 1995년 최정환·이덕인 열사의 죽음을 겪으며 유희의 밥상은 영안실과 거리 농성장으로 확장되었다. “굶길 수는 없으니 큰 솥에다 국 끓여 밥해서 나눴다”라는 유희 말처럼, ‘먹어야 이긴다’라는 신념이 현장에서 솥을 걸게 했다.
그 뒤 유희는 아들이 타다가 준 검정 세단에 밥을 싣고 전국의 농성장을 누볐다. “내가 늘 하고 싶은 건 멕이는 거. 그 입에 들어가는 걸 보고 싶은 거지”라고 말하던 유희의 진심에 시민들이 화답했다. 2017년 조리 설비를 갖춘 밥차를 마련하기 위한 시민 모금이 시작되었고, 배우 김의성 등이 기금을 보태면서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차’가 탄생했다.
‘밥묵차’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세월호 유가족, 소성리 주민 등 우리 사회의 아픔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때로는 장사꾼으로 오해받기도 했지만, 유희는 당당히 말했다. “아줌마가 아니고 동지이기에 이렇게 온 거다. 왜 왔냐고 묻지 마라. 맛있게 먹기만 해라.” 그렇게 제공된 밥 한 끼는 “단순히 밥을 짓는 일이 아니라 수평의 연대로 작고 약한 목숨들을 지탱하는 촘촘한 그물망”이 되었다.
싸움짱, 강철 여인, 그리고 무대를 찢는 트로트 가수
유희는 타협하지 않는 원칙주의자이자 열정적인 현장 활동가였다. “원칙에 맞으면 무조건 하고, 원칙에 어긋나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성격”이었던 유희는 투쟁의 대오가 흔들리거나 원칙에서 벗어난 동료를 보면 가차 없이 “등짝 스매싱”을 날렸다. 공권력의 탄압에 절대 물러서지 않았던 그녀를 동료들은 깡패나 대통령과도 맞짱 뜨는 ”강철 여인”이라 불렀다.
동시에 유희는 투쟁의 현장을 축제의 장으로 변모시키는 프로 가수였다. “오렌지색 앞치마에 국자를 들고 밥을 나누다가 반짝이 옷에 가죽 부츠를 신고 트로트를 부르던 사람”이었다. 유희는 밥상 뒤에 숨지 않고 전면에 나서서 사람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유희에게 밥과 노래는 고된 장기 투쟁을 견디게 하고 투쟁하는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강력한 무기였다.
암세포도 꺾지 못한 고집
2022년 11월, 췌장암 판정을 받은 뒤에도 유희의 밥차는 멈추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도 그렇게 (밥 연대) 하다가 죽는 게 자기 소원이라고 그랬다”라는 친언니 유덕희의 말처럼, 유희는 항암 치료의 고통 속에서도 새벽 4시에 일어나 밥을 지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지인들의 도움을 빌려서라도 현장으로 향했다. “저렇게 잘 먹는데, 안 왔으면 어쨌을까. 잘 왔다. 내가 안 왔으면 추운 데서 덜덜 떨었을 텐데”라며 미소 지었다.
유희는 2024년 6월, 향년 65세로 세상을 떠나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묻혔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동지들의 안부를 묻고 기도를 올렸던 그녀의 삶은 김진숙 지도위원의 말처럼 “영혼의 허기를 채우고 끝까지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남긴 숭고한 여정이었다.
유희에게 ‘밥’은 무엇이었을까? 유희에게 밥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벼랑 끝에 선 이들을 사회적 관계망 안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환대’의 의례였다. 이 책은 유희가 지은 밥을 가리켜 “수직의 조직이 아니라 수평의 연대로 작고 약한 목숨들을 지탱하는 촘촘한 그물망”이라 정의한다. 홀로 싸우는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은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일깨우는 강력한 지지였으며, 거친 투쟁의 현장을 사람이 사람을 대접하는 정중한 공간으로 승화하는 매개였다.
전태일노동상이 ‘공로’를 치하하고 시대가 ‘기록’으로 응답한 연대의 힘
유희의 연대는 우리 사회에 ‘수평적 연결’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이러한 30년의 연대를 기려 고인은 제32회 전태일노동상 공로상(2025년)을 받았다. 또한 이 책의 바탕이 된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연재물 〈하늘을 짓는 여자〉는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달의 좋은 보도상’(2025년 11월)을 수상하며 가치를 평가받았다.
유희의 묘비에는 “밥은 하늘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글쓴이는 이 책을 통해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한다. 유희가 지어온 밥은 지금도 여전히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인적 없는 밤길에서 만난 불빛”과 같은 온기로 남아 우리 사회의 연대를 지탱하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유희. 1959년생. 노점상이었다. 30여 년 전인 1990년대부터 그녀는 “춥고 외로운 투쟁”을 하는 사람들과 밥을 나눴다. 최정환 열사와 이덕인 열사의 죽음을 겪으며 투쟁 현장에서 솥을 걸고 밥을 지었다.
2000년대에는 공장에서 쫓겨난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의 농성 천막으로 밥을 지어 나누는 등 노동자들의 투쟁에 본격적으로 연대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검정 세단에 밥을 싣고 전국의 농성장을 누볐다.
‘밥묵자’라고 부르던 이름은 2017년 조리 설비가 갖춰진 밥차를 마련하면서 ‘밥묵차’로 바뀌었다.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차.’ 그 차로 방방곡곡 다니면서, 투쟁하는 사람이라면 안 먹어 본 이가 없다는 밥을 지었다.
유희는 1995년 전국노점상연합 부의장을 맡았다. 노점상 단체는 여성 회원이 대다수임에도, 정작 간부와 지역장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지역장을 여성이 맡는 경우가 간혹 있었지만, 여성 부의장은 유희가 최초였다. “강단 있는 통솔력과 지도력”을 인정받은 결과였다.
“회원들이 대부분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조직 내부에) 여성에 대한 개념이 없었어요. 유희 부의장이 등장하면서 우리 안에서도 어쨌든 여성의 문제가 좀 부각되는 계기가 됐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생각할 땐 그래요. 왜 시끄럽게 데모를 할까? 그런데 사람이 다 ‘예’만 할 수 없잖아. 그건 독재지. ‘아니오’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정의롭게 사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유희 같은 사람이 있는 거야. 그건 조금은 이해가 돼. 조금은.”
작가 소개
지은이 : 최규화
기록하는 사람. 탐사보도 전문 매체인 《진실탐사그룹 셜록》에서 일한다. 몇 곳의 신문사를 거치는 동안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양성평등미디어상, 인터넷선거보도상,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달의 좋은 보도상, 정치하는엄마들 올해의 보도하마상 등을 받았다.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 《0~7세 공부 고민 해결해드립니다》(이하 공저), 《달빛 노동 찾기》, 《숨은 노동 찾기》, 《난지도 파소도블레》 등의 책을 썼다. 위성처럼 떠다니는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이야기를 모으는 것이 꿈이다.
목차
추모의 글
프롤로그
운명의 김치찌개 - 서선정과 최인기의 기억
깡패도 대통령도 맞짱 - 조덕휘와 노수희의 기억
부평스타 MC 유희 - 유덕희와 박원주의 기억
수상한 차와 고상한 밥 - 성미선과 박은경의 기억
뽕짝으로 투쟁하라 - 박준, 임정득, 신유아의 기억
세상을 잇는 언니의 힘 - 최헌국, 수리야, 박경석의 기억
밥을 짓고 하늘을 나눈다 - 그리고 김청민의 기억
에필로그
주
기억을 나눠준 사람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