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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프리드리히 야코비
1743년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났다. 프랑크푸르트와 제네바에서 공부한 다음, 21세 젊은 나이에 아버지의 설탕공장을 물려받아 경영인이자 무역상이 되었다. 이 무렵 프리메이슨에 가입해 뒤셀도르프 지부의 재정을 담당했으며 나중에는 윌리히(Ju?lich)?베르크(Berg) 공국의 재무 담당 관리로 활동하기도 했다. 서른에 접어들면서 철학과 문학에 집중하기 위해 공장 운영과 무역업을 그만둔다. 6년 뒤인 1779년에는 뮌헨의 각료가 되어 정치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그가 주도한 통상과 세무 행정의 개혁이 벽에 부딪치면서 공직을 접고 낙향했다. 그의 개혁 프로그램은 자유주의에 입각한 것이었지만 바이에른 정권의 권위를 이겨 낼 수 없었다. 이러한 경험을 나중에 애덤 스미스의 정치경제 이론을 지지하는 논문으로 출판했다.야코비는 많은 지식인들과 친분을 유지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교정하고 상대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의 집은 당시 문인과 철학자들이 모이는 정신적 센터였다. 빌란트(Christoph Wieland), 헴스테르하위스(Frans Hemsterhuis), 포르스터(Georg Forster), 하만, 헤르더, 레싱, 장 파울, 괴테 등 당시 지성계를 대변하는 인물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이들의 사상은 야코비의 저술에서 그를 지지하는 논리로 쓰이기도 하고 반대 논증의 사례로 등장하기도 한다. 특히 괴테의 방문은 야코비가 문인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소설 《볼데마르》는 이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다. 이 소설은 구조적으로 불완전하지만 야코비의 철학적 아이디어를 천재적으로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야코비는 1780년 계몽주의의 거장 레싱을 방문하는데, 이것은 스피노자 논쟁을 불러일으킨 《스피노자 학설》의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다.1794년 프랑스 혁명군이 펨펠포르트를 점령한 후 야코비는 고향을 떠나 홀슈타인과 함부르크에 거주했다. 라인홀트(Karl Leonhard Reinhold)를 알게 된 것은 이 시점이다. 1804년에는 셸링과 함께 뮌헨대학 철학 교수가 되었으며 3년 뒤 바이에른학술원 원장을 지냈다. 말년에는 자신의 저술을 편집하는 일에 몰두했으나 완성하지 못했고, 1819년 뮌헨에서 영면한다. 전집 출간은 1825년 그의 친구 프리드리히 코펜(Friedrich Koppen)이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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