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언어학자이자 중앙아시아사 전공자이며 평생 세계를 여행하며 현지 문화를 자신의 학문세계에 녹여온 연호탁 가톨릭관동대 석좌교수가 자신만의 관점에서 ‘음식의 문화’를 추적해본 기록이다. 인간에게는 ‘식욕’이라는 고유의 본능이 있는데, 저자는 이것을 ‘탐식의 인류학’이라는 키워드로 추출해냈다. “인간은 살기 위해 먹기보다 먹기 위해 사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음식은 곧 인간을 들여다보는 창으로 기능한다는 게 저자의 관점이다.
이 책은 권력과 아스파라거스의 관계, 전족과 중국의 대중음식 쭝쯔의 관계, 로시니와 다빈치의 삶을 지배한 미식의 미학, 음식의 이름에 새겨진 문명 교류의 흔적, 성적 환희와 불로불사를 꿈꾸며 탐했던 신들의 음식까지 갖가지 문헌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탐식을 돌아보고 미식의 길을 모색한다.
동소완董小宛은 왜 돼지고기를 튀겨서 호랑이 무늬를 닮은 ‘호피육虎皮肉’을 창조했는가? 로시니는 어째서 송로버섯을 채운 칠면조를 물에 빠뜨리고 눈물을 흘렸는가? 비건 채식주의자라는 독특한 위치 덕분에 저자의 관찰은 우리에게 음식의 세계가 훨씬 더 지독하고 매혹적이라는 걸 보여준다.
출판사 리뷰
40년 넘게 비건 채식주의자로 살아온
언어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연호탁 교수가 파헤친
탐식의 기원과 문화적 금기
“사람은 살기 위해 먹는가? 아니다, 대체로 먹기 위해 산다.
인간의 탐식은 본능이고, 그러므로 죄악이 아니며
오히려 진지하게 추구해야 마땅하다.” _본문에서
채식주의자의 눈으로 바라본 ‘탐식’
저자는 식탐과 탐식을 구분한다. 식탐食貪과 탐식貪食 두 단어의 뉘앙스는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 식탐을 경계하라는 말을 쓸 때, 식탐은 부정적 의미를 지닌다. 먹는 것을 지나치게 밝히거나, 무엇이든 많이 먹을 때 식탐이라 칭하고 그런 상태를 죄나 금기로 대하는 느낌이다. 한편 탐식은 많이 먹는다기보다는 그냥 음식 자체를 탐한다는 인상을 준다. 맛난 음식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때로 죄악이 된다. 더러는 파멸을 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오늘도 맛난 음식을 탐한다. 이것이 저자에게 “음식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보고픈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이 책은 사람들이 무엇을 먹는가, 즉 식재료나 음식 자체에만 관심을 두지 않고, 왜 그리고 어떻게 먹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음식의 발상지를 알아보고 언어의 이동과 변천은 물론 음식과 관련된 인류 역사상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개한다. 자연스레 음식과 성의 관계도 다룬다. 음식 언어와 성에 대한 말이 연결되어 있는 부분도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사람은 먹지 않고 살 수 없고, 끊임없이 누군가와 말을 하며 또 성을 추구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소통이다. 소통으로서의 음식, 말, 성을 이야기했다.
인류는 음식을 사랑의 비약, 성의 환희를 보장할 명약으로 섭취하기도 했다. 중국 황제들의 일화가 그것을 말해준다. 그런가하면 소식이나 단식을 통해 반대의 길을 택하기도 한다. 인류 역사 속에서 불화를 화친으로 바꾸려 노력할 때면 음식은 빠지지 않는 주요한 수단이었다. 갈등 때문에 독특한 음식이 탄생하고 이색적인 문화가 생겨나기도 했다. 만한전석, 만두, 크루아상, 불스 블러드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인간은 종교를 떠나 살 수 없다. 어떤 종교든 숭배 대상이 있다. 숭배 대상인 신은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나 인간과 마찬가지로 음식을 섭취한다. 종교에 따라 신을 위해 바치는 신들의 음식이 다르다. 지금은 평등한 세상이나(최소한 법적으로), 과거 계급사회에서는 계층에 따라 먹고 마시는 음식이 달랐다. 음식의 질뿐만이 아니라 종류, 양, 먹는 방법, 도구 등이 현격하게 달랐다. 그렇다고 하층계급의 음식 문화가 없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동양의 기녀들은 상상 이상의 아름다운 음식을 즐겼다. 이런 일이 가능한 배경을 살펴보는 일은 인간의 삶과 역사를 엿보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불한당들의 호사스런 삶도 다룬다. 도둑이 하는 포식은 어쩐지 화가 나는 일이다. 사라센 해적이든 아랍 해적이든, 왜구든 남의 물건을 약탈하고 목숨을 위협하는 도둑이 산해진미를 즐긴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나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세상의 현실은 그렇다. 음식을 즐기는 일은 강자의 특권이었고, 오늘날도 그러하다. 왕족과 귀족, 성직자, 기사들도 당연히 강자에 속한다. 이런 반反 정의의 음식사를 독자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술했다. 궁극적으로 저자는 음식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고자 한 것이다. 이 책은 인간에게 음식이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 질문에 대한 답을 여러 측면에서 살펴 음식의 언어학, 음식의 역사학, 음식의 문화사, 음식의 인문학에 두루 걸쳐 있다고 할 수 있다.
음식의 언어 기원을 파헤치는 고고학자
미식학美食學(gastronomy)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왔으며 원래 뜻은 ‘위를 조절하는 법칙’이라고 한다. 반면 저자는 미식을 ‘사람이 아름다워지기 위해 먹는 음식이나 식사법’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물론 둘은 통하긴 한다. 이런 의미에서의 미식은 중국 명나라 말기의 동소완이 잘 보여줬다. ““소완小宛은 천성이 담박했으며 기름지거나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작은 호로병小壺에 든 개차芥茶 물로 쌀을 따뜻하게 일어 밥을 짓고 또 한 병의 개차 물로는 두 접시의 미나리芹를 넣고 향시(된장)국을 끓여 먹었다. 이것이 그녀의 먹거리였다”는 문장에서 보듯 동소완은 담박한 식단을 즐겼다. 물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호랑이 가죽 무늬와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동육(호피육)’을 만들었고, 오늘날 양저우의 명물인 관향동당灌香董糖, 권소동당卷董糖 등은 동소완이 처음 만든 음식이다. 저자는 요리연구가로서의 동소완의 면모를 소개한다. 기름이 식재료를 슬쩍 지나쳐간過油 정도로 튀긴다는 의미를 내포한 과유육過油肉도 동소완의 작품이다. 과유는 기름 위를 쏜살같이 달리듯 금세 튀겨낸다는 의미에서 주유走油라고 불리기도 한다.
로시니는 천재 음악가였다. 동요나 클래식 소품도 아니고 십대 중반부터 오페라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서른일곱 되던 해인 1829년 마지막 오페라 「윌리엄 텔」을 끝으로 돌연 은퇴 선언을 한다. 그의 은퇴의 변은 이랬다. “미식과 요리와 트러플(송로버섯)을 찾는 돼지 사육에 전념하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 특히 토리노 일대의 주민들은 송로버섯을 채취할 때 돼지를 이용한다고 한다. 돼지가 버섯 냄새를 잘 맡는다는 것이다. 로시니는 오페라 소품의 제목을 음식 이름으로 짓기도 하고, 직접 와인을 담그기도 하고, 지인을 집으로 초대해 직접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기도 했다. 또 이탈리아 전역과 세계 각국에서 요리 재료를 공수하기도 했는데, 그 목록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아내 콜브란이 죽은 뒤, 1846년 펠리시에와 재혼한 그가 볼로냐에 두 번째 신혼집을 마련한 이유가 볼로냐의 질 좋은 송로버섯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영어 아스파라거스는 그리스어 ‘아스파라고스σπραγο’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말은 또 새싹이나 잔가지를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아스파라그’에서 비롯되었다. 숙취해소에 좋은 아스파라긴산은 바로 아스파라거스에서 처음 발견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스파라거스의 화려한 역사
인간이 다년생 식물인 아스파라거스를 먹기 시작한 것은 5000년 전부터다.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의 피라미드 프리즈frieze(방이나 건물 윗부분에 그림이나 조각으로 장식하는 것)에 제물로 묘사되어 있다. 2세기 그리스 의사인 갈레노스는 아스파라거스를 유익한 허브라고 하면서 최음 효과가 있는 식품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고대 로마의 쾌락주의자들은 알프스에서 나는 아스파라거스를 특상품으로 치고 대량으로 사들여 냉동 보관했다가 축제에 사용했다.
로마의 상류층이 아스파라거스에 열광한 까닭은 그것이 최음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생김새 때문인지 이른 봄 흙 속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아스파라거스는 오랜 세월 동서양에서 강정제나 최음제로 통했다. 인도의 고대 성애 교본 『카마수트라』와 15~16세기에 쓰인 『아낭가 랑가Ananga Ranga』라는 성 교본에도 아스파라거스가 등장한다.
아스파라거스는 칼로리가 낮고 비타민과 미네랄이 많다. 요리로 만드는 법은 간단해서 잘 다듬은 아스파라거스에 홀랜다이즈 소스나 무슬린 소스를 곁들여낸다. 홀랜다이즈 소스는 허브를 우린 화이트 와인과 달걀노른자, 버터, 레몬즙으로 만드는데 중탕으로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며 거품기를 이용해 재료를 잘 섞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종교와 금식, 육류 대신 생선이라는 타협
기독교를 떠나서 서양 중세를 논할 수 없다. 하지만 종교의 너무 과도한 지배는 중세의 어둠을 낳았다. 르네상스를 거치며 재탄생한 인간은 다른 세상을 보려했다.
식욕이란 본능 앞에서 종교가 만들어낸 타협적 음식 문화가 ‘금식’이다. 단식은 고통스러우나 금식은 견딜만하다. 여기서의 금식이란 생으로 굶는 것이 아니라 평소 맛있게 먹던 음식을 잠시 금하는 것이다. 핏물이 흐르는 육류는 맛있기는 하나 예수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고 어쩐지 께름칙하다. 마침내 사람들은 대체 음식을 찾아냈다. 살해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육류 대신 물고기를 먹으며 주 예수와 하나 되는 기쁨을 누리고, 비로소 신앙인의 의무를 다한 듯 느낀다.물고기 섭취는 양자의 타협이었다. 교회 입장에서는 육고기만 아니면 됐다. 속인에게는 물고기 살이 육고기만은 못해도 씹는 재미가 있었다. 금식일에 육류 섭취 금지는 인간의 욕망 절제로 이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먹는 일, 씹고 뜯는 재미에 더 몰입하게 만들었다. 잠든 욕망을 일으켜 세웠다. 금지하니 오히려 더 간절해졌고, 결국 물고기 요리를 발전시켰다. 그 결과 강에서 잡는 민물고기만으로는 생선 수요를 충당할 수 없었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책도 있다. 유럽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눈을 돌렸다. 연안어업에서 벗어나 원양어업에 뛰어들었다. 북해는 물 반 청어 반의 보고였다. 청어는 주요한 교역품이 됐다. 산업구조가 바뀌고, 가난했던 식탁은 물고기의 등장으로 아름다워졌다. 뜻하지 않게 물고기가 어제의 빈국을 오늘의 부국으로 만들었다.
채식주의자인 저자는 자신이 “60여 년 나름대로 음식을 즐긴 사람이고, 음식 문화를 주의 깊게 관찰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당당한 음식 전문가”라고 말한다. 육류와 생선요리는 그에게 관찰의 대상이지만, 면류와 과일, 채소, 디저트류는 그에게 탐식의 대상이다. 특히 이탈리아 파스타, 강릉 장칼국수, 이슬람권의 머리가 하얘질 정도로 단 디저트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카페 ‘백치’에서 설탕을 듬뿍 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는 그에게 영혼의 위안이다. 이 책은 저자가 즐기는 면 종류, 디저트 종류, 과일 종류에서 풍부한 경험적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연호탁
충청도에서 태어났다.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5년부터 관동대(현 가톨릭관동대)에서 30여 년간 영어를 가르쳤고 지금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요즘도 틈틈이 세상 곳곳을 여행하고 있다. 특히 세상의 오지라고 할 만한 중앙아시아 곳곳을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지역의 다양한 민족의 풍습과 역사를 고찰한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을 펴냈다. 그 외에 『궁즉통 영어회화』 등 영어와 관련된 저작 다수가 있으며, 차와의 오랜 인연으로 여러 지면에 칼럼을 쓴 것을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등으로 묶어내기도 했다.
목차
서문: 볼로냐에서 쓴 편지
1 미식과 식탐:
염염풍진 동소완董小宛
2 볼로냐에서 ‘혀의 욕망’을 더듬다:
예술가가 사랑한 음식
3 사람은 살기 위해 먹는가?:
음식에 담긴 인간의 욕망
4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왜 ‘최후의 만찬’으로 물고기를 그렸을까?:
최후의 만찬 1 인간과 신의 하나 됨, 성체 성사
5 신의 시계는 ‘금식’을 낳고 금식은 물고기 요리를 선물했다:
최후의 만찬 2 참을 수 없는 씹는 즐거움
6 속이거나 죽이거나 때로는 전쟁까지도:
미식의 신천지 1 새로운 맛에 눈 뜬 서구
7 네덜란드는 어째서 몰루카 제도에 미식의 ‘정향나무 숲’을 만들었을까?:
미식의 신천지 2 향신료와 서구 식민주의
8 생존과 존엄의 경계에서 벌어진 인간 잔혹사, 식인의 금기를 깨다:
아사餓死와 식인食人의 경계
9 권력자를 돕는 조력자가 충성을 바치려 먹은 음식은?:
호위 무사 코미타투스와 그들의 음식, 의리
10 식욕으로 확인하는 ‘살아 있음’의 기쁨:
충성과 복종의 음식
11 에피큐리언의 후예, 튜더 왕조가 사랑한 음식은?:
죽음보다 깊은 유혹: 달콤한 맛
12 설탕의 마력에 빠진 인류를 위한 디저트 예찬:
별별 디저트, 황홀한 맛의 향연
13 인류가 중독된 소금기와 감칠맛의 비밀:
짠맛 예찬 세상의 빛, 소금
14 이시스 여신에서부터 예술가들을 매료시킨 깊은 향수鄕愁: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음식, 모유
15 ‘젖과 꿀이 흐르는 땅’과 유목민들의 생명수:
신의 선물, 젖
16 죽음에 이르는 첫 번째 큰 죄 폭식, 먹어도 너무 먹은 죄:
금식과 폭식의 줄타기
17 단식과 폭식 사이, 염치없는 인간 식욕의 역사:
폭식과 대식 그리고 단식
18 사라센인들이 가져다준 천상의 맛, 달콤함이 선사하는 묘미:
설탕이 만든 기적
19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다, 존재물의 상의상관성에 대한 불교적 명제:
국수와 인간의 인연 1 밀을 만나다
20 식객의 군침을 흘리게 한 국수의 탄생:
국수와 인간의 인연 2 인간을 웃게 만들다
21 국수의 진화를 이끈 인간의 욕망, 신과의 소통을 꿈꾸다:
국수와 인간의 인연 3 조상 국수와 그 후손들
22 슬목어 머리는 어떻게 최고의 보양식이 됐을까?:
별미의 탄생
23 사상 체질에서 오상 체질까지:
과일의 황제 귤과 섭생攝生과 철학
24 본능의 식사는 잠시의 만족을, 의성의 식사는 건강한 삶을:
체질과 섭생
25 부처의 온기에 답해 쑤어올린 인간의 소망과 욕망:
숭배와 보시의 공양물, 납팔죽臘八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