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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 어떤 일이 생길까?
방언의 유익성과 영적 분별
예찬사 | 부모님 | 202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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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할 때 방언하는 사람에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방언을 통해 우리는 말의 주도권을 내려놓고, 영이 하나님께 반응하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는 시간이다. 방언 기도는 이미 영이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다. 방언은 느낌으로 확인하는 기도가 아니라, 관계로 유지되는 기도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흔들리던 마음의 중심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생각과 감정이 차분해진다. 사람과 상황에 쏠려 있던 마음도 제자리를 찾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바로 서고, 사람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정돈된다.

  출판사 리뷰

이 책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할 때 방언하는 사람에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해줍니다. 방언을 통해 우리는 말의 주도권을 내려놓고, 영이 하나님께 반응하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는 시간입니다.
방언 기도는 이미 영이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방언은 느낌으로 확인하는 기도가 아니라, 관계로 유지되는 기도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흔들리던 마음의 중심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생각과 감정이 차분해집니다. 사람과 상황에 쏠려 있던 마음도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바로 서고, 사람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정돈됩니다.
방언은 나를 다시 주님 앞으로 데려다주는 은혜입니다. 방언은 흩어졌던 내 마음의 방향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려줍니다. 또 방언은 내가 늘 붙잡고 살던 생각에서 잠시 벗어나게 합니다.
방언은 나를 하나님께로 데려갑니다. 그냥 하나님과 함께 있는 자리로 돌아가게 합니다. 방언의 목적은 능력도, 표적도 아니고 자랑도 아닙니다. 목적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내가 작아지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드러나는 삶입니다. 연합은 그 문 안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1.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다
저는 방언기도를 하면서, 처음에는 그 의미를 잘 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언을 들으면 신비한 능력이나 특별한 체험을 떠올리지만, 바울은 방언을 그런 식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방언의 본질을 아주 명확하게 밝힙니다. 방언은 하나님을 향한 언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흘러가는 기도의 언어라는 것입니다.
“방언으로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 14:2).
이 말씀 안에는 방언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방언은 사람을 향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평가받거나 이해받기 위한 언어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 방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설명이나 이해가 아니라 영과 비밀입니다.
저는 평소 말을 통해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고, 이해받고 싶어하며 때로는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도 자꾸 하나님께 상황을 설명하고, 이유를 붙여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방언은 그 익숙한 흐름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방언은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지금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방언하다 보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더러는 영혼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공급되어 영혼이 살아나는 경험을 합니다.
바울이 말한 ‘비밀’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암호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비밀’은 하나님께 속한 영역, 사람이 소유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뜻합니다. 이해하려고 애쓴다고 열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만 열리는 영역입니다. 이 비밀은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주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비밀입니다. 그래서 방언 기도하면서 지금 내가 무엇을 말하고 있지? 이 기도가 무슨 뜻일까? 라고 자꾸 묻는 순간, 우리는 다시 주도권을 쥐려고 합니다. 그런데 방언의 핵심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이 기도를 이끌고 있는지에 있습니다. 방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의 주도권을 내려놓고, 영이 하나님께 반응하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는 시간입니다.
저는 방언 기도 중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기도가 계속된다면, 그것은 이미 영이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방언은 느낌으로 확인하는 기도가 아니라, 관계로 유지되는 기도입니다. 바울이 “자기의 덕을 세운다”고 한 말씀에서 덕은 자존감이나 영적 우월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영이 바로 서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다보면, 여기저기 흔들리던 마음의 중심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생각과 감정이 차분해집니다. 사람과 상황에 쏠려 있던 마음도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바로 서고, 사람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정돈됩니다.

방언은 나를 대단하게 만들어 주는 능력이 아닙니다. 방언은 나를 다시 주님 앞으로 데려다주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과 내 영이 다시 연결되는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바쁘게 살다 보면 해야 할 일과 책임, 마음의 상처와 두려움 속에서 어느새 주님 앞에서 멀어지기 쉽습니다. 실제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방언은 흩어졌던 내 마음의 방향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려줍니다. 그래서 흔들리던 내 존재가 조금씩 안정을 되찾게 됩니다.
또 방언은 내가 늘 붙잡고 살던 생각에서 잠시 벗어나게 합니다. 이것을 해야 하고 더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그냥 서 있는 사람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의 기대에 맞추고, 맡은 역할을 잘 해내려고 애씁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역할이 나 자신이 된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런데 방언할 때는 그런 생각들이 잠시 멈춥니다.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고, 나를 설명할 말도 필요 없습니다.
방언은 내가 하는 말을 나 스스로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모든 걸 이해하려고 애쓰던 마음, 내가 상황을 붙잡고 있어야 안심하던 태도도 내려놓게 됩니다. 그렇게 더 이상 꼭 붙들어야 할 생각이 사라질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님께 맡기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방언은 나를 하나님께로 데려갑니다.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과 함께 있는 자리로 돌아가게 합니다.
제가 방언 기도할 때 남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이며, 살아 있는 감각입니다. 방언은 은사이기 이전에 은혜이며, 나를 하나님께 돌려보내는 언어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성령으로 살아갑니다. 방언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흔히 ‘비밀을 말하는 기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방언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비밀의 내용이 아닙니다. 방언이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고, 설명할 수 없어도 불안하지 않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방언은 다 알아야 안심하는 관계가 아니라, 몰라도 맡길 수 있는 관계 안에 머무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방언은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깊이 하나님과 함께 머무는 언어입니다.

2. 방언은 어떻게 받는가?
방언은 받으면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 은사이지만, 받지 못했다고 해서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방언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성령님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님은 어떤 특별한 능력을 받을 때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이미 믿는 자 안에 오셔서 함께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은사보다 먼저, 성령님은 한 인격으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방언은 성령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조건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여러 모습 중 하나입니다.
방언은 성령님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험이나 증거가 아닙니다. 방언한다고 해서 성령님이 더 계신 것도 아니고, 방언을 못 한다고 해서 성령님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받았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입니다. 그럼에도 방언을 사모하게 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방언은 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은사이며, 하나님과 더 깊이 교제하도록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받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구하고, 어떤 자리에서 기다리느냐입니다.
저는 약 30년 전, 신학생 시절 밤마다 교회에서 기도하다가 잠이 들고, 새벽예배를 드리며 하루를 시작하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어느 날 밤, 조용히 기도하는 중 아랫입술과 턱 부근에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습니다. 순간 ‘왜 이런 일이 생기지?’라는 생각이 스쳐갔지만,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이 며칠 반복되면서 문득 ‘방언이 임하려는 신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얌전하게 기도하는 편이라, 방언이 임하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쉽게 말로 터져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무언가 올라오고 있었지만, 입술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기도실에서 신학생 동료들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하며, 방언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집사님께서 저에게 조언했습니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할렐루야’를 계속 외쳐보세요.” 저는 몇 마디 ‘할렐루야’를 반복했는데, 놀랍게도 그 순간 방언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습니다. 억지로 만든 말이 아니라, 저 자신도 놀랄 만큼 자연스럽고 풍성하게 흘러나왔습니다. 그렇게 저의 방언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 매일 방언으로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 은사들을 경험하게 해주셨습니다. 성도들에게 안수하며 기도해 주었을 때 귀신이 떠나가고, 방언이 터지며 병이 치유되는 일도 경험했습니다. 어느 날은 꿈에서 제 손에서 노란 불이 나오는 장면을 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저는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방언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지만,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속도와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비교적 빠르게 방언을 경험하지만, 어떤 분들은 오랜 기다림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성향이나 성격에 따라 반응이 다른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 곁에서 중보하며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큰 힘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된 사실은, 방언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방언은 능력을 증명하는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중요한 것은 은사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느냐가 아닙니다. 그 은사를 어떤 마음으로 구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방언은 내가 무엇을 해내는 경험이기보다, 내가 무엇을 내려놓는 순간에 가까운 은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언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가 너무 애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복잡하고 이성과 논리가 강한 사람은 모든 것을 이해하고 확인한 뒤에 행동하려는 습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방언은 그렇게 이해하려고 할수록 어려워지고, 단순하게 믿고 반응하는 사람에게 더 쉽게 임합니다.
비유하자면, 이성은 핸들을 꽉 잡고 직접 운전하려는 것과 같고, 방언은 눈을 감고 조수석에 앉아 운전을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핸들을 쥐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끝까지 내가 통제하려는 태도가 문제입니다. 내가 운전대를 놓지 않으면, 운전은 결국 내가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방언을 받기 위해 억지로 크게 기도하거나 잘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육의 힘을 빼고 “주님께 맡깁니다”라고 고백하며 단순하게 믿음으로 반응할 때, 방언은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쉽게 임합니다.
저는 과거에 안수기도를 통해 방언이 열리도록 도와드린 경험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 차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성이 강한 분들은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순간까지 오랜 시간 기도로 씨름하며, 방언이 나오기까지 비교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에 마음이 단순한 분들은 달랐습니다. 방언의 원리를 간단히 설명하고, 성령님께 방언을 구하도록 인도한 뒤 안수기도하면 즉시, 그리고 비교적 쉽게 방언이 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처럼 방언은 사람마다 성격과 믿음의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각기 다른 모습과 속도로 나타납니다. 조용히 작은 소리로 시작되는 경우도 있고, 눈물과 함께 큰소리로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말이 술술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짧은 음절 하나, “라라라”처럼 같은 소리가 반복되거나, 짧은 문장 같은 표현에서 시작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소리가 나느냐가 아닙니다. 지금 내 마음을 누구에게 맡기고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방언을 하려고 다른 사람의 방언을 따라 하거나 흉내 낼 필요가 없습니다. 방언은 사람이 억지로 만들어내는 소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방언은 성령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기도의 흐름입니다. 내 입술을 성령님께 맡기면, 각 사람에게 맞는 방언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방언을 구할 때, 회개와 순종의 마음이 빠지면 안 됩니다. 성령님은 능력이 아니라 인격이시기 때문입니다. 알고 있는 죄를 붙잡은 채 은사만 구하면, 기도는 점점 무거워지고 조급해집니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주님 앞에 솔직하게 서면, 방언은 목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열매로 다가옵니다.
혹시 아직 방언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방언 외에도 이미 강력한 은혜의 통로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경 말씀을 소리 내어 읽는 것, 특히 시편을 기도로 선포하는 것은 방언처럼 영을 깨우고, 어둠을 정리하며, 성령의 임재를 유지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매일 성경을 소리 내어 많이 읽으십시오.
성경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다”(잠 18:21)고 말씀합니다. 말씀을 눈으로 읽을 때도 깨달음은 있지만, 말씀을 소리 내어 읽을 때 생명의 역사는 훨씬 강력하게 나타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묵상은 단순히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 1장 8절과 시편 1편 2절에 나오는 “묵상하다”라는 말의 히브리어 원어 하가(hagah) 는 낮은 소리로 반복하며 입술로 말씀을 읊조리는 것을 뜻합니다. 말씀을 소리 내어 읽을 때 죽은 영이 깨어나고, 혼이 정화되며, 성령의 조명 가운데 로고스의 말씀이 레마로 살아납니다. 이때 말씀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에 실제로 역사하는 살아 있는 말씀이 됩니다.
이 점에서 성경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은 방언기도와 매우 유사합니다. 방언이 이성의 영역을 넘어 영을 깨우는 기도라면, 말씀을 소리 내어 선포하는 것은 성령의 기름이 말씀 위에 흘러 생명을 방출하게 하는 선포입니다. 둘 다 성령의 역사 가운데 죽은 지식을 생명으로 바꾸는 통로가 됩니다. 그리고 방언은 내가 노력해서 얻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 누리게 되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은사보다 마음을, 능력보다 태도를 먼저 보십니다. 방언은 내가 성령을 붙잡는 언어가 아니라, 성령께서 나를 이끄시는 언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은사보다 주님을 원합니다. 결과보다 동행을 택하겠습니다. 제가 준비되면, 주님께서 가장 좋은 방식으로 허락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 기도의 자리 위에서, 성령께서는 언제나 신실하게 역사하십니다.

3. 방언은 무의식이 아닌 순종의 선택이다
방언은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이지만, 인간의 의지를 건너뛰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사람을 조종하거나 통제하지 않으십니다. 성령님은 인격이시며, 언제나 인간의 의식과 동의 위에 역사하십니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방언은 쉽게 오해됩니다. 제가 방언을 처음 경험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방언을 실제로 경험하면서 깨달은 것은 방언은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는 방언으로 기도할 때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동시에 제가 스스로 입을 열고 있다는 사실도 인식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의 의미나 문장의 구조에 대해서는 제가 통제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말의 흐름을 계획하거나 조절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은, 방언은 인간의 무의식에서 자동으로 나오는 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한 연습이나 훈련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방언은 인간의 이성으로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의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방언은 사람이 말하기로 선택하고 참여하는 가운데 나타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방언할 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무 때나 방언이 나오고, 조심해야 할 자리에서도 멈출 수 없다면, 그것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님은 인간의 의지를 존중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주시는 방언은, 사람이 스스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사탄은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합니다. 그럴 경우, 사람은 자신의 말과 행동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과 의지가 전혀 조절되지 않는 방언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사탄의 모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깨달은 방언은 성령님의 주권과 인간의 순종이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제가 할 일은 입을 여는 선택이었습니다. 동시에 무엇을 말씀하실지는 성령님께 맡기며 순종으로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입을 열지만, 말의 내용과 방향은 성령님께서 이끌어 가십니다. 그래서 방언은 내가 통제하는 언어가 아니라 하나님께 복종하는 언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방언은 내 생각을 앞세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내려놓고 드리는 말입니다. 혼이 반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영이 하나님께 응답하는 방식입니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았습니다. 제 존재 전체를 하나님께 열어 드릴 때 방언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방언을 통해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기도는 제가 선택하고 성령님께 맡기는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제 자신을 맡기겠다는 그 결단이 방언의 문을 여는 열쇠였음을 고백합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박예영
평범한 가정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20대 중반 영적 체험을 통해 사역의 길을 결단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연약한 제 삶 속에서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경험하며, 사역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현재는 특정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수도자적 삶을 살며, 유튜브 채널 ‘말씀 소리의 기름부음’을 통해 매주 설교를 전하고 있습니다. 저서: 말씀소리, 회개를 폭발시키다

  목차

들어가는 글

제1부 방언의 본질
1.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다 2. 방언은 어떻게 받는가?
3. 방언은 무의식이 아닌 순종의 선택이다 4. 주님께 자리를 내어드리는 기도
5. 영과 마음이 말씀 안에서 하나 되다 6. 방언 통역은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할 것인가? 7. 하나님을 향한 방언, 교회를 세우는 예언 8. 은사는 왜 혼합되어 나타나는가?
9. 영적 혼란의 시대, 예언을 지키는 기준 10. 방언과 예언은 무엇으로 분별하는가?

제2부 방언과 안식
1. 영을 안식으로 인도하는 방언 기도 2. 고난을 제거하지 않고 통과하게 하다
3. 혼의 생각이 멈출 때 영은 활동한다 4. 안식은 영적 틈을 막는다
5. 날마다 묻어오는 어둠을 씻어내는 은혜 6. 반응 직전, 가장 강력한 기도
7. 안식은 관계의 회복이다

제3부 방언과 성화
1. 방언과 믿음의 관계 2. 이제는 내가 아니라 성령께서 하신다
3. 자아가 약해질수록 죄는 힘을 잃는다 4. 주님의 주권 아래 놓인 은사, 사랑으로 완성되다 5. 방언은 출발점이고 성화는 여정이다 6. 성화는 소리가 아니라 방향이다
7. 방언의 효력은 동일하지 않다 8. 일상에서 경험하는 방언과 성화

제4부 방언과 영적 분별
1. 영적 전쟁은 말 이전에 일어난다 2. 성령의 역사와 사탄의 개입을 분별하는 기준
3. 방언과 말씀의 경계 4. 기도 중 떠오르는 생각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5. 방언은 사탄의 통로를 차단한다 6. 참된 분별은 평안과 질서를 동반한다
7. 분별은 들은 내용이 아니라 반응에서 드러난다 8. 방언은 생각을 쉬게 한다
9. 분별의 목적은 안전이 아니라 연합이다

제5부 방언과 새 노래
1. 기도의 목적은 응답이 아니라 연합이다 2. 방언은 자기 말이 줄어드는 기도
3. 연합은 감정이 아니라 주권의 이동이다 4. 내 말이 멈출 때 말씀이 말하게 된다
5. 자아는 다시 주인 자리에 서지 않는다 6. 바벨의 언어와 성령 안에서 하나 된 언어 7. 방언으로 드리는 찬양 8. 방언은 시작이고 연합은 목적이다

마무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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