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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방
도화 | 부모님 | 202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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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김호운 작가의 장편소설 『에덴의 방』은 시간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를 찾아가는 호세와 운희 두 남녀의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에덴의 방』은 단일 서사에 머물지 않는다. 이 작품은 ‘소설 속 소설’이라는 이중구조를 통해 보다 깊은 존재론적인 질문을 확장한다.

『에덴의 방』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나 욕망의 서사가 아니다, 이 소설에서 ‘섹스’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원형을 향해 되돌아가려는 상징적 통로로 작동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탄생과 죽음, 소멸과 재생, 분리와 합일이 반복되는 순환 구조를 서사 속에서 깊이 있게 녹여낸다. 『에덴의 방』은 욕망의 정당화가 아닌, 욕망 속에 숨겨진 ‘기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작가는 익숙한 현실에서 벗어나 낯선 차원의 존재론적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그 여정은 곧 인간 존재의 근원을 되짚는 과정이며, 잃어버린 원형으로 돌아가려는 신화적 탐색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작가는 소설 속의 소설 『섹스, 부활의 열쇠』를 통해 살아 있는 사람이 잠시 죽은 뒤 죽은 자들을 만나고 돌아오게 한다. 남녀 두 사람이 발가벗은 상태로 동시에 죽어 나란히 누워있는 현장을 조사하는 자벨 경감이 등장하면서 시작되는 ‘소설 속 소설’은 현세에 사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공간이다.

  출판사 리뷰

*『에덴의 방』은 위험한 소설이다. 이 작품은 욕망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인간 이전의 상태,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영역으로 밀어 넣는다.
*이 소설은 인간을 보호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라는 개념을 해체하고, 그 밑바닥에 잠들어 있던 원형을 끌어올린다.

이 책은

김호운 작가의 장편소설 『에덴의 방』은 시간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를 찾아가는 호세와 운희 두 남녀의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에덴의 방』은 단일 서사에 머물지 않는다. 이 작품은 ‘소설 속 소설’이라는 이중구조를 통해 보다 깊은 존재론적인 질문을 확장한다.
『에덴의 방』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나 욕망의 서사가 아니다, 이 소설에서 ‘섹스’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원형을 향해 되돌아가려는 상징적 통로로 작동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탄생과 죽음, 소멸과 재생, 분리와 합일이 반복되는 순환 구조를 서사 속에서 깊이 있게 녹여낸다. 『에덴의 방』은 욕망의 정당화가 아닌, 욕망 속에 숨겨진 ‘기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작가는 익숙한 현실에서 벗어나 낯선 차원의 존재론적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그 여정은 곧 인간 존재의 근원을 되짚는 과정이며, 잃어버린 원형으로 돌아가려는 신화적 탐색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작가는 소설 속의 소설 『섹스, 부활의 열쇠』를 통해 살아 있는 사람이 잠시 죽은 뒤 죽은 자들을 만나고 돌아오게 한다. 남녀 두 사람이 발가벗은 상태로 동시에 죽어 나란히 누워있는 현장을 조사하는 자벨 경감이 등장하면서 시작되는 ‘소설 속 소설’은 현세에 사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공간이다.
‘에덴의 방’을 떠나 낯선 공간에 도착한 죽은 남자와 여자는 그곳에서 플라톤, 니체, 하이데거, 쇼펜하우어, 노자, 장자를 만나 존재와 욕망, 삶과 죽음에 대한 강의를 듣는다. 소설은 이 장면에서 철학은 추상이 아니라 몸으로 스며드는 경험으로 재구성된다. 플라톤의 항아리, 니체의 망치, 하이데거의 손, 쇼펜하우어의 의지, 노자의 강물, 장자의 나비, 이 상징들은 남자와 여자의 몸 안으로 흘러들며, 사유와 육체, 개념과 감각의 경계를 허문다.
그 순간 남자는 선언한다. “존재는 개념이 아니라 살이다. 형이상학은 언어가 아니라 사랑이다.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사랑과 탄생의 또 다른 이름 부활이다.” 이 선언은 『에덴의 방』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사유이자, 이 소설이 도달하려는 존재론적 결론이다.
『에덴의 방』에서 섹스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훼손되기 이전의 인간, 빛과 어둠이 나뉘기 전의 상태, 남성과 여성으로 명명되기 이전의 존재, 영혼과 영혼이 하나로 이어지는 합일을 향해 되돌아가려는 신화적이고 존재론적인 몸짓이다.
김호운의 장편소설 『에덴의 방』은 소설 속 소설이라는 다층 구조, 철학적 사유를 육체적 경험으로 전환하는 시도, 삶과 죽음·탄생과 부활의 순환 구조를 통해 현대 한국소설에서 드물게 형이상학과 서사를 결합하고 있다. 특히 철학자들의 사유를 상징적으로 체계화하는 장면은, 개념 중심의 철학을 넘어 몸으로 사유하는 문학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문학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작품, 그리고 그 경계를 불편하게 넘어서는 문제작이다.

긴 시간이 흐른 뒤 그와 그녀는 옷을 입고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다음 약속은 언제가 될지 모르나, 언제고 사랑이 필요하면 에덴의 방에서 만난다. 만나는 건 육체지만 대화는 육체를 해제한 영혼의 언어로 나눈다. 만나지 않을 때도 서로의 영혼이 하나로 존재한다. 육체를 버렸기에 가능하다. 그건 원죄가 아니라 원형질을 복원한 인류의 기원, 천국의 열쇠 앙크(Ankh)며 장자가 말한 오상아다. 육체를 해체하고 영혼의 ‘나’를 만나는 일이다.

10월 28일, 에덴의 방을 떠난 남자와 여자가 도착한 곳은 캄캄한 방이었다. 방이라고 했으나 사실 공간이다. 둘은 그 방의 벽에 닿아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벽은 존재한다. 둘은 실체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작은 점이다. 어둠의 공간에 별처럼 떠 있다. 남자와 여자가 아니다. 하나의 심장이 존재한다. 시공간을 초월한 어둠 속에 뜬 하나의 별, 에덴이다. 두 개의 심장이 하나가 된 별. 그 별에 남자와 여자가 한 몸으로 떠 있다. 어둠 역시 부재가 아니다. 그 어둠 속에는 수천 년의 사유가 침전된 심연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영혼이 되어야 보인다. 육체를 떠난 영혼. 사방에는 책이 빼곡하게 박힌 책장이 있다.
그 둘이 도착했을 때 책장에 갇힌 문장들이 튀어나와 흙가루처럼 흩어지더니 서서히 형체를 갖추어 나갔다. 최초의 인간, 흙으로 빚은 아담처럼 사물화되었지만 실제로는 작은 점으로 된 별이다. 영혼이 모인 별들에게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먼저 나타난 건 플라톤이었다. 그는 깨진 항아리를 들고 있었고, 항아리 속에서 별빛 같은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그의 눈빛은 투명했으나 차갑게 번뜩였다. 어디서 본 듯한 모습이다. 아, 아테네 학당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있고 라파엘도 함께 있던 그 아테네 학당에서 만났다. 플라톤은 그때처럼 손을 들어 에덴의 별을 가리키며 말했다.

철학자들의 목소리, 아이의 웃음, 커튼의 호흡이 방 안에서 뒤섞였다. 플라톤의 항아리, 니체의 망치, 하이데거의 손, 노자의 강물, 장자의 나비. 모두가 에덴의 별 몸 안으로 흘러들었다. 남자는 마침내 외쳤다.

“존재는 개념이 아니라 살이다. 형이상학은 언어가 아니라 심장이다.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사랑과 탄생의 또 다른 이름, 부활이다!”

방이 흔들렸다. 커튼은 심장처럼 고동쳤고, 벽지는 별빛으로 터졌다. 존재론은 더 이상 책 속에 있지 않았다. 방안에도 없다. 그들의 땀과 피와 숨 속에서 살아 있는 고동으로 뛰고 있었다.

여기까지 읽은 뒤 호세는 ��섹스, 부활의 열쇠��를 덮었다. 머릿속이 어지럽다. 고통이다. 카프카는 “책은 도끼다.”라고 말했으나, 이건 도끼가 아니라 토르가 휘두르는 해머다. 책 읽는 일이 고통이라 여긴 건 처음이다. 재미없다는 뜻은 아니다. 엉킨 듯 무질서 속의 질서, 그 길을 찾는 기쁨이 있다. 길을 잡으려면 호흡을 멈추어야 하는데, 그대로 숨이 막힐 것 같다.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다시 책을 찾게 한다. 이게 소설인가? 우리가 아는 그런 소설이 아니다. 서사구조가 없다. 주인공은 있으나 그 주인공을 만드는 사건이 없다. 주인공은 우주 밖의 별이 되어 어둠 속에 떠 있다. 죽은 철학자들이 등장하여 지구 밖 우주공간으로 잠시 찾아온 인간에게 철학 명제를 던진다. 이런 소설을 본 적도 읽은 적도 없다. 사물에서 개념을 얻는 게 아니라 개념이 사물을 만든다. 흐르는 개념의 강물을 따라가야 한다. 그 강물이 언어를 만들고, 그 언어가 사물의 탑을 쌓아 올린다. 그는 새로운 듯 책 표지를 다시 보았다. 분명히 ‘장편소설’이라 인쇄되어 있다.

에덴의 방 비밀번호는 1, 2, 3이다. 1은 호세와 운희 두 사람이 만나서 영화를 보거나 미술관에 간다. 영화는 주로 독립영화 상영관에서 본다. 식사하고 커피를 마시며 세상 이야기가 아닌 세상 이야기를 한다. 세상 너머에 있는 세상 이야기다. 2는 에덴의 방에서 만나지만 섹스는 하지 않는다. 섹스가 여자와 남자의 결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욕망의 절제 역시 섹스의 하나다. 혀와 혀가 만나 탱고를 추며 살과 살이 부딪치는 냄새를 맡는다. 네 개의 다리가 한 개의 심장을 만드는 탱고, 그 절정에 이르되 욕망을 절제함으로써 느끼는 아름다운 선율을 감상하는 시간이다. 니체와 레에가 살로메와 삼위일체 동거하면서 나눈 지적 섹스가 이러하지 않았을까.
3은 섹스다. 깊은 섹스다. 몸과 몸의 결합이 아니라 영혼과 영혼을 섞는다. 몸을 해체하여야 한다. 몸이 없는 영혼의 결합, 지금까지 가진 모든 걸 버려야 한다. 지위도 도덕도 규범도 부끄러움도, 옷을 벗듯 하나하나 벗어야 한다. 이름도 버린다. 남자와 여자의 개념도 없다. 몸을 해체하고 두 영혼이 만나 하나가 되는 의식, 눈으로 볼 수 없는 어둠 저 너머에 존재하는 최상의 쾌락, 최고의 고통이다. 쾌락과 고통을 태워버리고 남겨진 부활한 정령이다.

운희는 이보다 더 앞질러 아담과 이브가 인류 최초로 이걸 증명해 보여주었다고 믿었다. 천지창조다. 섹스로 탄생한 최초의 인류, 영원회기하는 열쇠는 섹스다. 섹스로 탄생한 인류는 섹스로 새로운 생명을 얻어야 그 실체가 존재한다. 최초의 땅에서 출발했던 그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섹스다. 이 열쇠를 가지려는 자와 숨기려는 자의 끊임없는 싸움이 인류의 진화와 발전을 가져왔다. 이 숭고한 열쇠를 인류는 감추어두고 혼자만 몰래 사용하려 했다. 성스러움과 부끄러움, 이 이중성으로 인간을 진보와 함께 퇴화시켰다. 파괴가 있어야 이 열쇠를 얻는다. 죽음이 있어야 부활을 얻듯이 보이는 사물과 개념을 파괴해야 얻는다. 키티온의 제논이 영원회기를 깨달은 것도 파괴로부터다. 우연히 서점에서 ��소크라테스의 회상��을 발견하고 읽다가 그는 키니코스학파의 철학자 크라테스를 만나 제자가 되었다. 스승의 기행을 부끄러워하는 제논을 깨우치게 하려고 크라테스가 제논이 들고 있던 콩 수프 항아리를 지팡이로 내리친다. 깨진 항아리에서 콩 수프가 사방으로 튀자 놀라 도망치는 그에게 스승이 “왜 달아나는가, 패니키아의 애숭이야! 별일도 아니다.” 하고 꾸짖었다. 그때 제논이 크게 깨닫는다. 항아리를 깨야 또 다른 항아리를 만난다는 것을. 항해 중 배가 난파되어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때 제논은 아테네 땅에 닿아 생명을 구한다. 그리하여 그는 새로운 정신세계를 얻었다. 아담과 이브가 몸을 파괴함으로써 오늘의 인류가 사는 세상을 탄생시켰듯이, 모든 것은 그렇게 파괴와 함께 영원회귀한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하나의 개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름을 벗었고, 얼굴을 잃었으며, 모든 곳에서 숨으로만 존재했다. 아기의 웃음 속에서도 연인의 입맞춤 속에서도 노인의 마지막 한숨 속에서도 그들이 있었다. 그는 방이며 그 방이 곧 세계다. 하늘이 커튼처럼 흔들렸다. 바다는 심장처럼 고동쳤으며 산맥은 늑골처럼 솟아올랐다. 세상은 살아 숨 쉬는 하나의 거대한 신체가 되었다. 그 신체의 심장 박동이 곧 인류의 행복이다. 그 행복은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 행복은 법과 규범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그 행복은 오직 숨과 숨의 이어짐, 들숨과 날숨의 끊임없는 교직 속에 있다. 사람들은 밤마다 별빛 아래 모여 춤추었다. 그 춤은 제의가 아니었고, 종교도 아니었으며, 단지 살아 있음의 충만이 흘러넘쳐 이루어진 몸짓이었다. 그들의 그림자가 땅 위에 길게 늘어졌으나 그 그림자마저도 환하게 빛났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는 하나의 문이 되었다.
그 문 안에서 아담과 이브의 후손인 인간은 처음의 얼굴을 되찾았다. 두려움 없는 얼굴, 상실 없는 얼굴, 죽음과 사랑이 같은 리듬으로 뛰는 얼굴. 무한한 방, 에덴의 방. 그곳에서 새로운 인류가 불안 없는 황홀 속에 살았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끝은 시작이며, 시작은 곧 끝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순환 안에서만 존재가 온전히 드러난다는 것을. 그곳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며, 영원회기의 생명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호운
1978년 『월간문학』 제25회 신인작품상 공모에 단편소설 「유리벽 저편」 당선. [장편소설] 『황토(荒土)』(전2권) 『크레타의 물고기』 『표해록(漂海錄)』 『바이칼, 단군의 태양을 품다』 『님은 침묵하지 않았다』(전2권) 등, [소설집] 『스웨덴 숲속에서 온 달라헤스트』 『사라예보의 장미』 『인디고블루와 코발트블루, 사라진 개』 등, [콩트집] 『궁합이 맞습니다』(전2권) 등, [사진 에세이집]『연꽃, 미소』, [인문학 저서]『소설학림』, [칼럼집] 『나비를 잡는 아이의 마음』 등 작품집 다수 출간함. 한국소설문학상, 한국문학백년상, 녹색문학상. 문학에스프리문학상, 대한민국예술문화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 등 수상함.

  목차

작가의 말

1~15 / 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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