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윤재철 시인의 열한 번째 시집으로, 총 62편의 신작 시가 수록되어 있다. 시집은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일상생활, 2부는 강변 풍경, 3부는 박물관 구경, 4부는 지명 시로 갈라놓았다. 윤재철 시인의 근래 시들은 집중적으로 시간에 천착하고 있다. “수만 년 혹은 수천 년 전부터 지금을 향해 오고 있는 아니 지금을 향해 가고 있는 시간의 발자국을 따라”(「시작 노트」) 걸으며 ‘시간이라는 길 위에서 삶의 본질에 육박하는 시’를 추구하고 있다.
출판사 리뷰
“긴 시간이라는 길 위에서 삶의 본질에 육박하는 시”
이 책을 발행하며
윤재철 시인의 열한 번째 시집 <동작역에서>가 출간되었다. 총 62편의 신작 시가 수록되어 있다. 시집은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일상생활, 2부는 강변 풍경, 3부는 박물관 구경, 4부는 지명 시로 갈라놓았다.
윤재철 시인의 근래 시들은 집중적으로 시간에 천착하고 있다. “수만 년 혹은 수천 년 전부터 지금을 향해 오고 있는 아니 지금을 향해 가고 있는 시간의 발자국을 따라”(「시작 노트」) 걸으며 ‘시간이라는 길 위에서 삶의 본질에 육박하는 시’를 추구하고 있다.
많은 시인들이 좇던 시적 주제이기도 했던 그 ‘시간’은, 세계를 유지하고 있는 모든 대상의 존재성을 쇠퇴시키고 새롭게 생성시키며 재구성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박물관에 가거나, 여행을 하며 만나는 시적 대상들 가운데 그 무엇도, 존재의 가시적 형식은, 시간을 견뎌내지 못한다. 반복적이면서도 늘 변화하는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아쉬워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며,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인간이 살아가는 세태와 모습은 변하지만 그 삶을 이어가게 하는 것이 삶의 본질이 아닐까. 그리고 그 삶의 본질이 지속적으로 축적되어 가는 과정을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시인이 추구하는 삶의 본질을 역사라는 시간 위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방법은 옳고도 자연스럽다. 윤재철 시인이 파악하고 있는 본질은 이렇다.
“종각을 둘러친 돌담장 곁/사월의 녹음 속에/백모란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천년을 가슴에 묻어 둔/향기 글썽이며/지금 백모란꽃이 피었”(「백모란」)다고 노래한다. 모란은 그 자태와 향기에 있어서 으뜸인 꽃 중의 꽃이라고 일컬어져 왔는데 오늘날 어떤 정원에서도 쉽게 찾아보기가 어렵다. 선인들이 아름답기가 최고라고 하던 꽃을 옛 민화나 도자기에서나 보게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우연히 박물관 종각 돌담장 옆에서 마주하게 된 기가 막힌 모란의 아름다움과 향기는 무엇인가?
“새는 지난밤/투명한 유리창/캄캄한 벽을 뚫고//저쪽 경계로/한 줄기 빛처럼/날아갔다//수직의 바람벽/바닥에는 밤새/찌르레기 몇 마리가 낙하했다//투명한 유리창은/오늘도/슬픈 거울이 되었”(「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새 1」)다는 시는, 고대에는 보석으로 취급되다 현재는 주로 포스트모던한 건축 재료로 쓰이는 유리가 투명해서 주변 환경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기도 하지만 새들에게는 치명적인 벽이 되는 아이러니를 그려내고 있다. 문명의 발달이 인간과 조류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현실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삼각지 부근에 있던 밥전거리는/한양에서 삼남을 오가던 나그네들/막걸리 한 사발에 뜨끈한 국밥 한 그릇으로 속 채우던/밥집들이 모여 있던 거리/암행어사 이몽룡도 거쳐 갔던 길//삼각지 밥전거리에서 이촌동 모래톱으로/곧장 질러갔던 옛길은/벌써부터 일본군 미군 부대에 가로막혔다가/이제 다시 용산 시대 대통령실에 막혀/도로 없던 길이 되어버렸”(「밥전거리 국밥 한 그릇」)다는 이 시는 우리의 옛 선조들이 한양에서 삼남까지의 여정을 시작하는 행로를 그려내고 있다. 삼각지 밥전거리에서 아침을 먹고 과천에서 점심(중화)을 먹고 잠은 수원에서 자고 다음 날 떡전거리(병점)를 지나 진위읍(평택 부근)에서 점심을 먹으며…… 느긋하게 시작하는 천 리 길 여정은, 본 모습이 사라지고 땅이름에서나 그 함의를 추억해 볼 뿐인 이야기로 남아 있는 것들이다.
평이하다 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사라져가고 있고 왜곡된 흔적들을 통해서 진정한 삶의 본질을 묻게 되고 그 가치를 되새김질해 보는 것은 시 쓰기의 중요한 의미가 아닐까.
<어머니표 김밥 꽁다리>
보기 좋게 나란히 썰어 놓은 김밥 줄
맨 끝에 세로로 놓인 꽁다리
삐죽이 솟은 햄이며
달걀 지단이 먹음직해 손이 먼저 가는데
음식도 제대로 된 것을 먹어야지
허드레꾼도 아니고
꽁다리에 먼저 손을 대누 쯧쯧
어머니 음성이 귓전에 들려온다
허 참 요샌 이게 더 맛있다고들 하던데
김밥을 일부러 이 꽁다리 모양으로 싸기도 한다던데
어머니도 내내 신식은 못되고
구식 양반이네유
그럼 엄니는 왜
이런 못생긴 김밥 꽁다리를
혼자만 드셨대유
우덜 도시락엔 맛없는 것만 싸주구…
일 년에 두 번
소풍 가는 날이나 싸는 어머니표 김밥은
하나라도 더 자식들 도시락에 넣어 주려고
끄트머리를 너무 바투 잘라
꽁다리는 볼품도 없고 속이 거의 비었었다
<흐린 날 나는 메소포타미아로 간다>
일상의 문장
콤마와 콤마 사이
푸른색 벽돌로 지어진
바빌론의 이슈타르 문을 지나
흐린 날 나는 메소포타미아로 간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
우루크의 신전에서
양조업자 쿠심에게 발행한
손바닥보다 작은 점토판
갈대 줄기를 뾰족하게 깎아
쐐기 문자로 쓴 회계 장부
맥주를 만드는 쿠심에게
맥아와 보리를 빌려주고 그 양을 기록한
점토판 영수증 손에 쥐고
흐린 날 나는 메소포타미아로 간다
지하철 타고 4호선 이촌(국립중앙박물관)역에서
오천 년 된 나귀 빌려 타고
갈대로 지붕을 엮은 쿠심의 양조장에
맥주 한잔 얻어 마시러 간다
점토판에 갈대 줄기로 새겨 넣은
쐐기 문자의 오랜
기억을 찾아서
<비 내리는 왕십리>
평안도 사나이 김소월은 백여 년 전
배재고보에 편입해 서울살이할 때
경성 변두리 왕십리에 하숙하면서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온다고 노래했는데
<59년 왕십리>를 노래한 콧수염 가수는
왕십리 밤거리에 구슬프게 비가 내리면
눈물을 삼키려 술을 마신다 옛사랑을 마신다며
변두리 왕십리의 비애를 노래했다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십 리를 더 가서
경복궁 터를 잡았다는 왕십리는
본래 이름은 왕심평
가서 살펴본 들판이라는 뜻
새 도읍지가 될 뻔했던 땅
도읍지는 왕심리벌에서 서쪽으로 십 리를 더 들어가
인왕산 아래 자리 잡았지만
왕심리벌은 조선 시대 내내 성저십리로
도성 사람들의 똥오줌으로 무 배추 길러
도성 사람들을 먹여 살렸던 땅
도읍지가 될 뻔했던 땅에서
미나리꽝으로
영세 공장 지대로
곱창거리를 거쳐 뉴타운 재개발에 이르는
땅의 스펙트럼을 왕십리는 가졌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윤재철
시인.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초ㆍ중ㆍ고 시절을 대전에서 보냈다.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고, 1981년 <오월시> 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아메리카 들소』, 『그래 우리가 만난다면』,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세상에 새로 온 꽃』, 『능소화』, 『거꾸로 가자』, 『썩은 시』, 『그 모퉁이 자작나무』, 『에스컬레이터 타고 내려온 달빛』, 『따뜻한 모순』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오래된 집』, 『우리말 땅이름』(전 4권)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오장환문학상을 받았다.
목차
ㅣ시인의 말ㅣ 5
제1부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새 1 13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새 2 14
애련ㆍ달항아리 15
빙렬 16
동작역에서 18
다시 먼 후일 20
구림 가는 길 22
보이저 1호를 추억하며 24
마다가스카르섬으로 가고 싶다 26
어싱 28
고로쇠나무 수액 혹은 피 30
그림자가 짧아졌다 32
쇼나 조각 34
어머니표 김밥 꽁다리 36
12월에 딸기 38
우수 무렵 40
제2부
정선의 동작진도를 추억하며 43
흑석강변 누치의 주검 45
물방울무늬의 기억 46
강변 풍경 48
꽃길 오르는 잉어 50
청둥오리의 사랑법 52
물닭 멍때리기 54
물닭은 뜸부기가 그립다 56
겨울 참새 58
맨땅에 헤딩할 뻔한 꽃 60
잠자리는 날개를 접지 못한다 62
풀밭을 걷는 미녀 64
타클라마칸 사막의 호양나무 66
조팝나무는 꽃향기가 좋다 68
제3부
수련이 있는 풍경 71
슴베찌르개 73
피카소가 그린 쏘가리 74
주먹도끼의 추억 1 76
주먹도끼의 추억 2 78
동삼동 패총 조가비 탈 80
흐린 날 나는 메소포타미아로 간다 82
빗살무늬토기 84
토우장식 장경호 86
반가사유상의 뒷모습 88
칠층석탑과 진달래꽃 89
불두 혹은 낙화 90
물가 풍경 무늬 청자 주전자 92
강산무진도에 눈은 내리고 94
개쑥부쟁이의 노래 98
백모란 100
제4부
이수역 가는 길 103
신성한 숲 이야기 104
고향 땅 억새풀 106
남효온이라는 사람 108
구리로 만든 참새 110
노들강변 새남터 112
빼앗긴 땅이름 둔지미 114
밥전거리 국밥 한 그릇 116
물빛이 하늘에 이어진 수색 118
신사동 모랫말 사평 120
비 내리는 왕십리 122
백제 왕들의 공동묘지 124
바람드리 풍납토성 126
청라는 파란섬 128
평양을 부루나로 부른다면 130
검은모루 동굴 사람들 132
ㅣ시작 노트ㅣ 안녕 모란 씨 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