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선조 대에 발생한 동인과 서인의 분당(分黨)부터 영조 대까지 약 180년간의 당쟁의 역사를 편찬했다. 이건창의 출신 가문과 정치적 행보 때문에 소론 중심의 당론서로 평가받지만,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한다. 우리는 조선 시대 정치사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정치 상황을 반추해 볼 수 있다.
출판사 리뷰
≪당의통략≫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조선 시대 많은 당론서 가운데 소론 중심으로 저술된 당론서다. ≪당의통략≫이 소론 중심으로 저술된 이유는 저자 이건창의 가족 배경과 관련이 있다. 이건창은 전주 이씨 덕천군파로, 그 중조선 시대 붕당이 생긴 이후 활동하던 주요 인물로는 이경직과 이경석이 있다. 이들은 사림(士林)이 남인과 서인 등으로 나누어졌던 시기에 서인계로 활동하던 인물들이다. 이 가운데 이경석은 인조 대에 발생한 병자호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신변의 불이익을 무릅쓰고 청태종공덕비(이른바 삼전도비)의 비문을 작성한 것으로 후일 송시열 등에게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어 활동하던 시기 이건창의 선대는 주로 소론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진유, 이진검, 이광사, 이광의, 이광덕, 이긍익 등 면면을 보면 당대 정치나 학계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던 인물들이다. 그러나 영조 대 중반 이후 노론 주도의 정치적 상황이 되면서 소론 당색을 가진 저자의 가문은 결국 정치적으로 쇠락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으로 실추된 전주 이씨 이건창 가문의 선대는 이후 강화도로 이주해 이곳을 중심으로 성행하던 양명학과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건창은 이 책을 쓰면서 다른 당론서에 비해 대체로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했다. 바로 이 점이 고전으로서 ≪당의통략≫을 추천하는 이유다. 인조 때 서인 김상헌과 남인 이계의 일을 언급하면서 김상헌으로 말미암아 이계가 극형을 받았으나 이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남인 측의 입장을 서술한 것이나, 자신의 선조인 이진유와 관련된 서술에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된다. 저자 스스로 ‘본인의 생각 일부를 보태어’ 편찬했다고 진술하고는 있으나, 이같은 객관적 서술은 ≪당의통략≫을 다른 당론서에 비해 높이 평가할 수 있게 하는 요소다.
이런 객관적 서술을 통해서 우리는 조선 시대 정치사에 대한 사실을 얻을 수 있다. 현재의 입장에서 볼 때 조선 시대 정치사에 대한 이해가 그 자체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정치 등 여러 상황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거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당의통략≫의 의의가 충분하다. 역사를 ‘거울 감(鑑)’자로 표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밖에도 이 책은 독자들에게 변화하는 시대에 대처하는 지식인의 고뇌를 느낄 수 있게 한다.
1.
자신을 이기는 데 용감한 것을 ‘굳세다[剛]’라고 하는 것인데 지금은 남을 맹렬히 책망하는 것을 ‘굳세다’고 하고, 이성으로써 욕심을 이기는 것을 ‘굳세다’고 하는데 지금은 힘으로 남을 굴복시키는 것을 ‘굳세다’고 하니 이것은 또한 진실로 ‘굳센 것’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2.
대체로 마음은 한 치 가슴 속에 감추어져 있고 말은 깜짝할 사이에 나오는 것으로, 마음은 허물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혹 다 보지 못하고, 말은 실수가 있더라도 또한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글이란 그렇지 못하여 한 번 먹물로 종이에 쓰면 오래도록 멀리 전해져서 이미 가리거나 마멸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3.
이계는 글을 잘하고 의론을 좋아했는데 김상헌과 원수 사이였다. 뒤에 김상헌이 심양에 갔을 때, “이계는 청나라 사람에게 붙어서 국가 기밀을 누설했다”고 말해 극형을 받았다. 그러나 이 일은 분명하지 않으므로 남인들이 이를 원통히 여겼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건창
19세기 후반 대내외적인 변혁의 시대에 관료이자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본관은 전주이고, 조선의 2대 왕 정종의 후손으로서 인조대 이경직(李景稷)은 판서, 이경석(李景奭)은 영의정까지 지낸 집안이었다. 그의 조상들은 숙종대 소론으로 좌정하여 경종.영조대까지 소론 탕평파로 활약하다가 노론의 공격을 받고 1755년 을해옥사 이후 조정에 진출하지 못하였다. 그는 학문적으로 양명학을 가학으로 물려받은 강화학파(江華學派)에 속하였다. 순조대 그의 조부 이시원(李是遠)이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이조판서까지 이르렀지만,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그 형제가 자결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는 15세에 조부의 순절(殉節)을 기리는 과거에 최연소로 합격하여 조정에 진출한 뒤 청현직을 두루 역임하였지만 현실 정치와 불화하여 세 번이나 유배당하는 곤경을 당했다. 조부 이시원의 작업을 이어서 <당의통략>을 저술하여 그 집안의 정치적 입장을 정리하였다.
목차
자서(自序)
선조조·광해조를 부기함(宣祖朝附光海朝)
인조조에서 효종조(仁祖朝至孝宗朝)
현종조(顯宗朝)
숙종조(肅宗朝)
영종조(英宗朝)
원론(原論)
당의통략발(黨議通略跋)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