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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은 반 뼘의 마법이다
이지출판 | 부모님 | 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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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김근희 작가가 펴낸 첫 수필집이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곰곰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답게 지나치기 쉬운 작은 것들에 담긴 큰 의미와 사소한 것들이 가진 소중한 이야기 40편을 담아냈다.

  출판사 리뷰

이 책은 김근희 작가가 펴낸 첫 수필집이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곰곰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답게
지나치기 쉬운 작은 것들에 담긴 큰 의미와 사소한 것들이 가진 소중한 이야기 40편을 담아냈다.

일찍이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은 꿈을 간직하고 있던 작가는
평범한 단어들이 특별하게 느껴지고, 늘 보던 사물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들리고, 과거의 체험에서 현재의 실상이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하면서, 그 특별함과 새로움, 신기함을 수필이라는 그릇에 담아 자신의 꿈을 실현해 냈다.

작가는 글을 쓰기 전에 꼭 손을 씻는다고 한다. 물기를 닦고 조금 기다려 잔여 습기마저 완전히 말린 다음, 핸드크림도 바르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손으로 글을 쓴다고 한다. 정성을 다하겠다는 다짐이자 독자에 대한 예의다. 그렇게 쓴 글 40편이 담긴 이 책에서 작가가 글을 얼마나 진중하게 겸손하게 대하고 있는지 발견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하이힐은 반 뼘의 마법이다


“안녕, 하이힐.”
작별을 고했다. 당분간 하이힐을 잊어야겠기에 그랬다.
조심성 하나로 둔한 운동 신경을 보완해 왔는데, 어쩌다 그만 발을 헛딛고 만 것이다. 병원 순례의 긴 여정. 의사는 ‘편한 신발’을 신으라고 신신당부했다.

어린 시절 하이힐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엄마가 머리를 만지고, 곱게 화장을 하고, 멋진 옷을 차려 입으면 다음은 하이힐을 신을 차례였다. 아, 멋진 구두! 정말 예뻤다. 그러다 언젠가 몰래 엄마 구두를 신어 본 적이 있었다. 갑자기 키가 쑥 자란 느낌. 어른이 된 기분. 헐렁한 신발을 발끝으로 들다시피 하며 걸음을 옮겼다. 어른 흉내는 거기까지였다. 엄마의 호통이 날아왔다.
“다치면 어쩌려고? 빨리 벗지 못해?”
황급히 하이힐에서 내려왔지만 잠시나마 어른들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온 여운은 강하게 남았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이힐은 코디의 화룡점정이다. 스무 살이 되어 드디어 ‘나의’ 하이힐을 신었을 때 그 사실을 실감했다. 같은 옷차림이라도 하이힐을 신으면 맵시가 한층 돋보인다는 것도. 하체가 짧아 보일 수 있는 바지를 입어도 높은 굽 위에 올라서는 순간 고민 해결. 치마와 궁합이 맞는 것도 단화보다는 하이힐이다. 다소 무신경한 듯 흔한 차림도 하이힐로 차별화시킬 수 있다. 볼이 넓은 발도 날렵한 구두코에 욱여넣으면 감쪽같다. 세련미를 극대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또한 하이힐을 신는 것이다. 그러니 발뒤꿈치가 까지고, 다리가 아픈 것쯤이야! 패션을 위해서라면, 아니, 아름다움을 위해서라면.
하이힐은 때로는 전투화가 된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매일같이 화장을 하고 정장을 차려입어야 했지만, 신발만큼은 사무실 안에 들어서면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회사 측에서는 청결을 이유로 그렇게 하기를 권했고, 내 입장에서도 근무 시간 내내 꽉 끼는 구두를 신고 갑갑하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그러나 하이힐을 꼭 신어야 하는 때도 있었다. 특별한 날이었다. 그 옛날 신하들이 임금을 배알할 때 정성껏 의관을 정제하듯, 상대방에게 예의를 다했다는 표시로 하이힐이 필요한 날이었다. 외부 고객을 만나는 날, 중요한 계약을 성사시켜야 하는 날, 하이힐은 예우의 증표가 되었다. 출발선에서 운동화 끈을 조이듯, 하이힐을 신으며 마음은 언제나 결의에 차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성과는 언제나 만점. 직장이라는 먹고 먹히는 전쟁터에서 하이힐은 훌륭한 전투화가 되기도 한다.
하이힐은 자신감의 원천이다. 키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나는 종종 하이힐을 신는다. 지름 1센티미터 정도의 가느다란 굽에 50킬로그램의 체중을 싣는 순간은 아찔하다. 아니, 짜릿하다. 발가락과 굽 위에 얹힌 뒤꿈치 사이의 경사. 앞으로 쏠리는 몸. 절로 상체를 곧추세우게 된다. 자신감 있게 편 어깨. 꼿꼿이 쳐든 고개.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자꾸 움츠러드는 날, 남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아 풀죽어 있는 날, 하이힐은 기꺼이 몸을 내어 준다. 밟고 올라서서 어서 당당해지라고.
하이힐은 조화의 미학이다. 매끈한 곡선으로 발을 감싸며 부드럽게 떨어지다가 마침내 고운 구두코로 귀결되는 자태가 엽렵하다. 그런가 하면, 뒤꿈치를 받치고 있는 굽은 투박하기 그지없다. 날카로운 직선이 땅을 향해 기운차게 죽 뻗어 있다. 그 무엇도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거침없는 기세다. 그야말로 유연함과 단호함이 공존하는 형태미. 때로는 이리저리 휘어지는 버들가지처럼 가볍게 걷기도 하고, 때로는 깊숙이 박힌 뿌리처럼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라고 하이힐은 가르친다.
그 무엇보다 하이힐은 반 뼘의 마법이다. 반 뼘 높이밖에 안 되는 굽이지만, 하이힐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 준다. 아니, 우리 능력의 한계를 넘어 마음의 여유까지 안겨 준다. 굽 높이만큼 더 높은 세상에 진입하면 눈높이가 달라진다. 겨우 반 뼘 높게 올라섰을 뿐인데 세상이 훨씬 잘 보인다. 조금 전까지 올려다봤던 것을 내려다볼 수 있다. 손이 닿지 않던 것을 단숨에 집을 수도 있다. 까치발을 하며 용쓰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볼 수도, 손에 넣을 수도 있다. 겨우 몽당연필만 한 굽 덕에 시야는 확장되고, 능력은 확대되고, 마음의 여유 또한 생기는 것이다.

어쩌다 순간의 부주의로 하이힐을 멀리할 수밖에 없게 되다니! 어릴 적 동경은 날아간 지 오래고, 다친 발에 패션은 사치였으며, 전투 또한 무리였다. 불편한 발 때문에 제한된 외출만 하다 보니, 자신감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았다. 곡선과 직선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기에 더욱 매력적인 앙상블이 점점 그리워졌다. 올라서면 찾아오는 마법 같은 여유를 만끽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문득 신발장 문을 열어 본다. 계절 별로 정렬된 하이힐은 한결같은 자세로 날 기다리고 있다. 한 켤레 꺼내 조심스럽게 발을 넣어 본다. 아프지 않다. 몇 걸음 걸어 본다. 괜찮다. 묵묵히 바깥 나들이를 기다렸을 하이힐. 이제 소원을 풀어 줘도 될 것 같다. 하이힐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 하이힐!”
작별 인사가 아니다. 이번에는 안부 인사다.



여자가 머리를 자를 때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음식점은 ‘할머니 뼈다귀 해장국집’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할머니‘가’ 뼈다귀로 해장국을 만드는 집이 아니라, 할머니‘의’ 뼈다귀로 해장국을 만드는 집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무서워하는 말이 또 하나 있다. ‘머리를 자르다’인데, ‘머리카락’ 자르는 것을 왜 ‘머리’를 자른다고 표현하느냐는 외국인의 갑작스런 질문에는 순간적으로 대답할 말이 궁하다. ‘머리를 자르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단두대를 떠올리고 사형 집행 장면을 연상할 테니 소스라칠 법도 하다.
이쯤 되면 ‘머리를 자르다’라는 표현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표현하는 데는 그 나라만의 문화적 배경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자소학』의 다음 글귀가 이 궁금증을 풀 수 있을 것 같다.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몸과 머리카락, 피부는 모두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나 ‘머리’를 자르는 것이나 매한가지라 ‘머리카락을 자르다’와 ‘머리를 자르다’를 동일시하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세월은 흐르고 시대도 변해 오히려 자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수난 당하던 시절도 있었다. 한때는 거리에서 장발을 단속하기도 했고, 학교에서 두발 길이에 제한을 두기도 했다. 머리 자르고 다니라고 훈계하고 야단치는 사람 하나 없는 요즘도, 너나없이 깎고 다듬고 숱을 쳐내느라 미용실은 문전성시니 『사자소학』의 가르침이 무색할 지경이다. 하지만 시절 따라 풍속도 변하는 법. 그저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뜻’만 받들면 되겠다. 효도의 ‘방법’이야 시대에 따라 변할 수도 있으니까.
‘머리를 자르다’라는 표현은 대체로 남자들보다 여자들에게 더 의미심장하게 와닿는다. 유니섹스 시대에 특별히 성별에 따른 머리 모양에 제약이 있을 것도 없지만, 대부분 남자들은 짧은 머리를 하고 있다. 그러니 머리를 자른다고 해 봤자 약간 다듬는 정도라 자르기 전이나 자른 후나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여자들은 다르다. 물론 커트 머리로 보이시한 세련미를 뽐내는 여성들도 있지만, 많은 여성들에게 긴 머리는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헤어 아이덴티티를 찰랑찰랑 윤이 나는 긴 머리로 정했다면 화초 기르듯 정성을 쏟아야 한다. 모근에서 긴 머리카락 끝까지 영양이 전달되도록 좋은 샴푸를 쓰고, 헤어로션을 바르고, 때때로 미용실에 들러 전문가의 관리를 받아야 건강한 모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니 애써 길러 온 머리를 단숨에 싹둑 잘라내는 경우, 그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
『사자소학』에서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 자체가 불효로 이어지는 일탈이다. 오늘날 여자들이 긴 머리를 자르는 것은 일탈을 꿈꾸는 것일 수도 있고, 일탈을 끝내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다. 즉 어떤 심리적 변화로 인해 머리 자를 결심을 하게 되고, 이를 통해 이후의 또 다른 변화를 이끌어 내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그 비장함은 머리를 길러 온 시간 동안 쌓인 물때 같은 불순물을 제거하겠다는 생각의 발로라고나 할까? 단순히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지우고 싶은 기억과 과거를 잘라 버리겠다는 의식인 셈이다.
십 년 넘게 빛나는 긴 생머리의 소유자였던 친구가 아기 엄마가 되더니 단발머리로 나타났다. 육아 스트레스로 우울증 걸리겠다 싶을 무렵, 아기를 돌볼 때 걸리적거리는 머리카락이 유독 성가시게 느껴졌다고 했다. 긴 머리를 어쩌지 못해 뒤로 넘기다가 끈으로 묶다가 말아 올리다가 지쳐, 문득 모든 짜증이 긴 머리 탓인 것 같아 과감하게 잘라 버렸다고 했다. 가끔 쇼윈도를 지날 때면 긴 머리 청순 소녀는 온데간데없고 웬 단발머리 아줌마가 서 있어 깜짝깜짝 놀란다지만, 머리가 가벼워져서 그런지 마음도 가뿐해졌다고 했다. 나비 효과라는 것이 정말 있는 것 같다며, 머리 한번 잘랐을 뿐인데 스트레스며 짜증이 줄고, 심리적으로 안정되니 육아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개똥철학이지만 믿어 보라고 했다.
어떤 변화가 있어 머리를 자르고, 그 후에 뒤따르는 긍정적 변화에 솔깃하다. 거창한 심경의 변화도 환경의 변화도 없지만 괜스레 머리를 자르고 싶다. 어제까지도 아무렇 지 않던 긴 머리카락이 갑자기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 자체가 어쩌면 사소한 내적 변화라면 변화일지도 모른다. 내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인생을 리셋하고 싶은 내 마음 저변의 욕구가 용솟음쳐 잔물방울처럼 떠오른 것일지도.
오랜만에 미용실 의자에 앉아 본다. 미용사의 현란한 가위질에 머리카락이 잘려 나간다. 묵은 각질이 벗겨져 나간 듯, 개운하기까지 하다. 한참 다듬기를 반복하더니 마침내 한 템포 쉬며 어깨에 남은 자잘한 머리카락을 툭툭 털어낸다.
“다 됐습니다. 마음에 드세요?”
상큼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본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러나 낯선 여자가 나를 보고 있다. 어색함을 감추지 못한 엷은 미소. 왠지 기분이 좋다.

하이힐은 반 뼘의 마법이다


“안녕, 하이힐.”
작별을 고했다. 당분간 하이힐을 잊어야겠기에 그랬다.
조심성 하나로 둔한 운동 신경을 보완해 왔는데, 어쩌다 그만 발을 헛딛고 만 것이다. 병원 순례의 긴 여정. 의사는 ‘편한 신발’을 신으라고 신신당부했다.

어린 시절 하이힐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엄마가 머리를 만지고, 곱게 화장을 하고, 멋진 옷을 차려 입으면 다음은 하이힐을 신을 차례였다. 아, 멋진 구두! 정말 예뻤다. 그러다 언젠가 몰래 엄마 구두를 신어 본 적이 있었다. 갑자기 키가 쑥 자란 느낌. 어른이 된 기분. 헐렁한 신발을 발끝으로 들다시피 하며 걸음을 옮겼다. 어른 흉내는 거기까지였다. 엄마의 호통이 날아왔다.
“다치면 어쩌려고? 빨리 벗지 못해?”
황급히 하이힐에서 내려왔지만 잠시나마 어른들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온 여운은 강하게 남았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이힐은 코디의 화룡점정이다. 스무 살이 되어 드디어 ‘나의’ 하이힐을 신었을 때 그 사실을 실감했다. 같은 옷차림이라도 하이힐을 신으면 맵시가 한층 돋보인다는 것도. 하체가 짧아 보일 수 있는 바지를 입어도 높은 굽 위에 올라서는 순간 고민 해결. 치마와 궁합이 맞는 것도 단화보다는 하이힐이다. 다소 무신경한 듯 흔한 차림도 하이힐로 차별화시킬 수 있다. 볼이 넓은 발도 날렵한 구두코에 욱여넣으면 감쪽같다. 세련미를 극대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또한 하이힐을 신는 것이다. 그러니 발뒤꿈치가 까지고, 다리가 아픈 것쯤이야! 패션을 위해서라면, 아니, 아름다움을 위해서라면.
하이힐은 때로는 전투화가 된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매일같이 화장을 하고 정장을 차려입어야 했지만, 신발만큼은 사무실 안에 들어서면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회사 측에서는 청결을 이유로 그렇게 하기를 권했고, 내 입장에서도 근무 시간 내내 꽉 끼는 구두를 신고 갑갑하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그러나 하이힐을 꼭 신어야 하는 때도 있었다. 특별한 날이었다. 그 옛날 신하들이 임금을 배알할 때 정성껏 의관을 정제하듯, 상대방에게 예의를 다했다는 표시로 하이힐이 필요한 날이었다. 외부 고객을 만나는 날, 중요한 계약을 성사시켜야 하는 날, 하이힐은 예우의 증표가 되었다. 출발선에서 운동화 끈을 조이듯, 하이힐을 신으며 마음은 언제나 결의에 차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성과는 언제나 만점. 직장이라는 먹고 먹히는 전쟁터에서 하이힐은 훌륭한 전투화가 되기도 한다.
하이힐은 자신감의 원천이다. 키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나는 종종 하이힐을 신는다. 지름 1센티미터 정도의 가느다란 굽에 50킬로그램의 체중을 싣는 순간은 아찔하다. 아니, 짜릿하다. 발가락과 굽 위에 얹힌 뒤꿈치 사이의 경사. 앞으로 쏠리는 몸. 절로 상체를 곧추세우게 된다. 자신감 있게 편 어깨. 꼿꼿이 쳐든 고개.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자꾸 움츠러드는 날, 남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아 풀죽어 있는 날, 하이힐은 기꺼이 몸을 내어 준다. 밟고 올라서서 어서 당당해지라고.
하이힐은 조화의 미학이다. 매끈한 곡선으로 발을 감싸며 부드럽게 떨어지다가 마침내 고운 구두코로 귀결되는 자태가 엽렵하다. 그런가 하면, 뒤꿈치를 받치고 있는 굽은 투박하기 그지없다. 날카로운 직선이 땅을 향해 기운차게 죽 뻗어 있다. 그 무엇도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거침없는 기세다. 그야말로 유연함과 단호함이 공존하는 형태미. 때로는 이리저리 휘어지는 버들가지처럼 가볍게 걷기도 하고, 때로는 깊숙이 박힌 뿌리처럼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라고 하이힐은 가르친다.
그 무엇보다 하이힐은 반 뼘의 마법이다. 반 뼘 높이밖에 안 되는 굽이지만, 하이힐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 준다. 아니, 우리 능력의 한계를 넘어 마음의 여유까지 안겨 준다. 굽 높이만큼 더 높은 세상에 진입하면 눈높이가 달라진다. 겨우 반 뼘 높게 올라섰을 뿐인데 세상이 훨씬 잘 보인다. 조금 전까지 올려다봤던 것을 내려다볼 수 있다. 손이 닿지 않던 것을 단숨에 집을 수도 있다. 까치발을 하며 용쓰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볼 수도, 손에 넣을 수도 있다. 겨우 몽당연필만 한 굽 덕에 시야는 확장되고, 능력은 확대되고, 마음의 여유 또한 생기는 것이다.

어쩌다 순간의 부주의로 하이힐을 멀리할 수밖에 없게 되다니! 어릴 적 동경은 날아간 지 오래고, 다친 발에 패션은 사치였으며, 전투 또한 무리였다. 불편한 발 때문에 제한된 외출만 하다 보니, 자신감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았다. 곡선과 직선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기에 더욱 매력적인 앙상블이 점점 그리워졌다. 올라서면 찾아오는 마법 같은 여유를 만끽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문득 신발장 문을 열어 본다. 계절 별로 정렬된 하이힐은 한결같은 자세로 날 기다리고 있다. 한 켤레 꺼내 조심스럽게 발을 넣어 본다. 아프지 않다. 몇 걸음 걸어 본다. 괜찮다. 묵묵히 바깥 나들이를 기다렸을 하이힐. 이제 소원을 풀어 줘도 될 것 같다. 하이힐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 하이힐!”
작별 인사가 아니다. 이번에는 안부 인사다.

여자가 머리를 자를 때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음식점은 ‘할머니 뼈다귀 해장국집’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할머니‘가’ 뼈다귀로 해장국을 만드는 집이 아니라, 할머니‘의’ 뼈다귀로 해장국을 만드는 집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무서워하는 말이 또 하나 있다. ‘머리를 자르다’인데, ‘머리카락’ 자르는 것을 왜 ‘머리’를 자른다고 표현하느냐는 외국인의 갑작스런 질문에는 순간적으로 대답할 말이 궁하다. ‘머리를 자르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단두대를 떠올리고 사형 집행 장면을 연상할 테니 소스라칠 법도 하다.
이쯤 되면 ‘머리를 자르다’라는 표현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표현하는 데는 그 나라만의 문화적 배경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자소학』의 다음 글귀가 이 궁금증을 풀 수 있을 것 같다.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몸과 머리카락, 피부는 모두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나 ‘머리’를 자르는 것이나 매한가지라 ‘머리카락을 자르다’와 ‘머리를 자르다’를 동일시하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세월은 흐르고 시대도 변해 오히려 자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수난 당하던 시절도 있었다. 한때는 거리에서 장발을 단속하기도 했고, 학교에서 두발 길이에 제한을 두기도 했다. 머리 자르고 다니라고 훈계하고 야단치는 사람 하나 없는 요즘도, 너나없이 깎고 다듬고 숱을 쳐내느라 미용실은 문전성시니 『사자소학』의 가르침이 무색할 지경이다. 하지만 시절 따라 풍속도 변하는 법. 그저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뜻’만 받들면 되겠다. 효도의 ‘방법’이야 시대에 따라 변할 수도 있으니까.
‘머리를 자르다’라는 표현은 대체로 남자들보다 여자들에게 더 의미심장하게 와닿는다. 유니섹스 시대에 특별히 성별에 따른 머리 모양에 제약이 있을 것도 없지만, 대부분 남자들은 짧은 머리를 하고 있다. 그러니 머리를 자른다고 해 봤자 약간 다듬는 정도라 자르기 전이나 자른 후나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여자들은 다르다. 물론 커트 머리로 보이시한 세련미를 뽐내는 여성들도 있지만, 많은 여성들에게 긴 머리는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헤어 아이덴티티를 찰랑찰랑 윤이 나는 긴 머리로 정했다면 화초 기르듯 정성을 쏟아야 한다. 모근에서 긴 머리카락 끝까지 영양이 전달되도록 좋은 샴푸를 쓰고, 헤어로션을 바르고, 때때로 미용실에 들러 전문가의 관리를 받아야 건강한 모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니 애써 길러 온 머리를 단숨에 싹둑 잘라내는 경우, 그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
『사자소학』에서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 자체가 불효로 이어지는 일탈이다. 오늘날 여자들이 긴 머리를 자르는 것은 일탈을 꿈꾸는 것일 수도 있고, 일탈을 끝내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다. 즉 어떤 심리적 변화로 인해 머리 자를 결심을 하게 되고, 이를 통해 이후의 또 다른 변화를 이끌어 내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그 비장함은 머리를 길러 온 시간 동안 쌓인 물때 같은 불순물을 제거하겠다는 생각의 발로라고나 할까? 단순히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지우고 싶은 기억과 과거를 잘라 버리겠다는 의식인 셈이다.
십 년 넘게 빛나는 긴 생머리의 소유자였던 친구가 아기 엄마가 되더니 단발머리로 나타났다. 육아 스트레스로 우울증 걸리겠다 싶을 무렵, 아기를 돌볼 때 걸리적거리는 머리카락이 유독 성가시게 느껴졌다고 했다. 긴 머리를 어쩌지 못해 뒤로 넘기다가 끈으로 묶다가 말아 올리다가 지쳐, 문득 모든 짜증이 긴 머리 탓인 것 같아 과감하게 잘라 버렸다고 했다. 가끔 쇼윈도를 지날 때면 긴 머리 청순 소녀는 온데간데없고 웬 단발머리 아줌마가 서 있어 깜짝깜짝 놀란다지만, 머리가 가벼워져서 그런지 마음도 가뿐해졌다고 했다. 나비 효과라는 것이 정말 있는 것 같다며, 머리 한번 잘랐을 뿐인데 스트레스며 짜증이 줄고, 심리적으로 안정되니 육아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개똥철학이지만 믿어 보라고 했다.
어떤 변화가 있어 머리를 자르고, 그 후에 뒤따르는 긍정적 변화에 솔깃하다. 거창한 심경의 변화도 환경의 변화도 없지만 괜스레 머리를 자르고 싶다. 어제까지도 아무렇 지 않던 긴 머리카락이 갑자기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 자체가 어쩌면 사소한 내적 변화라면 변화일지도 모른다. 내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인생을 리셋하고 싶은 내 마음 저변의 욕구가 용솟음쳐 잔물방울처럼 떠오른 것일지도.
오랜만에 미용실 의자에 앉아 본다. 미용사의 현란한 가위질에 머리카락이 잘려 나간다. 묵은 각질이 벗겨져 나간 듯, 개운하기까지 하다. 한참 다듬기를 반복하더니 마침내 한 템포 쉬며 어깨에 남은 자잘한 머리카락을 툭툭 털어낸다.
“다 됐습니다. 마음에 드세요?”
상큼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본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러나 낯선 여자가 나를 보고 있다. 어색함을 감추지 못한 엷은 미소. 왠지 기분이 좋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근희
연세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하고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했다.2021년 계간 『에세이문학』 가을호로 등단했으며,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 에세이문학작가회, 일현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작가의 말 4

제1부 여자가 머리를 자를 때

하이힐은 반 뼘의 마법이다 12
여자가 머리를 자를 때 17
산타의 지각 선물 22
겉바속촉 28
말을 삼키다 33
그때가 좋았어 38
콜라 마시고 싶은 날 45
땡큐, 마이 뿌렌 50
박 서방네 커피집 55
나의 커피 인생 61

제2부 잿밥의 효과

미안해요, 놀이터 삼촌 66
거위의 연못 71
엘리제를 위하여 피아노를 사수하라 76
시간은 돈보다 따뜻하다 84
닭 대신 꿩? 90
‘세상이 변했다’는 말은 94
잿밥의 효과 100
키오스크 시대를 살며 106
추억도 버려야 하나요 113
T 같은 F의 농담 117

제3부 추억을 말해도 될까요?

오늘도 나는 밥하러 간다 126
추억을 말해도 될까요? 132
애들은 가라 137
삼대의 결혼식 146
우리 반 진짜 거인 153
미남 미녀 수난 시대 158
낭만 속 난감 164
다인실의 다행 171
그 가을의 운동회 178
행복한 착각 183

제4부 출근길에 만난 파랑새

출근길에 만난 파랑새 190
로렐라이 언덕에서 빨래를 하다 195
짝이 되기 싫은 친구 ‘엄서영’ 199
괜찮은 사람이 사는 법 205
별난 여자 제니퍼 211
진심은 주고받는 것 217
올해는 봉숭아 꽃물을 들여봐야겠다 224
여름 찬가 230
숲을 마신다 235
그 많던 점방은 다 어디로 갔을까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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